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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뛰어넘는 원격체험 TE

로봇 통해 먼곳 환자진단 수술 척척

가상현실분야에서 TE(teleexistence)는 CG(computer graphic)과 더불어 두 갈래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지난 달에 게재된 「가상현실」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TE를 연속해서 싣게 되었다.

영어 사전에서 접두사 '텔'(tel)또는 '텔레'(Tele)로 시작되는 낱말들을 찾아보자. 먼 거리를 뜻하는 이 접두사를 앞에 붙인 엄청난 수의 낱말군을 보고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텔레스코프 텔레타이프 텔레폰 텔레비전 등 아주 익숙한 것에서부터 텔레컴퓨팅 텔레게임 텔레텍스트 등 신조어에 이르기까지 사전의 부피를 늘리는 데 이 접두사가 붙은 낱말무리들이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마빈 민스키의 개념정립으로

모두가 먼 거리를 극복하려는,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생겨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하나다'라는 이 시대의 유행어도 이러한 원거리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원거리 관련기술은 많은 약점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정보의 전달이 부분적이며 부정확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먼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제한적인 참여만이 가능할 뿐이다. 예를 들어 회사원이 지방이나 해외로 출장가는 것은 팩시밀리나 전화 등의 통신수단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인인공위성이나 우주왕복선을 원격조정하는 경우, 예기치 못한 고장 등 돌발사태에 대처하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거리 기술의 한계로 보였던 현장감 부족과 상황대처의 제약이 텔레이그시스턴스(teleexlstence, TE)의 등장으로 조만간 사라지게 될 같다. TE란 예를 들어 사람이 멀리있는 현장에 가지 않고도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상황을 말하며 이러한 원격체험은 각종 첨단기술이 결합돼 이뤄진다.

예를 들어 1976년 화성에 난착륙한 바이킹1호는 멀리 떨어진 지구의 컨트롤센터의 지시에 따라 로봇암(arm)을 가지고 토양을 채취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물론 TE의 초보적 단계에 불과하다. 과연 컨트롤센터의 조작자가 마치 화성에 있는 것같은 현장감을 가지고 로봇에게 작업명령을 하는 완벽한 원격제어가 가능할까. 바로 TE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분야에 있어 선구자인 미국 MIT의 마빈 민스키는 60년대 말 처음으로 TE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원거리에 있는 로봇이 보내오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이 직접 가지 않더라도 현장감을 갖고 로봇을 원격조작할 수 있는 기술의 기본원리를 생각했던 것이다.

멀리 있는 로봇을 원격조정하는 경우, 사람의 입장이 아닌 로봇의 시점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대처해 나가면 작업을 훨씬 쉽고 정확히 하게 된다. 이때 로봇이 존재하는 공간은 조종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재현되고 사람은 그 속에 몰입돼 실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로봇으로부터 전달돼 사람의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인공적이 아닌 실제상황이지만 현실감을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고 불린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붐이 일고 있는 이 가상현실분야에서 TE는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가상현실과 더불어 두갈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가상현실이 주로 컴퓨터로 설계된 가상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현실감을 맛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TE는 앞서 말한대로 멀리 있는 현실 또는 혈관이나 집적회로의 내부와 같은 특수한 현실 속에서 사람이 원격적인 체험을 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이때 TE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사람이 느끼는 현장감의 수준일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기계사이의 이질감 또는 거리감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는가 하는 이른바 맨 머신 인터페이스(man machine interface)의 문제다.

로봇을 통해 먼 곳의 현장을 생생히 느끼고 사람이 로봇을 자신의 분신처럼 완벽히 다룰 수 있다면 사람과 기계간의 대화, 나아가 TE는 일단 도달점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 통산성이 추진중인 극한작업 로봇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첨단과학센터가 개발한 TE시스템은 사람이 머리에 쓴 디스플레이를 통해 멀리 있는 로봇의 주위를 입체적으로 보며 컨트롤러로 로봇의 팔을 작동시킬 수 있게 고안됐다.

이 작업로봇은 사람의 명령에 따라 1초에 2백50회 정도의 연속동작을 실시간(real time)으로 행할 수 있다. 또한 디스플레이에는 현장의 실제모습이 아닌 필요한 작업대상만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성한 영상이 펼쳐지기 때문에 설령 현장의 시계(視界)가 연기나 이슬 따위로 인해 명료하지 못해도 작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현장의 생생한 실제 모습은 상황판단의 정보를 주는 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밤이 되어 주위가 어둡거나 화재 등으로 악조건이 될 때는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된다.

따라서 극한작업로봇의 경우처럼 실제모습중 필요한 부분만을 컴퓨터로 걸러내어 재구성하는 방법이 효율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NTT 휴먼인터페이스연구소의 히라이와는 사람의 분신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는 환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퍼스널 보이저 '(Personal voyager)라는 TE시스템을 개발했다. 입체 디스플레이를 머리에 쓰고 이동식 의자에 앚은 사람이 제어막대기를 조작해서 카메라를 탑재한 로봇을 움직이면 보고자 하는 장면을 원하는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원격조정되는 전투기. 큰 전투기의 날개 밑에 붙어 있는 작은 전투기에는 사람이 타지 않는다.


우주정거장에 텔레로봇 파견해

아직 환상을 충족하기에는 이른 단계이지만 그는 앞으로 TE분야가 해저로봇을 통한 깊은 바다속의 자유로운 여행이나 비행로봇을 통한 환상적인 우주경험 등을 가능케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뇌파나 근육운동과 같은 생체정보를 슈퍼컴퓨터 또는 로봇에게 전달,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리고 나아가 사람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도 이것들을 제어할 수 있는 맨 머신 인터페이스에 대한 연구가 지금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우주개발은 우주정거장과 같은 항구적인 유인시설을 지구궤도상이나 다른 행성 주위에 올려 놓음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1984년 당시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이 제창한 국제협력에 의한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인 '프리덤'(Freedom) 등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 우주 공간에서의 시험관측은 물론 궤도상의 공장에서 각종 우주제품이 생산될 전망이다.

이렇게 다목적으로 이용될 우주정거장에서는 기기의 수리교환 안전사고 등과 같은 폐쇄환경 하에서의 생존문제에서부터 연구개발 공장운영 등에 따른 광범위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제를 풀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을 우주정거장에 입주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이 든다. 그렇다고 우주왕복선을 그야말로 왕복버스처럼 운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용도 문제려니와 시기를 놓치기 일쑤일 테니까. 또한 승무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남은 방법은 지상에서의 효과적인 원격지원이다. 그것도 재래식의 리모트컨트롤이나 통신같은 불완전한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보다 진보된 원격지원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때 현장감 넘치는 TE에 의한 지원이 현재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즉 우주정거장에 배치된 텔레로봇을 지상전문가들의 분신으로 활용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 이 차세대 텔레로봇은 정형작업의 경우에는 자율제어에 의해 혼자 알아서 처리하고 미리 프로그램돼 있지 않은 작업이나 문제는 지상의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미 국립항공우주국(NASA)은 우주개발에 TE를 활용하기 위한 전(前)단계로 우주정거장 내부의 승무원이 선외작업을 하는 로봇이 '보는 것'을 같이 볼 수 있는 헬멧을 개발했다. 이 헬멧에는 맥도널더글라스사(社)가 개발한 전자파 펄스(pulse)에 의해 작동되는 고성능센서가 장착돼 있다. 이것은 승무원의 머리위치를 로봇에게 중계하고 이에 따른 3차원 화상을 피드 백(feedback) 시키는 고도의 인터페이스를 실현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센서는 시선방향의 검출에는 어느 정도 성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머리의 방향에는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의 안구(眼球)를 추적하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실험심리학의 응용을 검토하고 있다.

실험심리학자들은 훨씬 전부터 시선추적장치를 이용해 사람이 어떻게 문장을 읽고 화상을 보는가 하는 문제를 연구해왔다. 시선추적장치는 눈의 각막에 적외선을 비춰 그것이 반사하는 방향에 따라 시선의 방향을 검출하는 장치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좋은 시선추적장치라 할지라도 재채기와 같은 심한 머리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에는 시선의 포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의료분야의 종사자들은 환자들을 통해 '가상현실'을 체험했다. 다리가 절단된 환자가 얼마간 자신의 다리가 붙어있는 것으로 느끼는 일시적인 착각현상이 그 단적인 예다. 말단의 감각신경이 가상의 다리를 감지해 뇌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의사나 환자들이 이와는 다른 상황에서 또 하나의 가상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TE가 의료분야에서도 맹활약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는 한계를 나타내

그러나 이렇게 만능으로 보이는 TE도 우주밖으로 공간을 넓히면 한계에 부딪친다. 초속 30만km라는 광속도의 한계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성 근처에 있는 환자를 지구의 의사가 집도하는 경우 아무리 의사가 빨리 손을 놀려도 2분 이상 지연된다. 더욱이 수술중 급작스러운 출혈이라도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의사의 대처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4분 이상 걸릴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 몇광년거리의 우주선 내에 있는 환자라면···.

20년 전 상영됐던 SF영화 '마이크로 결사대'는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축소된 사람들이 환자의 인체에 투입된다는 기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현재로선 사람을 그토록 조그맣게 만들 방법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굳이 그러한 요술같은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인체여행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있다. 극소형 로봇을 통해 인체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물론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microelectronics)분야가 고도로 발전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머리카락의 절단면 정도의 넓이를 가진 기판에 미세한 각종 회로를 빽빽히 앉히는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볼 때 그리 먼 미래의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0.001mm 정도의 티끌같은 로봇이 환자의 혈관을 타고 환부에 도착한 다음 미세칼이나 레이저로 수술을 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자. 이때 환자의 옆에 있는 의사는 머리에 쓴 디스플레이를 통해 수백배나 확대된 환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조그맣게 축소돼 인체내부에 있다는 가상현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피험자 축소형 TE기술은 세포의 조작을 통한 유전공학, 집적회로(IC)의 미세가공이나 섬유의 위치맞춤과 같은 산업기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로봇이나 특수기계를 이용한 TE외에 인간들이 서로 원격지에서 교감하는 일종의 가상공간 모델도 있다. 앞에서 통신수단으로는 뭔가 미흡해 직접 출장을 떠나야 하는 회사원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TE를 통한 원격상담이나 회의는 이러한 불편을 없애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일종의 휴먼 인터페이스라고도 할 수 있다.
 

원격조종장치를 활용해 오래 전에 침몰된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호를 찾고 있다.
 

「현장감 통신회의」의 수단으로

얼굴표정, 손짓, 눈의 움직임, 미묘한 얼굴색의 변화, 말소리 등 상대의 육체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얼핏 생각해도 적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예기다.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교류를 하면서 순간순간 대처해 나가는 공존감각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일본에서 연구중인 '현장감 통신회의'는 참가자들이 각기 입체영상안경과 손의 움직임을 검출해내기 위한 데이터장갑(data glove)을 끼고 원격지의 회의장에 참석, 신상품 모델에 대해 서로 자연스럽게 토론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물론 거추장스럽게 각종 TE장비를 부착해야 하고 아직 '현실'의 생생함에 비교한다면 크게 뒤떨어진다. 하지만 향후 홀로그래피(holography)와 같은 입체영상을 만드는 기술이나 센서 모터개발 등 전자공학분야에 있어 획기적인 진보가 이룩된다면 이러한 휴먼인터페이스에 있어서의 부자연스러움은 자연 해소될 것이다.

작년 걸프전 때 우리는 미사일의 머리부분에 장착된 카메라에서 보여주는 폭파직전의 실시간 장면을 TV를 통해 생생히 목격한 바 있다. 마치 아이들의 컴퓨터오락게임을 방불케 했던 그 장면은 가상현실공학이 이용된 미래의 전쟁을 앞당겨 구경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미래에는 무지막지한 로봇전사 전투기 장갑차 등이 인간의 원격조종을 받아 일종의 대리전을 펼칠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TE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통신기술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ME) 광기술 등 관련분야의 획기적인 진보가 수반돼야 한다. 아울러 TE의 미래상이 그저 단순한 환영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연구가 앞으로 계속해서 수행돼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전투기도 인간의 원격조종을 받을 것이다. 마치 아이들의 컴퓨터오락게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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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우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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