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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킹콩'은 22개의 소리를 사용해 의사를 전달한다.

연전에 '킹콩'영화가 들어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이 있었다. 영화관앞에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몰려 들어 연일 장사진을 이루곤 했다.

온 몸이 털투성이인 킹콩은 얼굴도 험상궂게 생겼을 뿐만아니라 힘 또한 엄청났다. 그가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서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면서 닥치는대로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며 전투기를 손으로 떨어뜨리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 무법천지의 주인공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영화에 불과했지만 그의 괴력 앞에선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무시무시한 완력을 과시하는 킹콩에 대해 어떤 신비감마저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는 킹콩이 실제의 동물이 아니고 다만 고릴라를 과장해서 재미있게 꾸민 상상의 동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웬지 킹콩에 대해 애틋한 정감을 느꼈다.

여하튼 고릴라는 '킹콩'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고릴라가 거주하던 창경원 동물원의 유인원사는 인기만점이었다. 우악스럽게 생긴 고릴라의 근엄한 모습을 보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서울대공원 아프리카 유인원관에 들어서면 거대한 고릴라 3마리가 특수유리창을 사이로 두고 종종 관람객들에게 횡포(?)를 부려 유리창에 안내문까지 붙여 놓았다. 물론 고릴라의 행동은 횡포라기 보다는 재롱에 가깝다. 이 덩치 큰 짐승의 재롱을 보고 관람객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금세기에 발견된 동물


고릴라는 매우 평화지향적이다.


1977년 9월 한창 유명해진 창경원의 고릴라가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이 고릴라는 복종심이 강하고 성질이 온순했는데 갑자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난동을 부리다가 손과 발에 큰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필자는 진료가방을 들고 고릴라가 있는 우리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외모가 워낙 사나워 나는 선뜻 우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손과 발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서있을 수도 없었다. 잔뜩 긴장한 채 사육담당자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주의깊게 접근했다. 그러나 고릴라는 오히려 겁먹은 표정으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양손을 머리에 얹은 채 흐르는 피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나의 눈치만 살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두려움보다는 애처러운 마음이 들어 다가가서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신속하게 외과적 처치를 한 뒤 주사를 놓으려하자 그는 다시 도망을 쳤다. 순간 진땀이 흘렀다. 나는 담당사육사와 함께 손짓 발짓으로 그를 달랬다. 그러자 고릴라는 다시 내게로 다가와 양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궁둥이를 내밀었다. 이렇게 시도된 치료로 상처가 치유되는듯 했으나 안타깝게도 재발이 거듭되었다. 무려 1년이 넘는 장기치료 끝에야 고릴라의 상처가 완치된 것이다. 그 고릴라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긴 후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에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고릴라는 로랜드고릴라와 마운틴고릴라의 두 아종(亞種)이 있다. 학명은 전자가 Gorilla gorilla gorilla이고 후자는 Gorilla gorilla beringei인데 둘다 유인원과(科) 또는 성성이과(科)에 속한다.

옛날부터 서부 아프리카 지방에선 인간과 닮은 거대한 괴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왔다. 고릴라의 최초발견자는 약 2천5백년전 고대 카르타고(아프리카북부의 고대 도시국가로 BC 146년에 멸망) 사람인 '한노'였다. 그는 서부 아프리카지방(지금의 가봉)을 탐험하던 중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털이 많은 '괴물'을 잡았다. 그는 괴물의 모피를 벗겨서 가지고 왔는데 그때 토인들이 그 동물을 '고릴라'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후 16세기말에 영국의 선원 '앤드류 베틀'은 포르투갈사람들에게 붙잡혀 서아프리카지방에서 수년동안 억류생활을 했다. 그는 억류기간중에 본 두 종류의 영장류에 대한 기록을 했는데 그 기록에는 고릴라를 '풍고'라고 부른 것으로 쓰여 있다.

오늘날 서아프리카지방에선 마운틴고릴라를 '응가기'라고 부른다. 로랜드고릴라는 가봉에선 '응기나' 또는 '엥게이나'로 불리우고 케마룬에선 '응기'라고 부르고 있다. 로랜드고릴라가 학계에서 인정된 것은 '사베지'와 '와이망'이 1847년 학술지(誌)에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고릴라를 포획, 동물원에 처음 옮겨온 일은 1855년 영국에서 있었다. 그러나 불과 보름뒤에 고릴라들은 모두 죽었다. 이때 동물원장 '하겐베크'씨는 사망원인을 '향수병'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운틴고릴라는 아프리카의 중심부에 살고 있는데 탐험가 '스피크'가 처음 소개했다. 그가 나일강 상류에 갔다가 원주민들로부터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 닮은 괴물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마운틴고릴라에 대한 첫 뉴스였다.
그후 1901년 독일의 '베링게'대위가 해발 3천6백47m의 사비니오산에서 고릴라 한 마리를 사살한 적이 있다. 그런데 2년 뒤인 1903년 '마치'라는 학자가 이 고릴라를 로랜드고릴라와는 다른 신종으로 규명하였다. 또 그는 베링게대위의 이름을 따서 학명을 붙였다.

결국 고릴라는 19세기 말엽에 와서야 비로소 세상에 자세히 알려진 셈이다. 특히 마운틴고릴라는 금세기에 발견된 몇 안되는 동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이 괴기한 유인원을 소재로 한 상상의 괴물 '킹콩'과 같은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됐는지도 모른다.

고릴라는 매우 평화지향적이고 사귀기 쉬운 동물이다. 이는 필자가 실제로 치료하면서 체득한 사실이다.
고릴라는 원주민들이 포위해서 공격하면 처음엔 도망을 친다. 하지만 대장이 죽거나 잡혀가면 나머지 가족은 손을 머리에 얹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날아오는 화살만 피한다. 이렇게 양순한 고릴라가 무시무시한 '정글의 악마'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고릴라는 사람을 만나면 늘 조용히 물러가 버린다. 다만 그룹을 지키기 위해서만 공격한다. 이러한 방어적 공격은 거의 수컷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제 새끼를 보고 기겁해 달아나

고릴라의 정상적인 새끼는 3~4년정도 어미의 보살핌을 받는다.


고릴라는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큰 동물이다. 키는 보통 1.25~1.75m이고 몸무게는 수컷이 1백35~2백75㎏, 암컷은 70~1백40㎏이다. 동물원에서 사육한 것 가운데는 몸무게가 무려 3백50㎏이나 나가는 고릴라도 있었다.

이들의 그룹은 보통 십여마리로 형성된다. 오랑우탄보다는 많고 침팬지보다는 적은 집단을 이루는 것이다. 이 그룹은 항상 리더에 의해 이끌어진다. 등의 털 색깔이 회색으로 변한 늙은 수컷이 대장이 되는 것이다. 또 고릴라는 싸움이나 먹이다툼도 하지 않는다. 구성원들 간의 계급서열은 스스로 알아서 자연스럽게 결정되기 때문에 조직은 매우 단결력이 강하다.

이들은 식물성을 즐긴다. 자기들의 영토안에 있는 야생샐러리 엉겅퀴 쐐기풀과 나무잎들을 주식으로 한다. 또 나무의 새순, 어린 나뭇가지를 즐기고 때로는 나무껍질을 벗겨 먹기도 한다. 침팬지는 주식이 과일이지만 고릴라의 주식은 풀입이나 나뭇잎이다, 이들이 뜯어 먹는 풀잎은 대개 쓴 맛을 내는 것들이다. 정글에서 사는 고릴라들은 동물성 먹이는 전혀 먹지 않지만 동물원에서 기르는 고릴라는 고기는 물론 사람이 먹는 음식을 거의 다 먹는다.

고릴라는 언어가 없다. 그러나 약 22가지나 되는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또 사람처럼 하품도 하고 기침이나 딸꾹질도 곧잘 한다. 그러나 잠잘 때 코를 골지는 않는다. 정글에서 그들은 나무위나 땅에 둥지를 틀고 잠을 잔다. 둥지는 풀이나 나뭇가지등을 꺾어 만드는데 침팬지의 둥지와 모양이 비슷하나 침팬지보다 낮은 곳에 둥지를 짓는다.

고릴라는 때때로 두손으로 제 가슴을 쳐 소리를 낸다. 그룹을 리드하는 늙은 숫컷이 가슴을 치는 것은 적을 위협하거나 그룹 내에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보통 고릴라들은 흥분했거나 긴장했을 때 그리고 욕구불만이 있을 때 제 가슴을 친다. 또 스트레스해소책으로도 가슴을 친다는 것이 동물연구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새끼를 낳아보지 못한 암컷 고릴라는 다른 암컷이 새끼를 낳고 기르는 것을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새끼낳는 것을 보지 못한 고릴라는 처음 새끼를 낳고는 자기 새끼를 보고 기겁을 하고 놀라기가 일쑤다. 때로는 이 두려움이 적개심으로 변해 새끼를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새끼는 3~4년정도 어미의 보살핌을 받는다. 수컷은 9~10살에 완전히 성숙하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등의 털색은 은백색으로 변해간다.

198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원 진료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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