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전된 동물행동생태학등을 통해 동물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차이나 유사점 등을 더듬어본다.
사람이 어느 특정의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동물들도 같은 종의 특정개체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사랑'이란 말 자체가 어느 정도의 범위를 가르키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낳게 한다. 국어 사전에는 다음의 4가지 답이 있다.
①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런 마음.
②마음에 드는 이성을 몹시 따르고 그리워하는 일. 또는 그러한 마음.
③일정한 사물에 대하여 몹시 즐기거나 좋아하는 마음.
④동정 긍휼 구원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 곧 독생자 예수를 보낸 하나님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의 사랑.
동물들은 이런 언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란 상황이 실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개념으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동물의 사랑'은 사람들이 유추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랑이라는 것을 ④의 의미로 해석하여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특유의 숭고한 정신활동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동물에는 사랑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형태나마 동물도 갖고 있다고 본다면 ①②③이 모두 있을법 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세기의 후반부터 발달되어온 동물행동학이 동물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을 도입해 가는 가운데 '사랑'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연구하고 논의하게 되었다. 그렇게되자 인간이 멋대로 생각하여 인간의 사랑과 같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혀 의미가 다른 내용이고 감정도 다른것임이 밝혀졌다. 반대로 사람들이 잔학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랑의 표현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동물의 사랑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더우기 최근에는 행동생태학이나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가 발전하여 모성애나 집단행동에서 볼수있는 '이타적행동'(利他的行動)을 '이기적 유전자'(利己的遺伝子)로 설명하게끔 되었다. 지금까지 이타적행동은 '종족보존을 위해'서나 '무리를 위하여'라는 무리도태(群淘汰)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연선택을 철저히 파고든 설명이 새로운 학설로서 많은 호응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어떤 행동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의 설명은 접어두고 사람들의 눈에 '사랑'으로 비치는 동물들의 행동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소개하는데 주력하여 암컷과 수컷, 어미와 새끼, 무리의 개체 관계등으로 나누어 인간의 사랑과 다른 점이나 유사한 것에 주목하여 그 본질을 더듬어 보자.
연애란 동물적인 것인가
지금 연애중인 커플에게 '동물적'이라고 말하면 화를 내겠지만 무성생식을 하는 동물이 아닌 이상 자웅의 접촉은 불가결한 것이며 몇가지 커뮤니케이션이나 스킨 쉽을 거쳐 교미나 교접에 연결된다. 즉 인간의 남녀의 연애와 동물의 자웅의 접촉은 꼭 같지는 않지만 같은 계열에 놓고 볼 수 있다. '인간적'이라는 형용사가 인간특유의 상황을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라면 동물전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것은 '동물적'이라고 형용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의 연애감정에는 동물에는 없는 높은 정신활동을 수반하는것에 중점을 두어 '동물적 연에'라는 표현에 찬의를 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번쯤 동물들의 '사랑'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발이 수십개 달린 기분나쁜 지네로부터 인간에 가까운 침팬지까지 유성생식하는 동물들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자웅이 만난다. 그래서 그 만남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수컷이다. 수컷은 암컷을 엎드려 암컷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암컷을 만났을 때의 수컷의 행동은 어느동물이나 극히 공통적이어서 연인을 만난 젊은 청년의 동작과 흡사하다.
먼저 그는 자신을 그녀에게 알린다. 암컷이 자신을 잡아먹을 가능성이 있는 거미나 사마귀의 경우 이외엔 힘껏 '나야'하고 신호를 보낸다. 소리를 내는 동물은 최대의 볼륨으로, 소리를 내지 않는 동물은 손을 흔들거나 발을 들어올리거나 거꾸로 서거나 공중제비를 돌기도 한다. 수컷 기러기가 암컷 기러기의 마음을 끌기 위해 갑자기 빠르게 날다가 갑자기 멈추거나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싸움을 걸거나 하는 것을 보고 동물행동학자인 '코랜드 로렌츠'는 오토바이를 타고 빙빙도는 불량소년을 연상했다. 공작이 좋은 예인데 새중에는 수컷이 아름다운 깃을 가지고 이것을 펼쳐서 암컷에게 보이기도 하며 암컷이 좋아할 선물을 주기도 한다. 외면적 유사점으로 보면 곤충에서도 선물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수단이나 노력에 의해 수컷이 암컷의 마음을끄는데 성공하게 되면 다음은 자웅끼리의 스킨 쉽을 거쳐 교미에 이르게 된다. 접촉감각이 뛰어난 동물은 가장 예민한 부분을 접촉시킨다. 대부분은 입과 그 부근이며, 코끼리는 코인 것이다. 물론 성기는 감각이 가장 예민한 곳이니까 스킨 쉽에 최후는 교미인 것이다.
성에 심하게 집착하는 것은 너무 '동물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이란 베일로 감싸버리며 때로는 플라토닉 러브에 이르기도 한다. 동물도 '성'과 '사랑'이 기능분리 되어버린 예가 있다. 로렌츠와 '헤르가 휘셔'는 잿빛기러기연구에서 '승리할 때'라는 공격행동에 관련된 행동양식을 거쳐서 두 개체가 연결되는 과정이 인간의 연애감정과 비슷한데 까지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잿빛기러기의 사랑하는 한편이 죽거나하면 남은 쪽은 즉시 다른 개체와 부부가 되거나 하지 않고 1년이상 독신으로 지내는 경우가 흔히 있다. 또 한평생 혼자 지내는 극단의 예도 있다. 이러한 '성실한 결혼'은 물론 보기 드문 것이지만 이런것을 발견한 헤르가 휘셔는 "기러기는 상당히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어미와 새끼의 깊은 유대
여성이 결혼하면 처녀에서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으면 아내에서 어머니로 변한다. 단순하게 상황이 바뀐것만이 아니고 여성은 심신이 모두 변하게 되는것이다. 여성과 얘기 할 기회가 많은 라디오프로의 아나운서들은 '여보세요. 여보세요'한뒤 두세마디만 대화를 해보면 처녀인지 어머니인지를 금방 알아 맞힌다.
많은 동물들의 암컷도 변화의 질과 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역시 변한다. 특히 조류와 포유류는 새끼가 어미의 보호를 받게 진화되어왔으므로 어미와 새끼의 깊은 유대는 모성애라는 말로 간단히 말해버릴 수만은 없는 깊이가 있다. '모성애'에 그러한 깊은 것까지 포함시켜도 상관없지만 사랑과 성을 분리할수 있다면 '모성애'와 '모성본능'(우선 이렇게 표현해두자)도 분리가능하지 않을까.'
동물의 암컷은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고 자신의 유전자에 있는 정보(이것을 모성본능이라 하자)에 따라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완수해 간다.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말은 곤충과 같은 절족동물이라면 옳을 지 모르나 조류나 포유류에게는 배울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육아가 뜻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상당히 생리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학습이 거의 필요없으나 태어난 별개의 생명체에게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지 않으면 안되는 육아의 경우는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상대는 모두 무력한 어린것이기 때문에 갖은 방법으로 먼저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새끼를 갖고싶다' "새끼를 기르고싶다"는 희망이나 충동만으로는 새끼가 만족하게 자랄 수 없다. 어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그리고 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성본능에 뿌리를 둔 모성애는 필요에 따라 어미로서의 현명함을 한 몸에 지니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 모성애라는 것은 그 동물의 지능의 높이에 비례하여 높아진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인간에 이르러서는 모성애를 객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데 까지 와있으나 현재와 같이 인구가 마구 불어난다면 동물에게 부끄러워 얼굴을들수 없는 어머니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새끼때 야생으로 잡아와서 사육하거나,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를 사육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새끼 기르는 법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 어미가 흔히 있다. 그래서 무력하게 그저 울고 있는 새끼를 그냥 내버려두거나 때로는 먹어치워 버리는 수도 있다. 이럴때 사육담당자가 새끼를 맡아 기르게 되는 것이다. 말, 노루, 기린, 임팔라 등과 같이 발굽이 있는 동물의 새끼는 충분히 자란 후에 태어나며 그뒤의 발육도 빠르므로 어미에게서 떨어져도 사람이 기르기 쉬우나 원인류나 육식 맹수의 새끼는 상당히 미숙하거나 발육이 늦거나하여 사육자의 부성애가 발휘되어야만 잘 자랄수 있다.
동물의 모성은 기계적인 것인가 헌신적인 것인가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여도 대단히 헌신적으로 보이는 동물의 어미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자극―반응'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어미를 새끼와 오랫동안 묶어두는 것은 강한 애정보다 기계적 행동반응으로 보는 것이다. 괴롭다거나 무섭다거나 피로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이 단지 '어떤 자극'에 대하여 반응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밑에 조그만 유충을 깔고 보호하는 어미방귀벌레, 적이 가까이 오면 새끼를 입속으로 빨아들이는 마우스 브리더, 더울때 날개를 펴서 새끼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벌곰새의 어미등 이들 모두가 인간의 모성행동을 연상케 하며 헌신적인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어미들은 새끼들로 부터의 어떤 자극(정보라해도 좋다)에 어미다운 행동양식으로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새끼로부터 자극이 끊어지거나 어미의 감각이 흔들리면 방귀벌레는 유충을 털어버리고 어미고기는 새끼고기를 삼켜버리고, 어미새는 새끼새를 쪼아 죽여버리고 만다. 안개때문에 코스를 바꾼 비행기가 어느 은여우 사육장의 상공을 낮게 지나갔을때 사육중인 어미 여우들이 자기 새끼를 모두 먹어버린 유명한 일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모성애에 가까운 것이나 혹은 닮은 점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인 결과는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다.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는 감정이 들때는 그 직전에 어떤 사물을 의인적으로 보았다고 생각해도 좋다. 동물이 생활하여 가는 기준이 인간과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그 당연함을 때로는 잊어버린다. 이 동물의 생활을 올바르게 지켜보면 반드시 그들이 일정한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되고 그 기준 속에는 '용서할수 없다'라는 것은 결코 없는 것이다.
어미가 새끼에게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애정'(현실적으로 동물은 가끔 먹어 치운다)을 느끼고 있을 때 수컷은 거의 간섭할 수가 없다. 수컷은 그러한 강한 감정을 경험한 바 없으므로 대응책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모성애는 수컷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나, 이에 가까운 감정이라 한다면 암컷에 대한 수컷의 감정일 것이다. 수캐는 암캐를 결코 물지 않고 사자의 수컷은 암컷이 어느정도 공격해 오더라도 반격하지 않는다. 어느 동물원의 사자원에는 열여덟마리의 사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사파리 버스를 타고 돌며 보니 열네마리의 수컷은 모두 피투성이로 상처가 나 있고 네마리의 암컷은 상처도 없이 깨끗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예도 있다.
동물집단 속의 타인과 자기
포유류나 조류의 대부분은 집단을 이루고 있다. 곤충 중에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은 벌, 개미, 바퀴벌레 등이다. 집단이라고 해도 개체끼리의 사이에 거리를 일정하게 지키는 바닷새나 포유류로 부터 바짝 몸을 붙이고있는 곤충까지 여러가지가 있다. 집단생활에는 나름대로의 이점과 결점이 있다. 먼저 바짝 몸을 붙이는 집단의 보온효과가 있다. 특히 외기온도로 체온이 좌우되는 곤충에게는 유효하고 항온동물도 겨울에는 발열을 절약할 수 있다. 다음은 '여럿이 함께 있으면 겁나지 않다'는 효과다. 미지의 환경으로 나아갈 때나 무서운 천적이 습격해 왔을 때 주위에 많은 동류가 있으면 공포심이 엷어진다. 천척에게는 '모빙'(mobbing)이라는 실력행사 방법이 있다. 전원이 결속하여 대항하면 천적이 겁을 내어 도망가게 된다는 것이다.
절약은 열 뿐만 아니라 에너지에도 적용된다. 집단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 V자형으로 편대비행을 하는 새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맹수를 피해 도망가는 유제류(有蹄類·ungulate)의 무리에서는 물이나 공기의 흐름이 뒤에서 좇아가는 동류들에게 힘이 덜들고 수월하게 해준다. 또 적을 쉽게 발견하는 효과도 생각할 수 있다. 초식동물의 대부분은 눈이 측면에 붙어 있어 3백도 이상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항상 감시만 하고 있을 수 없으니까 교대로 감시역을 맡는 몇 마리가 있으면 다른 동류들은 마음놓고 풀을 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무리의 이점이란 것이 맹수들로서는 대량의 먹이를 공급받는 이점이기도 하다. 많은 개체가 무리로 있으면 멀리서도 찾아내기 쉽고 고양이과의 동물은 발굽짐승 무리를 노려 무리로부터 조금이라도 떨어진 약소한 개체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한마리씩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지만 꿀벌의 집이나 개미집은 성충뿐만 아니라 유충과 모아놓은 식량도 얼마던지 있으므로 매력있는 먹이가 된다.
먹히는 쪽의 집단은 물론 가만히 앉아서 먹히고 있지많은 않는다. 여러가지 대항책을 발휘한다. 새나 포유류 집단은 적의 접근을 눈치 챈 몇몇개체가 예리한 경계음으로 동류들에게 위험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이런 행위가 적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결과가 되어 잡아먹힐 위험에 빠지기 쉽기때문에 얼른보면 이타적으로 보인다. 이것을 최근의 이론에서는 만일 자신이 잡혀먹히더라도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동류를 구하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이되고 결국은 이기적 행위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소위 혈연선택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작은 새들이나 임팔라 무리에서 그런 설명에 납득한 것 같은 기분이 되어도 아프리카 코끼리의 무리에서는 약간 저항감이 생긴다. 코끼리는 병이난 동류를 양쪽에서 부축하거나 죽은 동류를 매장해줄 정도로 지능이 높은 동물이다. 인간의 어느 집단이 그 구성원의 위험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감정이 있는 지도 모른다. 혈연선택의 이론을 사람들이 납득한다해도 거기에 이타적 '감정'이 수반하느냐 않느냐 하는데 대해서는 별도의 증명이 필요할 것이다. 집단생활의 결점은 잡아먹힐 표적이 되는 것 이외에도 있다. 집단내부의 공격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대저 한 개체의 수준으로 공격에 대한 방어나 반격을 해오던 것이 많은 수의 동류가 모여 집단을 이루었으므로 크건 작건 공격성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각 개체가 가지는 공격성을 잘 통제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동물들은 그런 제멋대로의 걱정을 제껴놓고 4가지 타입으로 공격성을 회피하고 있다는 설을 내놓은 것이 로렌츠이다.
첫째는 가까이 있는 동류를 모두 개체로 보지 않으려는 타입이다. 따라서 '공격할 상대가 아니다'라고 하는 회피방식을 갖는다. 두번째는 작은 구역을 상호불가침의 세력 영역으로 지키는 타입이다. 공격할 장소를 확실히 해두어 쓸데없는 공격을 하지않게 회피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공통의 냄새로 공격을 억제하는 타입이다. 냄새의 억제가 없는 경우는 격렬하게 공격하고 동류끼리는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다. 쥐들의 대집단이나 꿀벌의 대가족이 그런 예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개체를 분명히 인식하여 상호의 사랑과 우정으로 공격을 억제하여 단결함으로써 공격성을 밖으로 향하게 하는 회피 타입이다.
집단의 공격성회피방법 중 네번째의 것 만이 상대의 개성을 인정하고 거기서 생기는 '사랑'을 커다란 억제기능으로 삼고 있다. 이 '사랑'은 지성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본능적인 충동과 연동되어 있는 암컷과 수컷사이의 사랑이나 어미와 새끼사이의 사랑과는 약간 다른 것이다. 지능이 높은 아프리카코끼리의 무리에도 그러한 '사랑'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상과 같이 동물들의 사랑의 모습을 살펴보면 본능적인 충동과 그것을 잘 조정하기 위한 지성을 수반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동물들의 지능이 높아갈수록 동물적인 사랑으로부터 인간적인 사랑으로 옮겨가고 있는것 같다. 이러한 동물로부터 얻은 '사랑'의 인식은 사람들의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것이 틀림없다. 개성을 존중하면 개성과 개성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또 '사랑'이 생기며 그 사랑으로 사회생활에 따르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