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수학자 에미 뇌터가 태어난 날입니다.
뇌터는 1882년 독일 남동부의 에를랑겐에서 수학자 막스 뇌터와 아이다 아말리아 뇌터 부부의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여성의 고등교육을 엄격하게 제한한 당시 사회제도 때문에 고등학교까지만 다닌 뇌터는 여자 아이들에게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 자격시험을 쳤습니다.
하지만 뇌터는 교사가 되지 않고 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여성의 대학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약 4년 동안 강의만 들었는데, 다행히 1904년에 여성의 대학 입학이 허락되면서 에를랑겐대학교 수학과에 정식 학생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3년만인 190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죠.
이때부터 뇌터는 뛰어난 업적을 내놓으면서 대수학과 정수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1918년 발표한 ‘뇌터의 정리’는 수학뿐 아니라 현대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업적이었습니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 뇌터를 극찬한 이유도 뇌터의 정리가 물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죠.
뇌터의 정리는 어떤 물리계에 연속적인 대칭성이 존재하면 반드시 그에 대응하는 물리량이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빙글빙글 도는 구를 생각해 보세요. 완벽한 구라면 회전한다고 해서 나타나는 변화는 없을 겁니다. 이런 상태를 회전에 대한 대칭성이 있다고 하죠. 이처럼 회전하는 구는 운동량이 보존되는데 뇌터의 정리는 이와 같은 관계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겁니다. 뇌터의 정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 현대물리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뛰어난 업적에도 뇌터는 여성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정식 교수로 임용되기까지 수년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 정권의 탄압에 의해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결국 미국에 도착한 지 2년 만인 1935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 수학계는 뇌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낸 여성 수학자를 ‘ICM 에미 뇌터 강연’의 강연자로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