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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부진과 내수폭발의 희비쌍곡선

90년 PC시장을 뒤돌아본다

로열티부담 탄력성 부족 임금상승 등으로 최악의 수출부진 상태에 있는 국내 PC산업은 교육용 컴퓨터 붐을 타고 한줄기 활로를 찾고 있다.

1990년을 마감하는 PC(퍼스널 컴퓨터)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우리 PC산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일대 전환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배경은 간단하다. 지난 84년 삼성 금성 대우 등 국내 재벌기업들이 일제히 PC산업에 뛰어든 이후 해마다 50%이상의 고성장을 거듭, 업계 전체 매출의 70~80%를 차지하던 수출이 올들어 급제동이 걸린 반면 그동안 명맥만 유지하던 내수 시장은 교육용 컴퓨터붐을 타고 폭발적 신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즉 최악의 수출 부진으로 빈사상태에서 허덕이던 PC업계가 내수 호황을 타고 기사회생, 이제까지의 주력시장이 완전히 자리바꿈하는 형국이 나타났다.

또 올해부터 전국의 초·중·고교에 컴퓨터가 정규 교과목에 포함되면서 PC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보급 역시 1백만대를 돌파했다. 컴퓨터 마인드가 어느 정도 확산돼 컴퓨터문화가 정착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것은 다시 'PC의 가전제품화'를 재촉했으며 이에 따라 기존 업계의 유통망 확대경쟁이 뜨거워졌고 심지어 하드웨어 생산경험이 없는 선경 삼성물산 럭키금성상사 등도 전문 유통업계를 설립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차지하기 위해 본격 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하면 자연 갖가지 잡음이 일게 마련. 연초부터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주한 국민학교용 PC입찰에서 '덤핑''담합'시비가 난무하더니 가을엔 PC 6대 메이저들이 과장 및 허위광고 혐의로 정부로부터 제재조치까지 받아 기업윤리차원에서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더욱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라는 미국의 반도체회사가 느닷없이 컴퓨터 설계에 자사의 특허를 사용했다며 국내업체를 상대로 매출액의 10%라는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요구, 일대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업계뿐 아니라 정부까지도 전전긍긍,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고 있다.

전환기에 처해 있다는 PC업계 관계자들의 말은 곧 시장 성숙기에 진입한 우리 PC산업이 각종 구조적 모순과 부작용을 노정, 새로운 단계로의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다름 아니다.

최악의 수출부진

박필수 상공부장관의 취임후 외국기업과의 첫번째 접촉이 미국 인텔사에 386SX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좀 더 많이 한국에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국의 장관이 외국 기업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PC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상황이 얼마나 다급한 것인지 잘 보여 주는 예라서 지금도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PC수출이 어느 정도의 상황이기에 이다지 법석을 피우는 것일까.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PC수출은 총 9억7천만 달러(본체기준)였다. 87년 수출액이 5억달러 였으니까 불과 2년만에 2배 가까운 엄청난 신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한다면 올해의 수출은 최소한 13~14억 달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정부도 연초 업계의 의견을 수렴, 올 수출 목표를 13억 달러로 세우고 이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상반기까지의 결산을 보면 이 예상이 크게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즉 지난 6월까지 국내업체들이 수출한 총액은 2억6천만 달러에 그쳤다. 이것은 전년동기와 대비해 성장은 커녕 무려 38%가 줄어든 수치이며 당초 목표 대비 50%에 머문 형편 없는 실적이었다. 공식집계가 이루어진 3/4분기까지의 상황도 결과는 비슷하다. 1월~9월까지 총 수출액은 4억9천만 달러.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가 감소한 것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수출목표를 11억 달러로 축소조정하고 나섰지만 이것마저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올해 우리 PC 수출 총액을 8억달러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황이 초래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업계가 안고 있는 수출구조 자체에서 파생되는 구조적 문제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내 PC업체들의 경이적인 성장은 여타 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양산 체제에 따른 저가격 정책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몇몇 재벌기업들이 50만~1백만 대의 연산능력을 갖춘 대형 생산라인을 구축,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을 양산해 세계 시장에 소나기식 수출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첨단기종인 컴퓨터를 컬러TV 수준으로 취급, 시장 변화에 탄력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있으며 기술개발 투자를 등한시, 미국 일본의 한세대 뒤쳐진 기술과 기종을 받아들이는 종속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지난 87년 이후 아시아 최고의 임금상승률을 보인 노동시장의 여파가 겹쳐 근로자들의 임금따먹기식 장사로는 더이상 채산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업계의 주력품목은 16비트 XT기종인데 미국시장만 보더라도 지난해를 기점으로 XT는 가정용 게임기로 전락하고 컴퓨터 소비자라고 한다면 최소한 하이엔드(high end)286 내지는 386 SX기종을 구입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업계로서는 수출감소를 감내할 수 밖에 없으며, 뒤늦게 386SX기종을 주력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상공부장관까지 나섰지만 효과는 별무신통인 것이다. 또 지금도 매출액의 7%를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로열티로 지급해 채산성이 한계에 와 있는데, TI까지 가세해 터무니 없는 로열티를 요구해와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기대했던 동구권 시장도 사회주의권 특유의 경직된 경제구조와 달러부족으로 인해 손에 잡히는 유망시장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이미 나오고 있다. 따라서 PC업계로서는 수출에 관한한 끝이 안보이는 불황의 터널에서 당분간을 허덕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PC보급이 1백만대를 돌파,「컴퓨터대중화시대」에 돌입했다.


올 내수시장 60만대

수출부진으로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PC업계에 숨통을 터준 것은 내수의 폭발적 성장세. 지난해 총 22만대의 PC가 팔렸던 내수시장은 교육용 컴퓨터붐을 타고 급성장, 올해에는 약 60만대가 넘게 판매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9월까지의 공식집계도 XT가 26만대, AT가 6만대, 386 1만4천대 등 35만대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연중 매출의 30~40%가 연말에 집중되는 관례를 보면 60만대는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내수팽창이 향후 2~3년간은 지속돼 내년에는 1백만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 규모는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한 최대이며 세계적으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엄청난 시장이다.

내수 폭발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학교 컴퓨터 교육. 정부가 다가오는 정보화 시대를 대비해 컴퓨터문맹퇴치를 목표로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학교 정규교육이 올해부터 시작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PC구입은 하나의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다. 학교에서 배우는 XT기종이 올해 45만대 정도 팔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PC생산라인


「2강4약」의 판도

이런 내수 시장세는 그간 어느정도의 균형을 유지해오던 업계의 매출순위 즉, 시장판도에도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절대규모가 워낙 작았던 탓에 삼성전자 금성사 대우전자 대우통신 삼보컴퓨터 현대전자 등 소위 PC 6대 메이저들의 시장 점유율은 13~17%로 엇비슷해 군웅할거의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학교 납품업체로 선정된 삼성전자와 대우전자가 '진짜(?) 교육용'이라는 점을 내세워 대대적인 광고전을 전개, 각각 시장 점유율 25%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해 단연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두 업체가 뚜렷한 강자로 부상, 메이저간에는 '6강'구도에서 '2강4약'의 판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들의 시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은 곳은 중소업체들이 중심이 된 청계천 용산의 집단상가. 집단상가 업체들은 전반적인 호황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가장 큰 홍역을 치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들은 내수 폭발에 편승, 용산상가의 경우 매장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3배나 늘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였으나 영업실적은 극히 부진했다. 물론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30%에서 올해엔 절반 수준인 15%정도로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 9월까지 총5만대 정도만을 팔았다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은 감소하는데 매장은 늘어났다면 당연히 도산업체가 생겨나는 법. 이를 실증이라도 하듯 립텍 MIS 에이스 등 꽤나 견실했던 중견기업들이 잇따라 부도를 냈으며 대부분의 영세업체들이 심한 자금난을 호소, 연쇄부도의 위기까지 보이고 있다. 집단상가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부문은 국산기종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우세를 가진 대만산 386 시장뿐이지만 이것도 조만간 국내 메이저들에게 잠식당할 가능성이 커 전문소프트웨어 하우스나 메이저의 협력업체 등으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살아 남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문 유통업체 등장

PC가 잘 팔리고 그것도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면 당연히 유통문제가 중요시 된다.

기존 메이저들은 저마다 '컴퓨터밸리' 혹은 '컴퓨터 플라자'라는 이름의 전문 유통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경우 연말까지 전국에 60여개소의 매장을 확보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앞으로의 PC판매는 가전화 추세에 따라 유통망 싸움이 관건이 된다는 것을 업계 스스로 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 비컴퓨터 재벌기업들의 PC유통산업 참여다. 올해 4월 선경그룹이 선경유통을 설립,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을 신호로 7월엔 삼성물산이 삼테크라는 유통업체를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질세라 럭키금성상사도 마니유통을 세우고 본격 영업에 나섰다. 또한 포항제철 코오롱을 비롯, 4~5개의 재벌기업들도 유통업에 신규 참여할 것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내년에는 기존 유통망을 갖고 있는 PC메이저와 이들 전문 유통기업들간에 역할분담을 둘러싸고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 수도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이들 전문 유통업체의 성과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일단은 기대에 못미친다고 할 수 있다. 자본금 14억원에 7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선경유통, 3억원의 자본과 60명이 일하고 있는 삼테크, 1억원 자본금과 30명이 매달리고 있는 마니유통은 모두 중산층을 겨냥, 서울 강남지역에 매장을 개설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이미 PC보급이 포화상태이며 대체수요가 고작이어서 이들 업체들은 상당히 당혹해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감안, 매장을 전국 대도시로 확장하는 한편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토틀 솔루션(total solution) 제공 혹은 원스톱(one stop) 쇼핑 체제를 구축, 승부를 건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당분간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막강한 자금력과 종합상사에서 쌓은 영업 노하우를 집중 투입한다면 2~3년내에 PC산업의 새로운 분야로 확고히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어차피 앞으로의 PC시장은 하드웨어 생산과 유통이 분리된 소위 선진국형 구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이와 맞물린 성장도 기대된다.
 

비(非)컴퓨터 재벌 선경이 설립한 선경유통의 강남매장


기로에 선 PC산업

아무튼 최악의 수출 부진으로 인해 비록 내수가 보전을 해준다 하더라도 PC업계의 올 영업수지는 대부분이 적자를 기록하는 첫해가 될 지도 모른다. 열쇠는 기술개발투자에 의한 신제품을 적기에 선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수출은 고사하고 내수까지도 교육용 컴퓨터 붐이 수그러드는 92년쯤에 가서는 비록 외형적으로는 유통업의 정착, 성숙시장 진입 등이 가능하더라도 정작 물건을 팔기에는 힘겨운 상황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은 PC업계뿐 아니라 PC산업 전체가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재상승 기류를 타느냐 하는 기로에 섰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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