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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모 모두 알아두자 자살의 속사정

최근 우리주변에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청소년의 자살사건이 연일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그 자살의 동기는 이러했다. 첫째가 성적하락을 비관한 중고생의 자살이며, 둘째가 학생운동과 관련된 대학생들의 분신, 투신 자살이었다. 왜 꽃다운 나이의 인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입시준비 스트레스와 관련된 중고생들의 성적비관 자살이나, 학생운동과 관련된 대학생들의 분신, 투신자살은 1988년 현재 한국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자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줄곧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특히 청소년기의 자살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현대문명의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태다. 앞으로 최소한의 예방을 위해서는 현실이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자살하는 심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자.

거부하면서도 집착한다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적 발달과제와 심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급격한 신체적 성장과 이차성징(二次性徵)의 출현 및 본능적 충동의 증가를 보인다.

사춘기 이후의 급격한 성장과 성적(性的)인 변화는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표로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된다. 만족스럽지만 한편 내면으로는 부끄럽기도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어딘가 이상이 있지 않나 걱정되기도 하며 남과 열심히 비교한다. 몸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옷치장에 마음을 쓴다. 자기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어른이나 다른 청소년의 행동이나 옷차림을 흉내내려고 한다. 자신감이 없고 의존적이며 성에 대한 편견이나 불안이 있는 청소년은 이러한 신체변화에 불안과 공포를 갖거나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적충동의 급격한 증가는 남자의 경우 자위행위나 실제적 성행위로 표현된다. 많은 청소년들은 자위행위에 대해 죄악감이나 불안감을 갖게 된다. 물론 이 시기에는 성에 대한 잡지, 소설을 읽음으로써 성적 충동을 어느정도 해소하기도 한다. 또, 친구와의 농담과 유머도 상당한 해소역할을 알 수 있다. 공격적 충동의 증가는 특히 남자의 경우가 문제인데 흔히 이를 과격한 운동이나 경쟁적 게임, 데모, 취미 등으로 발산시키려 한다.

둘째, 부모로부터 심리적 해방과 독립을 추구한다.

자신은 다 컸다고 생각하며 어른 취급받기를 원한다. 반면 부모는 예전대로 어린애 취급을 하려한다. 따라서 '이유없는 반항'이 시작되고 부모에게 반항적이며 신경전을 벌인다. 이러한 반항적인 행동은 이제까지 의존적이었던 부모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노력의 발로이다. 이제는 컸으니 어른으로 취급해 주고, 좀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달라는 주장이다.

또 이 시기에는 자기의 의존성을 부정하고 부모의 간섭에 과민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독립, 자율의 추구와 부모로부터 해방되려는 노력은 불안을 일으킨다. 그 결과, 자연히 부모를 대체하는 우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선생님일 수도 있고 유명한 가수, 스타 플레이어, 혹은 영화배우일 수도 있다.

고조된 성적 충동이나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욕구는 감정의 격동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새로운 종교에 관심을 갖거나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에 심취하기도 한다. 감정의 변화가 심하여 우울해지기도 하나 한편 쉽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극히 자기중심적이고 현실적이다.

세째, 의존과 보호에 맛들인 어린시절을 포기해야 될까 말까하는 갈등이 있다.

즉 이들은 부모가 어른 취급을 해서 물러앉아 있으면 '왜 그리 부모로서 무관심하냐?'며 화를 낸다. 요컨대 어린시절의 부모와의 끈끈한 유대를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이에 집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청소년기란 정상적인 발달을 위하여 자아가 일시적으로 퇴행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건강한 퇴행(退行)은 어린시절의 대인관계를 재정비하는 시기이기도 한다.

주체성의 위기 속에서

네째, 주위와 자기 내부에서 오는 압력에 직면하게 되는 시기이다.

즉 주위 사람들과 자기 내부로부터 압력을 받는다. 예컨대 남들과 같이 일률적으로 행동하라는 압력, 공부를 잘하여 좋은직장에 취직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는 성취에 대한 압력을 느끼는 것이다. 동시에 이에 반항하려는 즉 '나는 속물이 되기 싫다'는 욕망이 샘 솟아 이 둘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한편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반대로 독불장군이 되고싶은 욕망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다섯째, 주체성 확립의 몸부림을 경험한다.

'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 수동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현모양처와 직업여성의 두 길 가운데 어느 길로 나갈 것인가?' '어떤 직업을 탤할 것인가?' '돈이냐, 권력이냐, 명예냐?' 등등의 자기나름대로의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데서 오는 갈등이 심하다. 인생의 목적과 자기의 역할이 확립되지 못하면 그들은 흔들린다. 주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심하게 방황하는 경우에는 정신적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를 '주체성 위기'(identity crisis)라고 한다.

여섯째, 술, 담배, 섹스에 노출된다.

이들을 경험해 보고 싶은 강한 호기심과 도덕적인 양심 사이에 끼어 고민한다. 그리고 호기심에서 일단 경험을 하고 난 뒤에는 심한 죄책감에 빠지는 수가 있다.

전세계에서 매년 50만명이 자살

자살은 인간의 10대 사망원인의 하나이다. 지구상에서 연간 약 50만명씩이 자살로 인생을 끝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간 2만2천명이, 즉 인구 10만명당 11명이 자살한다. 특히 청소년기에서는 사고로 인한 사망 다음가는 사망원인으로 되어 있다.

경제기획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인구 10만명당 20.6명이 자살한다. 한국인의 10대 사망원인중 아홉째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조사에 따른면 인구 10만명당 44.6명이라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통계는 사망진단서만을 기초로 한 통계다. 따라서 실제 일어난 자살건수 보다는 적을 것이 분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살자의 가족이나 친지는 수치심에서 이를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고사(事故死)로 처리된 경우의 상당수가 과실이 아닌 고의적인 자살일 것이다. 이는 사망후에 고의(故意)라는 확증이 없어서 사고로 처리되는 수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 실제의 자살률은 발표된 통계숫자보다 대개는 높다고 보아야 한다.

성별로보면 구미(歐美)나 일본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자살률이 대개 2~4배 높다. 한국도 남자가 2.3배 높다. 연령별로는 남자의 경우 청소년기에 피크를 보인다.

계절별로는 외국, 한국 모두에서 봄, 가을에 자살이 많다. 그중 봄에 더 많다. 한국과 미국은 특히 늦은 봄부터 초여름에 많아 '4.19부터 6.25까지'로 기억한다. 그 때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주체성의 위기 속에서


'남을 죽이지 못하니 나를 죽인다'

전쟁시과 평화시를 비교하면 전쟁시가 자살률이 현저히 낮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때가 전쟁이라는 사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남을 죽이지 못하니 나를 죽인다', '죽고 싶을 때는 남이라도 죽여야 속이 풀린다'는 두가지 의미의 자살원인론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 유럽 청년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그 자신이 조울병환자였던 괴테는 자신이 우울했을 시기에 느낀 경험으로 작품 주인공의 심정을 묘사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을 알리가 만무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유럽 청년들이 작품속의 주인공처럼 권총자살을 하는 사회가 그뒤 30여년간이나 계속되었다.

때마침 자살이 죄가 아니라는 나폴레옹법전도 나온 뒤여서 유럽각국에서는 자기살인(自己殺人)이란 용어대신 자살이란 말을 쓰면서 이에대한 학문적 연구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당시는 자살의 원인을 막연히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관련시켜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껭'(Durkheim)이 많은 자료를 토대로 하여 통계학적, 사회학적 검토 끝에 '자살론(自殺論)'이란 책을 출간하였다(1897년). 자살연구에 관한 효시가 된 이 책에서 그는 자살자 개개인을 연구대상으로 하지 않고 '사회'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주로 사회의 힘이 어떻게 인간 각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였다.

이타적 자살도 있어

그는 인간 개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자살이 일어난다고 보면서, 다음의 3가지 자살유형을 들었다.

첫째가 이기적 자살(利己的 自殺)이다. 이는 어느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여 오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신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편집형 정신분열증이나 분열형 성격, 경계형 성격장애, 우울증같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타적 자살(利他的 自殺). 이는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지나치게 융화결속된 나머지 그 사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는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예컨대 전쟁터에서의 육탄돌격대같은 경우와 스스로 배를 가르는 일본의 하라끼리(切腹)가 여기 속한다.

세째는 무통제적 자살(無統制的 自殺)이다. 이는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적응이 돌연히 차단되거나 와해된 경우에 시도한다. 예를 들면 파산을 한다든지 반대로 가난뱅이가 벼락부자가 된 경우에 있는 자살을 말한다.

뒤르껭은 결국 자살의 주원인이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집단에서 그를 따듯이 받아들여주지 않기 때문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그는 개인이 사회집단과의 결속이 끊겨서 생기는 사회심리적 고립현상(孤立現象)을 '아노미(anomie)'라고 지칭했다. 그는 이 '아노미'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자살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 와서도 일리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프로이드의 자살에 대한 견해

콩나물장사를 하며 뒷바라지한 외아들의 대학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자살을 한 과부가 있었다. 이를 두고 그것이 과연 사회의 책임이냐 아니냐하는 문제가 제기된 적도 있다.

그러나 비슷한 사정을 겪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자살을 했을까?

이와 같은 의문에서 출발, 자살의 원인을 사회가 아닌 개인으로 돌려보는 것이 현재 진행되는 심리학, 정신의학의 풍토이며 또한 타당한 방향일 것이다.

자살이란 자기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린 공격성에서 온다. 1917년 '프로이드'(Freud)는 우울증의 원인을 규명하는 논문 '애도(哀悼)와 우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인간이 사랑과 증오의 상반된 감정을 갖고 대하던 어떤 대상(対象)을 잃고 나면, 뒤에 사랑하던 감정은 영구히 그 상실한 대상에 붙어서 애도, 추모하는 심정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증오하던 감정은 그것에서 떨어져나와 이제는 방향을 돌려 자기 자신으로 향하기 때문에 그 결과 자신을 몹시 미워하게 된다. 즉 공격욕 또는 무의식적 가학성(加虐性)이 자신에게로 방향전환을 한 상태가 우울증이다. 그러니 '나는 가치없는 놈', '나같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심정에서 우울증이 심해지면 '내가 나를 죽이는' 자살을 하는 것이다.
 

자살함으로써 부모에게 죄책감을 준다


자살함으로써 부모에게 죄책감을 준다

그후 정신분석의사 '페니켈'(Fenichel)은 "나를 학대하는 초자아(超自我)에게 어쩔 수 없이 의존치 않을 수 없는 상태에서, 여기서 야기되는 참기 어려운 죄책감으로부터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벗어나려는 시도가 바로 자살행위"라고 하였다.

봘(Wahl)은 동일시(同一視)상의 갈등이란 점에서 자살을 보았다. 즉 어린이가 부모를 따르면 닮아가는 동일시를 한참진행할 시기에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살의 동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가 죽었거나 곁에 없었다던지 또는 따뜻이 받아주지 않고 대신 무섭게 야단만 쳤을 때 어린이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이때 이 어린이 마음 속에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 증오심이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는 '부모가 죽어버렸으면!'하는 지경까지 이르는데, 바로 이 때문에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런 어린이는 이 죄책감을 마음 깊이 감추는 억압(抑壓)을 해 두는데, 뒤에 이것이 자살을 야기하는 중요 역할을 한다. 즉 그는 자살함으로써 부모 또는 부모 비슷한 대상에게 죄책감을 갖게해서 응징하고자 한다. 또는 자신의 죄책감을 덮어 버리려는 의도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재생과 재결합을 기약하는 자살도

자살자의 개인 생활사를 조사해 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몇가지 심리적 유형이 있다.

첫째가 상대방을 버리는 심리에서 자살하는 유형이다. 예컨대 실연(失戀)당한 뒤 자살하는 경우가 이 유형에 속한다. 상대가 나를 찼으니 이번에는 자살해 버림으로써 나도 상대방에게 복수한다는 심정으로 자살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거나 헤어지게 된 쓰라린 상처를 입었던 경우가 많다.

즉 죽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이는 죽은 어머니가 고의적으로 자기를 버리고 멀리 간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분노와 복수심을 느끼나 무의식속으로 이를 억압한다. 그러다가 성장한 뒤에 그 비슷한 처지를 당하면 억압되었던 복수심이 폭발, 자살을 하게 된다.

둘째는 살인하고 싶은 심리가 뒤집어져 자살하는 유형이다. 자살과 살인은 백지 한장의 앞과 뒤라는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베른펠트(Bernfeld)는 인간은 자신이 지닌 무의식적인 살인충동 때문에 자살한다고 하였다. 즉 과거에는 사랑하였으나 이제와서는 증오하게 된 그 상대를 자기자신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同一視)하게 되면 자살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바로 그 상대방을 죽이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세째는 재결합을 기약하는 자살유형이다. 현실생활의 좌절과 불행에 지친 나머지 차라리 저세상에서 그리운 가족친지를 만나 행복하게 살자는 환상에 사로잡혀 감행하는 자살이다.

안데르센동화의 '성냥팔이 소녀'가 그 좋은 예다.

네째로는 재생(再生)을 기약하는 자살유형이 있다. 융(Jung)은 자살이란 인생에서 모든 의미를 상실하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 영적(靈的)인 재생을 바라는 무의식적 소망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다섯째는 자기응징, 자기처벌로서의 자살유형이 있다. 인생의 어느 중대한 사항을 성취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자신을 처벌하는 뜻으로 자살하는 것인데, 이것은 남자에 많다. 이들은 자살전에 우울증에 빠져있고 또 강박적인 경향을 보인다. 입시생, 재수생이 자살하는 경우가 이것에 속한다.

자살에 관한 상식의 허실

자살에 관해 상식처럼 나도는 말들이 있다. 그것들은 마치 사실인양 오해되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나 일선교사를 혼동시키고 있다.

첫째, '정말 자살할 사람은 남에게 그런 의사표시를 않는다'는 말이다. 이말은 틀린 말이다. 자살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주위에 이를 알린다. 가족친지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뜻을 비추거나 더러는 대놓고 직접 예고를 한다. 간접적인 경고를 받고도 이를 경시하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조소까지도 하는 주위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자살이 일어난 뒤에는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죄책감때문에 입을 다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잘못된 상식의 원인이다.
자살자의 사망 후 뒷조사에서 그런 경고를 했던 경우가 55~75%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조사된 바로도 74%가 의사표시를 하였다. 거의 모든 자살자는 직전까지 이런 애타는 '구조요청'(cry for help)을 수없이 한다. 제발 주위사람들이 알아차려 자살을 막아주었으면 하는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둘째는 '자살하는 사람들은 꼭 죽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라는 말이다. 이것도 틀린 말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생사(生死) 양단간을 분명히 정하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래서 혹시 누군가에 의해 또는 어떤 상황변화에 의해 자기가 구원받고 구조되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청년이 허우적거릴때 보트에 탄 경찰관이 배에 오르지 않겠다는 청년을 향해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조치를 하겠다면서 공포를 한발 쏘자 그 청년은 자진하여 승선하였다는 예가 있다.

세째는 '자살위기를 한번 넘긴 사람은 자살할 위험성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이것도 틀린 말이다. 자살자의 45%가량이 3개월 전에 자살미수가 있었다. 정신과환자의 경우 회복되고 나서 3개월 후에 자살기도가 흔히 일어난다. 또 자살미수자의 15%는 다시 기도를 하며, 자살미수자의 5%는 결국 자살로 인생을 끝낸다.

네째는 '자살은 유전병이거나 정신병이다.'라는 말이다. 이것도 오해다. 자살은 유전과 관계가 없다. 자살기도자의 3분의1만이 정신질환자이고 나머지는 보통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청소년의 자살을 청소년의 심리와 자살의 심리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요컨대 자살을 사회의 책임으로 몰아 부칠 수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각 개인의 심리가 그 밑바닥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증가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할 면이 없지 않다. 그들의 자살이 교육이나 정치의 문제를 깊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한 전인(全人)교육이 필요하다. 또 교육제도와 정치적 현실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음은 말할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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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유태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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