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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핵무기와 원자로 어떻게 다른가?

폐기시대의 핵무기

일단 원자로를 갖추기만 하면 조만간에 핵무기 보유가 가능하다는데…

최근에 소련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세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공산주의의 몰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미소(美蘇)를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미국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아울러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핵무기의 감축문제다. 이제까지는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계속돼 왔던 미소 간의 전략핵무기 감축협상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듯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탈핵(脫核)시대 또는 비핵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엄청난 파괴력과 방사선의 위력 때문에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중 하나로 꼽혀왔던 핵무기의 감축 내지는 궁극적인 희망으로서의 소멸은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핵폭탄과 같은 원리로 에너지를 얻는다는 이유로 차제에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을 금지함과 아울러 기존의 발전소도 가동을 중지시켜야 하는가. 과연 원자력발전소, 특히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원자로가 핵무기와 비슷한 혹은 적어도 약간은 유사성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인간을 위협할 만한 상황까지도 치닫게 되는 부류로 원자로를 취급해야 하는가.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 먼저 원자력의 탄생과 성장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원자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대표하고 있다.


노틸러스호가 잠수하면서부터

1905년 아인슈타인(Einstein)은 물질과 에너지는 동일한 것임을 밝혀냈다. 그후 러더퍼드(Rutherford), 체드윅(Chedwick) 등은 원자의 구조 및 핵반응의 가능성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알아냈다. 그러던 중 1938년 12월 한(O. Hahn)과 스트라스만(F. Strassmann)은 우라늄(U)을 중성자로 때릴 경우 우라늄이 분열, 바륨(Ba)이 생성된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러한 현상을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 불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는 페르미(E. Fermi)에 의해 더욱 체계화됐다. 즉 그는 핵분열시에 1~3개의 중성자가 방출됨을 알아냄으로써 핵분열을 통해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가정했다.

이때부터 우라늄의 연쇄반응을 중심으로 한 논의가 시작됐으며, 1942년 11월 6일 최초의 원자로인 시카고 파일(CP-1)의 건설이 페르미의 주도로 착수됐다. 같은 해 12월 2일 인류사상 최초의 핵분열 연쇄반응이 이뤄져 제3의 불이라 불리는 원자력시대가 개막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행의 싹이기도 했다. 페르미의 원자로가 핵분열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른바 맨하탄계획이라고 일컬어졌던, 극비리에 수행된 원자폭탄 제조계획의 핵심물질인 플루토늄(Pu)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맨하탄계획의 소산물은 그 위력을 곧 세계에 과시했다. 그것은 인류에게 원자력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개의 원자탄이 바로 그것이다. 상용 무기로부터 출발한 원자력이 평화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페르미가 CP-1이라는 원자로를 개발한지 12년이 지난 후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54년 1월 미국의 코네티컷주 그로턴에서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잠수하면서부터였다. 바로 이 잠수함에 탑재됐던 원자로가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압경수로(PWR)의 시초다.

이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인류를 25번 이상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증가했다. 그와 더불어 원자력발전소는 세계적으로 4백25기가 운전 중이거나 건설 중에 있는데, 이는 전체 전기 수요량의 17%에 이른다. 자국내 전기수용량의 5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가 4개국이며, 2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국가가 13개국에 이른다. 이제 원자력발전은 현대문명의 필수적인 도구가 된 것이다.

지금 원자력은 천사와 악마의 두가지 면을 모두 지닌 야누스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누가 봐도 분명하게 악마의 모습을 한 핵무기는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원자력발전소는 어떤 모습일까. 더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원자로는 진정한 천사인가 아니면 천사의 모습을 한 또 다른 형태의 악마인가.
 

핵잠수함에서 발사한 포세이돈 미사일. 세계 각국은 핵잠수함에 실려 있는 핵무기를 가장 두려워한다.


어느 정도의 농축도를 갖느냐에 따라…

원자탄과 원자로는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를 활용, 에너지를 생성한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같은 원자핵은 중성자와 충돌하면 두개의 원자핵으로 분열되고 평균 2.45개의 중성자를 방출한다. 이때 약 2백MeV(leV=1.6x${10}^{-19}$ J) 정도의 에너지가 함께 나온다. 이 2.45개의 중성자는 다시 새로운 반응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연쇄적인 핵반응이 유지된다. 그러나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모든 동위원소가 이러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우라늄의 99.3%를 차지하는 우라늄 238은 중성자와 충돌해도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는다. 단지 중성자를 흡수해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플루토늄 239로 변환될 수 있을 뿐이다. 자연상태 우라늄의 0.7%에 불과한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 239 등이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항상 핵분열의 연쇄반응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핵반응이 유지되려면 반응의 매개가 되는 중성자들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핵반응을 통해 생성된 중성자중 일부는 우라늄과 충돌해볼 기회도 없이 외부로 누출돼 버린다. 또 설령 우라늄과 충돌했다 해도 우라늄 238에 흡수된 중성자는 핵분열을 일으킬 수 없다. 따라서 생성된 중성자중 외부로 누출되지도 않고 우라늄 238에 흡수되지도 않은 중성자만이 우라늄 235와 반응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중성자의 수가 초기에 있었던 중성자의 수보다 크거나 적어도 같아야만 연쇄반응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로 누출되거나 우라늄 238에 흡수되지 않고 다시 핵분열에 참가하는 중성자의 수가 그 전에 있던 중성자의 수와 같아지는 상태, 즉 같은 양의 핵분열이 지속되는 상태를 임계상태(critical state)라고 한다. 이를 넘어 서서 반응이 진행될수록 중성자의 수가 증가, 반응이 증가하는 상태를 과임계상태(super critical state)라고 하고, 반응이 진행될수록 중성자의 수가 줄어들어서 결국 반응이 멈춰지게 되는 상태를 미임계상태(sub critical state)라고 일컫는다.

자연상태의 우라늄은 우라늄 235의 농축도가 낮아서(0.71%) 대부분의 중성자가 외부로 누출되거나 우라늄 238에 흡수돼 버리기 때문에 그대로는 임계상태에 이르기 어렵다. 따라서 우라늄 235의 농축이 필요하다. 되도록 짧은 시간내에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폭발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목적인 핵폭탄의 경우, 우라늄 235의 농축도가 95% 이상 돼야한다. 반면 원자로에서는 그 정도의 고농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CANDU형 원자로인 경우에는 자연 우라늄을 그대로 사용하고 가압경수로인 경우에는 3% 정도로 농축된 우라늄을 사용한다.

결국 우라늄 235가 어느 정도로 농축되느냐에 따라 평화적으로 이용되는 핵연료가 되기도 하고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농축도의 차이는 단순히 수치적인 차이로만 이해돼서는 안된다. 핵연료와 핵폭탄의 우라늄 235 농축도의 비가 서로의 폭발력의 비일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핵폭탄과 원자로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통해 핵분열이 유지된다.

핵폭탄을 분류해 보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과 같은 우라늄 235를 사용하는 것과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과 같은 플루토늄 239를 사용하는 것이 있다. 어떤 종류이든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 239의 농축도가 매우 높으므로 그 자체로도 임계상태를 넘어설 수 있다. 실제로 임계질량(임계상태에 도달하는 최소질량)만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핵폭탄의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임계질량에 도달하지 않도록 농축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분리한 상태로 보관하다가 유사시 폭약을 터뜨려 순간적으로 분리된 핵물질을 충돌시키면 곧바로 임계질량을 넘어서게 되고 그에 따라 연쇄반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자연상태에서 우라늄 235는 약 0.7%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농축해서 사용하면 되지만 플루토늄 239는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플루토늄 239는 우라늄 238이 중성자 하나를 흡수해야 생성된다. 따라서 플루토늄 239를 핵연료로 쓰는 플루토늄형 핵폭탄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 239를 추출하거나, 플루토늄 239를 생산할 목적으로 건설된 증식로로부터 추출해야 한다. 페르미의 CP-1이라는 최초의 원자로도 이러한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다.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우라늄 235만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플루토늄 239를 얻으려는 이유는 플루토늄 239가 우라늄 235보다 분열당(當) 나오는 중성자의 수가 많아서 적은 양으로도 임계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로에서는 우라늄 235의 농축도가 낮아 그대로는 임계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중성자의 외부누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핵분열시 생성된 고속중성자를 열중성자라 불리는 아주 느린 중성자로 감속시켜야만 임계상태에 이를 수 있다(열중성자에 의한 우라늄 235의 핵분열 단면적은 고속 중성자의 2백배 이상이다). 물론 우라늄 235의 농축도를 20% 이상으로 올리고 고속중성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고속증식로도 있지만 여기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원자로인 가압경수로를 중심으로 논하기로 하자.

그러면 가압경수로란 무엇인가. 핵연료 주위를 순환하는 물은 중성자의 속도를 감속시키는 감속재와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냉각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중성자는 당구공끼리 충돌하면서 속도가 감소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를 통해 속도가 떨어진다. 쉽게 말해 중성자와 무게가 비슷한 수소 원자핵과 중성자가 계속 충돌하면서 감속이 이뤄진다. 이밖에도 가압경수로에는 중성자의 수를 조절하기 위한 흡수재가 설치돼 있다. 흡수재는 중성자를 매우 잘 흡수하는 보론(B-10)과 같은 물질로 이뤄져 있는데, 냉각재 내에 용액의 형태와 제어봉으로 구성돼 있다. 냉각재 내에 녹아있는 보론의 농도를 조절하거나 제어봉을 삽입 또는 인출함으로써 원자로 내의 출력조절이 가능하며 출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핵폭탄에는 이러한 조절기능이 없음은 당연하다.

이처럼 원자탄과 원자로는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른 만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핵분열을 유지한다. 그러면 어떤 방식을 도입하더라도 원자로에서는 폭발 또는 그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가. 만일 임계상태를 훨씬 넘어서서 중성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가령 제어봉이 어떤 이유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추측컨대 출력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원자탄의 폭발과 유사한 상황까지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이다. 중성자의 수가 증가해서 출력이 상승하면 원자로 내의 온도도 같이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온도가 상승하면 핵연료의 약 97%를 차지하는 우라늄 238은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틀림없이 도플러효과에 의해 중성자에 대한 흡수단면적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우라늄 238에 흡수되는 중성자의 수가 새로 생성되는 중성자의 수보다 많아지게 될 것이다. 결국 원자로는 미임계 상태가 되므로 출력은 다시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나고 이 기간에 발생할 에너지의 총량은 폭발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한 정도다. 이것을 굳이 원자탄 투하시 발생되는 에너지량과 비교한다면, 현재로서는 최소단위에 속하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의 2만분의 1 수준이다. 분명히 할 것은 원자로에서 순간적으로 이 이상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재 상업용으로 운전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이러한 현상조차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말로 원자로에서 문제가 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폭발여부가 아니라, 냉각재의 상실로 인해 핵연료나 원자로 구조물들이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가이다. 이러한 사고에 대비한 안전조치는 지금까지 계속 수행돼 왔고, 앞으로도 이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될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냉각재 상실사고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거나, 냉각재가 상실됐더라도 핵연료에는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는 원자로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원자탄과 원자로의 개념도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지금까지 원자탄과 원자로의 반응원리와 원자로의 궁극적인 안전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제는 약 반세기 동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로 또 현대문명에 없어서는 안될 에너지원으로 존재해 왔던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다. 탱크나 쟁기를 모두 쇠로 만들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농기구인 쟁기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가지 모두를 없애려는 발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원자로는 보다 많은 인간의 노력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문명의 이기일 뿐,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이를 얼마나 더 안전하게 유지하며 관리할 것인가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게속해서 연구해야 할 과제다.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들듯이 핵무기를 재처리해서 핵연료를 만드는 지혜로 진정한 의미의 탈핵시대를 맞아야 할 것이다

199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장훈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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