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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 이전에 이미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던 과학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여전히 지구의 끝이 낭떠러지라고 생각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부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의 전기를 읽다 보면 콜럼부스가 지구를 공과 같이 둥근 모양이라 생각하고 동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에 도착하듯이 서쪽으로 항해를 해도 인도에 도착하리라 믿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할 뿐만 아니라 평평한 지구의 끝에는 절벽이 있어서 서쪽(유럽에서 보았을 때는 대서양)으로 항해를 계속하면 결국은 절벽 끝으로 떨어져 살아올 수 없다고 믿었던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콜럼부스가 이렇게 지구가 둥글다는, 당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자기의 항해를 도와주도록 포르투갈의 왕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후 콜럼부스는 스페인의 '이사벨라'(Isabella) 여왕을 설득, '산타마리아'호를 지원받아 1492년 8월3일 대망의 항해를 떠나게 된다. 약 1~2주 후면 인도에 딯을 수 있다는 확신과는 달리 처음 육지를 발견한 것은 10월12일이었다. 콜럼부스는 그 땅을 산 살바도르(San Salvador)라 이름 붙였으며, 이곳이 인도의 일부분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이후의 탐험을 통해 콜럼부스가 발견한 곳이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대륙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임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콜럼부스의 항해 이후부터 지구가 평평하고 그 끝에는 절벽이 있다는 식의 생각을 버린 것으로 흔히 인식되어 있다. 더욱이 콜럼부스는 위대한 탐험가로서만이 아닌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탐험을 통해 증명해 보이려 했던 과학자로까지 생각되어지는 게 보통이다.

여기가지가 흔히 알고 있는 '콜럼부스 신화'다. 이러한 사실을 신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중 상당한 부분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콜럼부스가 항해를 하고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거짓이라는 말이 아니다. '콜럼부스 신화'중 거짓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콜럼부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왜 이러한 거짓말이 나오게 되었는가? 콜럼부스 이전의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지금부터 고대 그리스 사회부터 콜럼부스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모양과 그 크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을 추적해봄으로써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인류 최초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밝힌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기원전 약 400년경의 그리스 과학자들중 몇몇은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전에 살았던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과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480년경 활동)도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고부동한 과학적 진리의 위치로 끌어올렸던 사람은 이후 고대과학과 중세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로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원형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 또한 그는 여행을 함에 따라 별자리의 모양이 달라지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만일 지구가 평평하다면 어느곳에서나 똑같은 모양의 별자리가 보여야 한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세째 증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에 있는 태양이나 달이 모두 둥근 공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가 다른 모양을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만일 지구가 둥글다면 지구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거꾸로 지구에 붙은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가정이었다. 마치 사람이 바닥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니라 천정에 붙은 파리처럼 거꾸로 붙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쾌하게 대답하고 있다.

"북반구에 사는 사람에겐 남반구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듯이 보이지만, 남반구 사람에겐 마찬가지로 북반구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모든 무거운 물체들은 우주의 중심인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낙하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했을 때 지구의 위, 아래라는 생각은 의미없는 구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반대파의 주장을 완전히 압도해 버릴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구의 중심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고 무거운 것은 이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는 추상적인 우주론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는 천문학의 증거까지를 포괄하는 설득력있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공모양의 지구, 상아탑에서만 상식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과학자들은 거의 아무도 지구가 둥근 공 모양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적어도 과학과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중세 유럽사회의 신학자들도 이 점에 대해서 티끌만큼의 의혹도 품지 않았다.

그렇다면 콜럼부스의 얘기는 어떻게 된 일인가? 당시 사람들이 콜럼부스가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다는 말은 전부 거짓인가? 단지 후세 사람들이 콜럼부스를 미화시키기 위해 꾸며댄 일화에 지나지 않는가?

이 점을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두가지 서로 다른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지금까지 언급했듯이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두번째로, 이런 과학자들의 생각은 일반 백성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 것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의 의견은 주로 상아탑 속에서만 교환되었고 또 그때의 대학이란 지금처럼 사회에 개방된 것이 아니었다. 일반 백성은 대학교수들이 쓴 책에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관심이 있었다 해도 구해보기 힘들었고, 구해도 그것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읽기 힘든 라틴어를 판독해야만 했다.

즉 고대나 중세사회의 몇몇 안되는 과학자, 철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지구는 평평하고 그 끝에는 절벽이 있어서 한번 떨어지면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상식적인 지구의 모양에 만족하고 있었다.

●―지구둘레에 관한 몇가지 측정치

'콜럼부스 신화'의 흥미있는 또다른 한가지 측면은 지구의 크기에 대한 부분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의 둘레를 40만 스테이드(Stade, 고대 그리스에서 길이를 쟀던 단위로 1스테이드=600feet)로 추정했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2만4천9백마일의 2배에 가까운 거대한 수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포시도니우스'(Posidonius)와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는 기하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지구의 크기를 상당히 정확히 측정하였다. 포시도니우스는 동일한 위도상에 위치한 로데스(Rhodes)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카노푸스(Canopus)라는 별을 관측하는 방법을 택했다.

카노푸스로부터 나온 별빛은 두 지역에서 모두 수평이라고 간주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데스에선 이것이 지평선과 일치했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선 7$\frac{1}{2}$˚의 차이가 존재했다. 이 차이는 바로 지구의 중심에서 로데스와 알렉산드리아를 연결한 부채꼴의 각이 7$\frac{1}{2}$˚라는 것을 의미했다. 포시도니우스가 측정한 로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는 5천스테이드였다. 간단한 비례를 풀면 지구의 둘레가 24만스테이드로 계산되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은 별을 관측하는 대신 태양빛에 비친 막대의 그림자를 이용했으며, 로데스와 알렉산드리아 대신 5천스테이드 떨어진 씨엔느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측정했다는 점에서 포시도니우스와 차이점이 있었지만 원리는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방법을 통해 그는 지구의 둘레가 25만스테이드라는 것을 밝혔다.

포시도니우스와 에라토스테네스의 24만스테이드나 25만스테이드는 모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둘레와 놀랄만큼 비슷한 수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훨씬 더 작은 지구의 크기가 이들의 수치를 대체하게 되었다.

먼저 스테이드의 단위가 바뀜에 따라 혼란이 오게 되었다. 원래 그리스인들은 1스테이드를 600피트로 사용했는데 1푸트(foot)가 얼마냐에 따라 1스테이드가 얼마인가가 계속 다르게 결정되었다.

AD 1세기 초엽의 스트라보(Strabo)란 학자는 포시도니우스가 측정한 24만스테이드를 18만스테이드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1스테이드가 원래의 4분의 3값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트라보의 시대에만 해도 18만스테이드란 포시도니우스의 24만스테이드와 똑같은 값이었으나, 이후 사람들은 이 점을 잘못 이해하여 지구의 크기를 포시도니우스가 측정한 크기의 4분의 3 정도의 크기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콜럼부스, 지구둘레를 2만여마일로 착각

중세 발엽에 이르러 혼란을 가중시킨 책이 한권 출판되었다. 널리 알려진 신학자 '피에르 데이이'(Pierre d'Ailly 1350~1420)의 '세계의 이미지'란 책이 1480년경 출판되었던 것이다. 데이이는 이 책에서 지구의 둘레에 대한 세가지 다른 입장을 기술하고 있다.

첫째 주장은 지구둘레를 40만스테이드라도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치이고, 둘째는 에라토스테네스의 25만스테이드였다. 에라토스테네스의 값은 아리스토텔레서의 값보다 훨씬 정확하긴 했지만 실제 수치보단 조금 큰 값이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세째번 수치였다. 데이이는 아랍인이 기록한 세째번의 지구둘레값을 기록하고 있는 데 이는 위도 1˚를 56$\frac{2}{3}$마일로 계산한 것이었다. 따라서 1˚가 56$\frac{2}{3}$마일이기 때문에 지구의 둘레는 56$\frac{2}{3}$×360=20,400마일이 된다. 이 20,400마일이라는 제일 작은 수치가 콜럼부스가 항해를 시작하기 10년 전쯤 출판된 데이이의 '세계의 이미지'속에 가장 최근의 수치라고 기록되어 있다. 콜럼부스를 자극하였던 값은 바로 이 20,400마일이라는 수치였다. 여기에 콜럼부스는 스페인과 인도가 하나의 대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거듭해서 반복했다. 스페인과 인도 사이에 하나의 대양 밖에는 존재하지 않고 또 지구 전체의 둘레가 20,400마일 밖에 되지 않는다면 대서양을 항해해서 인도에 도착하는 것은 단 며칠 밖에는 걸리지 않는 쉬운 일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왕과 여왕을 설득시켜 여행에 필요한 지원을 얻어낼 필요가 있었던 콜럼부스에게는 이번 항해가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가능하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측정된 지구크기에 비해 볼 때 무척 쉬운 것임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콜럼부스는 이를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계속 이용했지만, 그가 사용한 것은 지구의 둘레가 40만스테이드라는 언급이 아니라 스페인과 인도가 하나의 대양만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잘못된 주장이었다. 또 그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주장하고 지구의 크기를 말하기도 했지만 그가 보았던 것은 근대적인 지구의 크기도 아닌 중세 사람들의 지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발견이 일반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꿔 놓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콜럼부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보고 지구 끝에는 낭떨어지가 있다는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콜럼부스의 항해 직후 이탈리아의 항해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1454~1512)가 아메리카 본토를 처음 발견하고 이 지역의 지도를 작성했다. 사람들은 이 곳이 인도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만, 새로운 대륙의 발견에 환호했다. 그러나 그들은 콜럼부스의 생각처럼 지구가 작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1500년대 초엽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공처럼 둥근 모양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지구의 크기도 지금 우리가 아는 정도의 크기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더 남은 상태였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과는 달리 지구가 운동한다는 사실은 증거를 찾기가 매우 힘든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정지해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지동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며 또한 자전한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밝혀낸 사실이었지만,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도 '지구가 혹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약간 뒤의 '아리스타쿠스'(Aristarchus)는 지구가 자전뿐만 아니라 1년에 한바퀴씩 태양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천문학적인 증거를 결여하고 있었지만 당시로는 획기적인 주장이었음에 분명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모든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돈다는 생각을 강력히 부정했다. 이들이 지구가 운동한다는 생각을 부정했던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가지 때문이었다.

먼저 무거운 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의 중심이 곧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인데, 만일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한다면 지구의 중심이 곧 우주의 중심이 아닐 것이고 따라서 무거운 물체가 지구로 떨어지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둘째 이유는 지구가 자전을 하면 (그것도 상당히 큰 지구가 하루 한바퀴 회전을 하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인간이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느낄텐데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또 지구가 돌면 지구위의 물체는 모두 하늘로 튕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천문학적으로 지구의 운동이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구가 겨울의 위치에 있을 때와 여름의 위치에 있을 때(즉, 180˚공전했을 때) 분명히 별을 보는 각도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각도차(이것을 천문학에선 視差라고 한다)가 관측되지 않았다. 특히 이 세째번 증거가 천문학자들로 하여금 지구의 운동을 부정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곤 했다.

고대의 지동설은 이처럼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렇지만 코페르니쿠스 이전에 지구의 운동을 생각한 사람으론 '아리스타쿠스' 이외에도 중세의 몇몇 과학자들이 있었다. 대개 신학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를 연구했던 중세 과학자들중 '뷰리당'(Buridan, 1300~1358)과 '오렘'(Oresme, 1325~1382)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뷰리당은 만일 지구가 자전을 한다면 천체의 운동이 훨씬 간단해지리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왜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의하면 지구는 정지해있고 달 태양 행성 별의 천구가 모두 회전해야만 했다. 별의 천구와 같이 엄청나게 거대한 천구가 하루에 한바퀴씩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보다 지구가 하루 한바퀴 자전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 뷰리당의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뷰리당은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가 지구의 자전을 부정한 이유는 '쏘아올린 화살의 문제' 때문이었다.
만일 지구가 자전한다면 수직으로 높이 쏜 화살은 땅에 떨어질 때 쏘아올린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떨어져야 했다. 왜냐 하면 화살이 공중에 떠있는 동안 지구는 자전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게 쏜 화살은 항상 그 자리에 떨어지기 때문에 지구가 자전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그는 결론지었던 것이다.

오렘도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해 달 별과 같은 모든 천체가 회전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뷰리당의 '화살'도 지구 자전에 대한 반대증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렘은 지상에서 쏜 화살은 지구와 함께 회전하기 때문에(즉, 지구의 운동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제자리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비추어 볼 때 오렘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에 한발짝 전까지 접근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오렘 역시 결론적으로 지구 자전을 부정했다. 그 이유는 신이 지구를 정지하게 창조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기독교 교리가 지구의 자전보다 천체가 하루 한바퀴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때문에 오렘은 코페르니쿠스의 선구자가 될 뻔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보통사람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못한 중세 신학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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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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