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심장병을 후진국형이라고 부른다면, 지금 우리는 이미 선진국형으로 돌아섰지요. 풍선요법은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줄여줍니다."
풍선카데터(Catheterㆍ導子)를 이용한 승모판 협착증치료에 성공, 성가를 올렸던 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이웅구(李雄求ㆍ48)교수를 찾았을 때, 그는 마침 수술중이었다. 어떤 수술인가 궁금해서 수술실을 찾아갔다. 여느 수술이었다면 일반인은 수술실 문턱에도 다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교수를 처음 만난 수술실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수술을 받고 있던 환자는 아무런 마취도 하지 않은듯 연신 "이교수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제 살게 되었읍니다"라고 사의(謝意)를 표했고 이교수는 "이젠 됐읍니다. 대성공입니다"라고 말하며 환자를 안심시켰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수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당시 그 수술실에서 행해졌던 수술이 그렇게 만만한 수술은 아니었다. 더욱이 이교수의 전공은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내과가 아닌가? 형광항체를 활용한 관측계기(플로로 스코피)에는 환자의 심장이 그대로 비쳐지고 있었다.
●-환자의 몸속에 들어간 「환상의 유도탄」
-무슨 수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심근(心筋)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안벽에 기름기가 낀, 즉 죽상(粥狀)경화증을 해소시키기 위한 수술이지요. 그런데 자랑할 게 하나있어요. 과거에는 막힌 혈관을 뚫는데 스트렙토키나제(Streptokinaseㆍ연쇄상구균에서 추출한 효소)나 유로키나제(urokinaseㆍ오줌에서 추출한 효소)를 썼지요. 이들은 효과면에서도 50% 이하였고, 알레르기 반응, 출혈 등 많은 부작용이 있었지요.
그래서 미국 제넨텍(Genentech)사(杜)에서는 효과도 80% 이상이고 막혀있는 혈전만을 부수는 '환상의 유도탄', r-TPA(recombinant-Tissue type Plasminogen Activator)를 개발했지요. 이것을 이 환자에게 적용하고 있는데 아주 효과가 좋아요"
벌써 다섯사람째 이 약제를 활용, 수술하였는데 한결같이 성공했다고 이교수는 자랑했다.
그러나 그는 "r-TPA는 자체독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출혈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지요. 특히 치질환자나 상처가 있는 환자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의도 잊지 않았다.
또 r-TPA가 막힌 혈관을 뚫는 원리를 묻자 "r-TPA는 혈액속의 피브리노겐(fibrinogen)이 피브린(fibrinㆍ혈액을 응고시키는 단백질)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플라스민(plasmin)을 생성"한다고 대답했다. 아뭏든 일반 환자에 대한 r-TPA의 실제적용은 국내최초의 시도.
-화제를 모았던 풍선(baloon)요법에 대해 얘기해 주시지요.
"심장의 좌심실과 좌심방 사이의 판막이 승모판입니다. 이곳에 죽상경화증이 발생하면 혈액의 원활한 흐름이 어렵게 되지요. 그래서 이곳까지 정확하게 풍선카테터를 유도한 후 풍선을 순간적으로 부풀림으로써 좁아진 판막구를 넓혀주었읍니다. 이를테면 물리적으로 혈관을 넓히는 것이지요"
-물리적으로 넓어진 혈관이라면 탄성에 의해 다시 좁혀질 수도 있을텐데요.
"대개 3차례 풍선을 오무렸다 폈다 합니다. 물론 다시 좁혀지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발표를 꺼렸어요. 좀더 두고 보려고…. 하지만 아직은 별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았어요. 외국 문헌을 찾아봐도 괜찮은 것으로 돼 있죠"
-풍선요법은 사용하는 계기가 됐던 승모판막 협착증(stenosis)은 어떤 병인가요?
"승모판막 협착증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심장병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류머티즘성 심장판막증의 하나지요. 류마티즘성 심장병은 '가난의 병'입니다. 주로 후진국에서 후천성으로 오지요. 또 이 병은 연쇄상구균에 의한 목감기, 편도선염등을 앓은 다음에 발병하는 일종의 면역병입니다."
-기술상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특히 협착된 부위까지 풍선카테터를 정확히 보내기 힘들었을텐데….
"가는(細) 혈관속에, 그것도 혈류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문제된 부위를 찾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도중에 막힌 곳은 뚫고 통과해야 했어요. 물론 이 과정에서 실패한 경우도 있지요.
수술방법을 간단히 소개하겠읍니다. 우선 동맥을 통해 비교적 내강(內腔)이 큰 도자(대롱)를 협착된 부위까지 밀어 넣읍니다. 이때 이 굵은 도자 안에는 팽창이 가능한 작은 풍선이달린 아주 가느다란 도자가 끼워져 있지요. 굵은 도자가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곳에 다다르면 가는 도자를 더욱 깊게 밀어 넣어서 협착 부위에 도달하게 한 후 풍선을 팽창시킵니다. 협착 된 즉 기름이 낀 부위를 납작하게 눌러서 혈관을 원상대로 회복시키는 거지요"
-실패한 경우가 있다고 말씀했는데 전부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요. 또 선진국에서도 전체 풍선수술의 15%정도만 성공한다는데 이렇게 낮은 성공률에도 무슨 이유가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88년 6월 현재까지 15번 수술했는데 그 중 3케이스에서 실패를 했어요. 1차~3차가 연속실패였지요. 그래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읍니다. 외국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기도 했지요.
실패의 원인은 수술 시작단계에 있었어요. 말하자면 수술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을 수술했기 때문이지요. 기술상의 미숙으로 실패한 경우도 1번 있어요. 도자는 반드시 심장중격을 뚫어야 통과할 수 있는데, 관통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80% 정도의 성공률을 보였으니 괜찮은 편이죠. 그런데 이 수술은 몇 가지 제약이 있어요. 우선 협착된 곳이 관동맥에서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또 도자가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동맥이 비좁거나 막혀있으면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또 관동맥 벽에 낀 기름기가 오래되어 돌같이 굳어진 경우에도 효과가 없읍니다. 풍선으로 돌을 부풀려 봤자 뾰족한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제약을 갖는 사람들은 개심(開心)수술을 할 도리밖에 없지요."
●-심장병은 이미 선진국형으로
-풍선을 이용한 수술은 이번이 처음입니까?
"아닙니다. 폐동맥판막의 선천성 협착증에 대해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읍니다. 그런데 이 병은 선천성이기 때문에 소아과의사의 영역이죠. 또 승모판막 협착증의 풍선요법보다는 한수 아래의 기술입니다"
-부작용은 없었읍니까? 또 비용은 어느정도 듭니까?
"아직 이렇다 할 부작용은 없어요. 그리고 입원기간이 짧아(5일 정도) 경제적 부담도 줄어 들지요. 수술비용은 의료보험환자는 약 1백만원, 일반 환자는 3백만원 가량 들 겁니다. 만일 이 환자가 개심(開心)수술을 한다면 입원기간이 적어도 한달은 될 것이고 수술비도 1천2백만원정도 마련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줄어든다는 사실이겠지요"
-한국인의 심장병 발생현황에 대해…
"선천성 심장병은 이제 '사양산업'입니다. 근래에는 관상동맥(심장 근육을 돌면서 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에 기름이 끼어 발병하는 협심증, 심근경색증, 죽상경화증등의 꾸준한 증가추이가 눈에 보일 정도 입니다. 선천성 심장병을 '후진국형'이라고 부른다면, 지금 우리는 심장병의 선진국화를 맞고 있는 셈이지요."
이박사의 수술실을 나오면서 풍선수술 도전에서 3전4기했을 순간의 제1성을 물었더니 "아이고 만세다"란 탄성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이력서를 펴 보니 연세대 의대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의과대학에서 공부했고, 연세대에서 11년 전부터 심장내과교수 또는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 이력서의 특기할 사항에는 국내최초로 시도해서 성공한 5가지 의학적 업적이 기술돼 있었다.
"한 가지도 하기 힘든데…"라는 질문에 대해 이박사는 "이미 외국에서 다 이룩해놓은 것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작업일 뿐이죠. 별 대단하 게 못됩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거쳐야만 세계 제일도 가능해질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