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90년대는 과학발전과 관련, 꿈같은 시대로 상상되어 오던 21세기로 향한 문턱이기 때문에 더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의학에서 꿈같은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까?
인터루킨-2의 활약 무대
과학은 냉정한 현실일 뿐 꿈같은 신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앞으로의 의학발전이 지지부진할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불로초 불사약을 제공할 수 있는 기적은 없겠지만 환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진단 및 치료법의 발전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서운 질병의 예방법과 관련해서도 앞으로 10년간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
의학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기초의학이 발전해야 임상의학이 뒤따라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간 기초의학은 과거 10년간에 비하여 손색없을 정도로 빨리 발전할 것이다. 특히 유전자에 대한 지식증대, 분자생물학의 실질적인 발전 등에 힘입어 90년대에는 여러 질환의 근본원인을 규명하는 데 많은 진보가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사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하긴 했지만 근본원인에 대하여는 별 지식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동맥경화증이 가장 중요한 성인병의 하나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으나 근본원인에 대하여는 상세히 규명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80년대 분자생물학 등의 발전에 힘입어 단핵세포 대식세포 혈소판 등의 역할 및 각종 분자물질의 작용에 관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식이 축적되었으므로 90년대에는 이러한 기초지식을 이용, 동맥경화의 근본원인을 겨냥한 치료법 및 진단법의 개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많은 기초의약분야에서 큰 발전이 기대되지만 실제 의학발전의 영향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임상의학부분으로 이야기 방향을 돌리기로 한다.
21세기를 맞는 인류의 안녕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의 치료에서 현재 치료효과가 인정되고 있는 것은 애석하게도 AZT 뿐이지만 90년대에는 α인터페론 인터루킨-2 등의 치료효과가 충분히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또 AIDS바이러스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어 환자에게 도움을 줄 전망이다. 또한 예방효과가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 의해 치료와 예방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90년대에도 AIDS에 대한 대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마약사용금지와 건전한 성생활의 장려 등이 될 것이다.
암의 진단분야에서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도 각종 혈액검사 면역학적검사 세포스캔법 양전자방출단층촬영 전산단층촬영 자기공명촬영법 등을 통한 진단이 용이해져 조기진단에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암의 치료에서는 90년대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조기에 시행하는 수술요법의 효과가 가장 좋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기진단법의 발전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기수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종양유전자에 관한 새로운 업적으로 인해 일부 암의 발병원인이 더 확실히 규명되고 그에 따라 예방과 치료법에도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항암화학요법의 경우,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난 새로운 약제의 개발이 예상되나 더 기대가 큰 분야는 인터루킨-2 등 생체반응조절물질(BRM) 등을 이용한 면역요법이다. 이미 개발되어 있는 유전자재조합술을 이용, BRM을 대량생산할 수 있어서 비용이 훨씬 절감될 수 있을 것이며 치료방법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종양특이항원을 겨냥하는 단클론항체의 발전에 의해 역시 진단과 치료법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발전에 병행,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발생빈도를 보이는 위암 간암 등의 예방과 조기치료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그 결과로 10년 뒤가 되면 폐암의 발생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므로 그에 대비, 금연운동 대기오염억제를 위한 노력 등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뇌사관련법에 묶여
심장질환과 관련, 80년대에 가장 눈부신 발전을 보인 분야의 하나가 풍선카데터를 이용한 치료법이었다. 70년대 중반까지 동맥경화증에 의해 관상동맥이 협착되어 협심증이 발생되고 약물요법의 효과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에는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70년대말부터 시작된 풍선을 이용한 동맥성형술이 80년대에 크게 발전, 상당수의 환자가 수술의 고통을 받지 않고도 큰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90년대에는 단순히 풍선확장에 의해 혈관을 성형하는 단계를 넘어 지금 초보단계에 있는 레이저법 고온법 절단법 등이 현저히 개선될 것이다. 따라서 치료성적을 더 호전시키고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의 수를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판막질환의 풍선치료와 인공판막수술의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은 판막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90년대에는 전산학과 전자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각종 진단 및 치료기구가 소형화 고성능화 되고 가격이 저렴해져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상당한 검사시간이 소요되는 전산화단층촬영 자기공명촬영 등도 고속전산이 가능해져 순식간에 영상을 얻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또 정밀도가 개선되어 암의 조기 진단, 각종 질환의 정확한 진단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인공장기분야에서도 인공혈관 인공판막 인공심박동기 등 간단한 장치에서부터 혈액투석장치 인공심장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이 이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로운 소재의 개발, 구조 및 기능의 개선 등에 의하여 더욱 안전하고 세련돼질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인공 혈관은 직경이 6㎜ 이하가 되면 곧 막혀버려서 어려움이 뒤따르나 앞으로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면 훨씬 작은 크기의 혈관수술도 가능해질 것이다.
또 인공심장이 장기간 사람심장을 대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현재에 비해 훨씬 더 오래 기능할 수 있는 형태로 개선되어 심장이식수술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에게 소생의 기회를 증가시켜 줄 게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심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미국에서 특허까지 얻은 상황에 있으므로 90년대에는 실용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선진국에서 의료기구 및 재료를 수입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이식분야에서는 현재 기술적인 문제는 충분히 해결돼 있고 거부반응에 대한 대책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분야는 90년대에 더 발전될 것으로 기대되나 우리나라의 경우 뇌사판정의 법적인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간이식 심장이식은 비(非)의학적인 이유로 계속 제약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부분적인 간이식법 등의 발전으로 생사기로에 있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의학도 이제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90년대에는 단순히 선진의술을 받아들이는 수준이 아니라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 학문발전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