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용도폐기됐던 이론이 반세기만에 부활했다. 아인슈타인을 매료시키기도 했던 이 이론은 대통일장이론의 초석이 되고…
1919년 5월 29일은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실험적으로 확인된 날이었다.
그보다 앞서 1916년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時空間)은 그 속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 휘어지며 그 휘어지는 모양은 리만기하학(Rieman geometry)이란 수학적인 표현에 따른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또 이 시공간이 휘어진 정도가 지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관찰이 용이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즉 웬만한 물체로는 시공간을 휘게할 수 없고 태양처럼 막대한 질량(무게)을 가진 물체 옆에서나 그 효과가 조금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태양근방의 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에 그 옆을 지나는 별빛도 조금 휘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별이 마치 이동한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를 실증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 이유는 태양근방을 지나는 별빛을 실제로 관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대낮에는 '강한' 태양빛 때문에 '약한' 별빛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개기일식 현상(해가 달에 완전히 가려질 때)이 나타날 때에는 태양의 가장자리에 있는 별을 볼 수 있다. 마침 1919년 5월 29일은 개기일식이 서부 아프리카 일대에서 일어난 날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에딩턴경(Sir Eddington) 일행이 관측에 나섰다.
놀랍게도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언한대로 별의 위치가 휘어져서 나타났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인슈타인은 일약 전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 동서양의 주부들까지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20세기의 유일한 과학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에 소련의 쾨니히스베르크대학(Königsberg)의 젊은 강사 프란츠 칼루자(Franz Kaluza)라는 사람이 놀라운 이론을 제시한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칼루자는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한 자신의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 중 일부를 반박했다. 이를테면 이 세상은 시공간으로 이뤄진 4차원 세계(아인슈타인이 주장)가 아니라 5차원 세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한 이론이란 무엇일까. 그 내용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해본다.
아인슈타인의 추천으로 빛봐
먼저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를 통합한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을 이해해야 중력과 전자기력의 통합이론을 알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전기는 발전기에서 생겨난다. 비단옷이 스칠 때 느끼게 되는 그 짜릿한 존재가 바로 전기다. 이 전기는 번갯불의 원인이기도 한데 감전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한편 자기는 지남철처럼 남북을 가리킨다. 자석밴드의 예에서 보듯이 건강을 돕기도 하지만 전기처럼 극렬한 자극을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19세기까지는 이 둘이 완전히 별도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의 물리학자인 맥스웰(Maxwell)은 복잡한 수학적인 고찰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테면 자기와 전기는 통일된 하나의 법칙을 따르며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는 관계임을 밝혀낸 것이다. 맥스웰은 그 증거로서 맥스웰방정식으로 널리 알려진 한 마스터방정식을 제시했다.
이렇게 통합법칙이 밝혀지면 거의 예외없이 새로운 현상을 예언할 수 있게 된다.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전자기의 파동, 즉 전파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맥스웰은 전자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검증해 달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마침내 독일인 헤르츠(Hertz)가 처음으로 전파를 발생시킨 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전파를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전기와 자기의 통일이론)은 확정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맥스웰의 이론적인 예언으로부터 비롯돼 헤르츠에 의해 실현된 전파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전기문명 특히 전파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만일 전기와 자기의 통일장이론인 맥스웰방정식이 없었다면 아마도 국제전화나 팩시밀리 텔레비전 등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칼루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가 자신의 이론을 거의 완성했던 1919년만 해도 새 이론을 발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요즘 같으면 누구나 자기 논문을 전문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다. 투고된 논문은 곧바로 학술지를 발행하는 학회의 편집위원에게 전달된다. 편집위원은 그 논문과 유사한 연구를 한 전문가에게 문의한 뒤 학술지에 게재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1919년 당시에는 유명한 물리학자의 추천이 없으면 학술지에 발표할 수조차 없었다. 칼루자는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논문을 아인슈타인에게 보냈다. 그는 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릴 수 있도록 추천해줄 것을 부탁했다.
논문을 받아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확장한 칼루자의 이론에 금세 매료됐지만 그 자리에서 추천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계속된 편지왕래를 통해 칼루자 논문의 일부 수정을 요구했다. 드디어 1921년 아인슈타인은 칼루자의 논문을 학계에 추천했다. 이로써 칼루자의 이론이 베를린아카데미학회지에 실리게 되었다.
너무 작은 5차원
칼루자는 4차원 시공위에 바탕을 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5차원 시공간으로 확대시켰다. 그는 또 중력과 전자기를 같은 이론으로 설명했다.
일반상대론에 따르면 질량(물질)이 없는 공간은 평탄한 평면처럼 일체 곡률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에서의 물체는 직선을 따라서 움직인다. 실제로 무거운 쇳덩이와 가벼운 나무토막을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게나 그 성분에 관계없이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피사의 사탑에서의 실험).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성분이나 구성에 상관없이 같은 궤도를 그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지구를 둘러싼 시공이 휘어져 있고 그 휘어짐을 따라서 모든 물체가 움직인다는 기하학적 해석을 내렸다. 즉 아인슈타인은 곡률로 중력을 나타냈다.
좀 더 풀이해서 말하면 이렇다. 중력이 전혀 없는 시공간은 마치 평탄한 평면처럼 휘어짐이 없다. 따라서 이 평면 위에서는 어느 물체가 한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할 때 두점을 잇는 수많은 선중 길이가 가장 짧은 직선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어떤 물체로 인해 주변에 중력이 생겼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중력으로 인해 우리의 시공간이 공의 표면처럼 휘어졌다고 하면 이동하고자 하는 물체는 두점을 지나가는 대원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곡면상의 두점을 잇는 최단거리선을 측지선(測地線, geodeslc line)이라고 하는데 이 선은 곡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보여준다. 물론 구면(球面)의 측지선은 대원이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물체가 있는 곳의 중력은 크고 가벼운 물체가 있는 곳의 중력은 작다. 사실 중력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가 있는 공간은 더 심하게 휘어지게 되고 아울러 곡률(굽은 정도)도 더 커질 것이다.
일반상대론에 따르면 빛처럼 질량이 없는 물체도 마찬가지로 곡률에 근거해 움직인다. 그러면 직진하는 빛은 과연 얼마나 휘어질까. 대충 어림잡아 알아보자. 지구의 중력은 물체를 1초 동안 4.9m 낙하하게 한다(중력가속도는 9.8m/${초}^{2}$). 그런데 빛은 1초 동안에 약 30만km를 달리므로 지구를 지나는 빛이 휘어지는 각도는 (4.9/30만) x $\frac{360°}{6.28}$, 즉 0.000001°정도다. 하지만 별빛이 태양을 스쳐 지나올 때에는 1°가량 휘어진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에딩턴박사팀은 태양 주위의 시공간이 휘어져 있음을 실제로 관측했는데 이는 중력과 기하학을 결부시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증명해주는 완벽한 증거가 되었다.
칼루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5차원이며 이 5차원 공간의 측지선을 따라서 물체가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5차원 공간에서는 물체가 중력과 전자기의 힘을 받아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은 시간속에 살고 있으므로 남은 한 차원은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차원일 수밖에 없다. 칼루자는 이 미지의 차원을 찾아 나섰다. 그는 남은 한차원은 원처럼 휘어졌는데 그 원이 너무 작기 때문에 (${10}^{-33}$cm 정도라고 추정되고 있다.) 우리가 느낄 수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칼루자의 이론은 처음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 문제점은 1927년 클라인(Oskar Klein)이라는 스웨덴 물리학자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그후 칼루자와 클라인의 5차원 물리학을 일컬어 칼루자-클라인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양자역학에 비춰보고
클라인은 칼루자의 제안이 그 당시에 새로 소개된 이론체계인 양자역학이란 미시(微視)의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의 이론과 모순점이 없는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20세기 초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양자역학은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기술하고 있는데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정된 이론으로 통하고 있다. 그 이론 중에는 삼라만상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마스터방정식에 해당하는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 있다. 그 방정식은 네개의 변수를 갖고 있는데 각각은 4차원에 해당하는 공간과 시간을 나타낸다.
칼루자의 5차원 세계를 신봉한 클라인은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확장, 다섯개의 변수로 이뤄진 새로운 방정식으로 고쳤다. 그는 이 방정식의 해답은 중력과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파동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잉여차원인 제5의 차원의 반경이 ${10}^{-33}$c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특히 이 파동 가운데 진폭이 변하지 않는(따라서 파장이 무한히 긴) 것이 나오는데 이것은 질량이 0인 입자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이런 입자를 다룰 수 있는 이론적인 기초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더구나 칼루자-클라인이론은 양성자보다 질량이 ${10}^{20}$배 정도 무거운 입자를 예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한낱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의 질량은 그 파장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양성자의 파장을 양성자의 크기인 ${10}^{-13}$cm 정도로 잡으면 ${10}^{-33}$cm는 ${10}^{20}$GeV에 해당한다).
획기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던 칼루자-클라인이론은 점차 물리학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70년대에 이르러 조용민(서울대) 드 위트(미국 텍사스대) 프로인드(미국 시카고대) 루빈(시카고대) 주리아, 슈렉 크래머(프랑스 파리대) 슈바르츠(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등에 의해 부활됐다. 이들은 칼루자-클라인의 이론을 확장, 중력 전자기력 핵력 및 약력을 통합하는 대통일장이론을 세워 나갔다. 칼루자-클라인의 시대에는 아직 핵력과 약력(핵력은 원자핵들을 묶고 있는 힘인데 그 영향 범위는 ${10}^{-13}$cm 정도다. 약력은 방사성 동위원소로 하여금 알파(α) 베타(β) 감마(γ)선을 방출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힘인데 이 힘 역시 그 작용범위가 ${10}^{-16}$cm에 불과하다)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1970년대에 와서는 이들의 존재가 분명히 확인돼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5차원보다 큰 차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몇차원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조용민교수가 부활시켜
조용민교수와 프로인드교수가 칼루자-클라인이론이 안고 있었던 0모드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적인 길을 제시, 오래 전에 죽었던 칼루자-클라인이론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10}^{20}$GeV나 되는 칼루자-클라인 입자는 너무 무거워서 현재의 기술로도 만들 수 없으므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조교수 등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힘을 전달하는 문제(힘을 전달하는 입자를 보존(Boson)입자라고 부르는데 광입자 Z°입자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의 문제(페르미언, Fermion)까지 통합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초중력(super gravity)이론을 들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힘의 매개가 되는 보존입자에 대응하는 입자, 즉 물질을 이루는 페르미언입자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전자기적인 힘을 전달하는 광입자(photon)가 있으면 이에 대응하는 초광입자(photino)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전자(electron)가 있으면 초전자(slectron)가 있으며, 중력을 전달하는 중력자(graviton)가 있으면 초중력자(gravitino)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위튼(Edward Witten)교수는 초중력이론에서 말하는 네가지힘(중력 핵력 약력 전자기력)을 다 포함시키려면 11개 차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중 네개는 우리가 느끼고 보는 이 세상이며 다른 일곱개의 차원은 ${10}^{-33}$cm 정도로 작기 때문에 느끼지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7차원(물리학자들은 이를 차원축소라고 한다)을 생각하는 대신 조용민교수는 균일측도(isometry)라는 개념을 활용, 우리가 4차원 이상의 차원을 못느끼고 못보는 이유를 대칭성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원주상의 모든 점은 동등하기 때문에 어느 점을 특별히 골라잡을 수 없고 따라서 그 위치를 측정할 길이 없다. 다시말해 완전한 대칭성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물리량은 측정될 수 없고 우리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서로 동등하다는 등가(等價)원리에서 벗어난 이른바 제5의 힘이 존재해야만 한다.
어쩌면 칼루자-클라인이론은 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형태는 다소 바뀔지라도 그 핵심요소인 아이디어는 살아남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제5의 힘이 발견되고 중력의 양자화가 가능한 고도의 수학이 발달되면 지금의 칼루자-클라인이론은 다시 그 용도가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제안한 고차원 물리학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