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화의 역사'는 '표준화의 역사'라고 할만큼 국가표준제도는 한나라 과학기술 산업의 근간이 된닫고 할 수 있다. 1m의 길이가 달라서, 1kg의 무게가 정해있지 않아 겪는 혼란은 쉽게 상상이 간다. 더군다나 1μ(${10}^{-3}$mm) 이하의 정밀도가,반도체를 비롯 모든 제품에 요구되다시피 하는 요즘과 같은 과학기술시대에는 표준제도에 의한 정밀측정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최근 새로이 표준연구소의 책임을 맡아 국가표준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충희(53) 소장을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첨단과학시대의 기본은 정밀측정능력
―일반인들이 생각하길 표준이라 함은 물건살 때 사용하는'저울의 눈금'정도를 생각하는데, 표준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저울의 눈금으로 대표되는 도량형, 즉 길이 무게 부피 등의 단위는 반드시 표준화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거래에 큰 혼란이 오지요. 특히 요즘과 같은 과학기술시대에는 기본단위 이외에도 측정량의 종류가 1백여개나 돼, 이들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읍니다. 즉 표준화란 공정거래 차원에서뿐 아니라 산업활동과 과학기술연구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지요."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필연적이듯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 나라의 표준제도가 잘 유지돼야 한다는 뜻. 또한 기계문명의 발달로 고도산업사회가 됨에 따라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각종 물리량은 더욱 다양화되고 높은 정밀도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예를 곁들인 이박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동차의 경우 2만개 이상의 부품이 모아져 만들어지는데, 이 부품의 칫수가 일정치 않으면 자동차는 완성되지 못합니다. 또한 자동차 조립의 정확도는 1천분의1mm인데 비해, 항공기나 대형 선박의 경우는 1만분의1mm, 우주왕복선은 10만분의1mm이상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그나라의 표준제도가 산업발전 및 과학기술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산업기술적인 측면과 더불어 국가표준의 제정 및 유지발전은, 자연과 사물의 정확한 인식에 기초한 새로운 지식의 형성, 그리고 국민 상호간의 신뢰성 및 동질성 회복이라는 철학적 측면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박사의 말대로 '저울의 눈금'에 머물고 있는 표준에 대한 시각교정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표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읍니까.
"우리나라에서 국제단위계에 의한 국가측정표준을 도입한 것은 조선말기인 1894년입니다. 백금90%―이리듐10% 합금으로 만든 미터바와 킬로그램원기(지름 높이 각각 39mm원기둥)를 도입했는데, 킬로그램원기(原器)는 지금까지 국제표준으로 사용하고 있읍니다. 이처럼 초기의 국제도량 표준원기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를 포함, 20여개국에 불과합니다.
그후 크롬86 원자에서 나오는 오렌지색 파장의 몇배가 1m다, 혹은 세슘원자시계에서 나오는 주파수로 1초를 정의하는 등 자연현상을 가지고 기준단위를 재정립하는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추어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읍니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NBS(미국국립표준국)와 공동으로 옥소안정화헬륨네온레이저를 가지고 길이표준의 원기로 삼은 것을 들 수 있읍니다. 이정도 수준을 갖춘 나라는 10여개국밖에 없읍니다."
―표준연구소의 활동을 소개해주시지요.
"75년에 설립돼,정부 출연연구소로는 최초로 대덕연구단지 내에 자리잡은 78년부터 본격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해오고 있읍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측정량의 단위가 1백여개 인데, 우리는 80여개 정도의 표준화 업무를 추진하고 있지요. 길이 온도 시간 무게 등 기본단위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표준1부와 음향 힘·유량 재료 방사선등의 응용파트를 다루고 있는 표준2부, 산업계에 정밀측정기술을 보급하고 있는 기술지원부, 정밀계측기센터 등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읍니다."
소장으로 취임한지 한달 남짓한데 어떤 실무자보다도 업무를 훤히 꿰뚫고 있다. 이는 이충희소장의 약력을 보면 누구든 쉽게 이해가 간다. 이 소장은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물리학 학위를 받은 뒤(69년), 국내에 귀국해서(71년) 경희대학과 한국과학원에서 잠시 교단에 섰다가, 표준연구소 설립 이후 10년이 넘도록 줄곧 한우물을 하고 있다. 소장이 소위 '낙하산식 인사'가 아닌 내부승진이라서 연구원들의 사기가 높다고 한다.
―초창기 표준연구소를 정착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처음에는 아무래도 연구개발보다는 '표준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계몽활동에 치우쳤읍니다. 지방을 돌면서 강연도 하곤 했는데 주로 공갈협박(?)을 많이 사용한 것 같습니다. 즉 생명과 관련이 있는 체온기 혈압계 등이 엉망이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식이지요. 현재 전국에 2차 3차 국가 교정검사기관망이 형성돼 있음에도, 아직 불량자나 불량저울이 만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지요."
―우리나라의 표준에 대한 연구개발 인력수급은 어떻습니까.
"현재 연구원이 4백30여명이니까 전체적인 양에서는 선진국과 비교해 그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박사급이 55명으로 고급인력은 많이 부족합니다. 이는 연구생산성으로 직결돼, 우리나라의 표준연구소가 연구논문이나 특허, 산업지원면에서 만족스럽게 제역할을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앞으로 포스트닥(Post Doctor)제도를 도입,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시행할 주요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까지를 반성해본다면 우리연구가 국가표준에 대한 기본연구보다는 응용수탁연구에 치우쳤다고 할 수 있읍니다. 이는 연구원들이 돈의 흐름대로 움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기본연구에 예산을 많이 배정해 흐름을 바로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의 표준연구소를 연구해 한국형표준연구소모델을 확립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개별분야에 대한 연구개발만이 주관심인데, 80년에서 1백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외국의 주요 연구소를 공부해 그 결과를 우리에게 보완 적용한다면 연구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지요."
'2천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에 표준분야가 빠져 있는데에 아쉬움을 느낀다는 이충희소장은 표준연구소의 터주대감답게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전력을 쏟고 있다. 내부사정을 너무 잘 알아, 또는 연구생산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연구원들의 생명이랄 수 있는 자율적 분위기가 위축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참고로 하겠다'고 웃으면서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