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부터 석사장교 연구요원등의 병역특례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과학기술인력의 양성을 위해 지난 73년부터 실시돼 오던 '병역특례제도'가 내년부터 대폭 축소개편될 것으로 알려져 과학기술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대학원이나 과학기술원의 진학을 눈앞에 둔 학생들은 이러한 결정이 진로선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전전긍긍해 하고 세간에는 '병역의무의 균등화'와 '과학기술인력양성'이라는 상반된 명제를 놓고 찬반논쟁마저 뜨겁다.
과학기술원생 석사장교 등 대상
국방부와 병무청은 현행 15개 부문 특례제도 가운데 자연계 교원요원 등 6개 부분은 완전폐지하고 나머지 9개 부문도 3개 부문으로 통폐합시켜 병역특례자의 수를 크게 줄인다는 골격의 '병역특례규제법'을 마련, 이번 정기국회에서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법안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알려진 내용은 대략 (표1)과 같다.
여기에서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연구요원 특례보충역. 과학기술원 학생들과 이른바 '석사장교'로 불리우던 특수전문요원 그리고 자연계 연구요원과 학술특기자까지 합쳐 4개 부문을 하나로 통합하고 대상인원도 대폭 축소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막연히 '대학원 또는 과학기술원에 진학하면 병역문제가 해결되겠지'하는 생각은 버릴 수밖에 없게 됐다. 졸업 후 또한번의 보다 치열한 선발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석사장교의 경우 '특수전문요원선발시험'에 합격하면 누구나 특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 시험은 없어지고 대신 병무청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병역특례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자격요건이 석사 이상으로 격상되고 의무복무 기간도 5년으로 일원화된다.
대학졸업 후 기간산업체나 방위산업체에 들어가 5년간 의무복무하는 기능요원부문도 앞으로 그 문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올해부터 군입대 연령층의 숫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고 석사장교제도 등을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풍조마저 번지고 있어 병역특례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교원요원 RNTC 농촌지도요원 등은 제도를 만들 당시와 달리 그 필요성이 소멸돼 제도자체를 폐지하게 됐으며 유사한 특례제도를 세분하여 중복과 불균형이 극심하게 드러남에 따라 크게 3가지로 통폐합하게 됐다고 밝혔다.
"과학인력 양성을 위축시킬 것"
병역특례제도의 대폭축소를 바라보는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반드시 일정하지만은 않지만 대체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해 이제 어느 정도 선진국과 대등한 차원에서 경쟁할만한 단계에 들어섰는데 인력육성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기초과학이나 첨단기술 분야에서 3년간의 공백은 연구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과학기술원교수일동은 "병역특례제도의 변경은 과학기술원의 연구 및 인력양성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 제도를 현행대로 계속 존속시킬 것을 관계당국에 건의했다.
조장희교수(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과)는 "노벨물리학상 역대 수상자 44명중 38명이 20대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9명이 33세 이전의 연구업적으로 수상했다"고 전제하고 "과학기술원 학생이 정상적으로 과정을 이수할 경우 28~29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데 병역특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부득이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원의 병역특레제도가 없어지면 과학기술원이 일반 대학원보다 더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매력이 사라져 과학고→과기대→과학기술원으로 이어지는 영재교육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내부고민도 없지 않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대학원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석사장교제도가 실시된 82년 이후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공계학과의 경우 석박사과정의 연구활동이 어느 때보다 왕성했는데 이 제도가 폐지되면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것.
서울대생 김영준군(전기4)은 "예년처럼 대학원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지만 석사과정을 마친 후에 특례혜택을 못받는다면 차라리 지금 입영하는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산업계에서도 병역특례 대상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데에 대한 반론이 분분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최근 "지난 3년 동안 기업연구소 연구요원 특례대상은 1천2백명으로 동결된 반면 연구소 수는 2백90개에서 6백4개(88년말)로 2배 이상 늘어나 오히려 규모의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간기업에 주어지는 특례대상인원은 재벌급 기업에만 집중돼 더 불리한 여건에 있는 중소기업에는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등 '이권화'되는 경향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그동안 병역특례제도를 임기응변식으로 만들고 파행적으로 운영해 왔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의무조항이 휴지화하기도
가장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석사장교제도의 경우 특례대상의 선발은 국가시험을 거치므로 비교적 공정했지만 전역 후 아무런 의무조건이 없어 무조건적인 특혜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특례혜택을 받고도 취업을 못하거나 관리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56%나 되고 불과 40%만이 전공학문에 계속 전념한다는 것.
과학기술원을 졸업하면 과기처장관이 정하는 곳에 3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강제조항이 있지만 '20대박사'는 양산되는 반면 이들을 수용할 교육연구기관은 부족해 이러한 규정은 아예 지킬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사장교의 경우 80년 '국보위'가 대학정원을 크게 늘여 교수수가 부족하자 교수요원 확충계획의 하나로 시작됐다. 맨 처음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만 대상으로 하려던 계획이 다른 대학의 반발로 모든 대학으로 확대되었다.
또 지난 86년에는 석사장교대상자 선발과정에서 성적은 합격권에 들었지만 시위전력이 있는 30여명을 무더기로 탈락시켜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병역특례제도가 사회적인 형평성을 잃고 또다른 특권의식을 낳는다는 점은 경계해야 하지만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기술경쟁시대에 우리만이 뒤쳐지는 질곡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