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진단을 거치지 않은 사망신고 자체에 신뢰성이 약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은 고혈압 동맥경화증 중풍 등 순환기계질환이 가장 많고, 간암 위암 등 암으로 죽는 사람의 비중이 2번째로 높은 것으로 경제기획원 조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 조사는 또 40대 사망률과 교통사고사가 세계최고이며, 사망원인구조가 후진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급격히 접근해가고 있다는등 몇가지 주목할만한 사실도 아울러 제시하고 있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얼핏 보아 이론의 여지가 없을듯한 사망원인분석에 대해 '문제가 있다'며 반론을 제기하고 나선 전문가를 만나보았다. 바로 연세대 보건대학원장인 김일순(金馹舜)교수.
●―암사망자수, 급격히 늘지 않는다
-경제기획원의 사인조사결과발표에 어떤 문제점이 있읍니까?
"우선 사망신고내용 자체에 신뢰성이 없어요. 사망신고의 67%가 의사의 진단을 거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반장 이장 지서주임 또는 동네사람들이 사망원인을 판단해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 게 우리의 실정입니다."
-통계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는데, 그렇다면 내용면에서는 어떻습니까.
"통계를 보면 암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81년에 10.5%에서 86년에 16.4%로 높아졌으며 숫자상으로는 무려 78.6%나 증가한 것으로 돼있어요. 그러나 암이 그토록 급격하게 사망자가 증가하는 질병이 아닙니다. 위암이나 간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건 사실이나, 추세는 감소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외국의 예나 원인을 추정하면 감소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식생활습관의 변화도 암을 감소시키는 요인이지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읍니다. 과거에는 몰랐던 사망원인이 의료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암으로 밝혀진 경우가 많았으리라는 겁니다. 81년에 36%나 되던 사인불명(死因不明)이 86년엔 16%로 줄어든 데서도 납득이 가는 추리입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겉으로 드러난 발표내용에 문제점이 있는 것 같군요. 이른바 사망원인구조의 선진국형으로의 변모라는 당국의 발표에도 무언가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망원인구조의 선·후진국형은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으냐, 아니면 비감염성 질환 즉, 요즘말로 성인병에 의한 사망자가 많으냐로 구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양쪽의 사망비율이 교차된 때가 1972년입니다. 이때부터 선진국형으로 돌입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사실은 비감염성 질환도 가난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것이 있고, 부자가 잘 걸리는 게 있어요. 암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이 잘 걸리는 위암 간암 자궁암은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고, 대장암 유방암은 선진국사람들에게서 흔한 것이에요.
순환기계질환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에서 순환기계질환이라고 하면 심장병이 흔하지만, 우리는 중풍같은 뇌혈관계질환이 많아요. 심장병은 동물성단백질이나 지방을 많이 먹으면 발병하는데, 우리나라의 50대 60대는 20년전까지만 해도 거의 고기를 못먹은 세대 아닙니까. 반대로 중풍은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며 감소하게 돼있어요. 따라서 우리도 앞으로는 심장질환이 많아지고 뇌혈관질환은 감소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성인병 사망자가 는다고 해도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아직은 경제수준이 낮은데서 많이 걸리는 개발도상국형이라고 보아야 옳다는 생각입니다."
-암얘기가 나왔읍니다만, 앞으로 암의 발병추세는 어떻게 될까요?
"간암이나 위암은 주는 대신 대장암이 늘 것이고, 여자는 자궁암이 줄고 유방암이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앞으로 10년내에 폐암이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기 시작한 게 60년대 중반부터였으므로 그 영향이 사망원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담배수입문제는 통상의 차원이 아닌 국민건강 혹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돼야 합니다."
●―생정통계의 과학화가 시급하다
-다시 경제기획원의 발표내용으로 돌아와 묻겠읍니다. 40대 사망자의 비율이 세계최고라는 건 믿을만 한가요.
"그것 역시 이해하기 힘들군요. 연령별 특수사망률커브라는 게 있는데, 외국과 차이가 없어요. 우리나라 40대만이 유달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배경설명도 이해가 안갑니다."
이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사망률통계가 그렇게 간단히 조사, 발표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발표내용과 전문가의 견해가 상반된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이교수 자신은 "당국을 비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발표내용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지적하는 것일 뿐"이라며 아마도 경제기획원이 보건전문가의 검토가 없는가운데 형식적인 통계치만 갖고 공표한데서 빚어진 현상일 것으로 진단했다.
-사망률통계의 문제점과 관련해서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전체국민의 사망원인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어야 하겠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신고의식이 높아져야겠고, 병·의원을 통한 정확한 사망진단이 필수적입니다. 선진국에선 모든 사망은 검시관이 입회하며 의사의 진단이 필수로 돼있어요. 또 사망순간을 본 사람이 없을 경우는 부검을 실시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고 있읍니다."
사망률통계의 문제점과 개선책이 화제로 떠오르자 이교수는 덧붙여 생정통계(生政統計)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농·수산통계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많은 인원이 조직적으로 통계시스팀을 형성하고 있는데 출생 사망 결혼 등 가장 기초적인 생정통계가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학을 전공하시는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국민보건정책에 대해서도 한말씀 해주시지요.
"이제부터는 건강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릴 게 아니라 개인과 정부가 함께 풀어나갈 문제로 인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결핵이나 나병 기생충 성병 등은 그동안 정부에서 관리해왔는데, 이제 상당히 줄어들었어요. 앞으로는 요즘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암 심장병 뇌혈관질환 등에 대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나 민간기구 어느쪽도 이런 질병들에 대한 사전예방기전을 효과적으로 마련해놓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예산의 부족이라든지 의료기관의 서울집중이 자주 논의되고 있읍니다만, 이 점은 어떻습니까.
"보건의료예산이 전체예산의1%수준에 불과한데, 이를 10배는 늘여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5%이상 심지어는 20%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의료시설의 서울집중을 해소하려면 질적으로 좋은 병원이 지방에 많이 세워져야 합니다. 시골사람들이 모두 서울병원으로 치료받으러 오니까 서울의 병원들이 만원을 이루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보건학의 영역이랄까, 과제는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시지요.
"보건학도 의학의 한분야입니다. 그런데 최근 의학이 신체구조나 기능을 주로 취급하는 생물과학적으로 많이 발전하는 바람에 의학의 사회과학적인 측면이 보건학으로 분리된 것이지요.
다루는 범위는 환경 공해 산업보건 인구문제 의료제도 등 광범위한데, 의료정책전반에 관계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의술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읍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의학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