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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함을 컴퓨터로 표현한다

퍼지(fuzzy)이론

인간이 흔히 쓰는 표현의 대부분은 숫자로 나타내기 어렵다. '0'과 '1'만 인식하는 컴퓨터는 이런 애매한 표현들을 어떻게 인식할까?

"사과 두개 사오너라". 엄마가 이런 심부름을 시키셨다고 해 보자. 우리는 정확히 사과 두개를 사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과 두어개 사오너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과를 몇개 사야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이때 애매한 숫자 '두어개'는 두개를 사든지 세개를 사든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서너개' '약' '정도' '크다' '춥다' 등의 애매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날씨가 춥다'라고 했다면 기온이 10℃인지 -1℃인지 매우 애매한 표현이 된다. 이 애매한 표현은 계절 등 다른 요인을 고려하기 전에는 몇 도인지 알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애매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애매한 표현

오늘날 컴퓨터는 우리 주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도구가 되어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많은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 컴퓨터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위 현상을 숫자로 바꾸어 입력해 주어야하고 컴퓨터는 이 숫자를 계산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바를 대신하고 있다. 이때 숫자로 바꿀때는 '정확한 숫자'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즉 사과 두개 또는 10℃ 등 정확한 숫자로 바꾸어 주어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정확한 숫자로 나타내기 어려워 애매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최근 인간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일하는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인공지능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컴퓨터가 인공지능을 가지로 인간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사용하는 숫자는 물론이고 애매한 표현까지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애매한 표현을 처리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퍼지이론(fuzzy theory)이다.

일반 컴퓨터는 앞에서 사용한 애매한 표현 '두어개'라는 값을 이용하여 계산할 수 없다. 그러나 퍼지이론을 이용한 컴퓨터는 '두어개' '약 두개' 등의 값을 계산할 수 있다. 즉 퍼지컴퓨터는 인간이 사용하는 애매한 표현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 좀 더 비슷한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퍼지이론의 출현

퍼지이론은 현상의 불확실한 상태를 그대로 표현해 주는 방법으로서 1965년 미국 버클리 대학의 자데(Lofti A. Zadeh)교수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다. 퍼지이론은 애매하게 표현된 자료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유용한 자료를 만들기 위하여, 퍼지집합(fuzzy set) 퍼지논리(fuzzy logic) 퍼지숫자(fuzzy number) 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수학적인 계산 방법도 잘 개발되어 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할 때 전통적으로 확률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올 확률이 70%다'라고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일기예보자가 비 올 확률을 정확하게 알지 못할 때에는 70%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게 표현했다고 할 수 없다. 다시 퍼지이론에 바탕을 두어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보자. '내일 비가 올 가능성이 매우 많다'. 이것은 예보자의 불확실한 느낌을 그대로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애매한 표현인 '매우 많다'의 의미가 미리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집합과 계산
 

(그림 1) 보통집합 {2,3}


앞에서 예를 든 심부름에서 사과 두개 또는 세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에는 두개를 사든 세개를 사든 아무 상관없다. 이때 살 수 있는 사과의 개수를 원소로 생각하여 집합으로 나타내면 {2,3}이 될 것이다(그림1).

한편 앞에서 '사과 두어개'를 사야한다면 두개 또는 세개를 사면 될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과 두개를 샀을 때와 세개를 샀을 때를 비교해 보자. 심부름을 시키신 엄마는 몇 개를 샀을 때 심부름을 잘했다고 할까. 아마 세개를 사도 되지만 두개를 샀을 때 더욱 만족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두어'란 말이 '2 또는 3이지만 2를 강조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수학적으로 나타내면 '2일 가능성이 1.0, 3일 가능성이 0.5'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의하면 '두어'라는 집합에 숫자 2는 1.0, 3은 0.5의 가능성을 가지고 포함된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을 퍼지집합이라고 한다. 퍼지집합의 경우에는 각 원소가 집합에 포함될 가능성을 붙여 다음과 같이 표시한다. 이때 /표시는 나눗셈 기호가 아니다(그림2).
 

(그림 2) 퍼지 집합 {2/1.0,3/0.5}


'두어'={2/1.0, 3/0.5}
따라서 보통집합은 각 원소가 포함 될 가능성이 1.0인 경우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앞에서 본 집합은 다음과 같이 다시 나타낼 수 있다(그림1).
'2 또는 3'={2/1.0, 3/1.0}

앞에서와 같이 애매한 표현으로 나타낸 숫자 값이라고 하더라도 퍼지계산 방식에 따라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퍼지 덧셈을 해보기 위하여 '두어'+'두어'의 값을 구해보자. 이때 합은 4,5 또는 6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각 숫자가 합에 포함될 가능성을 알아 보자(그림3).

4는 2+2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런데 2가 '두어'에 포함될 가능성은 1.0이다. 따라서 2+2가 합에 포함될 가능성도 1.0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2/1.0+2/1.0=4/1.0
5는 어떻게 얻어 질까. 5는 2+3 또는 3+2에 의해 얻어진다.
2/1.0+3/0.5=5/0.5
3/0.5+2/1.0=5/0.5
5를 이루는 2와 3의 가능성이 0.5 또는 1.0이기 때문에 이때 최소값(0.5)를 택하여 5가 포함될 가능성으로 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6이 될 가능성도 다음과 같이 구할 수 있다
3/0.5+3/0.5=6/0.5 이러한 퍼지계산에 의한 퍼지집합 '두어'+'두어'가 (그림3)에 잘 나타나 있다. 퍼지이론에서는 이외에도 뺄셈 곱셈 나눗셈 등의 다양한 계산방법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애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을 애매한 상태 그대로 입력하여 적절히 계산하면 유용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필요성에 의해 개발된 퍼지이론의 응용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주된 응용은 인간이 애매한 자료를 주어도 컴퓨터가 인공지능적인 처리를 하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이의 응용을 위하여 연구가 중점적으로 진행중인 주요 분야만 살펴보자.
 

(그림 3) 퍼지 덧셈'두어'+'두어'


지능로봇에 응용

첫째 데이터베이스에 적용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그 결과로 데이터베이스를 발전시켜 '퍼지데이터베이스'의 개념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서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이가 40세 이하인 사람'을 찾지 않고 '젊은 사람'을 찾는다면 이에 대응하는 답을 줄 수 있는 처리가 필요하게 된다.

둘째 로봇 개발 연구에 응용이 가능하다. 산업용 로봇이 물체를 본 후에 이를 판단하여 정해진 행동을 취할 경우 퍼지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
셋째 전문가시스템(expert system)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전문가의 지식을 수집할 때 이 지식에 관한 확신을 100% 가질수는 없다. 각 지식들의 불확실한 정도를 표현하여 처리할 필요가 있다.

넷째 여러가지 공학문제에 적용 가능하다. 일반적인 제어(control) 분야에서 인간은 애매한 구문식 표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온도가 낮으면 밸브를 열어라'는 명령을 한다고 할 때 이때 사용하는 애매한 표현 '낮으면'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수학분야에도 적용 가능하다. 퍼지이론이 수학에 바탕을 두고 있듯이, 퍼지행렬이론(fuzzy matrix theory), 퍼지엔트로피(fuzzy entropy), 퍼지숫자(fuzzy number) 등의 이론이 있다.

여섯째로는 산업공학이나 경영과학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 애매의사결정(fuzzy decision making) 개념이 그 하나이며, 수학적인 모델인 선형계획법, 동적계획법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일곱번째로는 퍼지논리(fuzzy logic)를 이용한 컴퓨터의 개발을 들 수 있다. 일반적인 논리는 어떤 사실이 참이면 1, 거짓이면 0의 값을 가진다. 그리고 애매논리에서는 값이 [0, 1] 사이의 것을 가질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퍼지논리에 기초한 컴퓨터를 개발하기까지 했다.

인공지능의 새로운 분야

1965년 소개된 퍼지이론은 최근 일본에서는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제품 등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한 전자제품 회사에서는 퍼지이론을 이용하여 세탁액의 오염도와 세탁물의 질을 판별하여 가장 알맞는 세탁시간을 결정하는 퍼지센서(fuzzy sensor)를 가진 세탁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퍼지센서는 세탁물의 양, 종류, 세제의 종류에 따라 세탁시간, 수량을 결정하여 에너지 절약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카메라 일체형 VTR(캠코더)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어느 전기회사는 퍼지이론을 이용한 자동조리개를 개발하여 역광에서도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일체형 8mm 비디오를 내놓았다. 종래의 자동조리개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화상의 평균적인 밝기를 바탕으로 하거나 화면 중앙의 밝기를 기준으로 결정하였다. 퍼지이론을 사용한 조리개는 피사체를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 각 영역의 밝기를 비교 측정하여 조리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역광으로 인해 종래에는 촬영이 어려웠던 피사체도 깨끗하게 찍을 수 있게 된다.

일본 과학 기술자들은 퍼지이론을 발전시켜 컴퓨터, 지하철 자동운영, 자동차주행, 엘리베이터 운행에서 골프 클럽의 선택방법에 이르기 까지 새로운 응용의 길을 찾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한 퍼지이론의 응용은 현재까지의 모든 응용분야를 나열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응용 예를 설명하기 위하여 일부를 나열한데 불구하며, 신뢰도공학 일정계획 투자이론 수송문제 그래프이론 게임이론 등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앞으로 퍼지이론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더욱 더 가열될 것이고, 그 응용분야 또한 매우 넓게 전개될 것이다. 수많은 연구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저서가 발간되고 있다. 특히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지에서는 연구전문잡지가 발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제 몇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과학기술원에서는 지난 겨울에 산학협동 강좌를 통하여 퍼지이론을 산업체에 보급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번 학기에 비로소 강좌가 개설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전 세계적인 추세와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발맞추어 가까운 장래에 이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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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광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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