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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 시대가 열린다

첨단산업의 필수 병기 SSC 참여 PLS 건설

기초과학의 상징물로만 여겨졌던 가속기가 이제는 첨단산업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 초전도 거대 가속기(SSC) 프로젝트의 참여가 확정되고 포항방사광 가속기(PLS)가 건설되면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가속기 시대'가 펼쳐진다.

우리나라도 가속기시대가 열린다. 포항공대에 방사광가속기(PLS, Pohang Light Source)가 94년말 완공예정으로 건설중이며, 세계 최대의 초전도 거대가속기(SSC,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건설에 우리나라가 참여한다.

'물질의 근원을 밝히고 우주생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요약되는 가속기는 기초과학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첨단'이라는 현대사회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용어 조차도 가속기 앞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첨단'하면 0순위였지만 기초과학은 항상 천대를 받았다. 가속기는 가시적인 첨단프로젝트에 밀려 항상 뒷전에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국내 과학계는 기초과학의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쉽게 벗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먼 장래를 내다보지 못한 단견일 뿐이다. 가속기 자체는 꿈을 먹는 이론의 도구일지라도 이를 건설하는데 이용되는 여러가지 기술은 곧바로 첨단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더군다나 방사광가속기 계열은 1차목적이 '산업에의 응용'이다. 우리가 SSC 프로젝트에 적은 규모나마 참여하게 되고 PLS가 완성되면 '기초과학 불모지대'라는 불명예를 벗게될뿐아니라 실질적인 산업발달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속기 시대를 여는 양축

초전도거대가속기(SSC)는 둘레가 85㎞나 되며 건설예산만 80억달러에 이른다. 초전도 자석만 1만개가 쓰이는 SSC의 에너지규모는 20TeV(1TeV는 1조eV). 금세기말에 완성될 이 가속기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3대 거대과학(big science)프로젝트중의 하나다. 나머지 두개는 30억달러가 소요되는 유전자 연구계획인 게놈(genome)프로젝트와 2백30억달러짜리 우주정거장(space station) 건설계획.

올 6월에 미국 에너지부의 무어 차관은 관련전문가 16명과 함께 내한하면서 SSC 프로젝트에 우리측이 공동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노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에 우리측은 신속하게 응답, 정근모 전(前)과기처 장관이 미국을 방문할때(8월) 'SSC프로젝트 참여원칙'을 약속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현재 우리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이 계획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내 물리학자 10여명으로 구성된 아원자과학위원회(subatomic science committee)에서 연구중이다. 무어 차관은 한국 방문시 일본에 들러 같은 내용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현재까지 일본측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원자과학위원회 위원장인 서울대 물리학과 김제완 교수는 "참여폭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현재 가속기와 관련된 연구인력과 국내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있는 중이다"고 말하면서 "현재로서는 연인원 40여명(박사급)이 개념설계 및 실험, 부품설계 등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며, 돈으로 따져서는 10년동안 5천만달러 정도를 적정한 참여폭으로 생각한다"고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였다.

SSC프로젝트 참여의 기본 목적은 가속기 건설 후 우리나라의 입자물리학자들이 세계의 과학자들과 동등하게 실험에 참여, 우리의 기초과학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에 공동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엄청나다. 예를 들어 초전도자석기술이나 초진공기술을 배워온다면 국내 산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 최대 가속기건설에 참여함과 더불어, 현재 건설이 한창 추진중인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PLS)도 이미 개념설계를 마쳤고 곧 상세설계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88년 4월부터 시작된 PLS건설은 지난해 말 국무총리 주재의 '산업정책심의위원회'에서 총예산 1천3백39억원 중 6백억원을 정부예산서 지원하기로 확정하고, 올 예산부터 반영하고 있다(90년 50억원, 91년 1백억원). 단일 규모 프로젝트로는 최대인 6백억원 배정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측도 적지 않으나, 기초과학 프로젝트의 대명사인 가속기 건설에 정부의 참여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정부 참여로 방사광가속기 건설은 명실상부한 국가사업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관계 학계 산업계 전문가 15명을 위원으로 하는 가속기개발위원회(위원장 과기처차관)가 구성돼 (90년 4월) 방사광가속기 건설 및 이용과 관련한 제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기존의 입자가속기와 달리 첨단산업에의 활용도가 매우 높아 재료공학 생명공학 반도체산업 의학 초전도체연구에 필수적이다. 현재 건설중인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는 20억전자볼트(2GeV)의 에너지로 전자를 가속시켜주는 제3세대형이다.

양성자 깨뜨려 쿼크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이라는 가사를 가진 것이 있다. 아마도 물리학자들은 이 노래를 "분자를 깨뜨려 원자, 원자를 깨뜨려 원자핵, 원자핵을 깨뜨려 양성자, 양성자를 깨뜨려 쿼크, 쿼크를 깨뜨려…"로 바꿔 부를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을 무한히 잘게 부수면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19세기 이래 이제까지,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근본을 파헤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양파의 껍질이 벗겨지듯이 물질의 구조는 조금씩 신비한 모습을 드러냈다.

핵에서 양성자, 양성자에서 쿼크로 연구가 진전되면서 각 구성분자들끼리 결합하는 힘도 점점 커졌다. 돌멩이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돌멩이보다 단단한 것이 필요하듯이 양성자를 깨뜨려 쿼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가속기(accelerator)뿐이다. 소립자(전자 양성자 등)들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충돌하게 만들면 일상적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자연의 기본질서'(모든 물질은 쿼크와 렙톤으로 구성돼 있음)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자의 양파껍질이 벗겨지면서 물질의 구조가 드러남에 따라 인류는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됐다. 1930년대에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를 이용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반도체 트랜지스터 컴퓨터 등의 전자혁명이 가능했다. 현재 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전화 TV 세탁기 냉장고 등 수백 종류의 전자기기와 그 응용품들은 모두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electron)의 선물'이다.

1950년대 연구의 대상은 전자에서 원자핵으로 옮겨졌다. 핵은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로 구성됐음이 밝혀졌다. 핵 연구는 또다른 선물을 인류에게 안겨줬다. 방사성동위원소 방사선 등은 의료 에너지분야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와 전자를 구성하는 렙톤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인가." SSC건설을 미국의회에 제안하면서, 페르미연구소장인 레온 레더만 박사가 던진 첫마디다. 누구도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다. 다만 전자가 가져다준 풍요, 핵연구의 부산물이 안겨다 준 혜택과 비교할 수 있는 질적 비약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뿐이다.

반데그라프에서 거대가속기까지

1911년 영국의 러더포드는 당시까지만 해도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로 알려진 원자의 구조가, 조그만 핵이 가운데에 존재하며 그 주위에 전자가 분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방사성원소가 붕괴할 때 나오는 수백만eV(1eV는 전자 한개를 1V의 전압으로 가속시킬 때의 에너지)에너지를 질소 원자에 충돌시키면 산소와 수소가 발생하는 등의 핵변환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즉 러더포드는 전하를 가진 입자를 인위적으로 가속하며 충돌시키면 핵내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제시한 것.

1930년대에는 반데그라프에 의해 정전압가속기가 탄생했다. 이는 전자를 비롯한 양성자 중(重)이온 등 모든 입자를 가속할 수 있는 것으로 현재도 대학에서 교육연구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정전압가속기를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반데그라프가속기라 한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입자를 직선으로 가속하는 선형가속기(linear accelerator)가 속속 개발되는데, 가속에너지를 높이려면(수억 eV까지 가능) 가속기의 길이를 수백수천m까지 늘려야 한다. 대표적인 선형가속기로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30GeV(3백억전자볼트) 전자가속기가 있다. 이 선형가속기는 길이가 3.2㎞(2마일)나 돼 별명이 '2마일 가속기'다.

그후 원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증가시키는 사이클로트론(cyclotron) 싱크로트론(synchrotron) 등 원형가속기들이 속속 개발돼 물질의 신비를 해명하는데 한몫을 했다.

일반적으로 가속에너지가 1GeV(10억eV)이상 되는 것을 거대가속기라 부른다. 현재 건설 중인 것을 합해 세계적으로 거대가속기의 수는 1백 여대. 거대가속기들은 입자를 광속에 가깝게 가속시켜 충돌시킴으로써 1천조℃ 이상의 초고온 상태를 만든다. 이는 1백50억년 전 우주의 대폭발 상황을 재현시키려는 노력과 일치한다.

물리학자들은 물질세계에 작용하는 네가지 힘, 중력 전자기력 강력(핵력) 약력이 우주의 대폭발 초기에는 하나의 힘으로 통일돼 있음을 이론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거대가속기에서 나오는 여러 실험 데이터는 이른바 통일장이론의 확립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결국 물질의 신비를 밝히기위해 소립자의 미시세계를 헤매던 입자물리학자들은 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기위해 거시세계를 헤매던 천체물리학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가속기는 극과 극의 세계를 통합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

세계의 유명가속기들

가속기는 가속시키는 입자가 전자인가 아니면 양성자인가에 따라 구별하고, 또한 어떠한 입자를 충돌시키는가에 따라 구별하기도 한다.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대표적인 거대가속기로는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을 들 수 있다. 1983년에 가속빔의 에너지를 1TeV(1조eV)로 증가시켰으며, 86년에는 양성자-반양성자(proton-antiproton) 충돌형 가속기로 개조돼 충돌반응에너지를 2TeV로 증가시켜 운영되고 있다.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는 이를 이용해 여섯종류의 쿼크 중 아직 실체를 확인치 못한 톱쿼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핵연구센터(CERN, Center for European Nuclear Research)에 있는 SPC 양성자-반양성자 충돌형 가속기도 양성자가속기의 대표적인 예다. 이 가속기를 통해 W와 Z입자를 발견함으로써 전자기력과 약력이 같은 힘을 근원으로 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통일장이론의 6분의 1은 실현된 셈이다.

올해 8월에 완성된 거대 '전자-양전자 충돌기'(Large Electron-Positron collider)도 CERN 소속. 머리글자를 따서 LEP라 불리는 이 가속기는 길이만 27㎞로 프랑스와 스위스 접경지역의 지하를 둥글게 돌고 있는 터널을 이루고 있다. 10억달러의 비용이 들었으며 공사기간만 만 7년이 걸렸다. 가속에너지는 20~55GeV. 공사비를 댄 나라는 14개국이다.

전자와 그 반물질인 양전자를 충돌시키면 이들은 사라지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데, 이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무거운 입자로 변한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입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LEP의 임무다.

또한 CERN은 LEP내에 양성자 충돌가속기인 LHC(Large Hadron Collider)를 96년 완공예정으로 건설하고 있다. 가속에너지는 8TeV. 그렇게 되면 '전자-반전자'형과 '양성자-양성자'형이 균형을 이루게 돼 유럽은 입자물리학 실험에서 당분간 미국을 앞지르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실제로 LEP는 구조면에서 SSC가 완성되기까지 10여년 롱런을 보장받은 가속기분야의 챔피언이다. LEP 하나로 유럽은 페르미의 SPC와 스탠퍼드의 전자선형가속기로 버텨왔던 미국의 기초과학에 대한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할 수 있다.

또다른 전자-양전자 충돌가속기로 독일의 PETRA를 들 수 있다. PETRA는 강력한 매개입자인 글루온을 발견한 바 있다.

기초과학보다는 산업적 응용에 탁월한 기지를 발휘하는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쪽보다 모자라기는 하지만 가속기의 불모지대는 아니다. 1986년 쓰쿠바에 완성된 전자-반전자 충돌형인 트리스탄 가속기는 가속에너지가 30GeV로 이 부류로는 수준급. 일본의 고에너지 실험연구그룹도 의외로 선수층이 두꺼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개인자격으로 미국이나 유럽 등의 거대가속기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양성자충돌형 가속기인 SSC에 어떤 형태로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SSC 건설비용 80억달러 중 50억달러는 미국 연방정부가, 10억달러는 텍사스주정부가 대며, 나머지 20억달러는 외국과 협력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외국과의 주협력 대상은 일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내에서 SSC건설에 자금을 대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측은 '전자형'과 보완관계를 가지는 '양성자형'을 확보하려면 유럽(CERN)의 LHC와 미국의 SSC밖에 없는데, 가속기분야에서 이미 협력관계가 굳건한 유럽쪽보다는 미국과 손을 잡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 미국측도 일본에 SSC계획 입안시부터 직간접적인 추파를 던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SSC는 확실히 미국의 계획이며 미국 과학의 우월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정책 중의 하나"라며 "기초과학 투자가 빈약한 나라에서 SSC에 거대자금을 쏟아 붓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신중파들도 다수 있다.

이외에도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G7 국가들은 대부분 거대가속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가속기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1959년에 가속에너지가 1MeV인 사이클로트론을 제작한 것이 처음. 그러나 이 싹은 영양분(보조금)이 계속 공급되지 않아 폐쇄됐다. 이와 같은 시기에 연세대 물리학과에서도 가속기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코크로프트-윌튼' 가속기를 제작했으나 역시 같은 이유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가속기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86년에 완성한 SNU 1.5MeV짜리 반데그라프(정전압가속기). 이 가속기는 저에너지 핵반응연구 등에 활용되고 있으나 국제규모의 실험을 하기는 역부족.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정기형교수는 "국제 규모의 실험을 하자면 최소한 가속에너지가 12MeV이상 돼야 한다"며 "이런 가속기를 건설하는데도 1,2백억원이 든다"고 밝혔다.

외국에서 도입된 의료용으로는 원자력병원의 50MeV 양성자가속용 사이클로트론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18MeV 전자선형가속기, 서울대병원의 12MeV 전자선형가속기 등이 있다. 이외에도 부산대 전남대등에 학생 교육용으로 소형 반데그라프가 설치돼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은 '선진국을 지향하는 산업국가 ''올림픽을 치른 나라'' 1인당 국민소득 5천달러'등의 어떤 조건을 놓고 보더라도 너무나 뒤처지는 것이라고 관련자들은 입을 모은다.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 입자가속기와는 달리 산업적 응용이 1차적 목표인 가속기가 방사광가속기(synchrotron radiation accelerator)다. 입자의 에너지가 점점 커짐에 따라 원형가속기에서 빔(beam)이 휘어질 때 강력한 전자파가 발생하는 것이 발견됐다. 이 전자파는 파장이 짧은 자외선과 X선 영역.

첨단산업의 필수도구

처음에 원형 입자가속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전자파가 물질의 원자배치를 파악하거나 그들의 성질을 알아내는데 훌륭한 자원이라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방사광 이용만을 위한 가속기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더욱 강력한 방사광을 얻기 위해 삽입장치라 불리는 언듈레이터(undulator)나 위글러(wiggler)등이 개발됐다. 삽입장치를 붙인 방사광가속기를 보통 '3세대'라 부르는데, 포항공대의 방사광가속기는 3세대형이다. 가속에너지는 2GeV.

현재 완성된 3세대방사광가속기는 없다. 건설중인 것으로, 프랑스에 위치한 ESRF(European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가 92년 7월에 첫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한국인 조양래박사가 건설책임을 맡고 있는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의 APC(Advanced Photon Source)는 95년 완공 예정이다. ESRF의 에너지 규모는 6GeV이며 APC는 8GeV. 이외에 일본에서도 8GeV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하고 있다.

에너지규모로 따져 2.5GeV가 방사성가속기를 구분하는 하나의 경계가 된다. 2.5GeV이하는 자외선과 연(soft) X선을 방사하고 2.5GeV 이상은 강(hard) X선을 방사한다. 따라서 같은 방사광이라도 2.5GeV이하인 방사광가속기는 원자량이 적은 물질구조를 알아내는데 적합하며 강 X선을 내는 방사광가속기는 원자량이 많은 물질의 구조를 알아내는데 적합하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방사광가속기가 모두 갖춰져 있으면 첨단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중국 이탈리아 소련 등의 나라에서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고 있으며, 대만에서도 92년 완공예정으로 1.3GeV짜리 방사광가속기를 건설중이다.

포항공대 물리학과 박수용교수는 "방사광가속기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는 기본적으로 파장이 짧고 강도가 세며 고밀도의 빛이다. 또한 특정 파장의 빛만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방사광이 이러한 특성을 갖기 때문에 그 이용이 매우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물체를 보는 것은 그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물체의 크기가 원자나 분자와 같이 빛의 파장보다 작은 경우에는 물체를 제대로 관찰할 수 없다. 결국 원자나 분자는 1Å(${10}^{-8}$㎝)에서 1백Å이기 때문에 이들을 관찰하려면 진공자외선이나 X선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파장 영역에서는 지금까지 강력한 광원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소재개발의 기초가 되는 원자 및 분자연구에 어려움이 많았다.

고밀도 고강도의 방사광을 활용하면 △물질의 원자 및 분자단위의 구조분석 △금속의 물성(物性)연구 △화학반응의 정밀분석등이 가능하며, 정밀도도 수백만배 이상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신일본제철, 미국의 US스틸과 엑슨사 등에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강과 파인세라믹스나 비결정질 물질등 신소재 개발에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고 있다. 요컨대 방사광가속기가 재료공학의 혁명을 이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빛이 여러 파장대에서 연속적으로 나오는 성질을 이용하면 고속화학반응의 관찰이 가능하며, 이를 분자생물학에서 활용하면 DNA를 비롯한 여러 단백질구조를 연구하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살아 있는 세포의 미세한 과정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노벨상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버클리대학의 김성호박사도 암과 관련된 라스(ras)단백질의 실체를 밝히는데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했다.

방사광의 특징은 의학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은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심장혈관)의 일부가 좁아지거나 막혀 일어나는 병이다. 방사광을 이용하면 움직이는 심장의 동맥을 볼 수 있다. 현재는 감광물질(요오드)을 환자의 순환기에 주사한 뒤 X선에 쪼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요오드를 다량으로 써야 하므로 인체에 해를 끼친다. 이외에도 방사광은 단층촬영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방사광가속기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반도체의 고집적회로제작이다. 현재 반도체 집적도는 4MD램 16MD램을 거쳐 64MD램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2백56MD램이나 그 다음 단계인 1GD램에 이르면 방사광가속기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다. 방사광은 평행성이 좋아 미세회로를 전사(轉寫)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사광 석판기술(lithography)이라 하는데 미래의 반도체제조(초VLSI)에 필수적이다.
일본에서는 반도체 대국답게 VLSI제조전용으로 작은 규모의 방사광가속기(compact synchrotron)를 20여개나 만들어 산업체에서 이미 활용 중이다. 이를 보통 '코지'(cosy)라 부르는데 삼성전자에서도 이를 들여 올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광물리 광화학 광생물 분야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줄 방사광가속기는 21세기 첨단산업 및 학문연구에 필수품화될 것이다. 미국 해군 수상 연구센터에서 일하다 포항공대에 와 방사광가속기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남궁원박사는 "이론적 연구에 활용되는 입자가속기를 달착륙을 시도한 아폴로프로젝트라 한다면 방사광가속기는 우주개발의 필수도구인 스페이스셔틀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억 전자볼트의 3세대형

현재 개념설계를 마치고 상세설계에 들어가 있는 포항방사광가속기(PLS, Pohang Light Source)는 크게 선형가속기 부스터 싱크로트론(booster synchrotron) 주저장링(storage ring)으로 나뉜다. 선형가속기의 길이만 2백20m, 주저장링의 둘레는 약 2백80m(지름 88m)다. 저장링 둘레에는 36개의 2극전자석, 1백44개의 4극전자석 및 48개의 6극전자석이 있다. 저장링은 초고진공(${10}^{-9}$Torr) 상태로 진공체임버를 만들어 운영한다(그림).

전자발생장치에서 나온 전자는 전자선형가속기에서 가속되고 양전자(positron)선형가속기 앞에서 중금속 시편과 충돌하여 양전자를 발생시킨다. 이 양전자는 부스터싱크로트론이라는 원형가속기에 들어가 1GeV로 가속된다. 가속된 양전자는 주저장링에 저장되는데 여기서는 2GeV로 가속된다. 주저장링에는 양전자가 방사광의 방출로 인해 잃어버린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고주파공진기가 있고 방사광의 강도 및 밀도를 증가시키는 삽입장치(언듈레이터와 위글러)가 부착돼 있다.

양전자 궤도의 휨자석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빔라인(beam line)을 통해 사용자에게 제공된다.

PLS는 애초 5백억~7백억원 예산으로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89년 초에 1.5GeV로 하느냐, 아니면 2.0GeV로 하느냐는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가 있은 후, 가속에너지가 2.0GeV로 결정되면서 예산이 두배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모든 예산을 포항제철에서 대기로 했으나 예산이 증액되면서 정부지원이 확정됐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방사광가속기는 2.5GeV 이하에서 한대, 그 이상에서 한대가 적정규모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능하다면 국내기술을 활용해서 많은 부분을 국산화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 계획은 미국 브룩해븐국립연구소(BNL)의 1.5GeV짜리를 복사하다시피 건설하려 했던 것.

현재 이미 국내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부품만도 여러가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그네틱파워서플라이. "포항공대 권봉한박사가 설계하고 대우 우주항공연구소가 제작한 이 제품은 기존 것보다 성능이 수배이상 높고 에너지도 10% 이상 절감할 수 있다"고 PLS연구소 정연길 과장은 밝혔다. 이외에도 포스콘(POSCON)에서 개발한 전자석, 한국전기연구소에서 제작중인 맥동 마그네트(pulsed magnet) 등도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PLS의 성패는 완성 후 사용자(user)들이 얼마만큼 이를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PLS연구소에서는 건설작업 못지않게 앞으로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할 사용자들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 미국 일본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을 초빙하고, 앞으로 국내에서 가속기를 사용할 학계 산업계 연구소의 인력들을 모아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작업도 벌인다. 여기에는 이론물리학자를 비롯 반도체공학자 재료공학자 의사 생화학자 등이 참여한다. 현재 두차례 워크샵을 개최했고 내년 2월에 3차 워크샵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림) 방사광가속기의 구조와 원리


핑퐁외교가 아니라 가속기외교

PLS 건설작업이 진행되면서 국제기술협력도 활발히 진척되고 있다. 인공위성이나 차세대 전투기사업 등과 관련된 우주항공기술은 국제간 기술 마찰이 매우 심하나 가속기분야는 상대적으로 덜한 셈이다. 원래 이론적인 분야이고 워낙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국제협력을 하지 않으면 건설 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PLS연구소측에서는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중국등과 활발히 기술협력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흩어져 있던 유럽국가들이 CERN을 통해 구라파공동체의 기반을 닦았고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거두고 미국과 활발한 교류를 시작했던 것은 북경에 있는 BEPC가속기건설부터입니다. 그만큼 가속기분야는 국제협력이 원활한 분야입니다."

PLS가속기연구소장 이동녕박사의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미국과 중국의 외교는 '핑퐁외교'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가속기외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조금 바뀌고 있다. 가속기 건설시 부수되는 각종 기술의 활용도가 높아졌고 '산업 전용' 방사광가속기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때 물리학계에는 일본이 SSC프로젝트에 40억달러를 대고 모든 관련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나섰으나 미국측이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한 미국에는 가속기를 매개로 하는 기술교류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기술제국주의'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반증이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의 SSC참여에 신중론을 제기하는 측도 없지 않다. 미국측에서 보면 얼마되지 않는 돈이지만 정부지원 1년연구개발비가 1천5백억원도 안되는 실정에서 최소 몇백억원을 써가면서 무조건 참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적절한 규모, 투자에 대한 소득을 정확히 따져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내에서도 SSC건설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수십억달러의 돈이 SSC에 들어가면 연방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보다 실용적이고 산업에 즉각 이용할 수 있는 연구에 해가 된다는 얘기다. 그들은 "미국의 과학이 점점 고사되는 것은 한꺼번에 수십억 달러가 소모되며 수백명의 연구원이 매달리는 빅사이언스(big science)때문"이라고 말한다. 빅사이언스 때문에 전통적으로 과학발달을 주도해 온 스몰사이언스(small science)가 해를 입었다는 주장. 미국내의 이러한 반론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나라를 참여시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에서 제기될 수 있는 반론. "가속기에 관련된 실적도 없고 능력도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참여불가'가 아닌 '신중한 참여'의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 SSC참여를 무임승차라 생각하고 가속기 입구에 태극기 하나 걸어주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돈과 인력을 댄만큼 철저히 배워와야 한다"는 것이 국내 물리학자들의 대다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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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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