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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병 고3병 대4병

불안의 심리학

이 기형 질환이 발생하는 것은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성적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그 진짜 원인은…

필자의 스승인 고 한동세교수가 1972년에 발표한 논문이 있다.

'한국의 교육열이 빚어낸 신종병'(新種病)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는 '고3병과 중3병'이라는 제목아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가위 거족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하고 심각한 오늘날 한국의 신경증적 교육열과 이에 따르는 어린이들과 젊은이의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하기 그지 없다. 이를 주목해온 저자는 최근에 상급학교 진학과 연관된 신경증적 정신증적 증세들을 경험하였기에 이들은 새로운 증후로 명명하는 것이 정당하리라 생각하고…"

그후 18년-수없이 문제를 논의해 왔으나 뚜렷한 해결책 없이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중3병, 고3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더구나 사회의 급격한 변천은 대4병이라는 또 다른 증후군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증례를 들어 보고 같이 문제의 해결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부모의 무리한 요구가 스트레스가 되고

 

언니와의 경쟁심리가

김양은 모 여중 3학년. 금년 3월초 갑자기 손발이 저리고 목을 전혀 가눌 수 없다는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관계가 있는 두세 과(科)에서 진찰과 검사를 했으나 특별한 이상이 없고 호소하는 내용이 해부·생리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아 정신과에서 이 학생을 맡게 되었다. 다소의 저항이 있었으나 가급적 짧은 기간이라는 단서를 붙여 김양은 입원을 하게 되었다.

관계가 있는 두세 과(科)에서 진찰과 검사를 했으나 특별한 이상이 없고 호소하는 내용이 해부·생리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아 정신과에서 이 학생을 맡게 되었다. 다소의 저항이 있었으나 가급적 짧은 기간이라는 단서를 붙여 김양은 입원을 하게 되었다.

김양은 언니와 남동생이 있었으며 중상류층에 속해 있었다. 아버지는 큰 회사의 부장이었고 어머니는 교사로 근무하다가 얼마전부터 집안 살림, 특히 자녀들 교육에 전념하고 있었다.

학교성적은 간혹 1등을, 대개는 2~3위를 줄곧 유지해 왔다.

3학년이 되자마자 김양은 어머니에게 담임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외에는 특별히 발병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보호자들로부터 듣지 못했다.

필자는 김양을 규칙적으로 만나서 심리적 측면의 치료를 시작했다. 한두번 만나서 자기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입장에 치료자가 있다는 느낌이 들자 김양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우선 김양은 내심 1등을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부족과 아울러 2등의 자리를 뺏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마침 늘 경쟁의 위치에 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는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에게는 눈길 한번주지 않자 심한 수치심과 질투를 느겼다고 했다.

그 친구와의 관계는 심리적으로는 언니와의 경쟁심과도 연결이 된다. 자녀들에게 언제나 공평히 대한다고 김양의 부모는 말해 왔다. 그러나 언니는 첫 딸이고 동생도 남자여서 그런지 부모가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고 김양은 불평했다. 자기에게는 무언가 차별대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곧 있을 모의고사에서 2등의 자리까지 뺏기면 부모는 '나를 더욱 우습게 알텐데…' 하는 불안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가 급기야 손 발 목의 불편함으로 표현된 것이다.

혹시 떨어질지도 모르는 성적에 대한 변명이 가능했고 주위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 욕구도 보태졌을 것이다.

김양의 경우 진단명은 히스테리성 반응으로 분류됐으나 가족들의 협조로 치료효과는 좋았다.

초라한 모습을 떠올리고

이양은 모 인문여고 2학년이었다. 한창 대학입시로 술렁이던 지난 해 2월 말 가슴이 뛰고 조그만 일에도 잘 놀라고 잠도 잘 못잔다고 해서 어머니와 함께 인근 병원에 찾아 갔다. 그 병원에서는 신체적으로 별 탈이 없고 입시병이니 참고 견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노력했으나 증상이 계속돼 필자를 찾게 되었다.

"어떻게 오게 됐느냐"는 질문에 어머니가 먼저 나서며 "글쎄, 우리 애가…" 하며 경위를 설명하려고 했다.

"본인 이야기를 즘 들어볼까요" 하며 눈길을 이양에게 주었으나 조금 머뭇거리자 어머니가 다시 나서려고 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진찰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면담을 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퍽 인상적이었다.

이양의 성적은 반에서 5~6등. 그러나 그 성적으로는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갈까말까한 정도라는 게 주위의 평가였다.

1년 후에 있을 '입시지옥'을 떠올린 이양은 서울에서 밀려나 시골에서 고생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초라한 모습이었다.
창피할 거라는 느낌보다 어머니의 열성에 보답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작게 보였다.

모든 걸 챙겨주고 이끌어주던 어머니에게 무슨 낯으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버지한테도 마찬가지다. 별 말씀이 없지만 자기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게 분명한데 쫓아갈 자신은 없고….

특히 이양의 어머니는 "여자도 좋은 대학을 나와야 시집을 잘 간단다. 네 능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고 말고. 또 내가 열심히 같이 뛸테니 그 점은 염려마라. 옆집 애도 고2 때는 너만도 못했단다. 고3 때 악착같이 하더니 좋은 대학엘 가지 않았니." 하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양은 미리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강하게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한풀이를 위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박군이 정신과를 찾게 된 것은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박군의 선언에 놀란 아버지에 의해서였다.

그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선 박군은 고운 눈초리가 아니었다. "내 문제인데, 무엇하러 물어 보세요" 하는게 한참만의 대답이었다.

병이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고, 혹시 자퇴보다는 휴학같은 잠정적인 해결방법이 있다면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라는 간곡한 설명이 있은 후에야 박군은 말문을 열었다.

"도대체 교육이 뭔지 모르겠다. 선생님들은 홍익인간이 어떻고 하지만 실제로는 공부 잘 해서 일류대학 들어가라는 압력밖에는 없다. 또 교육자답지 않은 선생님도 많다. 돈봉투가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요즈음은 이해할 것 같다. 그런 분들한테 무얼 배우겠느냐.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문을 두드리는 게 오히려 거짓이 없고 효과적인 것으로 믿는다."

그는 그럴듯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갔다. 박군의 이야기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우리나라 교육 혹은 교육자에 대한 평가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을 때의 부수적인 문제 등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현명치 못한 판단임을 설명했다. 필자는 상당히 반항적인 박군의 태도 이면에 혹시 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를 살펴보기 위해 이야기를 이끌어 보았다.

과연 박군의 조그만(?) 반항 뒤에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려운 처지에서 자수성가한 분이었다. 그게 큰 자랑이면서도 그는 자기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실에 대해 늘 한(恨)이 있었다.

박군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고급 관리가 되든지 경영학박사가 돼 자기 사업을 잇는 게 소원이었다. 그는 쪽 그렇게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공부에 필요한, 또 출세에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할 준비도 돼 있는터에 박군이 '언어학'이라는 듣지도 못하던 전공을 택하겠다고 하자 그는 아들을 심하게 야단쳤다. 정규 고등학교에서 정규 대학의 인기학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가치관에 박군도 일단 반기를 들었다.

노사문제를 질문하자…

최군은 대학 4년의 과정을 마쳐가는 작년 11월 초에 제법 큰 회사의 공개채용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다.

대략 3배수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시험에 회사에서는 꽤 큰 비중을 두는 듯했다. 최군에게도 세명의 시험관이 이것저것 의견을 물어 왔다.

우선은 노사문제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최군은 비교적 솔직한 태도로 대답을 이어갔다. 대학생활에서 받아들인 생각을 거짓없이 토로했던 것이다. 기성세대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자연히 노동자 편에 서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은 어느 정도 오래 그 회사에 몸을 담을 것인가를 물어 왔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이 사회 초년병으로서 일하는 보람보다는 불만을 토로했던 소주파티 때의 대화들이 떠 올랐다. 최군은 회사의 경영방침과 부딪칠 때는 시정을 촉구해보고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다 합리적인 회사로 언제든 떠나가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면접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를 잘 아는 최군이었으나 막상 대화가 시작되면서 가면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앞섰다.

최군에게 날아든 것은 불합격 통지서였다. 수일간을 방황하던 최군은 점차 멍해지는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산다는 게 무얼까, 사회라는 게 또 어떤 것일까. 학문을 마치고 독립된 길을 가는 성인의 길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걸까.

실패를 모르고 또 주위에서 친구들이 하는 것은 웬만큼 집적거려 보았던 지난날들이 영화의 필름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노사에 대한 의견, 회사라는 조직체에 대한 충성. 그런 게 어떻게 한 시간의 대화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속은 답답해지고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게 되고 의욕도 없어겼다. 다시 힘을 내야 할텐데라는 중얼거림이 공허해겼다. 최군은 짧은 시간이지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야했다

「시키고」가 사라져야
 

좁은 취업문이 신종 정신질환인 대4병을 일으킨다.
 

김양 이양 박군 또 최군의 간단한 예들이 중3병 고3병 대4병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선 생각해 볼 문제는 중3병 고3병이 반드시 성적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성적에 대한 직접적인 불안이나 불만이 문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적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는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가치관 교육관이 숨어 있다. 이와 더불어 부모와의 갈등 혹은 형제자매들과의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또 성적이 좋고 나쁘고가 문제가 아니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당사자들의 태도가 병적인 현상으로 확대될 지의 여부를 판가름하기도 한다.

나타나는 양상도 아주 다양하다. 앞서의 예들은 주로 신경증적인 경우를 들었지만 두통이나 소화장애, 막연한 피로감 등 신체생리적 불편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 때로는 자살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공부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음주, 본드나 부탄가스 등 약물남용, 가출 등의 비행으로 나타나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기 한다.

이러한 양상은 어떤 경우 심리 내부에는 우울이 있는데 그걸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를 '가면성 우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박군의 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또 대4병이라는 증후군은 중3·고3병과 무관하지 않다. 성인으로서 사회에 나갈때 어떻게 적응해야 되는지를 잘 모르는 것은 사회에 일관된 일류대학 지향의 가치관에 엄존하는 한 당연한 결과다. 성적을 어떻게 올리느냐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배운 적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삶의 주기로 보아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

우선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함이 중요하다. 재수생의 문제, 해당 학부모들의 문제까지 포함한다면 이런 인식의 중요성은 더욱 가중된다.

국가적으로는 일류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물론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더욱 실질적인 계획과 추진이 요구된다.

이에 못지 않게 학무모들이 눈을 떠야 하는 점도 많다. 자녀들에 대한 기대가 허영과 체면유지의 수단이 아닌지 또는 내가 못 푼 한(恨)을 덮어 씌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을 냉철히 생각해 될 필요가 있다.

또 자녀들의 능력을 무시한 압박도 문제다. 겉으로는 건강하기만 하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물론 그런 고통을 앓는 당사자들이 좀더 여유를 갖고 입시 혹은 사회출발이라는 스트레스를 처리토록 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하지만 가족 교사 선배 동료 등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형식적이 아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명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고등학교 2, 3학년 쯤 됐으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 주는 게 필수적이다.

'판사를 시키고' '의사를 시키고' '공부를 시키고' 하는 따위의 '시킨다' 하는 말이 없어질 때 고3병의 많은 수는 줄어들 것이다. 아마도 대4병도 함께 없어지리라 믿는다.

공부는 시키는 게 아니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삶도 살아주는 게 아니고 살아가는것이다. 이 점이 분명해질 때 우리 사회의 기형적 질환이 사라질 것으로 확신한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현우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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