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느냐, 일부다처제를 선호하는냐에 따라 미로의 통과속도가 달라진다.
남성이 여성보다 확실히 공간지각력이 뛰어난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마다 개인차가 몹시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체 남성의 공간 관리능력은 전체 여성의 그것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공간을 잘 인식해야 '국수'가 될 수 있는 바둑, 그리고 장기나 체스게임 챔피온은 언제나 남성이다. 또 기하문제를 푸는 능력이나 지도를 보는 솜씨에서도 대체로 남성이 다소 앞선다.
이런 차이는 인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인가. 최근 이 물음에 대해 '절대 아니다'라는 응답이 나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인류학자 스티븐 가울린박사는 수컷 생쥐가 암컷보다 훨씬 빨리 미로를 통과했다는 실험결과를 근거로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수컷들이 암컷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공간관리능력과 공간지각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 그의 이론의 골자다.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가울린은 두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첫번째는 자연상태에서의 실험이었다. 그는 연구에 적당한 실험동물로 두종의 들쥐를 선택했다.
그 중 한 종은 펜실베니아의 들판에서 사는 풀밭들쥐(meadow vole)였다. 일부다처제의 신봉자인 이 풀밭들쥐는 자연히 보다 많은 암컷을 소유하기 위해 들녘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무기는 엉뚱하게도 땅이 었다. 넓은 땅을 확보한(?) 수컷이 암컷을 더 많이 차지했던 것. 이 사실을 두고 가울린은 이런 경쟁적인 영토확장 노력이 수컷에게 공간에 대한 정보를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반면 미국 중부 대평원에 서식하는 프레리(prairie) 들쥐는 일부일처제의 지지자다.
이 프레리들쥐 부부는 서로 땅을 공유하고, 비교적 좁은 면적에서만 활동한다. 그래서인지 암수는 불문하고 공간관리기술이 평균이하다.
가울린은 이 야외실험을 위해 들쥐를 잡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생포한 들쥐에 콩크기의 방사선송신기를 부착한뒤 여기서 전해 오는 각종 정보를 정리, 들쥐가 자신의 생각과 일치되게 행동하는지를 살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번식기간 동안 수컷 풀밭들쥐는 암컷보다 자그만치 4배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암수가 명백한 행동반경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프레리들쥐는 암수간에 이렇다할 차가 없었다. 수컷도 암컷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집 주위를 그저 뱅뱅 돌 뿐이었다.
야외실험을 마친 가울린은 이 들쥐들을 자신의 피츠버그연구소로 가져 왔다. 실험실내에서 실험을 계속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련의 미로를 만들어 놓고 들쥐들에게 이 미로를 빠져 나오도록 '강요'했다. 수컷 풀밭들쥐는 여기서도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암컷에 비해 훨씬 신속하게 미로를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수컷 프레리들쥐는 여전히 굼뱅이였다. 암컷이나 수컷이나 미로에서 헤매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를 놓고 가울린은 우주의 모든 수컷이 암컷보다 공간관리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아마도 수컷 풀밭들쥐는 암컷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들판을 배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공간 순회 능력이 날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수백만년에 걸친 자연도태의 과정이 그런 특성을 더욱 강화 해주었을 것이다. 또 공간관리능력을 지니지 못한 수컷 들쥐들은 암컷과 결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유전자는 후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주변을 바삐 돌아다닌 수컷들은 더 많은 암컷들을 아내로 맞아 그들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공간관리능력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