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칩 바이오센서가 제세상을 만나고 유전병의 치료와 로봇에도 활용될 것이다.
'얼룩송아지 엄마 닮았다'는 동요에는 상당히 심오한 과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유전현상을 가장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사람이 사람을 낳고 개가 개를 낳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 보편타당한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백여년 전이다. 즉 완두콩의 모양과 색깔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현상을 분석한 멘델이 1866년 생물체는 부모의 특징을 다음 자손으로 유전하는 데 관계하는 '유전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한 뒤부터다. 지금은 이 유전요소의 실체가 밝혀져 유전자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구조와 기능이 규명됐다.
생물학의 성격을 변모시키고
우리 주위에는 모습과 기능이 다른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의 종(種)수는 대략 1백50만종(사람도 1종에 속함)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종이 서로 다른 모습과 기능을 갖게 된 것은 각기 다른 유전자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에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 중에는 누에의 모습을 나타내는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도 있지만 명주실을 만드는 기능을 지닌 유전자도 있다. 때문에 누에의 모습과 기능을 다음 세대로 계속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에 왓슨(Watson)과 크릭(Crick)이 유전자의 구성물질인 DNA고분자의 구조를 밝힌 이래 분자유전학의 지식은 급속도로 발전, 유전자의 기능을 더욱 광범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옛날에 경험한 일을 순식간에 기억해낸다, 생물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간다, 갓 태어난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빨아먹는다-이 모든 현상들은 생물체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생명현상이다. 이같은 생명현상에는 각기 관련된 유전자들이 있다. 즉 기억하는데 관련된 유전자가 따로 있고, 성장하고 늙어가는데 관련된 유전자가 따로 존재한다.
생물체가 가진 유전자의 종류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명주실을 만드는 유전자, 쌀 보리 등 곡물을 생산하는 유전자, 항생물질을 만드는 유전자 등 이로운 유전자들이 있는가 하면, 간염 뇌염 소아마비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 암이나 AIDS를 일으키는 유전자 등 해로운 유전자들도 수없이 많다. 유전공학에 사용되는 재료는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생물체에서 쉽게 발견되는 유전자들이다.
1970년대 초기에 발견된 DNA제한 효소와 DNA리가제(ligase)효소는 각 생명현상에 관련된 유전자를 순수 분리하고 재조합할 수 있는 유전자재조합기술의 탄생을 가져왔다. 또 1970년대 후반기에 개발된 DNA 염기서열분석법과 1980년대 초기에 확립된 DNA합성방법은 관심있는 유전자를 순수 분리, 그 미세구조를 분석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유전자를 임의로 합성하거나 개조해 복잡한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작용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게 했다. 나아가서 우리 인류에게 유용한 산물을 대량생산해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생물과학에 도입함으로써 복잡한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더욱 간편하고 다양하게 분석,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데 활용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유전공학의 대표적인 무기인 유전자재조합기술을 비롯해 여러 기술들이 종래의 서술적이고 기술적인 생물학을 변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실험을 토대로 한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연구로 방향전환함으로써 복잡하고 심오한 생명현상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한 생명공학 연구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밝히고자 하는 기초연구와 생물이 갖는 다양한 기능을 인류복지에 직접 이용하는 데 목적을 둔 응용연구로 크게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점차 대상을 고등생물로 옮겨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전공학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발전된 유전자재조합기술을 주로 기초연구에 적용시켜 왔다. 특히 대장균에 기생하는 φx174와 φλ가 가진 모든 유전자의 유전정보를 판독하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이들 생물이 가진 다양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아울러 이들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가 전개되는 방식과 이를 조절하는 요소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최근에는 사람을 비롯한 고등생물에 암이나 AIDS를 일으키는 유전자들이 발견되었고 그 산물인 단백질의 본체가 규명되고 있다.
유전자재조합기술의 개발 이전에는 완전히 불가능했던 연구가 이제는 거의 모든 유전자를 연구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폭이 넓어졌다. 따라서 앞으로 생명의 베일이 더욱 빠른 속도로 벗겨질 전망이다.
응용면에서도 유전자재조합기술의 활약은 크게 돋보인다. 예를 들면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 난장이 치료와 화상 및 골절치료에 이용되는 성장호르몬, 신경 치료에 이용되는 신경성장제(nerve growth factor)등 수많은 생리 및 면역활성물질들이 유전자재조합기술 덕택으로 시판되고 있다.
이 밖에도 간염을 비롯한 각종 질환의 백신, 암치료를 위한 인터페론 등이 대량생산돼 값싸게 공급되고 있다.
농업분야에서도 유전자재조합기술은 발군의 활약을 하고 있다. 이미 제초제에 잘 견디는 내성작물, 해충에 대한 저항성을 가진 채소 등 새로운 식물이 등장했다. 또 관심있는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고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퇴치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유용한 합성생물을 탄생시켰다.
지금까지 유전자재조합기술(혹은 DNA 조작기술)의 성공은 유전정보의 양(genome size)이 적은 미생물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지만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아직 고등생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렇다할 성과를 나타내지 않고 있으나 그 잠재력은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생명체가 나타내는 생명현상에는 그와 관련된 유전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분자유전학자들은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유전자재조합기술은 복잡한 생명현상과 관련된 유전자를 순수분리할 수 있게 한다. 또 유전자합성법을 비롯한 제반기술은 이들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분석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 준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생물 종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2000년대의 생명과학은 인간이 가진 가장 진화된 생명현상들과 거대한 유전정보의 신비를 풀기 위해 사람 자신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전개될 것이다. 나아가서 이들 연구결과를 인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려고 애쓸 것이다. 예컨대 유전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치료, 바이오칩(biochip)과 바이오센서(biosensor) 그리고 로봇(robot) 등에 적용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기억과 노화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먼저 가장 진화된 생명현상인 기억현상과 로보틱스(robotics)에 어떻게 접근해 갈지 알아보자.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머리속에 있는 대뇌가 담당한다. 대뇌의 대단한 기억력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어떻게 옛일을 순식간에 생각해낼 수 있을까.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질문은 고도로 발달된 현재의 분자생물학 지식으로도 답변할 수 없다. 만약 기억현상에 참여하고 있는 유전자들이 있다면 그 산물인 기억단백질이 어떻게 오랜 기간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또 기억과 직접 연결된 생명현상인 인간의 본능, 의식과 행동(판단에 따른 행동의 자제)등의 조절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처럼 많은 의문들이 아직 미궁에 빠져 있다. 최근 이런 복잡한 생명현상들을 규명하는 신경생물학(neurobiology)이 분자생물학의 한 유망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전자공학과 제어공학의 총아, 즉 자동제어장치인 로봇이 이미 세계곳곳에 출현하고 있다. 앞으로 로봇은 산업발전의 절대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알다시피 사람의 능력중 기억력과 자제력은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로봇이나 컴퓨터보다 훨씬 앞서 있다. 만일 사람의 기억현상과 자제능력에 대한 신비의 고리를 풀어내 그것을 로보틱스에 응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인간이 적응하기 어려운 극한환경, 예를 들면 심해 농장, 달의 개발, 우주 무인공장 등에서 새로운 '서부개척자'로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복잡한 생명현상은 기억 외에도 많다. 노화현상(aging)도 그중 하나다. 활력에 차고 적극적이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점점 힘이 없어지고 소극적으로 변한다. 이와 같은 노화현상에도 그와 직접 관계되는 유전자들이 있다. 따라서 그 유전자들을 찾아서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면 노화를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암이 생기는 이유와 그 치료 및 예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생명의 맨하탄프로젝트라고 일컫는 거대한 작업이 몇년 전에 착수됐다. 인간의 전체 유전정보를 판독한다는 목표아래 게놈프로젝트가 세계공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모습과 신비하고 복잡한 생명현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만개 이상의 유전자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기능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물질까지 포함시키면 더 많은 유전자들이 간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생명과학의 최종 목적은 생명체인 인간자신의 본질을 알고, 나아가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인간 생명의 본질을 규명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몇년 전까지는 인간이 가진 고귀한 생명현상을 하나씩 연구하는 방법을 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이 가진 유전정보(유전물질) 모두를 판독하자는 연구계획이 세워졌다. 바로 게놈프로젝트다. 이 계획은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공동참여하는 국제적 협동과제로 제안됐다. 우리나라도 이 연구계획에 본격적으로 참가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이 가진 유전물질의 유전정보가 엄청나게 방대하므로 이 연구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사람의 유전정보가 모두 밝혀지면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병도 쉽게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최고로 진화된 생명현상들이 규명돼 생명체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사람의 유전정보 판독 외에 쌀 콩 옥수수의 유전정보도 같은 방법으로 게놈프로젝트(genome projects)를 진행시키고 있다.
따라서 2000년대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유용식물과 유용동물의 총유전정보 판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쥐 초파리 효모 콩 벼 옥수수 등은 그 우선연구대상이다. 이같은 연구를 통해 사람의 질병치료 및 예방, 작물의 대량생산, 유용단백질 및 대체생물에너지 등의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다.
연탄가스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바이오센서와 바이오칩의 개발과 응용도 2000년대에는 보다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생명체에서 관찰되는 모든 생명현상은 유전자산물인 효소라는 생물촉매제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 생명현상을 복잡한 효소화학반응의 총체라고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바이오센서는 바로 이 효소반응을 이용하는 일종의 측정기기다. 바이오센서의 장점은 현재 널리 사용되는 화학반응(화학센서)과 전기반응(전기센서)을 이용하는 감지기(sensor)보다 훨씬 높은 정밀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매우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유리하다.
2000년대에는 복잡한 전기회로를 이용한 반도체의 마이크로칩(microchip)이 뒷전으로 밀리게 돼 있다. 그보다 훨씬 간단하고 정밀한 바이오칩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체 자체 또는 정제된 효소를 이용해, 다시말해 생물학적 반응을 통해 간편하게 더욱 정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바이오칩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겨울이 되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많은 인명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렇게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주범은 연탄가스 속에 포함돼 있는 일산화탄소다.
바이오센서는 이런 불행한 사고를 미연에 예방해준다. 일산화탄소에 감수성이 대단히 민감한 식물이나 미생물을 이용, 극소량의 일산화탄소까지도 미리 감지해내기 때문이다. 또 바이오칩은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색깔이나 숫자로 순식간에 나타낼 뿐 아니라 경보를 울림으로써 우리에게 위험이 닥쳤음을 알려준다.
주위환경에 오염된 중금속의 함량도 중금속에만 민감하게 작동하는 유전자산물을 이용해 산출해낸다. 이때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으로 존재하면 색이나 숫자로 그 농도를 나타내준다. 이런 '중금속 잡는' 바이오센서도 멀지않아 개발될 것이다.
우리의 혈액속에 있는 당분의 양이나 스테로이드의 양 등을 효소반응을 활용, 상온에서 간단하게 측정해주는 바이오센서도 있다. 이 센서는 이미 선진국에서 실용화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의 바이오칩을 사용, 사람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체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혈압 체온 면역세포 이상유무, 당뇨병 간염 암 AIDS 같은 병의 진단이 바이오칩 하나로 해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때쯤에는 의사들도 별로 할 일이 없어 심심해할 것이다.
무궁화의 변신
벼를 비롯한 농작물의 품종개량도 2000년대에는 유전공학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돌연변이나 잡종교배 등의 방법으로 작물의 품종개량을 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전자재조합기술로 완전히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지금까지 유전공학기술은 농업분야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식물의 분자생물학 연구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짧은 기간동안 많은 연구가 진척돼 2000년대에는 엄청난 식량증산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면 벼해충에 강한 내성을 가진 벼가 소개될 것이다. 또 수술이 없는 벼가 개발돼 벼의 대량생산에 가능해질 것이다.
벼의 유정정보의 판독은 광합성의 효과를 높이고, 질소비료의 필요성을 줄여주므로 품종개량의 신기원을 열어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해충저항성 무 배추들이 개발돼 무공해채소가 우리의 식탁에 올려지게 될 것이다. 나라꽃인 무궁화를 개량, 진드기에 저항성이 있고, 다양한 색깔을 갖고, 향기를 내고,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새 무궁화의 출현도 가능할 것이다.
2000년대에는 우리 생명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복잡한 생명현상(노화 기억현상 등)과 생명체의 본질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우리 인류의 안녕을 위해 생명과학의 지식이 최대로 이용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