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성생활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도록 교육해야겠다.
성교육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성생활에 관한 바른 지식과 이해를 위한 교육이다. 그러면 유독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성생활이란 무엇인가? 성과 관련된 행위의 차원에서 본다면 인격의 한가지 통합기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생물학적(신체적) 정신심리적 행동적 임상적 사회문화적 그리고 윤리도덕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다차원적 복합적 행위이다.
따라서 인간의 성생활에 관한 교육 역시 그리 간단할 수 없고 복잡하다.
사실 성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비추어 성교육은 역사적으로 매우 지지부진하였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 시대와 사회의 성관(性觀)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신성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성은 특수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삶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간주하였을 뿐 오늘날처럼 성교육이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자연환경에 접해 살고 있었으므로 동물들의 생식현상을 관찰할 기회가 충분히 많았다.
가정생활 환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욕이나 잠자리를 한 곳에서 같이 하고 결혼과 임신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집에서 출산했던 것이다. 또 오늘날 같이 개인적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성교육에 비판적이었던 루소
특히 사춘기에 도달하면 결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자연적인 성적 기능이 누구에게나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성적인 것에 아무런 거북함도 없었다. 또 성지식은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획득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약 2백년전 프랑스를 중심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은 인생에 있어서 특수하게 '천진한' 존재로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다. 성적인 것은 다 추하고 위험한 것이고 자위행위는 건강을 심히 해치는 것이므로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인세계의 성적 유혹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된 것이다.
유명한 사상가 루소는 모든 아이들은 극히 '천진난만'의 자연적 상태로 태어나고 가능한한 오랫동안 이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고 성적 무지가 축복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교육자는 사춘기 이후에만 그것도 성에 관한 직접 질문에 국한하여 대답해 주는 것이 합당하고, 성기나 성적 기능을 배설기관과 연관시켜 혐오스러운 것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되도록 '추한' 용어를 사용해 성을 표현하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연애감정을 노골적으로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계 교육자들은 어린이는 순수하고 성이 어린이에게 위험한 것이라는 루소의 기본적 견해에는 동의하였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 했다. 조기 '성계몽'이 성의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는 유일한 효과적 방법이라고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성적 무지가 성지식 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성적 무지는 성에 대한 해로운 오해와 허황한 성적 공상을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또 자위행위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성에 대한 자유로운 토의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교육이 불쾌한 면을 지니긴 하지만 그래도 필요악으로 여겼다.
이러한 일반적 견해에 따라, 일부 진보적 학교에서 최초의 공식적 성교육 수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성교육의 목적은 성에 대한 경외감을 일으킴에 있었다. 성교육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데 성적 쾌감에 대한 암시는 적극 피했다. 또 특수한 구체적인 것을 배제하고 임신과 출산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는 정도였다. 간단히 말해서, 성교육의 진짜 목적은 성적 유혹에 대해 경고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성이 지하로
그러나 이러한 성교육의 태동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구미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후 성적 억압은 더욱 심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에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에 있어서도 성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는 금물이었다. 이같이 지나친 성적 억압은 한편 사회내부에서 비밀리에 성적 집착을 강하게 하였다. 성에 대해 공공연히 언급할 수는 없었어도 성이 지하의 위협적 세력으로 대두되었다. 그 결과 성지식 결여, 그릇된 성정보의 보급, 자위행위에 의한 병발증의 발생에 관한 오해, 심한 죄악감과 수치감, 성적 갈등의 유발과 이로 인한 질환의 발병(노이로제 정신신체질환 성기능장애 및 성도착증 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각종의 문제들은 또한 불행한 결혼, 원하지 않는 자녀의 출산, 소비적 삶 등 사회로 하여금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하였다. 그 결과 성교육에 대한 전적으로 새롭고 포괄적인 접근의 길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보다 조금 앞서서 구미에서는 '결혼독본'이 많이 출간되었다. 이들 교본은 성에 대해 매우 이성적 태도를 취하였고 각종의 피임법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이 성교본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았다. 이러던 가운데 콘돔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결국은 가족계획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 특히 천주교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초기에는 성교육에 대해 어떠한 공적 입장도 취하지 않았으나 급속한 산업화와 국가주의로 인구정책이 나오자 늦게서야 성교육 문제에 개입하였다. 이를 흔히 피임과 '비도덕적' 성행위에 대한 기독교 개혁운동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교육에 대한 사회내 저변의 저항은 매우 완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프로이드 박사, 미국의 벤자민린지 판사, 마가렛 싱거 박사,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 교수, 미국의 연방가족계획협회 성정보교육협의회(SIECUS), 그리고 국립성광장이 성교육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로부터 성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인식되어 성교육의 토대가 정립되었는데,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성교육을 누가 어느 기관에서 담당하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복수적 가치를 허용해야…
현실적으로 요즘의 어린이들은 성에 관한 많은 정보에 노출(TV 비디오 영화 에로서적 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부모나 학교에서는 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린이들 스스로가 해석하지 못하게 한다. 또 어린이들이 성지식의 대부분을 친구들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을 꺼림직하게 여긴다. 그릇된 성지식을 얻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와 학교와 각종 활동기관이 성교육을 담당함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모의 성교육이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현재 부모가 연령에 적합한 성정보를 자녀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해부 및 생식에 관한 가장 초보적인 사실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성교육이 청소년이 될 때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는 문제가 따른다.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학교에서 성교육을 시킬 것을 주장하는 측과 학교에서는 성교육이 불필요하고 현명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측이 공존했다.
후자의 주장은 어린이들을 성정보에 노출시킴으로써 어린이들에게 불필요한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성급하게 성적 행위에로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데 근거한다. 성에 대한 가르침은 도덕적 및 종교적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가정이나 종교기관에서 담당해야 된다는 견해였다. 설령 학교에서 행하는 성교육이 자료와 교육의 질 면에서 최선을 다 한다 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고 성과가 아주 불량하다는 것이다.
하여튼 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보는 10대가 될 때까지 어린이들은 너무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어린이들에게 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가르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필자는 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기다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성교육은 유아 때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물론 어린이의 연령에 적합한 방식으로 성교육을 하여야 함은 다른 교육에서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성교육의 내용은 1970년 '미국연방음란 및 도색물위원회'가 대통령과 의회에 보낸 공식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대중적 성교육 활동을 시작하여야 한다. 성교육은 성이 인생의 정상적 자연적인 부분이고 자신을 성적 존재로 받아들이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정통성 보다는 복수적 가치를 허용하도록 계획되어야 하며,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또 생물학적 생리학적 정보를 포함할 뿐아니라 심리학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정보를 포함하여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 뿐아니라 성인을 망라한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 짧은 문구는 근대 성교육의 목표와 방법과 내용에 대해 매우 잘 언급하고 있다. 아울러 성교육의 분별있는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성교육은 성을 과거에 자주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던 것 보다 긍정적임을 인정하게 한다. 인간의 성생활을 거부하기 보다는 수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문화에서 성교육은 다른 교육과 마찬가지로 독단적(교리주의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 성교육은 생물학적 '사실'(생식기의 해부생리와 성적 반응들에 대한 설명)과 그 이상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식의 좁은 범위를 넘어서서 성적 감정, 공상 쾌감 신념 미신 그리고 성기능장애를 포함하여야 하며, 사회나 역사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 성적 태도, 에로예술, 성관련 법령을 논의에 포함시켜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출생 직후부터
현재의 많은 성적 불행이 성적 무지에서 초래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일부의 성관련 사회문제가 바르지 못한 성정보(성적 오해와 편견)의 결과로 생긴다. 또 정상적인 신체기능과 기본적 인간 행동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모든 인간관계를 해치는 성기능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성교육은 성기와 그 기능에 대한 이론적 지식보다 그 이상을 요구한다. 아울러 성교육은 끝없이 발전하는 인간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관한 이론과 동시에 실천을 가르친다. 간단히 말해서, 성교육은 모든 의미에서 성적 존재로서의 전인적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성교육은 출생 직후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아는 자신의 신체와 신체적 반응에 익숙해야 하고 애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또 해부학적 성에 일치하는 심리적 관념(성별관)을 발달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성별에 따른 역할이 강요되고 상투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린이가 관심을 갖는 주제에 관한 정보는 보류되어서는 안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개인적 문제는 개인적인 것으로 보장되어야 하나 그 이외의 것은 차단되거나 감추어져서는 안 된다.
또 성교육은 필수적으로 도덕적 가치와 관련된다. 따라서 성교육은 부모의 특권이고 또한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이러한 중차대한 일을 회피하기 일쑤다. 대개는 학교에다 미룬다.
학교는 오히려 좀 더 폭 넓게 성교육을 시킬 수 있다. 실제로 생물학적 심리학적 법적 역사적 문화적 성지식을 가르치는데 공헌하고 있다.
물론 성지식의 보급이 가정과 학교에서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교회 각종 청소년기관 적십자사 가족계획협회 각종 클럽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의 성교육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생식기의 구조와 발달, 월경과 월경대 착용, 생식과 피임법, 성명과 그 예방책 등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이러한 성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생식과 피임에 초점을 두기도 하고 성의 정서적인 면 및 인간관계적인 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성교육 프로그램은 많은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교육 프로그램상에 심각한 결점이 내포돼 있는 것이 종종 눈에 띈다.
청소년들이 성적 호기심과 성적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성교를 하는 수가 있다. 사회적 공인없이 하는 성관계인 만큼 즐겁거나 교육적일 수 없다. 또 성적 배우자 역시 같은 연령층이고 성적으로 경험이 없고 불안정하므로 교육적인 체험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특권인 만큼…
성인에서의 성교육의 주경로는 여러 종류의 대중 매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대중잡지나 도색물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같은 성지식의 획득은 득보다는 해가 많다. 과거에는 의학서적 백과사전 결혼입문서 성교본 교리문답 교서 기도서 등에도 해로운 오보가 많아 성적 편견을 조장하고, 순진한 사람에게 성기능장애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있어서 이러한 종류의 성적 대중매체가 매우 위험한 악영향을 줌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성교육의 정의 등장배경 필요성 대상 내용, 그리고 현재의 성교육상 미비점을 살펴 보았다.
끝으로 성은 신성한 인간의 본성이고 누려야 할 특권인 만큼 성을 금기시 혹은 외면시 하지 않고 잘 터득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말초적 순간적 쾌감을 위해 남용하여서는 안된다. 성생활은 누구와 '더불어서' 하는 행위인 만큼 친교(親交, intimacy)와 의사교통을 또한 잘 학습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