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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의 권위에 도전한다

일반인엔 생소한 세계적인 과학상들


노벨상 시상식은 전통적으로 노벨의 기잀(忌日)인 12월10일 스톡홀름에서 거행된다.


최근에는 이웃 일본도 자기네의 과학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막대한 상금을 내건 세계규모의 과학상들을 제정했다.

해마다 10월에 발표되는 노벨상은 1901년이래 90년의 연륜을 쌓아 오는 동안 세계최고의 수상제도라는 자리를 굳혀 놓았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물리학 화학 의학 및 생리학 문학 평화 등 5개부문에서 1년동안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이 상에는 그 권위에 걸맞는 막대한 액수의 상금이 함께 수여된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노벨상의 권위나 또는 상금수준을 바싹 뒤쫓는 과학상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들은 노벨상의 명성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지만 노벨상에서 제외된 몇몇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다. 또 일부 새로 등장한 상 들은 상금수준에서 노벨상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올해 10월 11일 제1회 수상자를 발표하는 스위스의 '헬무트 호르텐연구상'은 수상자에게 71만달러(한화 약 5억 3천만원)의 상금을 준다. 또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일본국제상'은 건당 일본 돈으로 5천만엔(약 37만 5천달러) 그리고 '교토상'은 일화 4천5백만엔(약 30만달러)의 상금을 준다.

한편 1901년 첫번째 노벨상 상금 4만여달러(현 화폐가치로 약 63만~79만달러)는 확실히 '수상자들은 돈걱정을 하지 말고 연구에만 정진하라'는 노벨의 취지를 살릴만큼 큰 돈이었으나 그 뒤 인플레이션에 밀려 그 상대적인 가치가 차츰차츰 줄어 들 수밖에 없었다. 당초 3천1백만 크로네(현 화폐가치로 약 1억 5천만달러)의 기금으로 출발한 노벨재단은 상금액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금을 안전한 유가증권에만 투자하라'는 노벨의 유언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1953년 이래 주식시장에 진출한 이 재단은 착실하게 수익을 올려 80년대후반부터는 해마다 상금액수를 크게 늘려서 올해는 부문별로 마침내 1백만 달러(약 7억 5천만원)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노벨상에 버금가는 주요수상 제도를 소개 한다.

● 크레푸드 상(Crafoord Prize)

노벨상에 포함되지 않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위해 1982년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가 제정한 크레푸드상은 상금이 모두 27만달러.

그런데 권위를 자랑하는 이 수상제도가 1988년도에는 뜻하지 않게 수상거부라는 낭패를 당했다. 발표된 2명의 수상자중 프랑스 몽펠리에대학 교수인 독일태생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그로멘디에크가 자기 몫을 사양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의 얘기인즉 몽펠리에대학에서 받는 봉급만으로도 이미 물질적인 필요는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이기 때문에 상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로멘디에크는 이미 1966년 수학의 최고상인 국제수학자회의의 '필드 메달'을 받았다.
 

1991년도 라스커상 수상자로 발표된 뉘스라인 폴하트^폴하트는 튀빙겐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응용생물학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 필드상(Field Prize)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상에서 수학분야를 제외시킨 배경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랜 세월을 두고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설에는 노벨의 애인이 스웨덴의 어떤 수학자와 애정의 줄행랑을 쳤는데 노벨은 그의 연적이 틀림없이 수학부문의 수상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미리 수학부문을 노벨상에서 제외시켰다고도 한다.

사실이야 어떻든 수학자들은 스스로 상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캐나다의 수학자 J.C.필드(1863~1932)가 기부한 돈을 기금으로 국제수학자회의가 4년마다 수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40세이하의 수학자 2~4명에게 필드메달과 함께 상금 1만5천달러(약 1천1백20만원)를 주는 것이다. 이 필드상은 노벨상에 비하면 상금액수는 보잘 것 없지만 수학분야에선 최고로 인정하는 상.

1990년도 수상자는 수학물리의 한 분야인 양자그룹이론에 업적을 남긴 소련 저온물리학 및 공학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드린펠드와 '존즈 폴리노미알'방정식을 발견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의 보간 존즈, 대수3차원 다양체연구에 업적을 남긴 일본 교토대학의 모리 시게후미 그리고 양자원이론과 2,3차원 다원체의 미분위상기하학의 관계를 개척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에드워드 워튼 등 4명이었다.

● 라스커 상(Lasker Award)

생의학분야 연구자들이 가장 탐내는 라스커상은 그 권위가 '미국의 노벨상'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높다.

이것은 지난 44년간 라스커상을 받은 사람 중 49명의 과학자들이 뒤이어 노벨상을 수상 했다는 사실로도 입증할 수 있다. 예컨대 MIT의 일본계 분자생물학자인 도네가와 스스무는 1987년 9월 라스커상을 탄 뒤 다음달인 10월에는 1987년도 노벨의학생리학상을 탔다. 그래서 라스커상을 노벨상의 '관문'이라고도 한다.

1942년 뉴욕의 메디슨가를 세계의 광고중심지로 만드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알버트 라스커가 내놓은 돈을 기금으로 하여 창설된 '알버트와 매리 라스커재단'은 해마다 의학과 기초과학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6명의 과학자들에게 각각 1만5천달러(약 1천1백20만원)의 상금을 준다.

그런데 미국의 부유층, 상류사회와 긴밀한 유대를 가진 라스커재단은 상금액수에 비해 매우 호화스런 시상식 프로그램을 갖는다. 시상식은 뉴욕에서 3백명의 저명인사들을 오찬에 초대한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간 지출은 75만달러나 된다. 이것은 비교적 작은 재단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지출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980년에는 4백50만달러이던 자산이 10년만인 1990년에는 2백4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1990년 3월 라스커재단은 재정문제를 포함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1990년도에는 라스커상을 시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과학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편 미의회의원 역대대통령내외들과 친분이 두터운 매리 라스커는 라스커상의 권위를 바탕으로 그동안 미국의 연구방향에 매우 주목할만한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의회의 친구들에게 그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청문회를 열고 입법조치를 취하게 하는 등 매우 능란한 솜씨를 발휘해 왔다. 또 많은 라스커상 수상자들을 동원해 의회에서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시키기도 했다.

예컨대 암은 정복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개인적인 신념은 마침내 정치기구를 움직여서 1971년에는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만들었다. 1년 뒤 이것은 라스커상에 반영되어 14명의 화학치료 선구자들이 상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일반적으로 DNA배열, 신경과학 그리고 세포의 발전을 포함한 기초과학 분야에 수상대상이 집중되었다. 1990년대에는 직접 의료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에 다시 상이 주어질 것 같다.

그러나 이제 80여세의 고령인 매리 라스커의 미국 생의학계에 대한 개인적인 영향력도 차츰 시들해 지고 있어 이 재단은 라스커상이 의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 시상대상 분야의 선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 했다.

● 헬무트 호르텐 연구상(Helmut Horterr Research Award)

미국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인 과학종합주간지 '사이언스' 1990년 6월 30일자에 실린 광고를 보고 놀라지 않은 과학자는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헬무트 호르텐 재단'이 의학 또는 인류건강에 혜택을 주는 생물학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 그 성과를 기리고 앞으로의 연구를 부추기기 위해 1991년도부터 격년제로 상금 1천만 스위스 프랑(미화 약 71만달러)의 과학상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재단은 창설자인 헬무트 호르텐이 죽은 1987년까지는 스위스의 티시노주에서 지방 의료진과 연구사업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 국제적인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재단의 이사회는 권위면에서는 아직 적수가 되기 어렵다 해도 적어도 상금규모에서는 노벨상과 겨룰 수 있는 대규모의 연구수상제도를 만들어서 영향력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첫번째 '호르텐'상은 1991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수일전인 1991년 10월 11일에 발표됐다.

● 일본국제상(Japan Prize)

1985년부터 국제과학기술재단(당시 이사장 마쓰시타 고노스케)이 시상을 개시한 이 상은 '과학기술분야에 현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그 업적을 기리고 일반에게 알려 표창함으로써 널리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될 목적'으로 주는 상이다. 특히 이 상은 기초 과학쪽에 관심을 보이는 노벨상과는 달리 응용기술의 업적을 주요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건당 일화 5천만엔(약 37만5천달러, 약 2억8천만원)으로, 2개 분야에 주어진다. 그런데 일명 '일본판 노벨상'이라고도 하는 이 상은 1985년 이래 19명에게 주어졌는데 그중 일본인은 1명뿐이었고 미국인이 12명이었다.

애당초 이 상은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인 마쓰시타전기 주식회사의 1천만주에 달하는 주식출연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4년 일본 내각이 이 상의 적극 지원을 결의했고 이후 시상식이 펼쳐지는 4월의 한 주간은 아예 '일본국제상주간(Japan Prize Week)'으로 정할만큼 국민적인 지지와 관심도가 높다.

1991년도에는 의료영상기술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미국 미네아폴리스의 메디토 기술연구소장 존 줄리안 와일드(76)와 응용수학에 업적을 남긴 프랑스 우주 항공센터소장인 자크 루이 리융(62)이 뽑혀 4월 25일 동경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일본과학상의 시상식은 거국적인 행사로 치러진다.


● 교토상(京都賞)

이나모리재단(이사장 이나모리 가즈오)이 1985년부터 해마다 주고 있는 일본의 국제상. 첨단기술 기초과학 표현예술 등 3개부문으로 되어 있고 해마다 각 부문에서 1명씩 선정되는데 상금은 건당 일화 4천5백만엔(약 30만달러, 약2천2천3백만원)이다. 해마다 10월에 시상하는 이 상의 1990년도 수상자는 첨단기술부문에서 영국의학연구회의 분자유전학부장인 시드니 브레너, 기초과학분야에서 미국 콜로라도주 제인 굿달연구소의 소장 제인 굿달 그리고 표현예술부문에서 이탈리아의 첨단건축가 렌조 피아노였다. 1985년 이래 수상한 15명중 일본인은 한사람도 없고 미국인이 9명이었다.

● 바우어 상(Bower Award for Science and Business)

미국의 과학상중 가장 액수가 많은 이 상은 필라델피아의 화학업계 사업가인 헨리 바우어가 기증한 7백50만달러를 기금으로 한다. 1990년에 신설된 이 시상제도는 벤자민 프랭클린기념상 사업중의 일부로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실용적이며 기업가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정상급 과학자와 실업계 지도자 각각 1명에게 상을 준다. 그런데 수상자중 과학자에게는 2.5인치 크기의 금메달과 29만달러(약 2억1천6백만원)의 상금을 주지만 실업계지도자에게는 금메달만 준다.

● 타일러 환경상(Tyler Prize for Environmental Achievement)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이 1974년이래 환경보존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와 교육자에게 주는 상. 상금은 15만달러(약 1억1천2백만원)다. 1991년도의 수상자는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을 위해 미국의 주와 지방법을 개정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전 미국 공중위생국장관 에베레트 쿠프와 43년간 곡물연구를 하면서 '녹색혁명'에 큰 업적을 남긴 인도의 농업전문가 M.S.스와미나탄이었다.


91년 노벨상 과학부문 수상자들-실용적 기여도 높이 사

올해의 노벨축제는 10월7일 스웨덴 카롤린스카의학연구소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세포생리학자인 에르빈 네허(47)와 베르트 자크만(49)을 91년도 의학·생리학 부문 수상자로 발표함으로써 막이 올랐다.

의학부문 수상자인 두 사람은 70년대말부터 '세포내 단일이온채널의 기능'을 공동연구해온 좋은 콤비. 이들이 연구공로를 인정받은 '단일이온채널기능분석'이란 쉽게 말해 세포내에서 아주 미량으로 움직이는 이온의 활동을 추적해 그 변화로 질병을 진단해내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결과 서양인에 두드러진 낭성(囊性)섬유증과 성인병인 당뇨병 간질등의 병리학적인 메커니즘이 보다 분명히 밝혀졌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온농도를 추산해 신약(新藥)이 개발 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미세전극을 사용함으로써 여러 이온의 합성상태를 분리해 칼슘(Ca)등 단일이온의 흐름을 파악했다는데서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17일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가 발표한 물리학 화학분야의 수상자들은 모두 이미 상품으로 실용화돼 인류생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액정(液晶)과 자기공명영상진단장치(NMR-CT)의 이론적 기초를 확립했던 과학자들이다.

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피에르질르 드젠박사(58)는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고체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드젠교수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기묘한 물질상(狀)'으로만 여겨져왔던 액정을 수학적으로 규명해 이들이 어떤 조건하에서 규칙성을 가지며 어떻게 하면 분자구조의 배열을 바꿀 수 있는지를 밝혀냈다.

이를 기초로 액정을 전자기적으로 조작하는 기술이 개발돼 오늘날 모든 전자제품에 두루 쓰이는 액정화면(LCD) 등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드젠교수는 액정의 실용화를 위해 60년대말 '액정그룹'을 구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유기화학물질의 입체구조를 측정하는 핵자기공명분광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화학상을 받게된 리하르트 에른스트 박사(58)는 스위스인으로는 다섯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그가 이론적 기초를 닦은 핵자기공명분석법이란 관찰하려는 대상에 강력한 자장을 걸었다가 이것이 원래의 상태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검출해 관찰대상의 입체적인 구조를 파악해내는 것이다. 애당초 그가 이 방법을 고안해냈을 때는 유기화학물질의 입체구조를 밝혀내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병원에서 무해(無害)한 정밀진단장치로 각광받고 있는 핵자기공명영상진단장치(NMR-CT)로 일반인에 더 낯익다.

한편 올해의 노벨과학상 3개분야는 미국학자들이 수상을 독점했던 90년과는 달리 유럽 3개국에서 고루 수상자가 나왔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실용적인 기여도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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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현원복 과학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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