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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왕국「미키모토」의 전설

최초로 공개된 진주양식의 모든것

영롱한 진주는 사람을 황홀케한다. 그것은 또 세계 도처에서 고귀함과 장수(長寿)를 상징하는것으로 귀중하게 평가돼 왔다. 그러나 천연진주는 매우 귀하다. 겨우 1천여개의 진주 조개에서 1∼2개의 진주가 발견될 뿐이다.
옛날 페르시아만에서 진주가 발견되었을때 사람들은 "이것은 달에서 떨어진 돌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드물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것이다.

66년간 진주에 정성쏟아

보석게에서 '미키모토진주'라고 하면 인공 진주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세계 최대의 생산자로 미키모토회사는 세계 여러곳에 진주 전문백화점도 열고 있다.

이 미키모토의 창업자는 백년전 1888년 일본의 한산한 어촌 '아고'만에서 진주 양식을 시작한 '미키모토 코키치'이다. 당시 30세였던 미키모도씨는 이곳 상인의 아들이었다. 그는 진주 조개가 날로 줄어드는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인공양식을 할수 있을까하고 궁리하면서 학자들을 찾아 다녔다. 그는 생산해낼 인공진주를 '눈물'이라고 이름 지었다.진주가 눈물방울을 연상시켜서인지 아니면 눈물을 계속 짜아낼 각오로 인공진주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는 알수없다. 어쨌든 그는 사업착수 17년만에 '이것은 완벽한 진주'라고 평가 받을만한 진주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눈물깨나 흘렸으리라.

그는 진주 양식에 전 생애를 걸고 1954년 96세 나이로 죽었다. 진주가 장수를 상징한다더니 진주의 덕을 봤는지도 모른다.

지금 미키모토회사는 손자가 경영하고 있다. 미키모토가(家)에서 회사주식의 60%를 갖고 있다.

창업자가 빛나는 성공을 거둔것은 훌륭한 진주, 천연진주가 구별할수 없을 정도의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것이지만 미키모토경영자들은 사업수완도 능란했다. 여성의 장식으로만 쓰이던 진주를 부채나 파고다 종(鐘)등을 만드는데 쓰도록 유도해서 진주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돈많은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도시에 미키포토점포를 열었고 '카르티에' '부케라티' '쇼메'같은 세계적 보석상과 제휴, 진주의 다양한 활용을 지원했다.

난소(卵巢)에 상처받아야 진주생겨

'미키모토 코키치'는 진주양식을 시작한지 17년만에 양식의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터득했고 그의 양식방법은 특허를 얻게 되었다. 그 방법은 모(母)진주조개의 난소에 상처를 내서 다른 모진주의 외막(外膜)과 접촉시키는 것. 이런 과정을 거친 조개는 2년동안 바닷물속에 넣어지는데 이때 상처받고 외부조직과 접촉된 부위에서 '네이커'(nacre·진주의 모체)라는 물질이 생성되며 네이커는 종내에는 진주로 변하게 된다. 1890년에 일본의 해양 생물학자 '미츠쿠리 카키치'씨는 이 현상에 대해 "이 물질이 조개에 들어가면 조개는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항체를 만들게 되며 네이커는 바로 항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미키모토에게 설명해 주었다. 인체로 말하면 면역체계가 작동하는 현상인것이다.
 

1939년 뉴욕 박람화에 출품했던 「자유의종」(1만 2천여개의 진주와 3백36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졌다)


진주는 수천층(層)의 결정화한 칼슘

네이커로 부터 생겨난 진주는 수천층의 결정(結晶)화한 칼슘덩어리이다. 수확은 11월에 한다. 완전한 진주를 얻어까지에는 3∼4년이 걸린다. 미키모토회사에서는 거둬들인 진주를 크기, 색, 형태등에 따라 분류하는데 최상급의 진주는 수확량의 5%정도밖에 안된다. 나머지 28%는 그냥 시판은 할수있을정도의 보통상품이며 그 이외의 것은 시장에 내놓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처리한다. '하나다마'라고 불리우는 완벽한 진주는 백만개 중 한개정도가 발견된다고 한다.

적조(赤潮)현상이 가장무서워

진주양식에 있어 가장 어려운 도전은 적조현상이다. 적조가 엄습하면 진주양식장은 폐허가 되기 쉽다. 1892년과 1905년에 미키모토양식장은 적조현상으로 수십만개의 조개가 죽어버렸다. 1905년 '미키모토'는 수십만개의 죽은 조개를 하나하나 손으로까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뭔가 건져 보려고 한것인데 다행히 5개의 훌륭한 진주를 찾아내 가까스로 파산을 면하기도 했다.

미키모토회사는 자기네 진주를 스미드소니안 박물관을 비록해 여러곳에 기증했다. 1만2천2백50개의 진주로 만든 '자유의종'모형은 1939년 뉴욕의 박람회에서 갈채를 받았다. 미키모토가 '토마스에디슨'에게 진주를 선사했을 때 에디슨이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나의 실험실에서 만들수 없는 물건은 단 두가지 밖에 없는데 그것은 진주와 다이아몬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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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볼스로 에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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