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적응 등 우주비행사의 훈련과정을 모방한 과정을 밟게 해 참가자들에게 우주에 대한 친화력을 길러주는 것이 캠프의 주된 목적이다.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규슈지방. 이 지역의 서남쪽에 자리잡은 기타규슈(北九州)시는 현대 일본을 세계제일의 철강국으로 끌어올린 견인차 신일본제철주식회사가 모태로 삼은 도시였다. 1백년전만 하더라도 한가로운 어촌에 불과했다는 이 도시는 20세기초 철강산업의 발달과 함께 곳곳에 거대한 제철소가 들어서고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불과 몇년 사이에 규슈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곳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오늘의 기타규슈시는 수십년전의 생기를 잃고 다시 고즈넉한 지방도시로 변모한 느낌이다. 60년대 이후 일본의 철강산업이 후퇴하면서 제철경기가 과거만큼 좋지않기 때문이다. 신일본제철은 활력을 잃은 기타규슈시 야하타(凡幡)에 최근 미래를 향한 새로운 구조물을 세웠다. 오락과 교육을 겸한다는 일본유일의 천문관련 테마공원(theme park) 스페이스월드(Space World)가 바로 그것.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거대한 제철소 굴뚝 사이로 보이는 스페이스 월드의 은빛 돔(dome)들은 이곳사람들의 미래지향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테마공원의 일관성 돋보여
스페이스월드는 말하자면 천문학과 우주산업을 주제로해서 꾸며진 위락시설이다. 그러나 이곳을 단순히 가족단위의 유흥지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스페이스월드의 홍보담당자들은 조어(造語)를 잘 만드는 일본인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이런 특징을 '에듀트먼트'(edutement) 즉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의 결합이라고 설명한다.
스페이스월드가 문을 연 것은 작년 4월. 신일본제철의 한 공장이 철거된 뒤 유휴지로 남겨져있던 땅 33만㎡에 3백억엔의 비용을 들여 시설을 마련했다. 현재도 신일본제철이 전체 주식의 51%를 소유하고 있어 실제적인 주인이지만 스페이스월드를 만드는데는 미쓰비시상사와 일본항공(JAL) 등 30개가 넘는 일본내 대기업들이 자본금을 내놓았다. 이러한 투자형태 때문에 위락시설이라고는 하지만 돈벌이보다는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차원이 더 강조돼 보인다.
스페이스월드의 정문을 들어서면서 받은 첫 느낌은 우리의 과천 서울대공원이나 용인자연농원과 겉보기에 그 수준이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실제 스페이스월드가 자랑하는 스페이스 캡이나 코스모 파이터(Cosmo Fighter)등의 놀이시설은 세련미가 더할 뿐 그 원리가 우리의 청룡열차나 여타의 놀이기구와 큰 차이가 있을것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았을 때는 큰 감흥을 주지못하는 시설들이 전체로 묶였을 때 '우주의 발견, 우주의 개발'이라는 주제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효과가 분명해 테마공원(theme park)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월드 교육기능의 심장부는 뭐니뭐니해도 스페이스캠프. 연령과 참여기간에 따라 4가지코스로 운영되는 스페이스캠프는 압축해서 모의우주비행사 훈련을 하는 과정이다.
스페이스캠프의 시작은 사실 일본이 아니다. 스페이스월드 내의 캠프시설은 일본인의 기술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아이디어는 모두 미국 NASA 스페이스캠프에서 그대로 따 온 것. 알려진대로 미국 NASA는 텍사스의 휴스턴, 플로리다, 앨라배마 헌츠빌에 3개의 우주센터를 갖고 있다. 이 중 마샬(Marshall)기지가 있는 앨라배마 주 헌츠빌근처에 지난 82년 주(州)정부를 재단으로 하는 스페이스캠프가 들어섰다.
당시의 스페이스캠프 설립은 그전 해부터 시작된 스페이스 셔틀계획에 크게 고무받은 것이었다. 즉 정부가 구상한대로 우주왕복선부터 시작해 우주정거장(space station)계획까지 완결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우주비행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일의 우주인이 될 청소년들이 우주산업에 관심을 갖고 고무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필요성이 캠프설립의 저변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는 있어서는 일본스페이스캠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캠프의 진행요원인 고바다케(小畠)씨는 우주산업이 특수한 몇몇 사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산업분야의 하나로 간주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나자신도 그렇지만 현재의 일본 우주산업종사자들은 대부분 아폴로호의 달착륙에 충격을 받고 자기진로를 결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미래의 우주산업종사자들은 아주 일상적인 일로 우주개발을 받아들인 평범한 청소년층에서 배출될 것"이라는 게 그의 말.
비록 일본의 우주산업이 미국에 비해 걸음마단계에 불과하다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주정거장 프리덤(Freedom)계획에 미국유럽과 함께 참여하고 있고, 작년에는 언론인 아키야마 도요히로가 우주선에 탑승해 일본인들의 우주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최근들어 비약적으로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호기심을 실제 우주개발사업 참여로 인도해 나가는 것이 스페이스캠프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캠프관계자들은 설명한다.
NASA 훈련과정 본떠
스페이스캠프의 시설은 크게 실험실습장과 숙박시설(lodge)로 나뉜다. 캠퍼(camper)들이 훈련을 하는 실습장은 주로 우주공간 적응과 우주선 발사·착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이 우주공간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부자연스러움은 뭐니뭐니해도 무중력상태에 기인한다. 실제 우주비행사들은 비행 전에 물속이나 특별히 고안된 기구 속에서 무중력 적응훈련을 하는데 이곳 스페이스캠프의 기구들은 거의가 NASA의 것을 재현한 것이다.
먼저 아폴로계획때부터 훈련에 도입된 문 워커(Moon Walker)는 말그대로 월면(月面)에서의 보행을 연습시키는 것이다. 무중력상태에 진입하는 순간의 충격을 경험케하는 스페이스볼(Space Ball)은 일본 스페이스캠프가 자체 제작한 것이며, 우주선안에서의 평형감각을 길러주기위해 3백60도로 회전하는 멀티 액시스 트레이너(Multi Axis Trainer)도 구비됐다.
우주개발의 첫단계에서 만들어지는 로켓은 오늘날 공상만화에서조차도 과거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지구상에서 로켓을 우주에 쏘아보낼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겉보기엔 간단하지만 그 발사나 정확한 운행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로켓의 모형을 만드는 일은 이미 70년대 미국에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범국민적으로 전개했던 사업이다. 일본스페이스캠프에서도 교육과정 중에 모형로켓 제작, 발사 시간을 두었는데 잘만 만들면 1백m정도까지 상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서 쓰는 모형조차도 미국에서 수입한 것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캠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90년부터는 일본내에 모델로켓협회가 생겨서 로켓발사대회를 열고 있다.
몸으로 체험하는 것만이 캠프의 전부는 아니다. 우주박물관(Space museum)이나 우주개발을 다룬 아이맥스(IMAX) 영화를 상영하는 갤럭시 극장(Galaxy theater) 또 실습장내의 전시물들 역시 중요한 교재가 된다. 우주박물관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협조로 만들어졌는데 1층은 미·소가 중심이 된 세계 우주개발의 역사, 2층은 일본의 우주개발역사가 전시돼 있다.
우주비행 체험시키는 '셔틀미션'
일본 스페이스캠프의 저력은 그들 고유의 전시물에서 드러난다. 일본의 우주개발 역사를 소개하는 2층은 길이가 50㎝나 될까말까한 장난감같은 로켓으로 시작된다. '펜슬로켓'(pencil rocket)이라고 불리는 이 실물은 일본우주개발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도쿄대이토가와 요시오(糸川英夫) 교수가 1950년대에 만든 최초의 일본 자작(自作)로켓이다. 이로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우주개발이 오늘날 프리덤 우주정거장의 JEM(Japanese Experiment Module)건설, 98년 발사예정인 무인비행선 호프(HOPE)로까지 발전했음을 전시물들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외에 실습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발견된 운석(隕石)들을 모아 전시해놓은 곳이 있는데 일본의 남극기지는 그 지형상 운석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 세계최고의 운석부국이 일본이라는 설명이 새롭다. 하지만 스페이스월드의 기념품점에서 파는 운석들은 모두 멕시코 수입품들이라고.
스페이스캠프 훈련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셔틀미션'(Shuttle mission)은 우주선의 발사부터 착륙까지를 하나의 시나리오로 짜 캠프의 참가자들이 번갈아가며 지상요원과 비행사역할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 미션훈련을 위해 캠프 참가자들은 우주선의 작동원리, 발사와 착륙시 주의사항 등 실제 우주비행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미국 스페이스캠프에도 동일한 형태로 갖춰져 있는 이 '셔틀미션'시설은 미국 휴스턴의 존슨 스페이스센터를 모방한 것으로, 우주왕복선은 디스커버리호, 그 임무는 수명을 다한 천체관측망원경의 전지 교체작업으로 설정돼 있다.
현재 셔틀미션은 국민학교 고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주니어코스와 중고등학생이상 일반인까지를 포괄하는 아카데미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아카데미 코스만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며 역할교대도 한다. 캠프의 과장대리인 기도(坡戶)씨는 "각자가 우주비행의 한 역할을 맡아 완벽한 팀웍으로 생생한 과정을 체험하는 셔틀미션의 인기가 높다. 이 코스만을 다시 밟기 위해 재입소하려는 사람도 있고 성인들을 위해 새로 과정을 개설해 달라는 요청도 적지 않다"고 밝힌다.
스페이스월드 영업부 과장대리인 미나미가와(南川)씨는 하자보수율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모든 시설은 고장이전에 예방을 원칙으로 하며 매일 의무적으로 점검하게 돼 있다"고 자신있게 답한다. 운영요원들도 22명의 정식 직원외에 학생들이 입소할 때마다 팀으로 나눠 이들을 지도하는 인스트럭터(instructor)가 80여명 정도 된다. 인스트럭터는 대부분 사범대와 공대학생들로 과학적지식외에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야 한다는 적성요건 단서가 붙는다고.
한편 스페이스캠프는 이번 겨울부터 한국여행사 등에 2박3일간의 한국학생을 위한 스페이스캠프과정을 제시하고 홍보활동에 들어갔다. 스페이스캠프가 자리잡은 규슈지역은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할 수 있는 최단코스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한국이나 대만시장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본학생들을 위한 3박4일간의 주니어코스와 아카데미코스 수료비가 각각 5만엔(약30만원), 5만5천엔이나 한국학생들의 경우 기간을 단축하고 수료비를 더 인하한 상품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힌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과학기술격차는 특정분야를 제외하고는 흔히 10년 이상이라고 평가된다. 미래의 과학기술담당자인 청소년들의 의식차이는 다시 미래의 격차로 귀결될 것이다. 기업들이 지은 위락시설 하나에서도 자기나라의 우주개발 역사를 배우고 미래에의 꿈을 펼치는 일본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청소년들의 상상력과 웅지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