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각국의 개발열기가 시들해진 가운데 일본은 고속증식로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차세대원전으로 일컬어지는 고속증식로의 원형로(原型爐)가 최근 일본에서 완성돼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 동력로(動力爐) 및 핵 연료개발사업단은 지난 5월 후쿠이(福井)현에 6천억엔을 들여 고속증식로의 발전플랜트 부분인 '몬주'를 완성했다. 이 원전이 계획대로 건설된다면 내년 10월에 점화되고 오는 94년부터 전출력(全出力)을 내게 된다.
고속증식로는 핵융합발전으로 가는 전단계로 21세기초에나 상용화될 것으로 핵공학자들은 보고 있다.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우라늄 중 현재 핵연료로 쓰이는 우라늄235는 0.7%에 불과하다. 나머지 99.7%나 되는 우라늄238을 핵연료로 이용하자는 것이 고속증식로의 발상이다. 경수로(輕水爐, 현재의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인 플루토늄239에 고속 중성자를 흡수시키면 두세개의 중성자를 방출한다. 중성자 하나는 플루토늄과 반응시켜 핵분열을 계속하고, 나머지 중성자를 우라늄238에 충돌시키면 플루토늄239로 바뀌는데 이를 재처리하여 새로운 연료로 사용한다. 이때 고속의 중성자를 사용하며 사용된 핵연료보다 플루토늄의 양이 많아지므로 고속증식로라 부른다.
몬주는 플루토늄 한개를 소비하여 1. 2개를 생성하므로 1. 2증식로인 셈이다. 몬주의 최대 특징은 냉각재로 액체나트륨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나트륨은 △중성자의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며(물의 3백분의 1) △열을 잘 전달하며(물의 1백50배) △1기압하에서 1백~8백80℃까지 액체상태로 견딘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경수로가 보통 열출력의 3할 정도를 전기출력으로 잡지만 몬주는 4할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몬주에는1천6백t 가량의 나트륨이 사용되는데, 나트륨은 물이나 공기와 접촉하면 격렬히 반응하므로 보관에 안전을 기해야 한다. 즉 냉각재의 효율이 높은 반면 방사능물질로 변한 액체나트륨을 보관하는데 따른 위험성은 커지는 것이다.
고속증식로의 노형(爐型)은 루프형과 탱크형으로 나뉘는데 몬주는 루프형에 속한다. 루프형은 중간열교환기와 주순환펌프 등 1차 냉각계통이 원자로 용기(容器) 밖에 배치되고 그 주위에 1차냉각계통의 스테인리스 배관이 설치된다. 따라서 원자로 주변의 구조가 복잡하고 시설의 대형화가 피할 수 없으며 건설비가 많이 드는 결점이 있다. 탱크형은 중간열교환기 등을 원자로 안에 배치해 구조는 간단하지만 내진성(耐震性)이 문제다.
고속증식로는 경수로에 비해 많은 핵폐기물이 나오며 사용후 핵 연료도 방사능 수준이 높으므로 이를 처리하는 기술 또한 현단계에서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에 따라 반핵단체나 지역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기술개발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일본은 지난 87년 원자력개발이용 장기계획을 발표하고 '고속증식로를 장차 원자력발전의 주종으로 하고 가능한한 빠른 시기에 실용화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우라늄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핵연료의 해외의존을 줄이기 위해 고속증식로 개발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과는 달리 구미 각국의 고속증식로 개발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세계 최초의 고속증식로인 프랑스의 슈퍼피닉스(1백24만kW)는 경제성을 이유로 가동중단 상태고, 미국은 원형로건설계획이 중지됐으며 실험로 FFTF도 일본의 운전경비 지원이 없으면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도 상업로 건설계획을 백지화했다. 소련만이 상업로 BN800의 건설에 착수하는 등 순조롭게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고속증식로 실용화의 승패는 세계 원자력이용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