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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선생님 노릇 고달프다

일선교사가 보는 학교컴퓨터 교육

학교컴퓨터교육이 본격 실시된지 1년이 지났지만 빈약한 예산, 담당교사 부족, 학습프로그램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흡사 노도와 같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불과 몇해 사이에 컴퓨터는 우리 주위에 너무 가까이 접근해 왔고 컴퓨터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가장 안정적이며 보수적 성향이 짙은 교육현장에서 컴퓨터의 등장은 상당한 충격이며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해가는 것이고 새로운 문명을 거부해서는 안되는 것인만큼 여기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

8비트 PC, 고철덩이로

1989년 6월 2일은 우리나라 컴퓨터 교육이 커다란 전기를 맞는 날이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예상하고 있었으나 막상 16비트 컴퓨터를 교육용 컴퓨터의 표준으로 문교부에서 지정해버리자 아무런 준비도 없던 일선 교육계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욱이 바로 그 직전 8비트 컴퓨터를 구입한 학교들의 당혹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고가로 구입한 첨단 장비들이 하루 아침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당시 여러 학교의 현실적인 걱정거리였다.

아직 8비트컴퓨터로 베이직(BASIC, 컴퓨터언어의 일종)을 교육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일각에서 국민학교급에서는 타이핑 연습만으로도 컴퓨터의 가치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었으나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16비트 컴퓨터 시대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진정 학교교육이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산적해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빈약한 운영비

문교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각급 학교에 컴퓨터를 공급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으나 벽지 학교, 변두리 학교 공립 학교 우선 원칙에 의해 서울 도심의 사립 학교들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나 컴퓨터를 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16비트 컴퓨터를 학교 자체 재정으로 보유한다는 것은 오늘날 교육환경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대부분의 학교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

더욱이 시설을 갖추어놓아도 제2의 장애가 애프터서비스 운영비 문제다. 본체와 모니터 간의 연결 케이블이 가끔씩 없어진다. 또 학생들이 키보드의 자판 키를 전부 빼내어 엉뚱한 배열로 끼워 넣고 당황하기도 한다. 사소한 스위치들은 장난치기 좋은 대상으로서 항상 파손에 대비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 무리한 조작으로 시스템 내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속수무책인 때가 있다. 선생님의 손길로 해결되거나 부품 소모품 들의 여유분이 있어서 갈아 끼울수 있을 때는 그중 다행한 일이다. 애프터 서비스 체제가 아무리 잘 되어있다 하더라도 평균 2~3일은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의 교육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필요한 주변기기 구입을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아이들이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연수를 해야하는데, 필요한 책자, 소프트웨어, 소모품, 액세서리(보안경 디스켓꽂이 등) 등을 선생님들의 주머니를 털어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기재의 보급 뿐 아니라 이에 따르는 각종 경비, 자기연수를 위한 경비까지 배려가 있어야 명실상부한 컴퓨터 교육 활성화가 이뤄지리라 생각된다.

개선돼야 할 컴퓨터연수

컴퓨터 교육은 인간에 의해 판가름 난다. 우수한 교육자의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앞으로의 컴퓨터 교육은 특정과목 위주가 아니라 모든 교과목의 교과 과정에 걸쳐서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모든 교육자에 대한 컴퓨터 교육이 필수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교원연수의 중요성은 대단히 커진다.

문교부는 사범계 대학의 필수과목에 컴퓨터 교과를 포함하여 이수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한다. 그러나 신임 교사들이 중견으로 성장할 때까지 공백기에 대한 해답은 없다. 또 각 교과의 전산관련 부분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교수 자원이 모자라는게 사실이다. 문교부는 해마다 1만~2만 명의 교원 교육을 하고 있다. 흔히 60만 교육자라 하므로 전체 교원들에 대한 컴퓨터교육은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도 30년 내지 6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1만~2만명씩 받은 연수교육의 질 또한 문제가 된다. 대개 30시간의 초급과정연수를 받은 후 문교부 주관의 80시간 심화과정 연수에 참여하게 되어 있는데 많은 분들이 '학교 사정에 의해 할 수 없어 연수를 받으러 나온다'는 식의 의식을 갖고 있어서, 또는 가만히 있으면 컴퓨터가 모든 일을 대신 해주는 줄 알고 교육도 그러한 식의 기대감으로 참여한다. 그러다가 의외로 머리쓰고 신경쓰게 되면 강의받은 지 5분도 못돼 들은 지식이 날아가 버린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하여 심화과정 교육이 다시 기초 과정부터 반복되는 비능률적인 면에 익숙해져 있다.

과연 80시간의 심화연수를 마치고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있게 수업을 전개해 나갈수 있을까.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에 상위 입상한 학생들에게 컴퓨터 접근방법을 질문해 보았더니 공통점이 많이 있었다. 시작은 어떻게 했든지 학생들은 대부분 끊임없이 혼자서 자기연수를 반복했다는 사실이었다. 해답은 바로 그 점에 있었다. 아무 동기 유발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적인 교육만으로는 컴퓨터 교육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컴퓨터가 가진 편리성, 신속함, 정확성, 처리의 다양성,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기억용량 등의 장점이 피교육자들에게 올바로 전달되고 그 쓰임새가 본인과 교육에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만 한다면 교사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컴퓨터를 구입하려 할 것이고, 또 필요하고 편리한 프로그램을 적시에 공급하면 적어도 교단에 설 수 있는 지식정도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필자 주변의 선생님들 중 컴퓨터에 대해 좀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직 선생님들의 90%이상이 혼자서 공부하여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 또 사회에서도 컴퓨터 전공자보다 비전공자들의 경지가 놀라울 정도로 높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로만 보더라도 일방적인 강의 방법보다는 자기 연수에 몰입할 수 있는 동기가 주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연수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항간에 교육의 역행이니 하여 학생들의 능력이 교사를 능가하는 경우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어왔다. 사실 높은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꽤 있는 편이다. 교과 과정에 포함된 내용은 진작에 다 알고 있는 것 들이어서 교과서 자체를 지루하게 여기며 딴 짓을 하는 아이도 있다. 약간의 프로그램을 미리 마련해 두고 일정 능력 이상되는 학생들은 그 프로그램을 이용한 과제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근처의 몇 개 학교 선생님들로 그룹을 형성하여 돌려 사용하면 서로 정보도 얻고 지식의 도움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가 아닐까 한다. 다만 이러한 자생 조직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겠다. 약간의 지원만으로도 알고자 하는 지식을 얻는 기쁨에 고무되어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필자가 알고 있는 충북 지역 선생님들의 그룹은 대단히 활성화된 모임으로 얼마 전 청주 시내건물을 빌려서 소프트웨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성황리에 끝난 전시회는 아마 그분들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고 전시회를 열고 다시 교단에 선 그분들의 모습은 긍지에 차 있었다.
 

학교컴퓨터교육은 베이직강의위주로 진행된다.


베이직위주 탈피해야

컴퓨터 관련 교과 내용은 국민학교 실과 4, 5, 6학년 과정에 조금씩 들어있고 중학교 1학년 기술과정에 약 30페이지 정도(진도 1개월분)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1에서는 정보산업 이라는 교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신설되어 있으나 올해는 시행 첫 해이기 때문에 선택한 학교가 극히 드물어 언급하지 않겠다.

현재의 교과서 내용은 컴퓨터를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시행 첫 해이기도 하고 워낙 컴퓨터 분야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단편적인 평가는 곤란하겠으나 충분한 설명이 부족한 베이직 명령어 몇가지로 컴퓨터 교육을 마친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여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새로운 유망분야가 대두되는 현실은 교육의 보수성만을 거론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전수시켜 주어야 하는데 교과서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해마다 여는 각 지역별 PC 경진대회, 전국 경진대회도 어느덧 연륜이 쌓여 10년에 가까워 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시 대회는 베이직 프로그램 작성 대회였다. 이 대회들은 국내 PC 붐을 일으키는데 한 몫을 단단히 했지만 이제 서서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베이직 프로그램만으로 경시대회를 치르다 보니 올바른 컴퓨터의 사용법보다는 베이직 짜는 잔기술만 있으면 대회에 입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제인가 출제위원들이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어렵게 내어야 할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다(그래야 순위가 결정되니까). 외국의 경우 워드프로세서대회, 데이터베이스(DB)대회 등 실용적이며 현실에 적용되는 대회를 주최한다고 한다.
 

지난달 14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전국 PC 경진대회


부각되는 코스웨어 개발

2~3년 사이 갑자기 교육계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말이 코스웨어, CAI(컴퓨터보조학습)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컴퓨터의 저변 확대와 컴퓨터를 이용한 학습이 강조되자 많은 곳에서 CAI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초기에는 대기업측에서 자사 제품의 판촉을 위해 구색 갖추기로 만들어진 CAI프로그램이 주종이었으나 어느 정도 사업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이즈음에는 중소 규모의 학원, 소프트웨어 업체 등도 참여하여 꽤나 질이 우수한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교육 개발원에서도 수 년 전부터 수백 편의 프로그램 개발 계획을 세우고 지금도 편 수를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이 컴퓨터 교육에 일조를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위한 CAI프로그램 개발 작업에 유독 현직 교사들의 참여가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확하게는 교육을 시킬 주역이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교육자는 전문기술적인 직업으로 분류된다. 교육교재를 주역이 없이 조연들끼리 제작해 놓으니 저질이니,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베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수준미달의 CAI가 상당히 많이 있다. 적어도 교육자가 CAI만큼은 직접 제작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지도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내년 초에 저작도구(authoring tool, 학습용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컴퓨터언어)를 제작하여 무료로 전국 교사들에게 배포한다고 한다. 현직 교사들이 직접 제작한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학습현장에서 이용할 날을 기다려 본다.
 

컴퓨터학습프로그램(코스웨어)
 

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광형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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