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사무자동화기기전'에서 컴퓨터메이커들은 일제히 노트북 컴퓨터를 선보여 올 하반기 뜨거운 판매경쟁을 예고했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어느 기업가는 그곳의 컴퓨터문화에 두번 놀랐다고 한다.
'전자왕국'을 자랑하는 일본이니 사무실마다 첨단 OA(사무자동화)제품이 즐비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막상 어떤 회사를 방문해보니 책상마다 깨끗이 치워져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안보이는 것이 아닌가. 일순 당황한 그는 상대편 일본인에게 컴퓨터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일본인은 빙그레 웃으며 책꽂이에서 노트북컴퓨터를 꺼내는 것이었다.
책상위에서 외부전원에 연결해 작업하다가 사용이 끝나면 책꽂이에 꽂아두거나 서랍에 넣어두고 외출할 경우에는 가방속에 넣어 들고다닌다는 설명에 그는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서류철 크기의 노트북이 일반 개인용 컴퓨터가 가진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땅값이 비싼 일본인지라 조금이라도 공간을 절약하려는 그들의 노력도 감탄할만 하지만, 5년이내에 제품의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이 바뀌는 컴퓨터기술의 혁신에 한치도 틈도 두지않고 곧바로 적응하는 기민함에 거듭 놀랐다고 한다.
현재 일본의 노트북 시장규모는 연간 50만대. 89년 도시바의 다이나북이 빅히트를 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노트북제품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을 상기하면 깜짝 놀랄 성장속도다. 어떤 전문가는 "미처 랩톱시장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노트북의 물결이 몰아쳐 시장을 대체해가고 있다"고 진단을 내리고 있을 정도다.
노트북시장이 예상외로 급성장을 보이자 소형화기술에 노하우를 지닌 일본 컴퓨터업체들은 잇따라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노트북의 대명사가 되다시피한 도시바의 다이나북에 대항하기 위해 NEC 후지쓰가 더욱 소형화되고 가격이 싼 신제품을 지난해말에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NEC의 '핸디98'은 업무용 수첩보다 약간 큰 크기에 무게는 1.1㎏, 시판가격은 19만8천엔으로 결정됐다. 후지쓰는 이보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23만8천엔) 무게는 더욱 줄인 (9백90g) 'R카드'로 노트북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액정화면 박막기술 IC카드 칩세트 등 노트북의 중추를 이루는 핵심기술에 있어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은 이미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컴팩 IBM 애플 등 휴대용(portable)컴퓨터를 개발해온 미국 업체들은 무수한 시행착오만 되풀이한채 막상 결실은 일본 업체들에 물려주게된 것이다. TV 자동차 반도체 레이저에 이어 미국은 일본에 또 한번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
뉴텍코리아가 선두주자
노트북이 국내에 처음 출연한 것은 89년 경이다. 외국출장 갔다 온 사람들이 하나씩 사들고오거나 세운상가 용산전자상가 등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다이나북이 전시됐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한글사용이 불가능해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국내업체로 노트북시장에 처음 뛰어든 기업은 중소기업인 뉴텍코리아. 랩톱컴퓨터 생산에 주력하던 뉴텍코리아는 90년 4월 XT급 AT급 2종의 노트북을 발표, 단연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제품출하는 11월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판매실적은 1백대 정도.
뉴텍코리아가 노트북제품을 내놓자 대기업들도 일제히 이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번 4월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사무자동화기기전'에는 삼성 금성 효성 삼보 현대 등 대기업들이 각자 개발한 노트북제품들을 전시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을뿐 생산준비가 돼 있지 않아 제품 출하는 빨라야 5월 늦으면 연말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효성컴퓨터와 삼성전자는 이미 시판가까지 매기고 5월부터 시판에 나설 계획이다.
대기업들외에 세모(주) 스카다시스템 케이서시스템 대암전자 등이 주로 대만에서 완제품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또 탠디 애플 도시바 NEC 컴팩 등 미일업체의 노트북제품들도 수입판매상들에 의해 시중에 나돌고있는 실정.
업계관계자들은 올해 국내 노트북시장이 1만대까지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PC시장이 30만대를 상회한데다 PC 수요자들이 고급기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노트북시장도 크게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금년 하반기 메이커들의 신제품들이 일제히 출하되면 판매경쟁이 뜨거워지고 제품가격이 떨어지면 수요는 생각보다 늘 것이라는 예상이다.
업체들은 출장이 잦은 영업사원, 원고작성과 기동성이 요구되는 기자, PC를 잘 아는 엔지니어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꼽고있다. 실제 C일보 S신문 등에서는 CTS(컴퓨터신문제작시스템)추진과 아울러 노트북컴퓨터의 대량구매를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노트북의 가격은 AT급이 2백만~2백60만원선(부가세 별도) 386SX급이 2백80만~3백50만원선이다. 데스크톱 모델과 비교하면 아직 1백만원이상 가격 차이가 난다. 최근 PC수요가 AT급 이상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어 XT급 노트북을 생산하려는 업체는 거의 없다.
부품 90% 수입의존
노트북의 가격은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 노트북의 시장성장과 가격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 노트북이 2백만원선을 고집하는 한 국내 수요층은 엄격하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반면 컴퓨터가격은 생산규모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생산규모가 늘면 부품가격과 선전홍보비 등 부대비용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가격→적은 수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언제 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효성컴퓨터가 노트북시장에 뛰어들면서 시판가를 1백70만원(AT급)으로 결정한 것을 업계에서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노트북은 데스크톱보다 부품의 해외의존율이 높아 가격인하가 쉽지않다는 지적도 있다. 노트북에 소요되는 내장배터리, 2.5인치 HDD, 액정디스플레이, 칩세트, 마이크로프로세서, C모스칩 등 어느 것 하나 국산제품이 없다. 국내업체들은 완제품을 수입해 팔거나, 90%이상의 부품을 수입해 디자인된 설계도에 따라 조립하는 것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기업도 노하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뉴텍코리아가 배터리팩과 확장팩을 노트북 뒷면의 확장슬롯에 꼽을 수 있게한 기술을 개발해 국제특허를 낸 것이 노트북에 관한 국내기술의 전부일 정도다.
국내 시판될 노트북들은 대부분 VGA모드를 채택하고 있고 소프트웨어적으로 한글을 처리하므로 '한글'워드프로세서나 통신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나 스프레드시트 등을 한글로 이용하기에는 아직 문제점이 많이 남아있다.
데스크톱을 대체할 것인가
컬러 LCD가격이 워낙 비싸 단색모니터 밖에 쓸 수 없고 키보드가 작아 타이핑이 불편한 점 등이 있지만 들고다니기 간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노트북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다.
학생들은 가방에 컴퓨터를 넣고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꺼내 필기를 하고 리포트를 작성하기도 한다. 소설가는 노트북을 하나 옆구리에 끼고 나서 찻집이나 산사(山寺) 도서관 어디서든지 좋은 구상이 떠오르기만 하면 즉석에서 글을 쓴다. 기자는 사건현장에서 곧바로 원고를 작성하고 내장된 모뎀이나 팩시밀리를 통해 기사를 송고한다. 영업사원은 출장중에 본사에 자료를 보내거나 본사의 자료를 이용하기도 하고, 고객과 상담할때 컴퓨터에 기억된 정보를 보여줄 수 있다. 노트북의 장점이 발휘되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노트북이 데스크톱을 대체해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트북 컴퓨터의 유저는 집이나 사무실에 데스크톱 PC를 갖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데스크톱으로 어느 정도 PC사용이 익숙해진 사람이 컴퓨터를 더욱 자주 친근하게 이용하기 위해 노트북을 구입한다는 얘기다. 반면 노트북은 랩톱시장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 '2㎏ 대 8㎏의 대결'로 압축되는 노트북과 랩톱의 경쟁은 일본의 경우 노트북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