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이 지쳐있는 현대인에게 피로는 큰 목소리로 외친다. "나를 바로 보라.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릴테니…"
피로는 때론 필요악이며, 근면의 결과이다. 특히 피로가 신체적 노력의 결과일 땐 심지어는 유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원인도 없이, 피로가 찾아들면 상당한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가장 일반적인 증후중의 하나가 피로인 것이다.
피로는 심각한 질병의 초기 증상일 수도 있으나 보통은 정신적 작용에 의해 나타난다. 즉 피로는 신체적 원인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다.
38명의 환자에 대해 연구를 실시한 심장학자에 의하면, 피로를 호소하는 환자들은 뚜렷한 의학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심장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피로의 원인은 당연히 심부전일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피로를 느끼는 주원인은 우울이었으며, 놀랍게도 과로는 거의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상 피로는 과로만의 결고라기 보다는 우울, 권태, 움직임의 부족에서 오는 결과이다.
가정의학과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여성은 남성보다 2배정도 피로를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자들이 스트레스를 신경안정제로 푸는 반면, 남자들은 술로 해소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기혼여성은 피로를 정신적인 원인에서 느끼고 있었고, 미혼여성은 신체적인 이유로 느끼게 되는 사실도 밝혀졌다.
'좌절'의 피로, '즐거운' 피로
그렇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피로의 원인을 무작정 정신적인 원인에 대한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심각한 질병들은 은밀히 그리고 서서히 진행된다. 따라서 아무리 중병이라 할지라도 첫 증상은 약간 피곤한 상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의사의 가장 어려운 임무는 심각한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다. 의사는 질병과 스트레스에 개인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환자와의 대담을 통하여 알 수 있으므로 병이 커지기 전에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피로가 계속되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휴식이나 기분전환으로도 피로가 경감도지 않는다면, 특히 몆주간이나 계속된다면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신체적인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이 경우 뭔가 분명히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증상 없이 피로만 지속디면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 결혼에 대한 불만족, 정서적인 문제에서 유래한 것이기 쉽다.
신체적인 질병때문에 오는 피로는, 아침에는 나타나지 않고 대개 늦은 저녁시간에 몰려오나 휴식을 취하면 곧 완화된다. 반면 정서적 긴장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는 아침에 나타나며, 일과가 진행돼 감에 따라 정도가 경감된다. 이런 정서적 원인의 피로는 누구에게나 수시로 잘 발생할 수 있다.
피로의 정서적 요소로는 스트레스, 강박관념, 부적절한 수면, 우울 등이 있으며 특히 가정주부의 피로는 정서적 측면이 강하다.
일상생활에서 좌절의 정도가 심해지면 스트레스와 피로를 느끼게 된다. 특히 직장인은 상사나 동료로부터의 소외감이 피로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직업에 대한 불만족과 능력부족에서 오는 압력은 특히 오후나 저녁에 피로를 몰고 온다. 이런 사람들은 정오의 운동이나 막간을 이용한 테니스 게임, 산책, 요리,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보러가는 것 등으로 생활의 리듬을 바꿔주는 게 좋다. 그러면 하루를 마감할 즈음에는 긴장감이 풀리고 '좌절'의 피로를 '즐거운' 피로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피로를 첫 증상으로 하는 심각한 질병을 촉진시킬 수 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 류마티스 관절염, 관상동맥성 심장병 등은 스트레스에 의해 오거나 악화될 수 있는 3대 질병이다.
어떤 사람들은 직무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에 쌓여 산다. 또 그들은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고도 불평 한마디 없을 정도다. 이에 상응하는 일본의 격언이 있는데 '게으름을 피는 것은 그들의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이다. 이렇게 강박적인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 땐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휴가나 휴일에도, 하루를 그냥 보내는 일은 없다. 그들은 지난 몇년 동안 휴가 한번 갖지 않고도 불평을 토로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할 것이다.
이같은 강박적인 완벽주의자는 하루의 매분을 계획한다. 이미 그날의 업무가 계획대 있으므로 쉬면서 보낼 시간은 전혀 없다.
직업여성들의 2중죄의식
피로가 집중능력을 감소시킴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잠시동안 휴식을 취하면 더 잘 집중할 수 있고 업무를 신속히 완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가족과 친구 등 주변사람들이 '일벌레'에게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강박적인 '일벌레'는 잠시의 휴식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다.
의사, 변화사 같은 전문직업인중엔 강박적인 사람들이 많다. 직업자체가 강박적인 행동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발작으로 고통을 받고있는 남자의 연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중에는 2개 혹은, 그 이상의 직업을 갖고 매주 60시간 이상 일하거나 특별히 스트레스와 관련된 직종의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2중죄의식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아침에 아이들을 집에 두고 출근할 때 느끼는 죄의식과 저녁에 끝내지 못하는 업무를 책상에 둔채로 귀가할 때 느끼는 죄의식이다.
또 일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 책임회피하는 사람들도 강박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열심히 지칠 때까지 일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충분한 수면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곤을 느낀다. 이것은 그들의 잠자리가 편안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뒤척이는 수면은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없다. 신체에너지 보충이 충분치 못한 결과 흐릿해진 의식 작업능률을 떨어뜨린다.
REM(rapid eye movement·수면중 안구의 빠른 움직임)은 많은 근육들이 이완할 때의 주기이다. 그런데 어떤 약은 REM수면을 방해, 아침에 피곤을 느끼면서 일어나게 한다. REM수면은 대뇌회복이 일어날 때이며, 비(非)REM수면은 신체회복 상태라고 한다.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불충분한 수면은 낮동안에 피로를 일으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과로, 권태, 잘못된 식습관 그리고 부적절한 운동의 결과로 인해 시달리는 주부가 많다. 즉 그들은 심인성 피로로 시달리며, 갖힌느낌을 받기도 하고 좌절하고 지겨워 한다. 대개 주부들은 저녁보다 아침에 더 피곤을 느낀다. 낮잠도 안정을 회복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반복되는 집안 허드렛일로 인해 하루종일 쌓인 스트레스가 저녁에도 잘 풀리지 않는다. 특히 피로가 쌓여가면 우울도 축적된다. 남편이 고마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하루의 좌절을 보상할 수 있는 출구가 돼 주지 못하므로 정신적인 피로는 쌓여간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주부는 점차 완벽주의자가 되고, 괴퍅스럽고 까다로워진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재능을 엿보일 수 있는 출구를 찾거나, 누군가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다. 우울은 가장 일반적이며 심각한 문제이다. 대개는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도 있으나, 때론 심각한 정도에 이를 때까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에 자주 발생하는 자살도 우울이 축적된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우울이 지속되면 원기부족, 피로, 일상생활에서의 흥미상실, 성적욕구의 저하, 집중능력의 감소, 자책감과 자기혐오, 식욕저하, 수면곤란, 불안, 침착성의 상실, 동요,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을 반복하는 증상을 보인다.
우울의 초기증상은 보통 수면곤란과 원기저하. 그리고 75%이상의 사람들이 두통, 요통, 근무력, 현기증, 위장문제 등의 신체증상을 호소한다. 이런 심각한 우울증환자의 3분의 1은 심계항진, 갑작스런 불안, 호흡곤란, 과도호흡, 공포감 등을 느낀다.
피로와 비타민은 무관하다
피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약물, 감염, 암,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빈혈, 폐질환, 갑상선 기능부전 등을 꼽을 수 있다.
약물때문에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경우는 매우 흔한 편이다. 제약회사에서 제조한 약이건 약국에서 조재한 약이건 상관없이 약은 어떤 약이라도 피로의 잠재적인 원인으로 의심할 수 있다. 빈번히 과로를 유발하는 약물로는 진정제, 신경안정제, 항히스타민제, 동통치료제, 진경제, 호르몬제, 항생제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항히스타민제와 진정제의 장기복용은 피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그리고 카페인(커피, 홍자, 콜라, 코코아 등에 포함된 성분)이나,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각성제인 암페타민(히로뽕) 같은 약도 피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런 약들을 멈추었을 때 힘이 빠지고 심하게 피로가 밀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피하려는 욕구는 흥분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하게 하고 탐닉하게 한다.
알콜은 순간적인 이완을 줄 수 있고 탐닉으로 이끌 수 있는 또다른 물질이다. 과량의 알콜을 정신안정제와 함께 마시면 꽤 위험하여 치명적일 수도 있다.
최근 신경안정제로 널리 처방되는 약물은 벤조다이아제핀 제제(예로 발륨, 리브리움)이다. 물론 이 약제가 단독으로 쓰이면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알콜과 함께 복용하면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는데 약물사용은 절대 금물이다. 대신 운동이나 명상같은 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영양부족으로 인한 피로는 거의 없다. 흔히 피로할 때는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비타민은 피로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편식을 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별도로 보충제를 복용하는게 좋다. 여기엔 위약효과도 있다. 즉 약물치료나 비타민, 혹은 어떤 보충제를 먹었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다.
이뇨제는 체내의 칼륨을 많이 배출시키기 때문에 피로를 유발한다. 이것은 혈액검사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쉽게 교정할 수 있다.
또 베타차단제라 불리는 몇몇 새로운 약물의 고혈압과 심장질환의 치료에 사용되는데 예기치 않은 부작용으로 피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약을 복용한 사람은 다리근육이 약화돼 계단을 오를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전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 전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럴 경우 약의 용량을 조절할 수 있을 뿐,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특별한 대책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숨겨진 감염을 찾는 열쇠
피로는 또한 숨겨진 감염의 증거일 수도 있다. 피로의 원인이 되는 대부분의 감염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데 이 경우엔 피로정도가 심하지 않고 단기기간이다.
그러나 체내에 세균감염이 있을 때의 피로는 좀 심각하다. 이 때는 피로와 피로를 쉽게 느껴지는 증상 외엔 특별히 나타나는 증상이 없다. 폐결핵이 그런 대표적인 예인데 아급성 세균성심내막염이라고 부르는 심장판막의 감염도 비슷한 경우다. 즉 감염여부를 알아내기가 무척 힘이 든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런 병들은 감염의 다른 증상에 나타나 진단을 더욱 어렵게 한다. 가령 결핵의 경우, 항상 미열이 있고, 체중감소, 식욕저하, 밤동안의 발한 등이 있다.
세균성 심내막염은 보통 미열이 있으며 심장에서 잡음이 들리고 빈혈을 수반한다. 특히 심천판 등심장판막에 기형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형태의 감염이 더 민감하다.
암 역시 피로의 원인다. 암환자도 피로를 잘 느낀다는 말이다. 특히 피로와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암은 췌장, 폐, 신장, 간 골수암 등이다.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중에서는 심근경색이나 관상동맥부전증의 경우에만 피로가 나타난다.
경미한 심장발작의 경우에는 가슴의 통증없이 피로만 느끼게 된다. 이 증상은 혈액이 체내순환을 늦게함으로써 나타나며 피로 이외의 다른 증상은 없다.
피로를 느끼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병은 빈혈이다. 그러나 빈혈이 피로의 실제 원인은 아니다. 빈혈은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월경주기에 혈액을 다량 손실하는 것만으로도 발병할 수 있다.
철분결핍성 빈혈의 초기단계에는 혈액내의 철분의 총량이 감소한다. 철분은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만들고 적혈구의 생산에도 필수적인 미량원소, 그런데 철분공급의 부족으로 인해 혈액 1백ml당 헤모글로빈이 9∼10g수준보다 떨어지면 조직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이 불충분하게 된다. 이때 피로가 오며 창백해지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이다. 철분결핍성 빈혈의 치료는 단지 부족한 철분을 보충하면 된다.
또 만성 폐질환자들도 피로를 잘 느낀다. 특히 장기간의 흡연, 만성 기관지염, 기종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폐질환인 경우, 조직에 산소의 공급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피로가 발생한다. 부족한 산소공급의 결과 호홉을 위한 과도한 노력을 하면 지속적이 피로를 느끼게 되고 운동능력이 제한된다.
갑상선기능의 향진이나 저하시에도 피로가 온다. 기능저하시엔 권태, 체중증가, 추위에 견디는 능력의 저하 등을 보인다. 갑상선 기능항진에서도 대사의 증가로 인한 피로, 신경과민, 불안, 체중감소, 발한, 더위에 견디는 능력저하 등이 나타난다. 또한 근육(특히 어깨와 엉덩이 근육)의 약화를 가져와 웅크리고 앉은 자세에서 잘 일어나지 못한다.
갑상선 기능부진을 확인하기 위해서 간단한 혈액검사가 필요하다. 기능저하시에 갑상선 호르몬을 투여해주면 쉽게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면 기능항진의 경우엔 치료법이 다양하다. 수술, 방사성 요드나 항갑상선 약물 등으로 갑상선 호르몬의 생산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그외에도 피로를 일으키는 원인은 적지 않다. 당뇨병, 류마티스 관절염, 부신기능 부전 등 질병의 초기증상으로 나타난다.
또 드물기는 하지만 차츰 신체를 황폐시키는 질병인 중증성 근무력중(수의근의 이상무력증으로 자극에 의해 연축성이 감퇴하자만, 감각이상 또는 위축은 일어나지 않는다)도 피로요인. 근육의 반복된 사용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 이 병의 첫 증상은 저녁에 눈의 안검이 늘어지는 것이며, 얼굴, 입술, 혀, 인후, 목 등의 근육에 영향을 준다.
영향부족 또한 지속적인 피로를 가져온다. 이 때의 피로는 열량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영양이 부족한 음식을 선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불량한 식습관, 부실한 음식만 먹는 10대들이나 음식섭취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알콜중독자들에게서는 저항능력의 감소로 인하여 피로와 아울러 감염이 촉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