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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공 과학기술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안팎의 간섭 많아 제 뜻 펴기 어렵다

6공의 과기처장관 평균수명은 1년미만. 정치권 변화에 따른 부침(浮沈)이 심해 장기적 안목의 정책개진은 공염불이 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국력을 재는 척도는 경제나 군사부문의 몇가지 지표가 쓰여져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과학기술에 관련된 지표들 이를테면 과학기술투자비율이나 1인당 연구개발비, 논문발표수, 특허출원건수 등이 국가수준을 비교하는 수단으로 채용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발전의 원동력이자 경제, 사회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과학기술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걸프전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국가간의 자원경쟁이나 군사력 경쟁도 결국은 기술전쟁으로 귀착되고 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한편 과학기술을 둘러싼 여러가지 환경도 갈수록 크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과학기술은 대부분이 과학기술이라는 틀안에서 조금 씩 발전해 왔지만 이제는 과학기술과 사회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정책도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과학기술 정책수립에는 국가목표나 국내외적 환경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이것을 수립,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6공의 과학기술 정책에 영향을 미쳐 온 사람들은 누구이며 또 제도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과학기술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국회경제과학기술위원회 (91년 11월)
 

'빛 좋은 개살구' 과기처

과기처는 정부조정법상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종합적 기본정책의 수립, 기획의 종합·조정·기술협력·원자력·정보산업과 기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부처로 돼 있다.

67년 4월 21일에 발족된 과기처의 정원은 3백38명이며 소속기관으로는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1백44명)과 대덕단지관리소 (45명), 그리고 지난해 말 청으로 승격된 기상청(8백78명)이 있다.

중요한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는 과기처지만 정부내에서의 실제 위상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과기처장관을 지낸 L씨는 "국가발전의 원동력이자 추진체인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결같이 외치지만 정부내에서는 행정의 서무격인 총무처보다도 더 푸대접을 받고있다. 법으로는 과기처가 과학기술 관련정책을 총괄, 조정토록 해놓았지만 실제로는 그만한 수단을 갖고있지 못해 재임기간 동안 실질과 제도상의 엄청난 괴리에 많이 괴로워했고 외롭기도 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다른 부처장관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은 같이 하면서도 국민생활과 직결된 현실적인 문제와 경합될 때는 그쪽편을 들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것이 과기처의 한계이자 위상이며 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라고 푸념했다.

6공들어 장관을 지낸 사람은 10대의 이관박사 11대 이상희박사 12대 정근모박사 그리고 현재의 김진현장관 등 4명이다.

전임 3명의 재임기간은 모두 합쳐 봐야 2년8개월 남짓. 그러니까 한사람이 겨우 1년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3공시절 세명의 장관이 12년8개월을 재임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크다.

이는 결국 다른 부처와는 달리 보다 긴 안목을 갖고 차분히 일해야 할 과기처장관마저 정치권의 바람을 세게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새로 부임하는 장관마다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임명권자에게 점수를 따고 싶어하고 그러자니 전임자의 정책을 이어받기 보다는 거창한 장기계획이나 전시용 즉석메뉴를 만드는데 급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고민도 안한 계획들이라 장관이 바뀔 때 쯤이면 으레 어긋나기 시작하고 결국은 새 장관이 와서 손질을 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게 마련이다.

여기서 장관들의 면면을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10대 이관장관은 울산대 총장 재임중 참신한 인물로 꼽혀 88년 2월 6공 출범과 함께 발탁됐다.

서울공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이장관은 원자력연구소를 거쳐 69년 울산공대 초대학장으로 부임한 후 약20년간 교육계에 몸담아 온 사람이다.

음악감상을 즐기는 영국신사 이장관은 교수출신답게 세미나를 좋아하고 기초과학육성에도 많은 애정을 쏟았다. 기초과학지원센터도 만들고 광주첨단산업기술 연구단지의 기틀도 다졌다. 또 재임중 도핑콘트롤등 88올림픽의 기술지원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연구소 노조결성등 당시의 현장 문제에는 소심하다할 정도로 회피로 일관해 결국 그 수습을 후임장관에게 넘겨주고 물러나야 했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차기 대통령에게 보고할 국가장기발전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안면도' 짐 무거운 김진현장관

서울대약대 출신의 2선의원 이상희장관은 정치장관답게 부임하면서부터 첨단 원천기술을 주축으로 우리의 과학기술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해 세계의 경쟁과 도전을 극복하자고 외치고 다닌 장관으로 유명하다.

89년을 기초연구진흥의 원년으로 선포, 1백억원대의 과학재단 기금을 1천억원대로 끌어올리는 기초작업을 했으며 보건, 환경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기술개발사업을 주요 연구과제에 포함시키는가 하면 전국토의 기술지대망(테크노벨트)이라는 새로운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미래를 개척하는 민족이 돼야 한다며 우주소년단을 창설,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국제공동연구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역설하기도 했지만 그 반면에 남북 과학장관회의 개최를 장담하다가 부도를 내기도 했고 연구결과의 가시적 성과를 지나치게 요구한다는 비난의 소리도 많았다.

그는 퇴임후 녹색삶기술경제연구원 부산사회체육센터 한국과학영재학회 등 그다운 사설단체를 만들어 두뇌개발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해가면서 원대복귀를 향한 강한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12대 정근모장관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장했으면서도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도중하차해 지독히 관운없는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경기고 1년을 마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는가 하면 만23살에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다.

재임중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90년대말까지 선진 7개국 수준으로 구현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첨단기술 및 산업발전 7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대학의 연구활성화를 위한 우수연구센터를 지정, 육성하고 기술자문 및 설계담당조직(CEDO)을 육성하려는 의욕도 보였으나 재임 8개월만에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부지와 관련한 안면도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전임장관 예우문제로 그의 도덕성을 두고 일부의 오해가 있기도 했지만 그는 늘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아주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에너지문제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안면도 해결사로 6공에 합류한 김진현장관은 과기처 최초의 비과학도 출신장관이면서 숲을 볼 줄 아는 넓은 안목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과학기술주권론의 철저한 신봉자로 국제사회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우리도'가 아닌 '우리만'의 창조적 원천 기술개발이 필요하며 여기에 국가과학기술자원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역설하고 있다.

사회학 전공에 경제통 언론인 출신이 말해주듯 경제사회문제에 대한 안목이 넓고 인맥도 꿰뚫고 있어 과기처 간부들도 일하기가 전보다 수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장관으로 들어와 2천년대 과학기술 선진 7개국수준 진입을 위한 종합실천계획 수립, 출연연구기관의 합동 평가를 통한 기능재정립 및 운용효율화 방안 마련을 비롯해 과학기술정책 종합조정, 신국제질서 전개에 대응한 첨단기술협력방안, 7차 5개년 과학기술부문계획 등을 수립하고 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 국민이해협의회, G7기획단 등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문제 해경을 위해 외국의 시설을 직접 시찰하고 전국을 돌며 설득작업을 펴는 등 나름대로 노력은 해왔으나 취임 1년을 넘기도록 만족할 만한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

재임중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평가절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이것이 오히려 악수(惡手)를 재촉하지나 않을까 주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원전문제는 과기처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콧대 높은 '관련'부처들

장관을 보좌하는 차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이관장관과 신만교차관, 이상희 정근모장관과는 최영환차관이 콤비를 이뤘으며 현재는 서정욱박사가 차관실의 주인을 맡고 있다.

일에 관한한 정력적이고 욕심이 많은데다 고집도 센 최차관은 재임시절 업적도 화제도 많았으며, 지금은 과학기술정책연구소장이다. 최근 연구소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면서 과학기술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차관은 서울공대출신으로 공군사관학교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각 13년씩, 한국통신에서 6년을 있으면서 교수와 연구소장,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러한 그의 경력과 TDX 연구개발 실적이 인정받아 차관으로 기용됐다고 한다.

철두철미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해박한 지식과 완급을 조절하는 능숙한 화술로 상대를 사로잡는 또하나의 기술도 갖고 있다.

출연연구소 평가작업과정과 G7 프로젝트의 대형화 작업을 통해 그의 합리성과 강성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장차관 아래로는 기획관리실(박진호), 연구개발조정실(이종원), 원자력실(한영성) 등 3실과 기술진흥국(장수영), 기술개발국(유희열), 기술협력국(권갑택) 등 3국에 국장급 담당관12명이 있으며 그 밑으로 19개과가 있다.

과기처 기구는 그간의 담당관 중심의 참모조직에서 금년 4월 국장과 과장으로 이어지는 계선(系線)조직으로 환원되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였다.

과학기술의 수립과 시행은 과기처만의 업무도 아니며 과기처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선 예산이나 조세, 금융과 관련해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의 협조없이는 되는 일이 없을 정도며 상공 체신 동자부 등 걸리는 부처도 너무 많고 콧대들도 높아 협의과정에서 과기처 실무자들이 자주 곤욕을 치러왔다.

부처간 자존심이나 이해관계로 알력도 많았으나 최근에 들어 각 부처별로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도구를 공유하려는 분위기가 점차 조성되고 있어 국가차원의 낭비를 막고 업무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관련 부처가 과기처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입장인데 반해 상공부는 여전히 과기처 앞에 군림하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로는 청와대의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만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웬만한 계획들은 모두가 경제수석과 담당비서관의 사전협의를 거쳐야 완성된다. 조그만 연구소장 하나 임명하는데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최고 통치권자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김종인 수석같은 경우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전임 문희갑수석때 만들어진 과학기술비서관 자리를 없앴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을 너무 얕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도 있었다.

과학기술에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기로는 국회 경제과학기술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각 부처가 정책적 측면에서의 과학기술을 움직이는 쪽이라면 과학기술자문회의나 출연연구기관들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지원하는 쪽이라고 하겠다.

인적 자원 소중히해야

대통령의 과학기술자문역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자문회의는 89년 6월5일 조완규 당시 서울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30명의 위원으로 9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돼오다 급변하는 과학기술 여건과 수시로 발생하는 과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상설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금년 5월31일에 설치됐다.

과학기술계를 대표할 수 있는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5공때 체신, 과기처장관을 지낸 김성진박사가 위원장으로 있다.

자문회의는 얼마전 과학기술투자재원의 동원과 활용방안, 원자력행정 등 업무조정방안에 대해 대통령에 건의한 바 있으며 연말께는 기초과학인력, 환경과학분야에 관해서도 건의할 예정으로 있다.

출연연구소장들과 30개의 우수연구센터소장들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는 비중있는 위치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출연연구기관으로는 한국과학기술원(천성순), 과학기술연구원(박원희), 표준과학연구원(박승덕)을 비롯해 전자통신(경상현), 원자력(임창생), 화학(채영복)등 모두 19개로서 나름대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주역으로서 제 몫을 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재단(권원기)을 통해 각 대학에 설치된 우수연구센터 역시 21세기 과학기술 선진국 진입을 선도하는 미래지향적 연구기관이란 점에서 역할이 기대되는 집단들이다.

이밖에 정부의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종합계획과 이에따른 중요정책, 관계 각 부처의 과학기술에 관한 중요업무의 효율적인 조정방안을 심의하기 위한 종합과학기술심의회(의장 국무총리)가 있으며 대통령이 각계각층 인사와 과학기술의 현안과 진흥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과학기술진흥회의도 연2회 열리고 있다.

특히 진흥회의는 5공시대 관의 주도하의 일방적 보고, 지시형태에서 탈피한 대화의 장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음을 볼때 정부내에 과학기술행정에 보다 역점을 두고 그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조직체계 이를테면 과학기술정책과 예산이 연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사회적 지휘향상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세계적 기술전쟁속에서의 한국의 좌표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그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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