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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처 김진현장관


"이제 국민의 동의없이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요즘 과기처는 매우 부산하다. 한일각료회담, 헝가리와의 과기처장관 회담, 한소 과학기술협정 등 국가간의 굵직굵직한 회담과 협정이 잇따르고 있다. 게다가 안면도사태로 국정감사의 주요테마로 떠오른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소련방문을 하루 앞두고 한소 과학기술협정 자료를 뒤적이는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을 만나보았다. 자신이 일복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비전문가 장관을 혹독하게 단련시키는 훈련과정인지 잘 모르겠다는 김장관의 모습은 다소 지쳐있는 듯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과학

-장관에 취임하신지 한달이 넘었습니다. 실무파악은 어느 정도 됐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국정감사 준비와 각종 행사에 쫓겨 아직 제대로 업무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언론인의 시각에서 과학기술을 국가사회의 중요한 요소로서 생각하곤 했으나 한번도 과학기술행정책임자로서의 모습은 상상해보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는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균형있는 판단과 조화도 필요하므로 객관적 입장에서 행정력을 발휘, 국민의식을 과학화하는데 힘쓰겠습니다."

'국민의식의 과학화'라는 표현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제 과학기술정책은 국민의 동의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선 최근의 과학기술 관련 프로젝트는 워낙 대형이기 때문에 예산이 많이 들어갑니다. 한두푼도 아닌 돈을 쓰는데 '주인'의 동의없이 가능하겠습니까. 또 한가지 현대의 첨단과학은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HDTV(고품위 TV)라든가 통신위성기술 등은 국민의 생활양식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이런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하는데 국민의 동의는 필연 아니겠습니까."

권위주의 통치 아래서 한사람에게 잘보여 돈을 타다 일을 추진하면 된다는 사고방식 갖고는 안된다는 얘기다. '민주화와 과학기술'관계를 나름대로 설명한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은 '전문가만의 영역'에 머물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원자력발전을 비롯한 대형프로젝트는 거의다 '국민의 동의'를 구한적이 없다. 일단 추진해놓고 나중에 필요하면 국민을 설득시키겠다는 정도였다.

김장관의 입각은 안면도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다. 따라서 원전과 관련된 어떤 프로젝트도 국민적 합의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미리 배운 셈이다. "과학기술을 위한 범국민적기구를 발족시켜 전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이해사업을 전개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책상위의 계획'에 그칠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과의 과학기술교류 전망은 어떻습니까.

"소련은 기초과학과 우주 항공을 비롯한 첨단기술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축적하고 있고, 반면 우리는 응용연구와 제조기술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상호보완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최근 우리의 과학기술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미국 일본 등에서는 기술보호주의 장벽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교역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소련이 우리나라에 이전하고자하는 2백80여개의 기술에 대한 정밀분석작업을 마친 결과, 이중에는 기술도입을 추진해 바로 산업화할 수 있는 것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우리도 소련에 줄 수 있는 80여개 기술을 제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개인용컴퓨터와 가전제품 및 섬유 농업 식품분야 등 민생용 기술이 주로 포함돼 있다.

우선 소련과 국가간에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고, 구체적인 부처간 협력사업으로는 원자력산업부와 핵융합과 레이저, 고속증식로 신형원자로 원전안전기술 등 20여개 공동연구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이므로 미국 일본과는 달리 국가간의 과학기술협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 이러한 교류를 위해 제1차 한소과학기술위원회를 올 상반기 중 개최하고, 한소과학기술협력센터(KIST) 한소공동컴퓨터센터(기계연구소) 등을 설치하고 매년 한소원자력협의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우수연구센터 중점 지원할 계획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계십니까.

"정확한 실상은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산업계의 응용연구보다는 대학의 기초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이 취약한 상태'라는 말은 자체기술을 배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 아닙니까. 이런 상태에서는 선진국들이 개발한 기술을 모방하거나 비싼 로얄티를 지불하면서 도입하는 방법 외에는 없지요. 앞으로는 대학 중심의 '우수연구센터'를 집중 지원해 '기초과학은 푸대접한다'는 고정관념을 허물어 보겠습니다."

현재 경북대 센서기술연구센터 등 7개의 공학연구센터와 서울대 이론물리학센터 등 여섯개의 과학연구센터가 선정돼 있다. 과기처는 앞으로 17개 우수연구집단을 추가로 선정해 금세기 말까지 장기적으로 중점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과기처는 정부출연연구소를 20여개나 거느리고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연구의 자율성이 없다''연구소운영이 관료적이다' 등의 현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직접 연구원들과 접촉해볼 의사는 없는지….

"앞으로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최대의 무기로 삼아야 할 것은 전문가들의 현장목소리를 비롯해서 여러 계층의 다양한 얘기를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현재 연구소의 자율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사회가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관으로 기능을 수행토록 하고 기관운영평가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일 따름이고 현실이 어떤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인 출신답게 관료화되는 것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김장관은 "빡빡한 일정에 따라 숨가쁘게 움직이는 장관생활을 해보니 관료화될 여지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일에 책임자만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하루 빨리 바뀌어 역할분담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연구인력 양성, 기술자립, 연구원 처우개선 등에 관련된 질문에는 "극히 원론적인 답변 외에는 할 수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업무파악이 제대로 돼있지 못함을 솔직히 시인했다.

-사회변화에 과학기술은 점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는데 비해 과기처의 위상은 이에 따르지 못한다는 있는데….

"사실 아닙니까. 과기처 내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있다면 두뇌뿐인데…. 앞으로 과기처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두뇌를 중시하는 사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

김장관의 입각으로 두가지 기록이 세워졌다. 하나는 비전문가 과기처장관이 탄생한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언론인 출신으로 바로 장관으로 입각한 첫번째라는 점이다. 첫번째라는데 책임감을 느낀다는 김장관은 현재를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로 규정하면서 "이 과정에서 조그만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장관의 과기처장관으로서 '조그만 역할'은 국민을 필요에 따라 설득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사전 동의'가 필요한 주체로 인식하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과 함께하는 과학'을 실현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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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정경택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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