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개발강조로 제철 만난 첨단학과들. 그러나 지망생들은 장미빛 미래보다는 모험과 끊임없는 재교육을 각오해야 한다.
대학입시의 열풍이 몰아치는 12월. 이미 올해의 수험생들은 선(先)지원으로 자신의 지망대학과 학과를 결정했지만 입시창구 앞에서의 '적성이냐, 간판이냐'의 갈등은 올해도 어김없이 치른 홍역이었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는 '당장 붙고 보자'는 식의 지원풍토가 횡행하지만 대학진학이 장래의 사회진출까지 결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결국 최선의 판단은 적성과 포부 그리고 특정학과를 졸업했을 때의 전망을 적절히 고려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
특히 대학의 이공계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경우 전공학문이 기술산업분야에서 어느 정도로 쓰이느냐에 따라 졸업이후의 진로폭이 결정되므로 그 학문의 장래와 수요전망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공계학과들 중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곳은 이른바 첨단기술과 관련된 학과.
이과학생들의 진학반 담임교사를 맡고있는 김종윤씨(인헌고·화학)는 "반 학생 54명 중 3분의 1정도의 숫자가 전자공학과나 그에 근접한 첨단학과에 진학하려 한다"고 밝힌다. 또 유명대학에 가기 위해 학과를 바꾸기보다는 장래성있는 학과를 선택해 학교를 낮추는 소신지원이 두드러진다는 것도 특징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전자 정보 계열의 첨단학과는 학교를 불문하고 상대적으로 고득점자들이 몰리는 추세다.
첨단학과는 기업요구의 산물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의 첨단학과 신설·증원은 기본적으로 산업계의 기술인력수급책에 크게 좌우된다. 한 예로 전기공학과 전자공학의 분리도 70년대 국내전자산업규모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전자부문의 전문기술인력이 양성되어야한다는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한편 신설과(科)라 할지라도 이름이 낯선만큼 기존의 과와 전혀 다른 새 지식을 배우는 것이기보다는 기존 학과의 전공 중 한 부분을 특화, 내용을 깊게하면서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학과명칭은 생소하지만 최근들어 대학 진학생들의 주목을 끌고있는 학과들을 살펴보자.
■제어계측공학과
첨단학과 중 비교적 일찍 전기전자공학과로부터 분리, 독립한 과. 오늘날 메카트로닉스의 핵심 기술인 제어이론은 원래 전기 전자 뿐 아니라 기계 항공서도 많이 연구되는 분야다. 조종하는 대상을 원하는 대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의 현재상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측해내야 하므로 제어와 계측은 분리될 수 없다. 전자공학의 발달과 컴퓨터의 등장은 제어계측 분야에도 '자동화'의 바람을 몰고와 이제 모태인 기초공학보다 더 방대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흔히 제어계측학과를 '로봇 만드는 과'로 이해하는데 이는 자동화를 담당하는 도구가 산업로봇 등이어서 생겨난 말이다. 실제로 교과과정 내에서 로봇을 설계 제작 운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학과의 내용은 전기 전자 기계 전산공학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학과로는 자동화공학과를 꼽을 수 있으며, NC 공작기계등을 만드는 정밀기계과도 관련이 깊은 학과다.
■반도체공학과
반도체 소자의 개발 제조 응용 등을 다룬다. 즉 소자를 설계하고 그것을 칩(chip)속에 집적시키는 공정에서 완성된 소자의 시험 측정까지를 배운다.
16메가D램, 2백56메가D램 등 설계의 고도화로 집적도가 높아지면 반도체를 핵심부품으로 하는 모든 전기 전자제품의 소형화 고성능화가 실현된다. 원래 전자공학의 한 분야였으나 최근 몇 개 대학에서 분리, 신설했다.
■고분자공학과
화학공정을 통해 물질을 합성하거나 원료를 정제하여 알맞는 제품으로 만드는 화학공학의 한 분야로 분자량이 1만 이상 되는 물질을 대상으로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고분자물질로는 고무 플라스틱 석유 등이 있다.
앞으로 정밀화학, 저에너지 소비형 공업, 반도체 소재의 처리 기술에 두루 응용될 전망이며 자동차 항공기에 쓰이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고분자공학이 낳은 대표적인 신소재다.
■전자재료학과
반도체학과가 설계고도화를 통해 기존의 반도체보다 높은 집적도를 추구하는데 비해 이 학과에서는 반도체를 포함, 전기·전자제품에 쓰일 신소재를 개발해 기능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자재료학의 중요한 연구 산물은 갈륨비소반도체.
갈륨비소 반도체는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연산속도가 빠르고 집적도가 높다는 등의 장점을 지녀 광통신등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학문인 물리학 화학 등을 체계적으로 익혀야 하며 전자공학보다는 재료공학에 근접해 있다.
■정보공학과
정보를 어떻게 처리 보관 운반할 것인가를 공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컴퓨터를 기본도구로 사용, 정보가 잘 유통될 수 있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모두 다룬다. 통신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므로 교과과정에 반영되고 있다. 현재로선 전자계산기학과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지망학생에게는 수학적인 적성이 요구되며 교과내용 속에는 오퍼레이팅 시스템(operating system) 데이터베이스 등이 포함된 한편 하드웨어 분야로 전자계산기 구성, 논리회로 등이 있다.
오늘날엔 LAN(근거리 통신망) VAN(부가가치 통신망) ISDN(종합정보 통신망)등 첨단의 미디어와 컴퓨터 통신망을 연결해 정보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산업이 고부가가치업종으로 꼽히고 있어 기업투자와 기술개발의 전망이 밝다.
인접학과로는 정보통신공학과와 정보처리(관리)학과를 들 수 있다.
■분자생물학과
생명현상을 분자수준에서 해명해 나가는 학과. 모든 생명현상이 궁극적으로는 분자단위의 물리·화학적반응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동식물 미생물 등에 포괄적으로 적용된다.
산업측면에서 분자생물학은 공학기술과 결합해 신물질 신품종 개발에 기여하며, 의·약학 농수산업 식품업 분야 뿐아니라 환경정화, 에너지산업에까지 그 성과가 파급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교과과정에는 생화학 생물물리학 분자유전학 등 생명과학의 기초원리 뿐 아니라 생물공정등의 응용분야까지 포함돼 있다.
유사학과로는 유전공학과 유전자과학과 생명과학과 등이 있으며 미생물의 공업적 이용에 보다 초점을 맞춘 발효공학과도 관계가 깊다.
■물리광학과
빛의 물리적 특성과 성질을 연구해 이를 산업에 연결시키는 광(光)공학은 오늘날 광통신 레이저기기의 보급확대 등으로 크게 주목받는 분야다.
물리광학과에서는 물리학을 기본으로 전자공학 전산학 등을 익혀 광학과 광공학 지식을 쌓는다.
사회진출분야로는 렌즈제작이나 광학기기 제작 등 고전적인 분야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정보통신산업의 핵심적인 기술이 될 광통신, 레이저 응용산업, 광(光)제어계측 분야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
■산업공학과
흔히 산업공학을 '공학계의 경영학'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컴퓨터와 로봇을 이용한 오늘날의 자동생산체제는 산업공학에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CIM(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 시스템의 응용. 제품설계부터 생산까지의 전 공정을 자동화한 이 시스템의 운용계획을 짜는 것은 산업공학의 몫이다. 따라서 생산과정의 자동화를 추구하는 많은 기업에서는 CAD(Computer Aided Design)/CAM(Computer Aided Manufacturing)분야의 지식을 가진 산업공학도의 진출을 요구하고 있다.
2001년까지 수요증가 16%예상
첨단학과 졸업생들의 사회적 수요를 전망해보려면 우선 정부의 첨단기술육성방안과 과학기술인력 수급정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89년 정부는 2000년대를 겨냥해 10대 첨단과학기술 육성방안을 마련했다(표1). 이는 날로 심화되는 기술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 아닐 수 없다.
10대 과제 중 정부가 선진국과 비교적 격차를 쉽게 줄일 수 있다고 보는 부문은 정보통신 정밀과학 기계 전자분야다. 90년만 해도 추경예산 3백억원을 투입해 지원하는 특정 연구분야 중 이들 4개분야 관련기술지원금액이 절반 수준인 1백50억원 규모에 이른다.
첨단기술인력수요에 가장 민감한 곳은 뭐니뭐니해도 기업체. 89년 과기처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조사한 삼성 등 국내 12개 그룹과 기업의 2001년까지의 첨단기술인력 채용계획을 보면 전체적으로 연평균 16%씩의 수요증가가 예상된다(표2). 이중 절대숫자로 가장 많은 인력증가가 예상되는 곳은 전자산업분야인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기술과 자동화분야인 메카트로닉스 기술이고 신소재와 우주·항공 분야도 비약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그러나 첨단학과를 선택한다고 반드시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이란 말 그대로 기술발전의 최전선이므로 그만큼 모험성이 강하고 부침(浮沈)도 심하기 때문이다.
유연성 있어야
K대 유전공학과 2기생인 J모군은 졸업을 앞둔 요즘 대학원 진학 이외에 달리 사회진출의 길이 없는 동료들과 답답한 마음을 서로 위로하고 있다. 입학당시만 해도 졸업만 하면 당장 기업에고, 연구소고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라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유전공학의 경우 첨단학문이긴 하나 그 연구성과가 단기간에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의욕적으로 투자에 참여했던 기업들이 곧 손을 떼고 만 것이다.
J군의 예는 부침이 심한 첨단기술의 한 보기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처의 인력계획담당관인 구본제 과장은 "첨단기술경쟁에선 하루가 다르게 우열이 바뀌므로 현재 계획이 변함없이 추진되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미래지향의 과학기술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유연성(flexibility)'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부과정에서는 수학 물리학 및 공학의 기초분야를 철저히 탐구하는 포괄적인 강의를 주로 하고 현장에서 쓰일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은 대학원이나 기업재교육을 통해 얻어야한다는 의견이 높다. 또 기업이 당장 써먹을 학과만 요구할 게 아니라 오히려 유기적인 산학(産學)협동으로 교과과정을 조정해 나가는게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편 이름은 다르게 붙여놓지만 학습 내용은 기존의 모(母)학과나 타대학의 유사학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설 첨단 학과도 적지않다. 자동화공학과와 제어계측공학과, 전자계산기학과와 컴퓨터공학과, 유전공학 유전자과학 생명과학과 등 등. 대학원 이상의 과정에선 엄밀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학부강의는 거의 공통적인 학과들이 이름을 달리해 수험생들을 적잖이 혼란시킨다.
내용 변화도 없이 이름만으로 수험생을 끌어모으려 한다는 비판이나 지나친 세분화로 시야가 좁은 공학도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런 현실에 기인한 것이다.
결국 첨단학과의 선택은 단순히 취업전망이 좋다는 이유만으론 부족하며 자신의 적성과 의지가 결합돼야 한다. 또 입학 이후에도 기초 이공(理工)학문의 연마를 철저히 해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전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길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