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에 걸친 양자의 싸움은 숨가쁘게 진행됐지만 어느쪽도 완승을 거두지 못했다. 네번째 싸움 역시 무승부가 예상되긴 하나… 필자는 최근 국내최초로 제4세대 항생제를 개발해냈다.
항생제(抗生劑, antibitics)란 잘 알다시피 생물에서 직접 생성되거나 유도되는 물질 중 세균에 특히 강한 것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작은 양으로도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일 수 있다. 초기에는 미생물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로 한정했으나, 근래에 와서는 고등식물로부터 얻은 것도 포함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인위적인 유기화학적 합성과정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1929년 영국의 플레밍(Fleming)에 의해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Penicillin)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수만종의 항생제가 보고됐다. 그중 1백여종은 현재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이 항생제 덕분에 박테리아 곰팡이 등 세균에 의한 인류의 질병이 거의 정복됐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균들이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켜 항생제나 항생물질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생화학적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필요성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쉽게 말해 항생제에 내성(耐性)을 나타내는 세균이 계속 출현함에 따라 더 강력한 항생제의 등장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성(病原性)미생물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원생식물(박테리아 방선균 진균 등) 원생동물 스피로헤타 리켓치아 바이러스 등이다. 이중에서 박테리아는 단세포식물의 대표적인 것으로 병원성 미생물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알다시피 박테리아는 그람(Gram) 염색법에 의해 염색되느냐 염색되지 않느냐에 따라 그람양성(+)군과 그람음성(-)군으로 나뉘어진다. 이 분류는 단지 염색법에 의한 것이지만 항생제에 항균작용(抗菌作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람양성균에는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폐렴균 디프테리아균 등이 포함되며, 그람음성균에는 임균 수막염균 대장균 변형균 녹농균 폐렴간균 살모넬라속균 비브리오속균 등이 해당된다.
항생제의 항균력을 나타내는 말로 두가지가 사용되고 있다. 세균의 발육 및 증식을 억제하는 정균작용(整菌作用, bacteriostatic action)과 세균을 죽이는 살균작용(殺菌作用, bacteriocidal action)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대개는 항생제의 농도에 따라 나뉘는 게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항생제의 농도가 묽으면 정균작용을 나타내고 농도가 진할수록 살균작용을 보인다.
페니실린의 후예들
항생제는 수만가지가 알려져 있으나 그 화학구조 및 작용 메커니즘 등에 따라 몇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열거하면 베타락탐(β-Lactam)계 항생제 아미노글리코사이드(A-minoglycoside)계 항생제 마크롤라이드(Macrolide)계 항생제 퀴놀론(Quinolone)계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계 항생제 등이다. 이 항생제들은 각기 독특한 항균력 및 사용범위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세포와 병원성 세균 세포가 보여주는 형태상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 세포질막의 외측을 둘러싼 견고한 구조물과 세포벽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의 세포는 세포벽이 없으나 세균의 세포에는 세포벽이 존재한다. 세균의 세포질내 삼투압이 높기 때문에 이를 견디려면 세포벽이 필요한 것이다. 세포벽이 손상되면 세포질막이 파괴되므로 세균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것이 페니실린 즉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세균 세포벽의 합성저해물질은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작용 메커니즘은 이처럼 세균의 세포벽 합성을 방해함으로써 항균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마크롤라이드계 테트라 사이클린계 항생제는 세균의 단백질 합성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이 항생제들은 사람 세포의 단백질합성도 방해하기 때문에 베타락탐계 항생제에 비해 부작용 및 독성이 강하다.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출산력'마저 뛰어나다. 기본물질이 몇 단계의 화학적 변형과정을 거치면 수많은 유도체가 합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계열에서 광범위한 항균력을 보유한 많은 항생제가 탄생됐다. 실제로 현재 세계 항생제시장의 70% 이상을 베타락탐계 항생제가 차지하고 있다.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독특한 작용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다른 항생제에 비해 인체에 대한 독성 및 부작용이 적다. 뿐만아니라 광범위하고 높은 항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계열 항생제의 발전과정은 실로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역사는 1929년 플레밍에 의해 페니실린이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된다. 1940년 초 옥스포드(Oxford)대학에서 처음으로 페니실린에 대한 임상실험이 수행됐다. 곧 이어 미영(美英)연합연구팀이 공업적으로 이 항생제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개발 초기에 페니실린은 전쟁(2차 세계대전)에서 부상한 많은 군인의 생명을 구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일반인에게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후부터 공급됐다.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다시 페니실린계 세팔로스포린계(Cephalosporin) 비고전베타락탐계 항생제로 분류되는데, 이것은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발전과정과 관련이 있다.
내성을 갖게 되자…
페니실린은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란 푸른 곰팡이와 그 유사균종의 배양액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이 유명한 항생제는 일반적으로 그람양성균에 대해 매우 높은 항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그람음성균에 대한 항균력은 극히 미미하다. 게다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페니실린의 과다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포도상구균(그람양성균)이 페니실린에 대한 내성(耐性)을 갖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은 박테리아가 페니실리나제(Penicillinase)라는 효소를 생성, 페니실린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가속화되었다.
1959년에는 또 하나의 '슈퍼스타' 6-APA(6-aminopenicillanic acid)가 페니실린 배양액으로부터 발견됐다. 그 자체는 항균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이 물질로부터 수천종의 반합성 페니실린이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속속 개발됐다. 실로 그 가치는 굉장한 것이었다. 반합성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페니실린에 내성을 갖는 포도상구균을 다시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페니실린의 약점이었던 항균 효력범위를 넓히는데 기여했다.
다시 말해 광범위 스펙트럼(spectrum)페니실린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이 광범위 스펙트럼 페니실린은 그람양성균에 잘 듣는것은 물론이고 대장균 같은 일부 그람음성균에도 약효를 나타낸다. 비록 대부분의 그람음성균에까지 항균범위를 확대하지는 못했지만 페니실린의 항균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항생제로는 암피실린(Ampicillin) 아목시실린(Amoxicillin) 등이 있다.
7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람음성균에 잘 듣는 페니실린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그 결과 녹농균(Pseudomonas)과 변형균(Proteus)에 잘 듣는 몇가지 페니실린이 개발됐다. 카베니실린(Carbenicillin) 술베니실린(Sulbenicillin) 티카실린(Ticarcillin) 피페라실린(Piperacillin) 등이 그것이다. 이 약물들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하나 대부분의 페니실린은 알레르기성 과민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항균범위면에서 볼 때도 아직 만족할 만한 상태는 아니다. 또한 계속적으로 내성세균이 등장해 새로운 항생제의 출현을 늘 요구하고 있다.
세팔로스포린계의 등장
이번에는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의 개발 과정을 알아보자. 세팔로스포린을 생성시키는 미생물이 처음 발견된 때는 1946년이었다. 이어서 1950년대에는 세팔로스포리움(Cephalosporium)이란 세균의 배양액으로부터 문제의 세팔로스포린 C(Cephalosporin C)가 분리됐다. 세팔로스포린 C의 항균력은 흡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페니실리나제를 생성하는 포도상구균을 죽이는 '장기'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람음성균에 대한 항균력이 페니실린보다 월등하다는 점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기본물질인 세팔로스포린 C로부터 몇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치면 7-ACA(7-aminocephalosporanic acid)를 얻을 수 있다. 이 7-ACA는 그후 30년 이상 항생제의 대표로 활약하게 될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를 탄생시킨 주역으로 매우 귀중한 출발물질이 된다. 즉 7-ACA를 약간 변형시킴으로써 수십만종의 세팔로스포린이 얻어졌다. 지금도 50여종의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가 전세계 항생제 시장의 50%를 점하고 있다.
60년대 초에 이미 몇가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가 임상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팔로틴(Cephalothin) 세팔로리딘(Cephaloridine)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1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로 통한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두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페니실리나제를 갖고 있는 포도상구균에 대해 비교적 높은 항균력을 발휘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람음성균인 변형균(Proteus) 대장균(E,coli) 클렙시엘라균(Klebsiella)에 대해서도 약간의 향균작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1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녹농균 변형균 세라티아(Serratia) 엔테로박터(Enterobacter) 등 대부분의 그람음성균에 대해서는 뾰족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그 첫번째 한계다. 또 하나는 이 항생제의 사용이 빈번해짐에 따라 세팔로스포리나제(cephalosporinase)라는 효소를 생성하는 내성균이 등장하게 됐다는 점이다. 페니실리나제 앞에서 페니실린이 꼼짝 못하듯, 세팔로스포린을 파괴하는 효소인 세팔로스포리나제가 생기게 되면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는 별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그후 70년대 초 미국의 머크(Merck)회사와 일라이 릴리(Eli Lilly)회사에서는 세파마이신(Cephamycin)을 개발했다. 이것은 세팔로스포린계에 속하는 베타락탐계 항생제인데 놀랍게도 베타락타마제(β lactamase)를 생성하는 균에도 잘 듣는다. 이 항생제는 1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에 비해 그람음성균에 대한 항균범위가 훨씬 넓어 2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로 불린다. 2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는 7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여기 속하는 항생제로는 세파맨돌(Cefamandole) 세포티암(Cefotiam) 세폭시틴(Cefoxitin) 세푸록심(Cefuroxime) 등이 있다. 그러나 이 2세대 세팔로스포린들도 녹농균에 대해서는 뾰족한 항균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70년대 말에 이르러 여러 종의 2세대 세팔로스포린을 융합시킨 새로운 항생제가 등장했다. 이른바 3세대 세팔로스포린이 개발된 것이다. 3세대 세팔로스포린의 특성은 녹농균과 세라티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그람음성균에 대해 뛰어난 약효를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베타락타마제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러나 1, 2세대 세팔로스포린에 비해 그람양성균에 대한 항균력이 낮은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80년대 들어와서 수천종의 3세대 세팔로스포린이 보고되었는데 현재 그중 10여종이 상품화돼 있다.
80년대 말부터 그람음성균에 잘 듣고 그람양성균에도 강한 항균력을 보이는 4세대 세팔로스포린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현재까지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춘 약제는 시판되고 있지 않다. 다만 독일 훽스트(Hoechst)사의 HR-810, 브리스톨마이어스(Bristol-Myers)사의 BMY-28142 등이 엇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지금 임상실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입으로 먹는 항생제가 유리
70년대에는 항균력이 강하고 항균범위가 넓은(특히 베타락타마제를 생성시키는 균과 녹농균 등에 대한 항균력을 보유한)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개발이 중요한 연구과제였다. 1976년 미국의 우드워드(Woodward)박사는 순수합성에 의한 베타락탐계 항생제를 개발했다. 이 항생제는 페넴(penem)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또 같은 해 미국 머크사의 연구원들이 카바페넴(carbapenem) 구조를 갖는 티에나마이신(Thienamycin)을 개발해 냈다.
이로써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연구는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종래의 고전적 베타락탐계 항생제에서 비고전(非古典)적인 베타락탐계 항생제 쪽으로 연구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티에나마이신은 현재까지 알려진 항생제들중 가장 강하고 넓은 항균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몸 안에서 불안정한 것이 약점이었다. 그후 머크사의 연구원들은 카바페넴 구조를 갖는 티에나마이신 유도체들을 합성, 마침내 1987년 생체내에서의 안정성이 크게 향상된 이미페넴(imipenem)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미국의 스퀴브(Squibb)제약회사 연구원들은 모노박탐(monobactam)계 항생제를 연구, 최근 아즈스레오남(Azthreonam)이라는 새로운 화학구조를 갖는 베타락탐계 항생제를 상품화했다. 이처럼 카바페넴계 항생제와 모노박탐계 항생제가 비고전적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카바페넴계 항생제는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한 항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점도 적지않다. 우선 화학적으로 불안정하고 인체내의 효소에 의해 분해가 잘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수십단계의 화학공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매우 고가의 항생제다. 따라서 이러한 단점의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모노박탐계 항생제는 특히 그람음성균에 매우 우수한 항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람양성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효력을 보일 뿐이다. 쉽게 말해 좁은 항균범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직 카바페넴계와 모노박탐계 항생제는 전체 항생제 시장의 5% 미만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큰 분야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항생제의 개발과제는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세팔로스포린의 개발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광범위한 항균효과를 갖는 항생제의 개발이다. 실제로 병원성 세균이 일으키는 감염인 경우 대부분 여러 세균들이 함께 관여하는 복합감염(mixed infection)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항균력을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
둘째는 내성균에 대한 항균력 유지가 문제다. 많은 세균들은 베타락타마제를 생성하는등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켜서 항생제나 항균 물질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셋째는 항균효과가 높아야 하고 독성과 부작용이 적어야 한다. 최근에 각광을 받는 퀴놀론계 항생제는 매우 높은 항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추신경계에 대한 독성이 비교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독성이 적으면서 항균력이 높은 항생제의 개발이 절실하다.
넷째는 입으로 먹는 경구(經口)용 항생제의 개발이다. 경구용 항생제들은 매년 수억달러 어치씩 판매되고 있다. 주사제보다 투여방법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퀴놀론계 항생제가 급성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경구용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약효의 지속시간이 길어야 한다. 대부분의 주사제는 하루에 3, 4회 주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3세대 세팔로스포린중 비교적 항균력이 낮은 세프트리아손(Ceftriaxone)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이유는 하루에 한번만 주사해도 되는 항생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베타락탐계 항생제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