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에서 종이가 분해되는 데는 1개월, 페인트 칠이 된 나무조각의 경우는 13년이 걸린다. 이에 비해 통조림 깡통은 1백년, 각종 플라스틱 제품은 무려 5백년 이상이 걸려야 분해된다.
1986년 9월 알래스카만 주변 해역을 항해중이던 미국 항공모함 콘스텔레이션호의 망원경에는 소련 초계함의 이상한 행동이 포착됐다. 콘스텔레이션호의 뒤꽁무니를 쫒아오던 소련 초계함이 급히 작은 보트를 내려 항공모함에서 바다에 던져버린 쓰레기 봉지들을 건져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미국측 항공모함에는 비상이 걸렸다. 군사비밀로 취급되는 문서들은 모두 잘게 분쇄시켜 폐기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항공모함내의 전화번호부같은 비밀서류로 취급되지 않는 각종 자료들이 그 속에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속에 가라앉지 않은 그 쓰레기봉지 안에 뭐가 들었느냐는 다그침에 콘스텔레이션호의 선임 정보장교는 이렇게 대답했다. "승선하고 있는 5천명의 오늘분 음식찌꺼기와 음료수병, 오늘 하루 5천명이 버린 각종 쓰레기가 들어 있습니다."
변하는 쓰레기, 변화없는 처리방식
훗날 '일급 비밀 쓰레기(?)'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선박에서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인간이 뗏목이나 가죽배를 타고 바다에 도전하던 시절부터 초호화판 유람선으로 대양을 건너게 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항해중의 쓰레기 처리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쓸모가 없어지거나 버리고 싶은 것이 생기면 간단히 바다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었다. 배 위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체도 '수장(水葬)'이라는 이름으로 바다에 버려졌다. 바다는 냄새나는 음식 찌꺼기나 쓰레기, 기름섞인 폐수를 말없이 받아주었고, 아무리 버려도 언제나 변함없이 푸르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바다가 한없이 넓어서 인간이 버리는 오물들을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바다 속으로 던져지는 쓰레기의 내용들도 시대가 변하면서 아주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나 깡통, 유리병같이 썩지 않거나 부식되는데 수백년 이상 걸리는 온갖 폐기물들이 마구 버려지는 것을 막기위해 선박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협약(MARPOL)의 1978년 부속서는 선박 쓰레기의 오염 방지 규정을 새로 명시했고 전세계 39개국이 수락해 1988년 12월에 발효됐다.
이 부속서에는 해안으로부터 약 19.3km이내의 연안에서는 플라스틱 그물 종이 금속 유리 음식물 등을 일체 버리지 못하며, 바다의 어느 곳에도 플라스틱 종류는 전혀 버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부속서에 가입하고 있는 나라의 영해내로 항해하다가 법을 위반하면 약 4천만원까지의 벌금을 물거나 5년 이내의 징역을 살게 된다. 하지만 기름과 독성물질 부분의 협약에만 가입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외국 선박이 영해인 12해리(약 22.3km) 내에서 쓰레기를 버려도 협약대로 규제할 수가 없다.
물론 법이 만능의 칼은 아니다. 플라스틱병 한개를 버리는데 징역 10년씩의 혹독한 벌칙을 가할 수도 없는 일이고, 법의 힘이 아무리 막강해도 넓고 넓은 바다를 전부 물샐틈없이 감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남몰래, 혹은 무의식적으로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던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그것을 항구까지 가지고 오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폐기방법에는 바다로 던져버리는 이상의 손쉬움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항구나 선착장에 편리한 쓰레기통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각종 쓰레기더미를 산타클로스처럼 둘러메고 하선하는 수고를 덜어줄 수 없는 것이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다시 부두까지 들고오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게 하려면 해양 쓰레기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먼저다. 바다속에서 종이는 분해되는데 1개월, 로프는 3~14개월, 대나무는 1~3년, 페인트칠이 된 나무조각은 분해되는데 13년이 걸린다. 이에 비해서 통조림 깡통은 1백년, 알루미늄 깡통은 2~5백년이나 걸리고, 그들을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은 무려 5백년 이상의 세월이 걸려야 분해가 가능하다.
지금으로부터 17년전인 1975년 추정치로도 상선 여객선 군함 유조선 등 각종 선박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연간 6백34t으로 시간당 7백t 이상의 쓰레기가 전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항해중인 화물선에서도 하루에 45만개의 플라스틱 병과 4백80만개의 깡통, 30만개 유리병을 버리고 있다. 어선에서는 매년 약 2만3천t의 플라스틱과 10만t의 플라스틱 어구를 버린다. 여름에 해변으로 바캉스를 가는 사람들이 버리는 양도 만만치 않은데, 해수욕장에서는 하루에 l0t 이상의 쓰레기가 발생한다고 한다.
바다생물의 극약 플라스틱
바다에 버리는 쓰레기의 최초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이 무수한 해양생물들이다. 쓰레기 중에서도 플라스틱 폐기물의 영향이 가장 심각하다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해양생물들에게 먹이로 착각되기도 하고 몸을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도 한다. 해양생물들이 실수로 먹는 플라스틱은 체내에서 소화가 되지 않으므로 포만감을 주어 영양실조를 일으키고 소화 기관을 막거나 상처를 입혀 죽음에 이르게 한다. 플라스틱을 삼킨 생물은 부력장애나 잠수장애를 일으켜 먹이를 잡거나 도망가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바다에 사는 새중에서 50여종이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덩어리, 일회용 라이터, 병뚜껑 장난감 등을 삼키는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데, 희생되는 숫자는 엄청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바다거북들은 비닐봉지를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먹이인 해파리로 착각하여 삼키게 된다. 죽은 거북의 배를 해부해 보면 대부분 배속에 비닐봉지가 여러장 들어있다. 죽은 고래의 위 속에서 50여개의 플라스틱 봉지가 발견된 일도 있고 꽁꽁 뭉쳐진 트롤 그물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류의 창자속에서도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5cm 밖에 안되는 넙치의 배속에서 30개의 조각이 발견된 예도 있다.
또한 해양생물들이 플라스틱 폐기물에 얽혀 죽게 되는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물개는 지난 30년동안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매년 4만마리 정도가 버려진 그물에 머리를 집어 넣어 목이 졸리거나 몸이 묶여 죽어 간다. 또 북양에서 2개월 동안 조업하는 각국의 연어잡이 어선에서 쓰는 자망(gill net)에 걸려 매년 25만마리 이상의 새들이 죽는 것으로 추정된다.
잃어버리거나 버려진 그물에 의한 어류나 갑각류의 피해는 최근 국제적인 관심사로 대두돼 규제의 대상이 됐다. 지난 91년 12월 제46차 UN총회에서 북양의 유자망어업을 92년 말까지 전면 금지하는 결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북태평양에서 1백40여척의 원양어선으로 연간 10만t의 오징어잡이를 해온 우리나라는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버려진 그물이나 어구가 바다를 떠다니면서 끊임없이 물고기나 게, 해양동물들을 죽이는 것을 '유령의 고기잡이'(ghost fishing)라고 부른다. 이 유령의 고기잡이는 버려진 대구잡이 자망이 수년동안 떠다니면서 저 혼자 물고기들을 죽이는 것이 1976년 처음 보고된 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분야도 물론 정확하고 정량적인 연구자료를 얻기가 무척 힘든 난점을 가지고 있는데, 1980년 북태평양에서 건져 올린 1천5백m 길이의 버려진 자망속에는 99마리의 새와 2마리의 상어, 최근 죽은 75마리의 연어가 들어 있었고, 그 이전에 죽은 많은 연어의 뼈가 들어 있었다. 게 잡이에 사용되는 그물함정을 잃어버리는 숫자도 수십만개 이상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매년 여기에 걸려 죽게되는 바다가재나 게의 숫자도 엄청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양식장 스티로폴 부이 영향 살펴야
플라스틱에 의한 생태계 피해 이외에도 각종 폐기물이 선박운항에 주는 피해는 무척 심각하다. 선박의 스크루에 철선이나 그물이 얽히거나 플라스틱이 냉각수 계통으로 빨려 들어가 엔진에 이상을 일으키는 사고도 무척 흔하게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큰 항구에는 잠수를 해서 스크루에 걸린 각종 폐기물들을 제거해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도 생겼을 정도다.
바다 위에서 보는 바다와 물안경을 쓰고 들여다 보는 바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항구와 만내의 여러 곳에는 쓰레기 매립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바다속에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다. 해변에 가보면 즐비하게 밀려온 쓰레기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90년 11월에는 강화도 외포리 포구에서 구입한 새우젓에 비닐 조각이 무수히 들어가 있는 것이 발견돼 소비자 보호단체가 직접 어장에서 실태조사를 하기도 했다. 한강을 통해 바다로 들어가는 비닐 때문에 한강 하구 부근에서 그물을 올리면 그물코마다 찢어진 비닐이 가득 끼워져 나올 정도다.
바다의 플라스틱 오염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서남해안의 수많은 양식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막대한 양의 스티로폴 부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쪼개져서 작은 알갱이가 되는데, 아직까지 이것들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다는 늘 먼 곳에 있고 그래서 언제나 푸르게 남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푸른 바다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올여름 엄마 아빠를 따라 해수욕장에 피서를 다녀온 어린이에게 바다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도화지에 쓰레기가 밀려온 더러운 해변을 그려 놓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