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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출제위원장이 들려주는 얘기 "열가지 기능보다 한가지 이론이 더 낫다"

해마다 출제경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하지만 출제원칙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학력고사 시험장
 

1989학년도 대학입학학력고사가 지난해 12월 16일 제 1막을 내렸다. 아마도 수많은 희비가 교차되었을 것이며, 낙방을 한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재수냐 후기냐를 두고 갈등에 쌓여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새해가 되었으며 새로운 고3생과 재수생들이 선배들의 뒤를 이을 것이다. 또 그들은 학력고사라는 '벽'을 뛰어 넘기 위해 벌써 초긴장상태로 돌입했을지도 모른다.

●―전과목을 염두에 두고

대입학력고사는 1970학년도 대학입시때부터 실시된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전신으로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예비고사제에서 대입학력고사제로 이어오는 동안 제도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출제하는 절차와 내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다. 그 골간만은 계속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다음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전국 대학입학 정원의 1백20%선에서 합격·불합격만을 판정하고 채점도 수동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3회째부터 자동화되었다.광학판독기를 이용한 전산화가 답안지 채점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인력으로는 결코 해 낼 수 없었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해 줌으로써 채점작업이 단시일내에 끝났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계열별 지역별 지원제, 합격통지서발급, 그리고 총점통지제, 성적일정비율 반영등 거의 매년 시험제도의 변혁을 가져왔다. 더욱이 예비고사의 변혁을 가져왔다. 더욱이 예비고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대학의 본고사가 없어지고 고교 내신성적이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사내용에서는 선택과목 또는 계열별 출제범위가 교육과정의 개편에 따라 달라졌을 뿐 출제방식은 금년까지 거의 변화없이 이어져 오고있다. 즉 사지선다형의 출제형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 와서 짧은 답으로 대답하는 소위단답 서술형 또는 '주관식'이라는 것이 약간 출제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지원방법에도 변화가 있었다. 후지원이냐 선지원이냐로 많은 진통을 겪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출제방식과 내용에 영향을 줄만한 것이 아니었다.

20년 가까이 계속 이어져오는 4지선다형 형태의 '객관식' 출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주어진 답지에서 하나 골라 답한다는 형식에 대하여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수험생들의 불만을 해소시켜 주기위해 출제위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설령 객관식을 내더라도 단순한 암기위주의 지식을 높이 사는 시험이 아니라 고등정신능력 즉 사고 추리 논리 등의 능력을 측정하는 문항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입학시험은 항상 공정해야 한다. 이 공정성은 객관성의 보장을 말한다. 객관성이란 쉽게 풀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가 있다.

우선 누가 채점을 하고 합산을 하더라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두번째는 고등학교 3개학년을 통하여 주어진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이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항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꼭 배워야할 전과목을 이수한 학생을 염두해 두고 출제해야 한다. 결코 특수하게 국·영·수만 집중적으로 배운 학생을 대상으로 문항을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지리적인 차이, 환경의 차이가 불공평하게 작용하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무엇보다도 공정한 시험이 되기 위해서는 입시관리를 엄정하게 해야 한다.

출제관리라는 면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출제장소의 격리, 출제위원의 선발과 출제행위의 비공개 등이 포함된다. 이는 수많은 수험생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독자들은 출제위원들이 어떻게 보안이 유지되면서 동원되고, 어떤 경위를 밟아 문항이 작성되고, 짧은시간에 인쇄되어 각 고사장에 배포되는지 매우 궁금할 것이다. 이같은 출제에 관한 뒷이야기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입 학력고사가 매년 수많은 수험생들을 긴장시키고 있지만 수험생과 출제당국간에는 입장의 차이가 있다. 즉 수험생은 한번 치르고 나면 그만이지만 출제하는 측에서 보면 매년 입시가 반복되므로 출제된 문제들은 과거의 문제들과 연계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면성이 있을뿐아니라 행정적으로 보완을 유지하기 위해 출제·고사관리 과정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기로 되어 있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면에 비리나 부정이 있어 그것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다만 중대한 입시관리를 보다 신성시하고 성역시해서, 권위를 부여해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학력고사 시험장
 

●―한달간의 감금생활을 통해

그러나 독자들은 누가 어떤 경위로 출제위원으로 선출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간 20여년간 지속 되어온 예비고사·학력고사를 통해 내려온 관례를 대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출제위원장을 선출한다. 출제위원장은 과거 출제의 경험과 출제본부의 관리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 다시 말해 출제상의 전문적인 식견과 실질적인 경험, 편집·인쇄절차에 대한 경험, 행정적 처리에 대한 경험등이 있는 교수를 찾게 된다. 지금은 전담부서가 있어 그곳에서 인선을 하고 주무관청인 문교부와 협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 본다.

물론 한달 가까운 시간을 '감금'되는 일이기 때문에 본인의 승낙이 절대 필요하게 된다. 위원장은 함께 일할 부위원장을 추천한다. 부위원장은 대체로 어문·사회·자연·예체능·평가 등 5명정도를 임명하게 된다.

부위원장은 매일 매일의 작업진도에 대한 관리를 한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임무는 선택과목간의 난이도 조정을 위한 조정역이다.
선택과목간에 난이도의 차이가 있다면 시험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가끔 정책적으로 특정 과목을 쉽게 낸다는 오해가 있긴 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선택과목의 출제위원들은 난이도를 서로 맞추는데 많은 신경을 쓰며, 실제 시험결과로도 그 노력의 증거가 나타난다. 전체 수험생의 선택과목 간 점수차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함께 일할 과목대표를 추천하고 과목대표와 상의하여 출제위원을 선정한다.
이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특히 쓸데없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통고된다. 어떤 출제위원은 당일 아침에야 소속대학 총장으로부터 전달받고 급작스럽게 출제본부로 출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출제위원장으로부터 출제위원까지 모두가 그해 그해 임시철에 임박하여 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출제위원들은 합숙에 들어간다. '불과' 한달 동안의 짧은 기간 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출제문항이 만들어지느냐? 혹시 누군가 문항을 만들어 놓은 것을 단지 검토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단시간 내에 만들어진 문항이 고등학교 3개년 과정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출제된것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고등학교 사정을 알지 못하는 대학교수가 출제를 하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학부형이나 일선 교사들의 볼멘 소리도 많이 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런 우려에 대한 몇가지 사전 대비책을 소개한다. 우선 출제위원들이 출제에 앞서 하는 일이 있다. 교육과정해설집을 검토하고 지금까지 출제된 문항분석의 의미를 음미하는 것이다. 또 의무적으로 모든 교과서를 비교검토한 뒤 영역분류표를 작성하게 된다.

●―이미 출제된 문제는 배제시켜

다시 말해 각 과목을 담당하는 출제위원들이 자기가 맡은 과목의 수준과 범위를 교육과정에서 지시하고 있는 영역별로 심층분석,이것을 표로 만들어 둔다는 것이다.

출제의 범위는 고등학교 교육과정내로 국한하고 정답의 근거는 교과서 수준에다 두는 것을 원칙으로 문항을 만든다.
대개 출제해야 할 문항수의 2내지 3배수로 출제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3내지 4배수로 출제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왜냐하면 한 문항이 탄생하는데 여러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가령 절차를 거칠 때 반대 의견이 나오거나 이의가 제기된 문항, 다소 애매한 의사전달, 부족한 설명 등 결함이 지적되면 그 문제는 파기된다. 그럴경우 문항을 새로 만들어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아예 문제를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제 절차란 어떤 것인가? 우선 과목내 출제위원들의 합의를 거친다. 이 과목내 검토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교육과정 범위가 난이도가 활발히 논의된다.

다음 단계가 계열내 검토라는 절차다. 예를 들어 수학을 생각해보자. 출제위원중에는 물리학, 공학 등 수학을 도구과목으로 하는 전공을 가진 교수들이 모여 있다. 이분들이 출제된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면 계열간 검토가 기다린다. 계열간 검토란 여러 분야의 출제교수가 참석, 다양하게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서는 아주 엉뚱한 질문도 나오고 괴변도 등장한다.

이러한 다각도의 검토에서 살아남는 문항이 취합되면 문장을 다듬어 인쇄용 원고를 작성한다. 이렇게 원고를 작성하고 인쇄소에 넘어가기 직전에 고교교사를 각 과목에 한분씩 모셔다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한다.

정답이 분명히 있는지? 정답이 오직 하나 있는지? 고교교육과정에서 취급하고 있는 술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등을 검토한다.
이런 절차를 밟는데 크게 활약하는, 각 계열별로 배치돼 있는 교수가 따로 있다. 이 분들을 문항평가교수라고 부르고 있는데 대개 교육학교수로 구성돼 있다. 특히 교육평가를 전공분야로 하고 있는 교수들이다.

최종적인 출제원고가 인쇄소에 전달된 뒤에도 재차 교정을 보며 정답을 검토한다. 문제가 모두 인쇄되고 포장되는 발송직전까지도 출제위원들은 계속 마음 조이며 문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인쇄된 문제지가 나오고 포장이 시작될 때 마지막으로 다시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전과목에 걸쳐 입소하여 최종검토를 한다. 이때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이 문항에 대한 검토를 원점으로부터 다시 시작하여 새로 인쇄를 하게 된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 과정은 출제위원들을 거의 탈진시킬 정도로 까다로운 작업이다. 문제를 다 내놓고도 자료부족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즉각 폐기처분된다. 또 조금이라도 하자가 발견되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문제로 대치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출제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출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더욱이 출제경향이 고등학교 수업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출제위원들은 큰 사명감을 가지고 출제에 임한다. 한 문제 한 문제에 정성을 쏟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입시 출제는 대입 수험생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 교육방향의 큰 줄기가 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기에 출제위원들은 한달 이상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고, 외부와 전화 한 통화하기 어려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제위원들은 어떤 책을 갖고 출제를 하는가? 이는 많은 독자가 매우 궁금해하는 점일 것이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책은 물론 고등학교 교과서다. 교과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출제된 문제가 교과서의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교과서 내용을 충실히 공부하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외에도 참고서나 문제집도 출제에 활용한다. 그렇다고 특정 참고서나 문제집에서 문제를 베낀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출제한 문제가 특정 참고서나 문제집에 실려있는지 여부를 알아내 그런 문제들을 배제시킨다는 얘기이다.

또 확인참고자료도 많이 활용하는데 이는 문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아주 특수한 경우 같은 문제에 엉뚱한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사전에 방지할 목적으로 확인참고자료를 뒤져보는 것이다. 오래 전에 경기중학교 입학시험 문제중 큰 물의를 일으켰던 '무우즙사건'을 교훈으로, 유사한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교과서에는 이제 낼 문제가 없다고 하는 말이 들리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잘 이해하면 그런 말이 온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과서 무용론, 즉 '참고서로 공부해야 한다'는 표현과 다름아닌 그런말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지도해야 한다는 교육과정 지침서에 의거, 각 학과목을 지도하는 교육자료가 바로 교과서이다. 즉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교본인 것이다.


학력고사 시험장
 

●―일단 교과서를 이해한 뒤에…

물론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다 보면 무언가 불만스럽게 생각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해하는데 설명이 미흡하거나 너무나 간결하여 풍부한 보기가 아쉬운 대목도 있다. 또 설명은 이해하지만 다른 식의 해석은 없을까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는 선생님께 질문하거나 참고서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지도 않고 참고서에만 의존, 이해를 구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최소한 교과서의 내용만은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학습의 기본은 충족시킬 수 있다. 특히 중하위권 학생들은 교과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을 권한다.

또 우리는 이런 말을 기억할 필요가있다. '열가지 기능보다 한가지 이론이 낫다'. 이것은 한가지 이론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어떤 응용문제도 풀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하기 바란다. 뒤에 숨은 한가지 이론도 완전히 내 것으로 하지 않고 10가지 문제를 푸는 기교만 배워야 별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서툰 목수가 연장탓을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탓 저탓 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정도(正道)를 걸어가는 것이 자기가 목표한 일을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출제문제를 예상할수 있어

모든 학교가 겨울 동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금년에 새로이 고3이된 대입 수험생은 지금 깨어있어야 한다. 이번 겨울방학이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겨울방학을 맞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복안을 갖고 있겠지만 우선 지난 19년간 출제되었던 문제를 풀어보기를 권한다. 이 문제들은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 정선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들을 풀어보면 스스로 출제경향을 파악하게 되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출제될 것인가 하는 예측도 가능해진다.

해마다 약간의 난이도 차이는 있고 출제형태도 다소 달라지고 있지만 출제원칙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고 있다. 무슨 과목이나 기본 원리를 충실히 이해하고 있는 학생이 고득점을 하게 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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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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