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금년에 월드컵대회가 개최되는 로마는 역사 예술 종교의 도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왜 생겨났을까?

유럽의 정원(庭園, il giardino dell'Europa)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퍽 친근한 곳이다. 서양의 역사를 배우면 으례 로마제국의 역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로마라는 지명이 자연히 우리 귀에 익게 된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든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등 로마와 결부된 격언을 통해서도 로마는 우리에게 낯이 익다.

색깔이 우중충하고…

필자가 1976년 해외 유학길에 올라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로마였다. 첫 인상은 약간 지저분하고 무질서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상은 영화나 화보를 통해서 보아온 외국에 대한 이상향적인 동경과 호기심, 그리고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의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로마 거리의 색깔이 우선 우중충하고 건물들이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 보내면서 낡아보이는 건물과 거리가 오히려 로마의 역사와 기후에 아주 적합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저렇게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유적들이 노천영화관으로

로마는 역사의 도시요, 예술의 도시요, 또한 종교의 도시다. 이 세가지 요소중 어느 것 하나라도 빠뜨리면 로마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필자는 로마의 역사적인 유적, 예술과 종교의 분위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로마는 유구한 역사의 도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옛 도시들을 방문하면, 그 도시와 관련된 고고학적 유품과 골동품들의 대부분 이 박물관의 진열장에 소장돼 있다. 그러나 로마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며 고대와 현대가 더불어 살고 있다는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는 도시다.
로마는 B.C. 753년경 로물루스와 레물루스 두 형제와 그 휘하의 목동들에 의해 팔라티노(Palatino) 언덕에 건국되었다. 이들은 캄피돌리오 퀴리날레 비미날레 에스퀼리노 첼리오 아벨티노언덕 등 테베레 강의 왼쪽에 있는 일곱 언덕을 중심 거주지로 삼아 살았다.

그중 캄피돌리오언덕은 신전들의 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로마의 광장(Foro romano) 과 더불어 고대 로마의 정치·종교의 중심지다. 도시의 심장과 같은 위치에 자리 한 이곳에는 또 로마제국시대에 가장 오래 된 문서고와 행정부의 중앙관서가 있었다. 따라서 이 언덕은 로마제국시대의 법통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 외에도 판테온,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대제 개선문, 카라칼라 황제시대의 공중목 욕탕 유적, 라보나광장, A.D. 272년 아우렐리우스 황제시대에 세워진 아우렐리안 성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로마제국시대의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들은 조상들의 유적을 가능한한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원형대로 보존한다. 그 유물을 통해 수천년전 조상의 숨결을 지금도 느끼며 조상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적 유적지를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생활에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름철에 치르코 마시모(경기장)에서는 청명한 밤하늘의 별빛을 지붕삼아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옛 선조의 유적을 노천야외 영화관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캄피돌리오광장에서는 밤에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개최된다. 그리고 카라칼라황제 공중목욕장 유적지에는 야외 노천 가설무대를 설치, 아이다 투란도트 등 걸작 오페라를 7월 초순부터 8월 말까지 계속 공연한다. 이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 일부러 이 시기에 맞추어 세계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로마로 몰려온다.

「로마의 휴일」을 통해 소개

그리고 로마는 예술의 도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과 같다. 르네상스의 발상지답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베르니니 등 거장들의 빼어난 예술품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특히 보르게세별장에 있는 미술관과 바티칸박물관이 유명하다. 보르게세박물관과 미술관 건물은 이탈리아 중부의 고도(古都)인 시에나출신의 귀족, 보르게세 귀족가문이 몇세기 동안 소유했던 영지안에 있다. 이 별장은 로마 중심가에서 매우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으나 도시 계획에서도 제외돼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예술품인 보르게세 별장은 1902년 이탈리아 정부가 사들여 공원 박물관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층 중앙전시실에 들어 서면 나폴레옹의 여동생으로 카밀로 보르게세공에게 시집간 파올리나 보나파르테의 대리석상이 비너스상 처럼 요염한 자태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19세기의 신고전주의 조각가를 대표하는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1)가 파올리나 보나파르테의 부탁을 받고 만들었다. 마치 대리석을 밀가루 반죽하듯이 다룬 이 조각품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작품이면서도 독창적인 개성을 뚜렷이 보여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은 건축 조각 회화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예술성을 보여 주었고, 82세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로렌소 베르니니 (1598~1680)의 다윗상이다. 거인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지려고 하는 순간을 포착해 조각한 이 작품은 굳은 결의에 찬 다윗의 모습과 동작이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묘시됐다.

또 베르니니의 작품인 '아폴로와 다프네' '프로서피나' 등 여러 걸작 조각품과 라파엘로 티치아노 카라밧지오 등의 유수한 회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베르니니 광장 등 큰 광장들은 으례 유명한 예술가들의 조각품들로 장식돼 있다. 그 광장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것이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 광장', 30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된 '트레비 분수', 베르니니의 '4대 강의 분수'가 중앙에 서 있는 나보나 광장에는 늘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벼 도시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해준다. 이러한 광장에서는 떠돌이 악사들과 거리의 미술가들이 모금통을 놓고 자기네들의 기량을 선보이곤 한다.

건축물로는 로마제국의 현존하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보전이 잘 돼 있는 판테온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은 1천8백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내부의 직경과 높이가 똑같이 43.3m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비율의 일치를 이루어 조화와 균형이 있는 건축미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판테온의 돔(둥근 천정)은 철근 골조를 사용하지 않은 돔으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 그 내부에는 라파엘로, 통일된 이탈리아 왕국의 제 1대왕인 엠마뉴엘레 2세, 움베르토 1세와 그의 왕비 미르게리타의 무덤이 있다.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개선문, 높이가 21m에 이른다.


6만명이 입장하는 대성당

마지막으로 로마는 종교의 도시다. 로마제국시대의 로마에는 피점령지역의 다양한 종교까지 유입돼 수많은 신전으로 가득 찼다. 그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국교로 대우 받으면서 로마는 그리스도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사도와 바울로사도는 로마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순교했다. 그들의 무덤위에는 거대한 성전이 건립돼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기렸다. 로마시내에서 가장 중요한 4대 성당은 성 베드로대성당, 성 바울로 대성당,라테란 요한대성당,성모마리아대성당이다.

A.D.67년경 베드로사도는 바티칸 언덕 아래에 있었던 네로황제 경기장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채 순교했다. 그의 시신은 바티칸공동묘지에 안장됐는데 A.D.326년에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이 사도의 무덤위에 성 베드로대성당을 지었다. 그후 여러 차례 의 증·개축을 하였으나 1천2백여년의 세월을 견디기에는 힘이 부쳐 마침내 붕괴의 위험까지 맞게 되었다. 그래서 브라만테에 의해 1506년 신축공사가 시작된 후 미켈란젤로, 델라 포르타, 카롤로 마테로노, 베르니니 등 거장들이 계속 공사를 이어 받았다. 자그마치 1백20년이란 긴 세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성베드로대성당은 마침내 완공되었다. 이때가 1626년이었다.

균형과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이 대성당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성당의 길이는 현관을 포함해 2백11.5m이며, 천정의 높이는 45.44m나 된다. 내부는 한번에 약 6만명이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당시에는 확성기 장치가 없었을텐데도 내부의 벽 기둥 천정 등이 설교가 잘 들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미켈란젤로가 24살때 쯤에 조각한 피에타(Pieta)상을 비롯해 모자이크화등 빼어난 예술품들로 채위져 성서의 내용을 웅변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광장은 베르니니에 의해 1655년에 공사가 시작된지 12년만에 완공됐다. 좌우 양쪽으로 큰 반원을 이루고 있는 이 대광장은 폭이 2백40m다. 타원형 꼴인 이 대광장은 약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속임수를 써서 설계돼 조금도 넓어 보이지 않는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열주회랑은 그리스도가 세계의 전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세계 교회의 어머니

인류의 보물창고라고 평가할 수 있는 바티칸박물관과 미술관은 1주일 정도 소일하며 차분히 보아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비롯해 르네상스시대 거장들의 작품과 현대 종교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골동품과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특히 시스틴성당의 천정화는 미켈란젤로가 4년 5개월동안 8백㎡에 달하는 큰 공간에 천지창조 등 구약성서의 내용을 그린 불후의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60세가 되던 해에 시스틴성당 뒷편에 다시 최후심판에 관한 벽화를 7년에 걸쳐 완성했다.

그 밖에도 바울로사도의 무덤 위에 건립 한 성 바울로대성당, 세계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라고도 일컫는 라테란의 성 요한대성당도 유명하다. 그리고 8월의 삼복더위에 기적의 표지로 눈이 내린 언덕 위에 건립한 마리아대성당도 필히 방문해야 할 순례지다. 특히 카타콤바(지하공동묘지, 3층으로 돼 있고 총연장이 약 15㎞에 달한다)도 꼭 순례해야 할 장소다.
 

라텐란 요한 대성당의 내부 모습


적어도 3년을 살아야

로마를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구경하려면 3일이면 충분하고, 좀더 마음 먹고 보려고 3개월 정도 머물면서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3년을 살면서 보면 조금씩 눈이 뜨인다는 말이 있다. 고대교회사를 전공하는 필자는 고고학 탐사까지 다니면서 9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직 로마의 10분의 1도 못본 것 같다. 그래서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더욱 실감난다. 짧은 일정으로 로마를 방문하려면 희랍로마신화를 비롯해 로마제국의 역사, 르네상스 미술사, 교회사와 성서를 미리 공부하고 가면 더욱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시로코라는 열풍이 불고

로마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위치하며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다. 겨울에는 우리나라보다 그리 춥지 않지만 수은주가 때때로 영하로 내려 갈 때도 있다. 로마도 4계절이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처럼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겨울인가 싶어 몸을 움추리다 보면 어느덧 새싹이 돋아 봄의 신록에 취하게 되고 곧 이어 사하라사막에서 지중해 동부의 해안지방으로 불어오는 시로코(Sirocco)라는 열풍 때문에 금방 무더워져 여름철 휴가 때가 된다. 휴가정리도 덜 끝난 상태에서 조락의 계절인 가을을 맞게 되고 이내 겨울이 성큼 다가온다.

9월부터 12월까지는 다른 때에 비해 더 많이 비가 내리지만 대개는 밤에 내리다가 새벽녘에 그친다. 그래서 비온 다음 날 아침은 하늘도 더 맑고 공기도 깨끗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로마인들은 대체로 낙천적이고 다정다감했다. 기질은 다혈질이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버스 안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길을 알려주는데도 서로 다투어 가며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우리나라 지형과 같은 반도국가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다정다감한 면에서나 사고방식에서 있어서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테베레 강이 느리게 흐르지만 언젠가는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라는 속담을 즐겨 쓰듯이 로마인들은 성격이 아주 느긋하다. 그들은 바쁘게 서두르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장인정신이나 가업에 대한 집착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보통 3,4대 계속해 가업을 이어받기 때문에 기술이 향상되고 자본이 축적돼 상업활동이 비교적 안정돼 있다.

구멍가게 경제의 기반 위에

이탈리아 경제의 70~80%는 구멍가게 경제, 즉 중소기업의 기반위에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경제 상황이 국가경제를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 2천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였고 또 우리나라 서울 면적의 1.5배나 되는 크기이지만 인구는 서울 인구의 4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그 나라의 경제인구의 분포가 관료주의적인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골고루 분포 돼 있음을 뜻한다. 후진국일수록 그 나라의 수도와 지방 경제와의 격차가 심하지 않은가.

금년에 로마에서 월드컵 축구 결선이 열린다. 사실 이탈리아의 국기(國技)가 축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해서는 열광적이다. 8년전 이탈리아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로마는 1주일 내내 축제분위기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이탈리아 국기(國旗)를 들고 나와 자동차 행진을 하고, 젊은이들은 시내의 분수대에 들어가 누구나 붙들고 포옹하고 노래를 부르며 축하하는 모습을 보고 필자도 함께 감격했다. 그때 국민학교에 들어 갔을까 말까 하는 어린아이가 울길래,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가 이겼어요"를 되풀이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오 솔레 미오' 노래가 저절로 나올만한 햇빛 찬란한 날씨와 정열과 다정다감한 로마, 그리고 역사와 예술과 종교의 도시에 우리나라의 태극기가 휘날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희중 교수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미술사학
  • 종교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