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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4메가 D램 개발 공방 내막

첨단 메모리 주도권 놓고 다투는 삼성과 현대


기흥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최첨단 반도체인 64메가D램을 서로 먼저 개발했다고 공을 다투는 삼성과 현대. 그러나 이 제품은 국책과제로 이들과 전자통신연구소가 공동개발 한 것이다. 과연 64메가 개발로 한국은 메모리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한 것인가?

지난 9월말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누가 먼저 64메가D램의 개발했는지'를 놓고 벌인 논쟁은 우리 반도체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태의 발단은 삼성이 9월 25일 6천8백만개의 셀(cell)이 완전하게 작동하는 64메가D램 반도체 시제품을 세계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과학기술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최초'로 신제품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연히 삼성의 64메가 반도체 개발소식은 매스컴에 크게 보도됐다

문제는 사흘 뒤에 현대가 "우리는 이미 7월에 64메가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주관 하에 삼성 금성 현대 등 반도체 3사가 공동으로 진행해 온 국책과제로 '연구결과에 대한 발표는 전자통신연구소의 사전승인을 받은 후에 한다'는 협약에 따라 미루고 있었다"며 삼성측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발생했다.

삼성의 개인플레이

이번 사건의 초점은 크게 세가지로 모아 진다. 먼저 두 업체가 가장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인 '누가 먼저 64메가 반도체를 개발했는가'하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공방전을 지켜보면 현대측의 주장이 상당부분 그럴듯하게 들린다.

전자통신연구소는 "최근에 3사가 모두 64메가 시제품을 만들만한 수준에 도달한 것을 확인했다. 다만 이 연구가 내년 3월에 끝나기 때문에 발표를 3사와 협의해 하려고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삼성측의 명백한 위약이다"며 삼성측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공동개발협약은 기초기술분야에 한정된 것이며 시제품개발 및 발표는 각 업체에 맡겨진 사항이다. 8월말 미국 언론에 삼성의 64메가 개발 사실이 보도됐고 일본업체들이 이를 알고 발표를 준비중이란 정보가 있어 하는 수없이 발표하게 됐다"며 변명했다.

삼성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대측은 "몇 년전에도 써먹었던 구태의연한 변명"이라고 반박한다. 그러고 보니 삼성은 지난 89년 16메가D램 발표시에도 '개인플레이'를 했었다. 이번처럼 공개발표 형식을 취한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언론에 흘려 마치 독자개발인 양 공을 독차지했다.

미국 일본에 '비해 늦게 반도체분야에 뛰어 든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술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연구소와 기업이 공동참여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첨단반도체를 개발해왔다. 4메가에서 출발한 이 방식은 16메가를 거쳐 최근에 64메가 개발을 성공시키는데 이르렀다.

공동개발이란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삼성 금성 현대 등 반도체 3사가 참여하며, 개발비용은 정부와 기업들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방식.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연구소와 기업의 연구 관계자들은 수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 연구진척상황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삼성에 비해 반도체사업을 늦게 시작한 현대로서는 4메가와 16메가에서 뒤진 그동안의 열세를 64메가에서 한꺼번에 만회하고자 벼렀으나 예상치못한 '한방'으로 공든 탑이 무너져버렸다. 삼성이 64메가 반도체개발 사실을 서둘러 발표한 가장 큰 이유는 현대가 이 제품의 개발을 끝내고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

과연 일본을 추월했는가

두번째 초점은 국내 업체들의 64메가 반도체 개발이 과연 '세계최초'냐는 점이다. 메모리반도체(기억소자) 분야에서 세계 정상은 단연 일본이다. 후지쓰 히타치 NEC(일본전기) 등 일본 반도체메이커들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의식할 뿐 다른나라 기업들의 기술수준은 "한수 아래'라고 평가해왔다.

그러나 89년 국내기업들이 16메가칩을 개발하자 일본은 한국을 경쟁자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2,3년은 기술격차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한국이 불과 반년 차이로 16메가를 개발하자 비로소 '턱밑'까지 쫓아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국내업체들이 반도체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10년안팎임을 생각할 때 비록 메모리 한 분야이지만 세계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국내 반도체 역사를 살펴보면 84년 64KD램 개발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2백56KD램, 86년에 1MD램, 88년에 4MD램을 개발하는 등 성장속도가 눈부시다. 이어 89년 16MD램을 개발해 일본에 불과 반년 차이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이 64메가D램 시제품을 세계최초로 발표했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뒤졌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이미 64메가디램 기술을 거의 완성하고 생산기술을 연구하는 단계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90년에 이미 히타치가 64메가D램의 핵심기술을 공개한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이 64메가D램을 개발해놓고도 발표를 미루고 있는가. 그것은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메모리제품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한 이유 때문이다. 64메가D램 기술이 발표될 경우 현재 주력제품인 1메가와 4메가의 가격폭락이 예상되고 이로 인해 이윤이 떨어진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64메가D램은 그 제품 자체의 개발만으로는 아무런 현실적인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즉 반도체를 개발한 후 그 제품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생산장비와 경제성이 있을 만큼 수율(收率)이 확보돼야 하는데 아직 첨단제품인 64메가를 생산할만한 장비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한 제품개발만으로는 상징적인 의미 이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 생산 장비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우리나라로서는 일본 업체들의 협조없이는 아무리 첨단제품을 개발했더라도 양산체제에 들어갈 수가 없는 실정이다.

앞으로도「공동개발」가능한가

마지막 남은 초점은 '이번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공동개발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현대나 전자통신연구소측은 삼성의 비신사적인 행위를 제재할 방법을 놓고 고심했으나 현실적으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가장 강력한 제재는 디음 프로젝트에서 삼성을 빼는 것인데 국내 반도체산업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할 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당장 눈앞에 닥친 2백56메가 개발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 2백56메가 개발계획은 'G7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다. 이러한 고민끝에 과기처는 10월초에 삼성과 현대 양측을 '협약위반'으로 한꺼번에 경고하는 선에서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사건의 제공자와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를 동등하게 취급했다는 점에서 이미 '공정성'을 잃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2백56메가 개발에 예전 같은 공동개발 분위기가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반도체업체들은 이 프로젝트을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체의 정보를 탐내는 치열한 정보경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연구는 따로따로하고 미팅에 와서는 다른 업체의 정보를 빼가려는 눈치작전만 벌어져 국책과제 본연의 목적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반도체는 흔히 '첨단산업의 쌀'에 비유 된다. '첨단'자가 붙은 산업에 반도체가 안쓰이는 분야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반도체 중 일부지만 세계수준에 올라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든 우리로서는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서 국민들은 긍지를 느끼기 보다는 기업들의 추태에 눈을 찌푸리게 된다. 첨단 반도체를 각자 개발하고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 발표를 미루고 있는 일본 기업들과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이 제품을 공동개발하고도 공을 다투는 국내 기업들, 이들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64메가 D램^삼성전자가 9월25일 64메가 D램 시제품(아래)을 발표하자 사흘뒤 현대전자가 독같은 제품(위)를 이미 개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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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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