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개의 부품과 각양각색의 첨단기술이 뒤얽힌 종합시스템산업에서는 사용자의 편의성이 무시되기 쉽다. 이를 개선하려는 인간공학의 실체는?
우리는 요즘 광고를 통해 심심치 않게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또는 '휴먼테크, 인간과 기술의 조화…' 등과 같은 문안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또 제품을 선택할 때에도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가, 안락한가, 또는 쓰기에 편한가를 생각하는 소비자가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공학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새로운 승용차를 개발할 때 엔지니어들의 기본적인 관심은 엔진이나 변속장치 또는 유선형의 차체에 있다. 그러나 운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돌에도 안전한가 △내부공간이 넉넉한가 △승차감이 좋은가 △장시간 주행에도 시트가 편한가 △시야가 답답하지 않은가 △계기반은 읽기 쉬운가 △냉난방 장치는 쾌적한가 등이 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여러가지 기술들이 뒤얽힌 제품(또는 흔히 시스템이라고도 하는 것들)을 만들다 보면, 실제 이를 사용할 사용자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개선해 사용자 위주의 설계를 펴나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공학의 기본철학이다.
인간공학(human factors engineering, human engineering 또는 ergonomics)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 기계 작업 또는 환경을 설계하는데 있어, 인간의 행동특성과 능력, 인간의 한계 등을 파악해 보다 안전하며 안락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수 있도록 연구하는 분야이다. 이를 위해 공학자뿐만아니라 심리학 생리학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힘을 합해 연구에 힘쓰고 있다.
직업을 사람에 맟추려는 노력
인간공학은 미국에서는 human(factors) engineering, 유럽에서는 ergonomics라고 불려지고 있다. 라틴어로 ergo는 일(work), nomics는 관리 법칙이라는 nomos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체로 인간공학연구의 역사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산업현장에서 작업효율을 높이고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작업방법이나 동작을 개선한데서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도 사람을 작업에 맞추려는 개념(fitting the people to the task)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때 군인을 뽑고 훈련시키고 배치하는데 심리학이나 행동과학의 연구결과를 응용하게 됐으며, 특히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심리학자와 생리학자들이 인간의 특성과 한계를 연구해 새로운 병기를 보다 쉽고 안전하게 다룰 수 있도록 노력했다. 훈련비용과 기간을 줄이며 적시에 실전에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은 전시에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점차로 작업을 사람에 맞도록 개선하려는 움직임(fitting the task to the people)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축적된 연구결과와 기술은 전후에 여러가지 산업제품의 생산에 응용되기 시작 했다. 1949년에 영국에서 인간공학 연구회(Ergonomics Research Society)가 결성 됐고 1957년에는 미국에서 인간공학회(Human Factors Society)가, 그리고 전문학술지인 어고노믹스(Ergonomics)가 영국에서 출판되기 시작해 근대적 의미의 인간공학연구가 출발됐다. 60년대와 70년대에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달에 인간을 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차원이 높은 인간공학 연구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우주선을 발사할 때 우주비행사들이 모두 누워 있는 이유는 인간이 가속도에 대해 견디는 힘이 발사방향을 고려할 때 누운 자세에서 가장 강하다는 연구에 기초한 것이다(그림 1). 이와 같은 결과를 연장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 놓이게 될 고속전철의 경우에도 의자의 배열을 모두 달리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여행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는 면에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TMI(Three Mile Island) 원자력발전소에서의 방사능 누출사고(1979년)의 원인이 기계적 결함과 함께 인간의 실수로 더욱 확대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TMI사고에 있어서 사고발생 직후 수백개의 경보신호(alarm)가 동시에 작동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계기에서 전달되는 정보들이 적절하지 못해 조작자들이 상황을 파악하는데 두시간이나 지체하게 된 것이다. 후속조치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냉각수 부족사고를 노심붕괴의 대사고로 발전시켜 발전소를 폐쇄하고 말았다.
또한 카나리 군도에서의 KSM B747기 충돌사고에 있어서도 기장이 관제탑으로부터의 'OK, 3초 후의 STANDBY' 를 이륙허가의 OK로 이해해 5백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빚었다. 이런 사고 이후에 발전소의 제어실(control room)이나 항공기의 조종실(cockpit)에 인간공학적인 설계검토는 필수화됐다. 이와같은 인간-기계시스템(man-machine system)을 연구하기 위한 각종 컴퓨터 모의실험장치(simulator)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됐다.
새로운 연구대상 첨단사무기기들
80년대는 정보통신혁명이라고 불릴만큼 반도체 컴퓨터 디지털통신이 급격히 발전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의 연산속도 메모리(memory)용량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사용할 인간이 병목(bottle neck)이 되고 있다. 컴퓨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컴퓨터 문맹을 없애기 위해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관계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연구하는 것이 인간공학의 중요한 연구과제로 대두됐다. 컴퓨터나 첨단 0A기기를 보다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IBM 제록스 코닥 등 유수의 회사들이 사용 편이성 실험실(usability laboratory)을 두고, 실제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개선하여야 할 점이 어떤 것인가를 인간공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제록스에서 개발된 STAR8010 워크스테이션은 기존의 명령어에 의한 작동방식을 탈피해 단순히 화면상의 아이콘(icon)을 키보드가 아닌 마우스(mouse)를 이용해 선택함으로써 컴퓨터를 잘 모르는 초보자들도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개념은 후에 애플사에 의해 퍼스널컴퓨터인 매킨토시의 기본운용방식으로 채용돼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됐다. 매킨토시는 한가지 응용프로그램의 사용방법만 익히면 대부분의 응용프로그램을 별도의 교육이나 매뉴얼을 찾을 필요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
정보통신과 관련하여 컴퓨터 사용환경은 새로운 연구분야가 됐다. 컴퓨터가 사무실에 등장함에 따라 시력저하, 어깨 팔 손목의 통증, 방사선피해에 대한 공포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하게 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작업장에서의 안전 및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위하여 나르는 횟수 무게 등에 대한 기준이 미국산업안전 및 보건연구원(NIOSH)에 의해 마련되었으며, 소음 진동 또는 열(熱) 환경으로부터 작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준들도 국제표준기구(ISO)에 의해 마련됐다. 특히 인간공학적인 설계 지침 및 기준을 범세계적으로 표준화하기 위해 ISO 산하의 기술위원회 159(TC159)가 인간공학분야를 전담하고 있다.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인간공학의 연구분야는 △인체측정 △작업환경 △인간-기계시스템 △교통안전 △노약자 및 장애자 등이 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인체측정 / 적정 표본 추출이 필수
인체측정자료는 여러가지 산업제품을 설계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자료중의 하나로 공산품의 규격을 제정하는데 필수적이다. 기본적인 인체의 크기와 관련된 자료 뿐만 아니라 동작의 범위와 자세, 또는 무게중심 등의 자료들도 공학적으로 널리 쓰일 수 있다. 컴퓨터로 자동차 충돌을 모의 실험하기 위해서는 몸의 각부분의 질량과 무게중심에 대한 정보 없이는 올바른 결과를 얻어 낼 수 없다. 얼핏 생각하면 인체측정이 매우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키재고 몸무게 재는 것이 과학인가 싶기도 하지만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치수는 적어도 1백여 가지나 되고, 또 연령별 성별 지역별로 각 계층을 대표할 수 있도록 적정수의 표본을 추출해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피계측자를 구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주부들 중에 이러한 측정에 1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얼마나 될까. 따라서 측정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측정을 계획 하고 홍보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뒷받침하는가가 더욱 어려운 과제다.
일단 결과가 수치화되고 표준화되면 수정 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약 대다수의 소비자 계층이 속한 집단의 통계가 표본추출이 적정하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은 자명하다. 특히 인체측정은 그 작업이 방대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우며 대상 집단의 적극적인 협조없이는 작업이 불가능 하다. 측정요원의 양성과 지역별 측정 전담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쉽게 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쓰여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원 혹은 3차원의 체형별 마네킹의 공급도 중요하다. 인체측정의 결과는 우리의 산업체나 공공기관에서 계속적으로 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확한 데이터베이스가 마련해야 한다.
■작업환경 / 근골계 질환에 주의해야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중의 하나가 작업 환경의 개선이다. 물론 이 분야는 산업의학 환경학 등의 분야에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작업환경의 평가와 개선에 인간공학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물론 중금속 중독 등에 의한 피해도 중대하지만은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과로 부주의 불합리한 작업방법에서 기인하는 안전사고들이다.
대개 직업병의 경우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좋지 못한 환경요인에 노출될 때 발생하므로 여간해서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특히 근골계 질환(musculoskeletal disorder)은 매우 경시되고 있는 부분중의 하나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허리를 다치거나, 어깨 높이 위의 작업을 오랜 시간 지속하는 경우 (조선소의 용접작업, 천장 공사, 페인팅 등) 어깨에 이상이 올 수 있으며, 컴퓨터 키보드를 계속 두들겨 손목 팔 어깨 등에 통증 떨림 등이 발생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작업으로 인한 피로도 측정 및 작업부하 측정, 작업교대(work shift)계획, 작업대의 최적설계 등이 이루어지면 작업환경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8년을 기점으로 사무직근로자가 육체노동자의 수를 상회하게 됐으며 사무환경자체도 OA기기의 도입으로 많이 변화하게 됐다. 사무작업의 환경, 특히 사무직근로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나 직업의 효율 등을 개선하는 것도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분야로 대두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응연구가 시급하다 하겠다.
■인간-기계시스템 / 일목요연한 정보전달
인간-기계시스템 (man-machine system)은 운전자와 자동차, 조종사와 항공기, 또는 화학공장 발전소의 운전원(operator)과 제어반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시스템으로 부터 적절한 정보를 얻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을 해나가며, 자동화된 시스템에 있어서는 시스템의 정상유무를 계속적으로 감시(monitoring)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어떻게 현재의 시스템의 상태를 전달하여 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 디스플레이가 도입되기 이전의 조종석에는 수백개의 계기가 있었으나 요즘은 조종사가 쉽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면을 잘 설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인지과정과 의사결정과정을 잘 이해하고 연구해야 하며 이러한 연구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지공학(cognitive engineering)과도 협력해야 한다.
인간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디스플레이(display)도 급격히 기술이 발전돼 액정이나 플라즈마 평판디스플레이(flat panel display), HUD(Head Up Display 시야에 표시장치가 중첩돼 보이는 장치), 입체감이 있는 3차원 디스플레이, 또는 가상 디스플레이 (virtual display, 레이저와 홀로그램을 이용해 눈이 위치하는 곳에 가상적인 표시 장치가 나타나도록 함)으로 발전되고 있다.
■교통안전 / 운전자의 행동패턴연구
매년 우리나라에서는 약 1만2천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물론 도로여건과 인구과밀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도로 및 신호체계, 표지판 등을 설계 할 때 인간공학적인 설계원칙을 도입하고, 운전자와 보행자를 행동과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들의 행동패턴에 따른 사고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통사고의 원인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사고의 조사분석 및 통계체계도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동차 자체를 보다 안전하게 설계 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 안전장구(시트벨트 에어백 유아용시트)의 차체 충돌시험을 통한 평가, 브레이크 등의 개선(후미충돌을 줄여줌), 옆문짝의 강화(측면충돌시 손상을 막아줌) 등이 선진국에서는 의무화돼 가고 있다.
■노약자 및 장애자 / 소수지만 세심한 배려를
경제수준 및 의료수준의 질적 양적 향상으로 말미암아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고 출산율은 점차로 감소돼 앞으로의 사회는 고령화가 예상된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차로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계층이 사회에 적응해 노후를 잘 지낼 수 있도록 여러가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선행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산업재해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장애자의 숫자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보조하는 기구나 장치는 거의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야는 크게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보조하지 않는 한 크게 개선되기가 어렵다고 보여진다.
■독자적인 연구가 필요
최근 서구에서는 인간공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더욱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환경의 다양성(인종 성별 연령 체위 작업환경 등) 때문에 다른나라의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바로 수용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측정된 한국청년과 서구인과의 근력측정 결과는 한국청년의 95%치가 서구인에 50%치 정도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과 성능을 알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인간공학이 처음 소개된 것은 공군을 통해서다. 이미 60년대에 항공의학연구소가 설립됐으나 항공의학 자체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70년대에 산업공학과들이 대학에 설치되면서 부터 작업관리 인간공학 등의 과목이 개설되었다.
1979년에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국민체위 조사를 수행해 여러가지 공산품의 규격화 자료를 제공했으며 1982년에는 대한인간공학회가 설립돼 학술적인 교류가 시작됐다. 현재에는 한국과학기술원 서울대 포항공대 고려대 등이 수준있는 인간공학연구실을 갖추고 있으며 이 분야를 전공한 전문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또 사회적인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1987년에는 한국표준연구소에 인간공학연구실이 처음으로 설치됐으며 1989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도 원자력발전소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인간공학연구실이 탄생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도 첨단산업 위주로 바뀌면서 인간공학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게 됐다. 항공기 자동차 컴퓨터를 비롯한 0A기기, 의료용 장비 등을 생산하려면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연구자료가 필요한데 현실은 이러한 자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과거에는 일본인과 비슷한 체격을 가졌다는 가정하에 부끄럽게도 이웃나라의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그림3)과 같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여자 기성복의 패턴을 일본에서 그대로 수입해 중년층 여성은 기성복이 맞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도가 많이 개선돼 인간공학적인 정보의 요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첨단과학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부 부처에서도 이러한 일에 예산을 투입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요즘과 같이 청소년들의 성장이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을 때에는 적어도 3년에 한번은 국민체위조사를 실시해 공산품 규격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초중고등학교 교실을 보면 우리 청소년들이 형편없이 작은 치수의 책걸상에서 좋지 못한 자세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현행 KS규격에는 인간공학적인 평가기준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소비자가 KS규격의 제품을 구입했을때 제품의 강도 재질 등은 수준급일지 몰라도 소비자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소비자가 치수에 맞는지는 보장된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하철의 손잡이 높이는 얼마로 하면 좋겠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도 우선 지하철의 이용객의 분포, 분포에 따른 체격의 차이, 피로하지 않은 손잡이 높이, 균형을 잡을 때 몸을 잘 지지할 수 있는 손잡이 길이, 시야에 성가심을 주지 않는 높이 등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이러한 실정임에도 이에 대한 실험을 거칠 시간이 없이 지하철을 도입해야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선진국에 크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다른나라의 뒤를 따르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분야에서는 괄목할 발전을 이룩했으나 아직 이들을 잘 조화시켜 정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과학기술로 발전시켜가는 부분에서는 크게 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공학은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국내에서는 연구시설도 어느정도 갖추어졌으며, 연구인력도 양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고방식의 개선이라 하겠다. 과연 과학기술의 목표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인식한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인간공학의 장래는 매우 밝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