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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과 4지선다형의 해독이 한국의 수학은 물론이고 과학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한국 고등학생의 수학실력이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적어도 수학엘리트들의 실력대결장인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는 뒷걸음질 현상이 두드러진다. 처음 출전했던 제29회 호주대회(88년)에서는 49개국중 22위(동메달 3개)를 차지했으나 30회 서독대회에서는 50개국중 28위(은메달 1개), 31회 북경대회에서는 54개국중 32위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물러섰다.

이에 반해 첫 출전한 북한 학생들은 그런대로 선전을 했다. 북한은 지난 84년 9월 과학영재양성을 위해 평양제일고등중학교를 신설한데 이어 각 시도 별로 비슷한 성격의 특수과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의 수학실력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최근 국제적인 수학학술지에 논문이 빈번하게 실리고 있어 그 저력이 만만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보다 석차가 한등 아래(20위)인 일본은 알다시피 우리와 비슷한 교육체계를 갖고 있어 여러모로 좋은 참고가 된다. 일본이 IMO에 인연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튼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일본팀 단장의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만족스런' 성적을 낸 셈이다.

만점자를 두명이나 내고 참가자 전원이 입상한(금5, 은1) 중국팀은 2위인 소련과의 점수차를 현격히 벌이면서 통산 세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우수한 성적을 올린 배경에는 1천6백여명의 수학영재들이 교육받고 있는 북경수학올림피아드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서는 국민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에 이르는 우수한 수학 두뇌들을 모아 매주 일요일, 두시간씩 특별지도를 하고 있다. 이 곳에 입학하려면 먼저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추천된 학생들끼리 치르는 평균 5대 1의 경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교재는 초·중학생의 경우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과서를 활용하고, 고등학생은 IMO용 특수교재를 사용한다.

중국의 IMO대표가 되기란 실로 '첩첩산중'이다. 우선 매년 10월 전국에서 약 5만명이 참가하는 1차 시험에서 적어도 70~80등 안에 들어야 한다. 이 첫 관문을 통과하면 동계합숙훈련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듬해 시험을 거쳐 20명이 선발된다. 다시 이들에게 1개월간 특수훈련을 시킨 뒤 5월 말 쯤에 대표 6명을 확정짓는 것이다.

이미 12차례나 IMO패권을 쥔 소련을 비롯해 6회 우승한 헝가리, 4회 우승한 루마니아 등 동구권도 전통적인 수학'강호'다. 이들 국가가 좋은 성적을 보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재능있는 학생의 조기발견과 이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에 있다. 마치 국가적 차원에서 스포츠천재를 길러내듯이 수학천재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련은 과학원산하 과학기술대학 부설로 각지에 과학영재학교를 운영, 7~8세의 어린이들을 과학영재로 키우고 있다.

74년 제16회 대회부터 참가하기 시작한 미국도 처음에는 최하위나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1위를 두번 하고 매번 5위 안에 입상하는 등 '예상밖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불과 3년전까지 대부분의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이 IMO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축구는 상세히 알고 있었으나 수학의 '올림픽'에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87년 한국과학재단과 대한수학회가 주축이 된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위원회가 가동 되면서 수학엘리트를 선발하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번에 대표로 선발된 '6인조'도 제3회 한국수학올림피아드(89년 9월 10일)를 거친 학생들이다. 전국에서 총 1천3백45명이 응시했는데 응시자의 평균점은 1백점 만점중 11.44점에 불과했다(최고 69점). 이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같은 해 1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제1차 통신교육을 실시했다.

금년 1월 4일부터 23일까지는 경기과학고에서 겨울 학교가 열렸다. 여기에 참가한 학생은 모두 45명. 전원 기숙사에 입사시켜 집중적으로 IMO를 대비한 교육을 실시했는데 교육비 숙식비 교재비 일체는 대한수학회가 부담했다.

김명환 김성기 김하진 윤옥경 최영한 한상근교수가 겨울학교의 교육을 맡았다. 여기서 주로 활용된 교재는 1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헝가리문제집과 러사아문제집 그리고 미국 캐나다에서 출제된 '현대식' 문제도 제시됐다.

"처음 겨울학교가 열렸을 때는 학생들의 동요가 많았다. 학부모들과 소속학교에서 대학진학에 지장이 있을까 봐 지나치게 걱정한 탓이었다. 그러나 겨울학교의 교육이 객관식 위주의 대입 학력고사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런 기우는 사라졌다"고 한국과학기술원 최영한교수는 들려 준다.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간 2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다시 제2차 통신교육이 이어졌다. 그 사이인 4월 14일, 15일 양일간에 IMO대표선발고사가 치러졌다. 서울대 과기대 부산대에서 겨울학교 수료자 40명을 포함한 총 2백43명의 수학두뇌가 그동안 쌓은 실력을 겨룬 것이다.

●-수학공포증도 문제

지난 59년 루마니아에서 처음 열린 IMO는 세계각국에서 선발된 20세 이하의 수학영재들이 개인의 명예와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수학실력을 겨루는 권위있는 대회다. 따라서 여기서 나타나는 성적은 그 나라의 수학수준을 대강 엿보게 해줄 뿐더러 미래의 과학발전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중요한 척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열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높고 학생들의 실제 학습량도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우리나라가 이 대회에서 3년 내리 저조한 성적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현재 우리 학생들이 받고 있는 수학교육의 문제점과 철저히 맞물려 있다.

'북경쇼크'의 가장 큰 원인으로, 4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푸는 데만 '귀신'이 되게 한 현행의 수학교육을 꼽는 데는 관련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획일적인 주입식교육과 객관식만을 염두에 둔 공부를 하고도 꼴찌를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다.

아주대의 김하진교수(응용수학)는 "이번 대회엔 고도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논증기하와 함수론 등의 문제가 출제됐는데 이런 문제들은 기본개념의 정확한 이해와 치밀한 논리전개에 대한 훈련없이는 손도 댈 수 없다. 그런데 4지선다형의 '얄팍한' 수학교육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최영한교수(해석학)도 "학생들이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수학마저도 암기식으로 하고 있다. 이런 학습풍토에서는 수학교육의 근본목적인 논리적 사고력이나 응용력 추상력 등이 길러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단순한 기계적 대입방식은 응용력과 사고력을 크게 좀먹는다. 지나치게 공식에만 의존하게 돼 한 문제에는 오직 한가지 해결방법 밖에 없다는 고정된 사고방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암기'가 점수를 따는데는 더 유리, 학생들에게 수학도 암기과목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 현행 학력고사 수학시험문제는 문제수가 많고 시간도 제한돼 있어 암기한 공식 몇개를 누가 더 빨리 대입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과체계의 부실도 '북경참패'를 부추겼다. 최교수는 한국의 고등학생이 일반적으로 미국의 고등학생보다 수학실력이 뛰어나지만 대학에 가면 역전되는 현상을 교과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증거로 삼는다. 실제로 미국의 수학교육은 처음에는 철저하게 '흥미본위'다. 쉽고 다양하게 흥미를 돋우면서 기초위주의 '탄탄한'교육을 실시, 창의력과 사고력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학교육내용은 무척 어렵다. 처음부터 수학에 대한 공포만 잔뜩 불어 넣어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선입관에 빠져 있다. 시험 점수 숙제 등이 주는 압박감이 수학을 무조건 골치아픈 것으로 만든 것이다.

최교수는 "심지어는 고교 교사가 풀지 못하는 난해 한 문제가 교과서에 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난도'문제는 수학의 수준향상은 커녕 학생들에게 지나친 부담감만 주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올라길수록 실력이 떨어져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실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국교는 상위권, 중학교는 중상위권, 고교는 하위권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처지고 있다.
실례로 88년 올림피아드 초등수학협회(본부는 뉴욕에 있다)가 주최한 국제산수경시대회에서 우리나라의 두 국민학교 어린이가 만점을 받아 개인 1위를 차지했다. 첫 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성적이 총 64개국 중 10% 안에 들고 응시생의 95%가 상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중학생들도 세계 최고수준의 실력을 보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교육평가 전문기관인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 주관으로 88년에 실시된 수학과학국제학력평가에서 수학 1위, 과학 2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6개국 12개 그룹이 겨룬 이 대회는 중 1, 2학년 학생 2만7천명이 응시했다. 4~7가지 선다형 문제 55항과 단답형 문제 14항이 출제된 수학시험에서 한국의 중학생들이 기록한 평균정답률은 76.1%이다.

한국 중학생들이 '예상외로' 6개국 최고의 수학실력을 보인 데 대한 국내외의 분석결과는 매우 시사하는 바 크다. ETS는 "한국 학생들이 특히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내었다"고 통보해 왔고, 이 평가를 국내에서 주관한 중앙교육평가원은 "주로 객관식 선다형인데다 입시에 대비한 조기교육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고등학생의 '초라한' 수학실력은 대한수학회가 88년 9월에 실시한 제1회 한국수학올림피아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제시된 문제는 IMO 수준으로 난해하긴 했으나 수학이라면 자기 학교에서 내로라하던 응시자의 27%가 0점을 받아 충격을 던졌다. 전국 2백4개교에서 대표로 나온 1천7백96명의 고교생이 받은 평균점수는 1백40점 만점에 8.8점이었다.

그리고 사전준비의 소홀도 패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겨울방학을 이용해 8주가량의 합숙훈련 밖에 하지 못했고 예산도 부족했다.
현재 수학영재의 선발과 교육에 소요되는 예산은 주로 과학 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더욱이 교수진의 자발적인 참여에만 의존하고 있어 교육이 소홀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대회에 충분히 대비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처방은 입시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이 될 것이다.

IMO에 적극 대비하려면 먼저 대표학생들에게 상당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

연세대 수학과 장건수교수(29회 대회 단장)는 "학부모나 학교 그리고 본인들의 입시불안을 씻어주어야 한다. 해결방법으론 선발학생의 진학특혜 병역특혜 장학금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년부터 과기원 학사과정은 이들 대표 6인조에게 입학특전을 주고 있다. 또 문교부는 서울대에 6명을 수학과에 무시험 입학시킬 것을 권장하고 있다.

서울대 수학과 윤옥경교수는 "설사 문교부의 권유가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과를 더 확대시키지 않는 한 현실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학을 잘 하면 이공계의 모든 학과를 잘 할 수 있으므로 서울대 이공계 전학과에 특별입학 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지원도 대폭 늘려야 한다고 IMO관계자는 입을 모은다. 정부차원에서 IMO를 대비한 교육비를 따로 책정, 보다 완벽한 지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대기업이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수학영재는 오스트레일리아 IBM이 키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는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수학교육 대책을 세워 보자.

수학자들은 "객관식 위주의 입시제도를 주관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현행의 입시제도 하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과목이 수학이므로 먼저 수학부터 주관식 출제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관식 본고사와 객관식 예비고사를 치를 때의 일이다. 당시 수학 객관식 문제에서 50점 만점을 받은 사람이 본고사에서는 0점 받은 예가 수두룩했다. 사실상 객관식 수학은 수학이 아닌 것이다"라고 서울과학고의 한 수학교사는 단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수학만이라도 최소한 10~20분 차분히 사고한 뒤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제내용이 기본개념과 논리적 전개과정을 중시하는 문제로 전환되면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이 전적으로 학력고사에 맞춰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손쉽게 수학교육의 줄기를 바로 잡아갈 수 있다"고 최영한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수학에 재능을 가진 영재들이 재능을 썩히지 않게 특성을 살려 교육시키는 방법도 매우 절실하다. 이 일은 현재 전국에 소재한 7개의 과학고교가 많이 떠맡고 있긴 하나 일반고등학교의 수학영재에게는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장건수교수는 "우리는 일률적으로 평준화해 대량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잘 하는 학생의 능력을 키워준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고등학생이라 할지라도 초(超)고교급은 막바로 대학수학을 가르쳐준다."고 들려준다.

또 수학경시대회나 수학캠프가 자주 열려 수학영재들을 계속 자극해주는 일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헝가리는 그 나라가 낳은 위대한 물리학자 에트봐스(Eötvös)를 기리기 위해 1894년부터 에트봐스 경시대회를 개최, 이제 거의 1백년의 역사에 이르고 있다. 현재 헝가리에는 국민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다양한 수학경시대회가 있으며 수시로 수학캠프가 열리고 있다. 이 수학경시대회는 TV에도 중계되고 있으며 전국민의 관심을 한데 모으고 있다.


북경 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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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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