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생들의 대부분이 졸업한 후에 바로 취업한다는 점을 고려해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될 경우 접할 상황을 수업의 소재로 삼았다.
널찍한 교정, 곳곳에서 청소하는 학생들, 공을 차는 학생들, 활기차게 움직이는 학생들 속을 지나 교무실을 찾아가며 나는 시계탑을 쳐다보았다. 8시 20분. 언제 돌이켜보아도 지금의 학교로 발령을 받아 첫출근을 하던 아침은 끼니도 못챙기고 새벽 전철에 몸을 실어야 했던 그 이전 몇 년 간의 인문계 고등학교 출근길과는 견줄 수 없이 상쾌한 기분이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듯 즐거운 마음으로 공고에서 과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2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공고에 부임하기 전에 나는 공고학생들의 학력 수준 이 매우 낮아서 지도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공고의 학생들은 몇가지 점에서 대단히 좋은 조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인문계 학생들과 달리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사이의 편차가 매우 적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학교 때의 학력으로는 중위권에 속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몇 몇 인기과는 중상위권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평균적으로도 인문계에 비해서 학력이 결코 낮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입시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었고, 때문에 입시 위주의 과학문제 풀이로 학생과 교사가 짜증스러운 분위기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점들은 창의적인 과학수업을 하기에 대단히 좋은 조건으로 파악됐다.
엘리트 중심의 과학관이 문제
그런데 막상 수업을 진행시켜 나가면서 학생들의 학습의욕이 매우 저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생들은 어느 과목이나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이러한 경향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심했다. 학생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웬지 피해의식이 많은 듯이 보였다. 이들의 피해의식은 공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공고졸업 후 취업에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등의 과목이 무슨 소용이 되느냐는 판단과도 관계가 있었다.
사실 그 책임은 교사에게도 있었다. 처음 이 학교에 부임하게 됐을 때,
"이제 편하게 됐네."
"공고에서 과학교사가 할일이 있나?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대학원 공부나 해둬"
"공고학생들에게 과학을 백날 가르쳐야 소용이 있어? 과학을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해"
등등의 인사치레를 무수히 들었다. 이런 인사치레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과학교사도 있었다. 과학교사가 공고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식의 말은 과학교육이 공고학생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이는 과학은 몇몇 똑똑한 학생에게나 필요한 과목이라는 식의 엘리트 중심적 과학관을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공고 교사들의 일부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하는 무책임하고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문계에서 과학교사가 입시위주의 교육에 치중해 올바른 과학교육을 할 여유를 상실했다고 한다면, 이곳 공고에서는 교사가 자신의 영역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입시위주의 교육, 단순 지식나열식-암기식의 수업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면서도 내 자신이 그런 방식에 이미 익숙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교실수업이든 실험실 수업이든 나는 교과서에 나온 구석구석의 내용을 빼놓지 않고 가르치려 들었고, 학생들은 그 많은 추상적 지식의 감옥속에 갇히기를 거부 했다. 인문계에서 학생들은 싫든 좋든 간에 입시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과학교사의 요구대로 지식의 감옥에서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공고생들은 교사의 부당한 요구를 따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를 구석구석 가르치려는 태도를 버리고 과학교육 과정의 목표에 충실한 내용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잡으려는 시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공고생들의 대부분이 졸업 후에 취업한다는 점을 고려해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될 경우 접하게 될 상황을 과학수업의 소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금속과 수업에서 금속의 산화와 환원에 관한 내용을 '도금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잡고 그 내용에는 과학지식외에 도금산업의 위험성과 안전대책 및 산업재해의 예를 포함시켰다. 당(糖)의 산화 단원에는 김치 요구르트 치즈 막걸리 소주 등의 제조과정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아울러 식품의 발효시에 함께 만들어지는 독성물질에 대해 소개했다.
이렇게 과학수업에서 학생들에 친근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일정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에 힘입어 나는 좀더 근본적인 과학수업의 내용을 결정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학수업의 목표가 과학자를 기르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적 소양을 가진 창조적인 인간을 기르는 것일까?'
'과학교과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과학자의 세계만을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도 결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가에 의해 그 가치가 판단된다고 볼 때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제도의 굴레에 의해 실천적인 모습으로 바뀌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끝나 버렸다. 그러나 공고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과학사관련자료 과학관련잡지 외국의 교과서 국내외의 교과과정자료 그리고 심지어는 신문 과학면기사 등을 모두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여기에 하나의 예를 소개해 보자.
화학의 첫 도입부분에 '화학은 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환경을 파괴하기도 한다'는 수업을 하도록 되어 있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단순한 지식 전달이외에 좀더 실천적인 일을 생각했다. 그것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주위의 환경문제를 조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만화나 포스터로 그려서 제출하기도 했고 사진으로 찍어서 제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 학생은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서 제출했다. 과학부와 학교에서는 이러한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만화 포스터 그리고 사진은 학생회 게시판에 전시하고 슬라이드는 많은 학생과 교사가 모인 가운데 방과 후 시사회를 가졌다. 평면적인 수업을 학생활동 및 과학의 달 행사와 연결시킨 입체적인 수업이었다.
나의 공고에서의 과학수업이 대부분 이랬던 것은 아니다. 공고에서의 과학교사는 학생들의 학과에 대한 무관심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어야 하며 공고생에게 부적합한 과학교과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느라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실험실과 실험기구를 학생들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공고에서는 내가 노력한 만큼 과학수업이 활기를 띠며 '과학수업다운 과학수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