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엄청난 에너지를 내며 폭발한다. 이같은 성질을 잘만 활용하면 반물질은 '에너지의 보고'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물질인데 그렇다면 반물질은 무엇이며 정말 존재하는가.
우리들 주위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 한토막을 소개한다. 반물질로 구성된 은하계와 보통 은하계가 부딪치게 되면 둘다 소멸하여 굉장히 밝은 빛을 내면서 폭발할 것이라는 얘기다. 반물질로 된 은하계가 정말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직 반(反)은하계가 존재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오히려 반(反)은하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상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반물질이 인공적으로만 생성된다. 그것도 극히 짧은 시간동안 존재하고 극소량만 만들어진다. 이 반물질을 만드는 건 입자가속기인데 최근 반물질과 물질이 만나면 큰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끈다. 그렇다면 반물질이란 무엇인가?
평범하게 표현하면 물질과는 반대된다는 의미다.
보아의 모델을 다듬은 슈레딩거방정식
19세기말에는 이미 원자핵을 분리하는 기법을 알고 있었다. 원자구조론의 창시자라고 볼수있는 러더포드경(Sir Rutherford)은 헬륨핵인 알파(α)입자를 축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알파입자선을 사용해 실험한 결과, 원자가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원자의 구조 연구는 더욱 발전을 거듭했다. 보아교수(Niels Bohr)는 처음으로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의 에너지가 얼마인가를(수소 원자인 경우) 계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보아교수의 이론과 계산방법은 다분히 원시적으며 직관적이어서 더 다듬고 개발할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이러한 일을 한 사람이 오스트리아의 빈대학에 있던 슈레딩거(Schrödinger)교수였다.
슈레딩거교수는 원자속에 있는 전자가 꼭 따라야 하는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F=ma 즉 거시적인 물체가 힘 F를 받으면 질량(m)×가속도(a)가 이 힘(F)과 같도록 가속된다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처럼 원자속의 전자가 꼭 만족시켜야 하는 방정식을 슈레딩거교수가 제시한 것.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풀면 물체의 운동을 알듯이 슈레딩거 방정식을 풀면 전자의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슈레딩거는 자신이 제시한 방정식의 해답을 구했다. 또 이 해답에 의한 전자의 에너지가 실제 관측한 값과 잘 맞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슈레딩거 방정식이 전자의 성질을 기술하는 완전무결한 방정식이 아님을 곧 알게 되었다.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이유는 슈레딩거방정식은 상대론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1915년에는 이미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이론이 완성되어 있었다. 또 상대성이론이 정확한 이론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론치와 실측치가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슈레딩거방정식 역시 상대론을 만족시켜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 첫째 결함이었다.
그렇다면 왜 슈레딩거방정식을 풀어서 얻은 전자의 에너지가 관측한 값과 어긋나지를 않았을까?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모순점은 곧 이해가 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움직이는 대상이 빛의 속도와 견줄수 있을만큼 빨리 움직일 때만 고전적인 뉴턴의 이론과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속도가 적을 때는 그 특성이 나타나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전자의 움직이는 속도는 빛의 속도의 몇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슈레딩거방정식이 상대론적이 아님에도 불구, 그 해답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요컨대 비(非)상대론적인 슈레딩거방정식은 빛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는 원자속의 전자에 적용할 때만 유사하게 맞는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모든 전자에 적용할 수 있는 올바른 방정식은 아니었다.
슈레딩거방정식의 두번째 결함은 이렇다. 원자의 구조를 이야기할 때 흔히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처럼 돌고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빠뜨리기 쉬운 사실이 있다. 지구가 공전을 하면서 자전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 역시 원자핵 주위를 돌면서 자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전을 하는것은 '쿨롱'의 힘에 의하여 돌고 있는 전자로서는 당연히 가져야할 성질이다. 슈레딩거방정식은 이 공전하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슈레딩거방정식은 자전 혹은 스핀이라고 하는 성질을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버릴 수도 취할 수도 없었던
1928년 영국의 젊은(당시 20대) 물리학자인 디락(P.A.M Dirac)박사는 슈레딩거방정식의 결점을 바로 잡는 연구를 개시, 마침내 '디락 방정식'으로 알려진 '상대론적 슈레딩거 방정식'을 발견했다.
그런데 1928년 당시의 상식으로는 이 디락방정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얼핏 보기에도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디락방정식에 의하여 계산된 전자의 에너지는 슈레딩거방정식에 의하여 계산된 것 보다 더 정확히 맞을 뿐아니라 '스핀' 즉 '자전의 성질'을 그대로 방정식 자체가 내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슈레딩거방정식의 결함을 모두 고쳐주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크기가 같고 부호가 반대되는 전자의 에너지 상태가 이 디락방정식의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다. 자유전자의 에너지와 부호가 반대되는 에너지는 그 당시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해답이었다.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얘기였는지 살펴보자.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 따르면 정지하고 있는 질량 ${m}_{0}$인 입자는 E=${m}_{0}$${C}^{2}$이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 입자가 움직이면 정지에너지 ${m}_{0}$${C}^{2}$ 이외에 운동에너지를 갖게 된다. 따라서 E=${m}_{0}$${C}^{2}$+(운동에너지)(수식)${m}_{0}$${C}^{2}$이다. 즉 전자의 에너지는 아무리 적어도 ${m}_{0}$${C}^{2}$이지 이것보다 더 적어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E=-${m}_{0}$${C}^{2}$처럼 마이너스일 수는 더욱 없다.
그런데 디락방정식의 해답은 +│E│가 있으면 반드시 -│E│도 허용했으니 당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네가티브 에너지'(negative energy)로 알려진 이 해답 때문에 디락방정식을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이때 디락박사를 포함한 모든 물리학자들은 실로 난감했다. +E의 에너지 값이 실험치와 거의 일치하고 또한 스핀의 성질까지 설명하고 있는 디락방정식을 송두리채 버릴 수도 없고 선뜻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진퇴유곡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E인 해답만이 '물리적'인 해답이고 -E인 해답은 방정식의 '수학적'인 해답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해답이 아니라는 억지 해석(?)을 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실험적으로 관측된 현상과 모순이 없으면 못 받아들일 것도 없다. 그런데 디락방정식은 물리적인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예컨데 -E에 해당하는 해답을 빼고 빛의 산란(사실은 빛과 전자의 산란가운데 톰슨산란이란 부분이지만)을 계산하면 빛의 산란은 0이 된다. 즉 빛이 전자에 의하여 산난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E의 해답을 버렸을 때만). 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이 쳐다보는 푸른 하늘은 빛의 산란에 의한 현상이 아닌가? 따라서 -E 해답을 디락방정식의 물리적인 해답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천재 디락은 자신의 방정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사색을 거쳐 세상이 깜짝 놀란 '반전자'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그 개념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디락박사는 진공의 개념으로부터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는 이 세상에서 진공이라 함은 -E인 에너지를 가진 전자의 상태로 모두 채워진 상태라고 생각했다. 다시말해 -E인 상태로만 꽉 채워져 있으면 진공이기 때문에 이 때는 전기량도 0이고 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떤 자극 예컨대 광자(빛의 알갱이) 혹은 빛을 사용해 -E인 상태에 +2E인 에너지를 공급하면 그 상태는 +E가 될것이다. 즉 -E+(+2E)=+E가 된다. 그러므로 채워져 있던 -E의 상태가 비워지게 된다.
이때 (-e)인 전기량을 가진 전자의 상태 하나가 없어졌으므로 상대적으로 0-(-e)=+e인 전기 상태가 된다. 즉 비워진 (-E)의 상태 자리에는 전자와 반대의 전기량을 갖는 '구멍'(Hole)이 생긴다. 이 구멍의 운동을 조사하다가 질량이 전자와 같고 전기량이 반대인 입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구멍은 진공(-E의 상태가 꽉 차있는)에 비하여 -E 하나가 없어졌으므로 0-(-E)=+E가 된다 (0은 진공의 에너지).
순식간에 사라지는 반입자
디락은 이 구멍상태를 양전자(positron)라고 이름지었다. 양전자는 전자의 반(反)입자라고도 한다.
지금 한 얘기들을 그림과 식으로 정리해 보자. (그림1)은 -E인 상태가 꽉 차있는 진공상태이다.
(그림2)는 에너지가 +2E인 광자(빛의 알갱이)가 들어오는 모습이다. (그림3)에서는 -E자리에 구멍을 남기면서 -E인 전자상태를 +E로 올렸다.
(그림4)는 -E에 생긴 구멍은 진공 즉 (그림1)에 비하여 +E만큼 에너지가 많은 상태이므로 전자와 반대 전기부호를 갖는 ${e}^{+}$(양전자)라고 해석한 것이다.
수식으로는 r(2E)→${e}^{+}$(E)${e}^{-}$(E)라고 적을 수 있다. 여기서 r는 광자, ${e}^{+}$는 양전자, ${e}^{-}$는 전자를 나타낸다. e위에 +-는 전기량, ()속은 각 입자의 에너지를 말한다.
r→${e}^{+}$${e}^{-}$의 반응이 반대로 일어났을 때는 의당 ${e}^{+}$${e}^{-}$→r이 된다. 이는 양전자와 전자가 소멸되어 빛이 됨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전자와 반전자가 부딪쳐서 에너지화 되는 것을 뜻한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엄청나서 반입자를 에너지화 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문제가 많다. 실제로는 r→${e}^{+}$${e}^{-}$ 반응은 촉매제인 핵자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양전자의 생성은 N이라는 원자핵(핵자)의 촉매를 통해서 일어난다.
디락박사의 양전자이론이 1928년에 발표되었을 때 아무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1936년에 앤더슨(Carl Anderson)박사에 의하여 우여곡절끝에 양전자가 발견될 때까지 무려 8년동안이나 세상은 이 획기적인 이론에 등을 돌렸다. 이때부터, 알려진 모든 물질의 구성입자인 양성자와 중성자 역시 그 반(反)입자 즉 반양성자와 반중성자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되었다.
반입자는 입자와 질량이 같고 기타 동역학적 성질 (스핀 등) 은 같으나 전기량이 반대인 입자를 말한다.
양전자의 발견에 이어 1959년에는 반(反)양성자가 밝혀졌다. 그 공로로 세그레와 체인바렌 교수는 노벨상을 받게 되고 반(反)입자의 개념은 확고한 실험적인 토대를 얻게 된다.
그러나 반물질이 인공적으로 얻어진 것은 7년후의 일이다. 1966년에 이르러 비로소 반물질이라고 할 수있는 반(反)중수소 핵이 강력한 가속기에 의하여 몇개 만들어 졌다. 콜럼비아대학의 레러만교수팀의 개가였다. 하지만 이 반물질은 무척 짧은 생명선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몇억분의 1초 동안 존재하다가 반 중수소핵과 부딪쳐 소멸되고 만 것이다.
반태양, 반인간, 반은하계…
왜 우리들 우주의 별 태양 은하계 사람 등은 물질로만 되어 있을까? 반물질로 되어 있는 반태양, 반인간, 반은하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원리적으로는 반은하계가 없으라는 법이 없다.
현대 우주론은 소립자물리의 힘을 빌려 왜 이 세상이 물질로만 되어 있는지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어렵고 복잡하고 설명이 어려울 뿐만아니라 현재로는 맞는지 틀리는지 조차 모른다.
물론 우리들 주위와 가까운 은하계에는 반물질이 없다는 간접적인 증거는 많다. 먼 은하계에서 오는 우주선 성분속에 반물질이 없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증거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관측을 벗어난 먼 우주의 한 구석에는 반물질로 된 세상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현대 우주론은 지금도 우주와 그속의 물질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매일같이 개량하고 제창한다.
최근에는 우주가 막(Super membrane)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론도 나오고 있다. 소립자 역시 점이 아니고 작은 막(membrane)일 것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콜럼비아대학의 학생으로 있던 1960년대, 디락교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분은 전자 및 다른 소립자의 막 모형(membrane model)을 주장했는데 당시 권위있는 물리학자들은 웃어 넘길 뿐 결코 믿으려하지 않았다.
20년 이상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 이론의 핵심 부분이 재생(再生)되는 것을 볼때 디락교수의 천재적인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복하며 무한한 존경과 선망을 느끼게 된다.
(이글 가운데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과학동아 편집실로 엽서를 통해 질문 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