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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를 만드는 끈기와 정확성의 과학전통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올바르게 사고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웁살라의 교훈은 내게도 길잡이가 됐다.

나는 1984년 4월부터 1991년 1월까지 스웨덴의 웁살라(Uppsala)대학에서 지진학을 공부했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웁살라대학은 1477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대표적인 대학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학문 본산으로서의 전통을 가진 대학이기도 하다.

이 대학은 특히 과학분야가 강해 세계적인 대과학자들을 배출했는데 그중에는 최초로 생물분류를 체계화한 린네(Linne)와 섭씨온도를 착안한 셀시우스(Celsius), 화학원소중 산소(O)와 염소(Cl)를 발견한 실레(Scheele), 임파선을 발견한 루드벡(Rudbeck) 등이 있다. 웁살라대학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도 8명(의학 2, 화학 2, 물리학 2, 평화상2)이나 되는데 해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있은 다음날에는 자연과학분야 수상자들이 웁살라대학에 들러 세미나를 하는 전통이 있다.

유학을 가기 전 나는 지구물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은 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했는데, 주된 업무는 원자력발전소 부지의 지진 안전성에 대한 연구였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시 고려해야 할 사항 중 첫째는 핵융합과정에서 가열되는 원자로를 식히는데 필요한 냉각수의 조달로 이는 발전소를 큰 강가나 해안에 설치하면 해결된다.

둘째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다. 만일 원자력발전소에 지진이 일어나 원자로가 깨지거나 기울면 방사능물질이 누출돼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국내에는 지진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없었으므로 응용에 선행돼야 할 기초연구가 되어있지 않았고 기본적인 자료수집도 안된 상태에서 예정된 원자력 발전소 건설계획에 참여하게된 내 느낌은 암담한 것이었다.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맞추어 정부에서는 계속적인 원자력발전소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기에 직업인으로 전문지식없이 실무에 종사하는 것은 매우 큰 고통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국내에 지진학의 전문학자가 없던 시절이라 한국에서 공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결국 서른을 넘긴 나이에 없는 집 맏아들인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르게됐다.

내가 유학지로 스웨덴을 택한 데는 우리나라의 유학이 미국과 일본에 너무 편중돼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작용했지만 많지 않은 지진학 교재 중 내가 구해서 읽은 몇권의 훌륭한 책의 저자이며 6, 70년대 많은 업적을 남긴 보스(Both)교수가 웁살라대학에 있다는 것도 나를 끌어당겼다.

또다른 이유로 스웨덴의 지진학적 특징이 우리와 유사한 데다가 중립국이라 소련 중공 북한 등 우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나라의 자료를 구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컸다. 우리와 인접한 국가로 넓은 국토에 지진망을 운영하는 소련과 중공의 자료는 우리나라의 지진을 연구하는데도 필수적인 바 예상대로 소련과 중공의 자료는 수집해서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웁살라에서의 필자


'서두르지 않되 정확하게'

내가 웁살라대학에서 몇년간 공부하며 터득한 하나의 큰 교훈은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고 모든 과정들을 명확히 실증하고 터득한 뒤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일을 서둘러 하다보면 외형적인 성과는 제법 빠르게 나타나지만 일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절차를 확인해야 하므로(특히 학술 연구의 경우) 시간이 두배 또는 그 이상 걸리게 된다. 만일 이 절차가 귀찮아서 생략하면 말그대로 부실공사가 되고 만다.

웁살라대학의 교훈은 대학본부 건물 2층 강당입구 위에 새겨진 표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올바르게 사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쓴 이 명구는 이따금 그것을 쳐다보게 되는 내게도 길잡이 노릇을 했다고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고 매사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그들의 연구태도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 중의 하나로 인정받는 볼보(Volvo)자동차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 아닐까.

내가 있던 연구소의 엔지니어인 코니라는 사람의 집에는 그가 어려서 썼던 유아용 의자가 있는데 그의 세 아이가 자라면서 모두 그 의자를 사용했고 지금은 창고에 들어있다. 자기 아이들이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손주가 생기면 그때 다시 꺼내서 쓰게될 것이란다.

대학의 연구실도 유사한 분위기다. 교수가 학생들을 독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구 테마도 스스로 찾아야하고 모든 것을 학생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연구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문제를 들고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상의하면 교수는 다 듣고난 후에 함께 문제를 간단하게 요약해준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학생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웁살라대학교정


잦은 국제학술교류로 견문 넓혀

웁살라는 스톡홀름 북쪽 65㎞에 위치하고 18세기까지는 스웨덴의 수도였던 인구 약15만명의 도시다. 그 중 웁살라 대학의 학생수가 약 3만명 정도이고 대학의 교수진과 기술, 행정직을 포함하면 이 도시 인구의 30% 정도가 대학과 관련이 있는 그야말로 '대학 도시'다. 나는 스웨덴 이외의 외국 대학에서는 1년이상 생활해 본 적이 없으므로 내가 공부했던 웁살라 대학의 일반적인 위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친 경험과 웁살라 대학의 생활체험에서 느낀 몇가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도서관 이용의 편리함이다. 각과마다 전공분야별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단과대학별 도서관과 중앙도서관이 따로 있다. 중앙도서관의 컴퓨터에는 스웨덴내 각 대학과 연구소의 장서목록이 모두 입력돼 있고 유럽은 물론 세계각국의 큰 도서관들 도서목록도 구비하고 있다. 이 목록에서 도서를 확인해 열람신청하면 스웨덴 국내 것은 2, 3일 내에 신청자에게 배달된다. 외국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의 경우 원본대출이 아니고 필요한 부분의 복사본을 구할 수 있는데 다른 유럽국가의 책들은 7~10일, 기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2~3주일이 소요된다.

두번째 특징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국제교류의 기회다. 학생들이 국제학술회의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하거나 워크숍이나 하기강좌(summer school)에 참가하는 경우 자격이 인정되면 여행비와 체재비 해결이 쉽다. 나의 경우 6년여의 웁살라 유학기간 동안 학술발표와 자료수집을 위해 6회에 걸쳐 총 1백여일간 다른 유럽국가와 미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본인이 부담한 경비는 아주 적었다. 세번 참가했던 비교적 장기간(2~5주)의 워크숍이나 하기강좌의 경우 현지 체재비는 전액 주최측에서 제공하고 항공료는 일부 지원받았다. 이 경우는 주최측이 자금을 확보하고 신청자중 적격자를 선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술 발표를 위해 학회에 참가하는 경우(1~2주)에는 참가인원이 많으므로 주최측에서의 경비보조는 드물다. 이럴 때에는 재학중인 대학에 여행경비를 신청해 사용했다. 웁살라대학의 경우 동창들의 기부금을 총장이 관리하는데 학생들이 지도교수 추천서와 함께 신청을 하면 거의 모든 지원자가 혜택을 받는다. 수여원칙이 모든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므로 신청한 금액의 50~60%를 받는데 숙식을 유스호스텔같은 싼곳에서 해결하면 기본적인 여비와 숙식비는 충당된다.

나의 경험으로는 이런 학술회의나 워크숍 등에서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만나 아이디어와 경험담을 교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유익했다. 또 전공의 문제를 떠나서도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교류는 유익한 경험이 된다.

지진학의 경우 우리나라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 연구하려면 세계도처의 지진기록이 필요하다. 나는 국제회의 등에서 이루어진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자료수집을 6개월~1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웁살라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북한의 자료는 끝내 구할 수 없어 분단된 나라의 서글픔을 통감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고 우리에게 필요한 연구가 우리 땅에서 우리들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으며 언젠가 국제수준의 연구팀을 만들 꿈을 갖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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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전명순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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