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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있는 컴퓨터 체스 2천3백점대의 챔피언 「하이테크」

컴퓨터와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서양장기의 대결. 아직 영원한 승자를 가리지 못한 체스 대결의 역사를 살핀다.

 

컴퓨터가 체스를 둔다. 그것도 잘. 이것은 이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수세기를 걸쳐 쌓아온 체스의 지식은, 극히 최근에 탄생한 인류 최대의 발명품 중의 하나인 컴퓨터가 잘 구사하는지는 아직 의문스럽고, 또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말 지능적으로 '우아하게'

두는가는 더욱 의문스럽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바로는, 체스를 둘수 있었던 최초의 기계는 자동기계 장치에 의한 오락이 성행했던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헝가리의 '볼프강 폰 켐펠렌' 남작은 이런 유행을 타고 커다란 체스판 한쪽에 나무 인형을 앉힌 기계를 만들었다.
 

그 터키 인형과 체스판은 다시 톱니바퀴가 잔뜩 들었을 것 같은 커다란 상자 위에 놓여 있었는데 실제 팔을 움직여 가면서 체스를 두었다고 한다. 그 자동 인형은 상대한 사람을 대부분 이길 정도로 아주 잘 두었다고 하는데, 사실 어쩌면 지금까지 개발되었던 어떤 체스 프로그램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발명가 켐펠렌 남작은 유럽 대륙과 나중에는 미국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명성과 많은 입장료를 챙겼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 와있던 '에드가 앨런 포우'는 그 터키 인형이 체스 두는 것을 보고는 그 성능은 엄밀하게 보증할 수 없다는 논증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속임수가 드러난 것은 여러해 후의 일이었다. 한 이야기에 의하면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스를 두던 그 자동기계 터키 인형이 기침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

 

컴퓨터와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서양장기의 대결


인공지능으로 두각
 

실제 인공지능과 관련된 첫 노력으로 컴퓨터 체스가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이정표를 제시한 것은 '클로드 쉐논'과 전산학의 대부 '앨런 튜링'의 50년대 논문 두편이다. 이중 튜링의 생각을 기초로 해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개발한 작품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한다. 그즈음 미국에서도 몇몇 그룹이 체스 프로그램을 시도했는데 '알렉스 번슈타인'이 효시를 이루었다. 그의 프로그램은 확실히 맨체스터 대학의 것보다 낫기는 했으나 초보 아마추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체스에 대한 노력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는데, 1966년 '존 맥카시'교수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체스 프로그램과 소련에서 개발된 것과 시합을 주선한 바 있었다. 둘다 번슈타인의 것보다 나은게 별로 없었지만 맥카시는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흥미를 일으킴으로써 이분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그 시합은 우편으로 시간을 질질 끌며 진행되었다. 게임 결과가 소련의 승리로 끝날 무렵 MIT의 젊은 프로그래머 '리처드 그린 블랏'은 최초의 현대식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67년의 일이다.
 

'맥핵'(MacHack)으로 명명된 이 체스프로그램은 당시 난립하던 군계 프로그램들 중의 출중한 일학이었다. 여타 프로그램들이 모두 체스성적평점*이 6백점 정도로 초보인데 반해, 맥핵은 1천1백점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약간의 혁신이 있었을 뿐이었다. 어쨋든 중론은 그가 아주 뛰어난 프로그래머였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모아져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2천점을 목표로
 

1968년 '존 맥카시'교수를 비롯한 일단의 인공지능 학자들은 국제적 체스 명인 '데이비드 레비'(2천3백25점)에게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은 10년안에 그를 이길 것이라고 내기를 걸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1970년에 시작된 ACM 후원 컴퓨터 체스 토너멘트에서 '데이비드 슬레이트' 등이 제작한 체스 3.0 시리즈가 3년 연속 우승했다. 1972년의 체스 3.6은 대략 1천4백점에 맴돌았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 슬레이트는 설계상의 문제점(구태의연한 구식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특히 구조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프로그램 확장이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더 '총명한', 그래서 체스의 수 탐색을 덜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그결과 체스 4.0 시리즈가 빛을 보게 되었다. 그해 73년 ACM대회에서는 2위에 머물렀다가 이듬해 정상에 올라섰다. 그후 프로그램은 계속 향상되어 1976년의 체스 4.5는 2천70점에 랭크되었다. 드디어 1977년에는 9년전 내기했던 데이비드 레비와 결판을 벌였다. 물론 결과 평점을 보듯이 레비가 이겼지만 그동안의 컴퓨터 체스의 성장은 괄목할만했다.
 

컴퓨터 체스는 인공지능과 그 근원을 같이 한다. 또는 인공지능에서 곧바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분명히 인공지능과는 다르다. 최초의 생각과는 달리 컴퓨터 체스는 순전히 체스만을 위한, 오직 체스를 잘 둘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변질되어 갔다. 즉 인공지능의 평가함수에 의한 휴리스틱(Heuristic, 경험적) 탐색에서 출발하여 점차 대형, 슈퍼 컴퓨터 내지는 특수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높은 속도의 강제적 탐색을 하는 쪽으로 편향되어 갔던 것이다.
 

어쨌든 현재는 체스의 지식 보다는 속도에 의한 체스 프로그램이 모두 정상에 랭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지능적이라기 보다는 컴퓨터의 빠른 계산 능력을 이용하여 가능한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 높은 평점을 얻었던 것이다. 1982년 챔피언 '벨'은 특수목적용 하드웨어를 사용했는데 토너멘트에서 한때 약 2천3백점에 랭크되기도 했다. 그 이듬해 벨은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 크레이 X-MP를 사용한 미시시피대학의 '크레이 블리츠'에게 왕좌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현재 초강력 챔피언 '하이테크'는 64개의 VLSI칩을 이용한 다중처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체스 명인의 수준과 평점을 비교해 보면 컴퓨터는 확실히 체스를 잘 둔다. 그렇지만 이들 점수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그래서 과연 컴퓨터 체스가 실지로 어느 정도인가를 객관적으로 알아 보기 위해 대회가 구성되었는데, 그 첫대회가 1980년에 개최되었다. 이 대회의 특징은 모두 사람과 컴퓨터와의 대결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회 원년에는 두개의 체스 프로그램, '뉴체스'와 '벨'이 참가 평점 2천50의 두사람과의 대결에서 각각 1승 1패, 1승 1무를 기록했다. 이 결과에 사기충천, 벨은 이듬해 캐나다의 명인 '칼 스토리'(평점2천2백2)를 초청하여 상금 2천5백달러를 걸어놓고 게임을 벌였다. 여기에 큰흥미를 보였던 스토리는 2승으로 이외의 행운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컴퓨터 체스계는 순간적으로 초상집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역설적으로 간단한 전술로 나오는 사람한테는 가장 훌륭한 컴퓨터라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82년 다시 피츠버그에서 열린 대회에는 4대의 컴퓨터가 참가했다. 당시 최고의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이었던 이들과 대적한 사람은 평점 2천에서 2천1백사이의 명인들이었다. 대진은 사람과 컴퓨터가 번갈아 가면서 겨루는 '라운드 로빈'(round robin)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상금은 최대의 승률을 보인 사람 또는 프로그램한테 돌아가기로 했다. 대회 한달전에 대적할 체스 프로그램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인지 1위 2위 3위는 사람이 차지했다. 체스 프로그램인 뉴체스는 공동 3위를 했으나 사람들 보다 1백점 내지 2백점 가량 훨씬 높았던 크레이 블리츠와 벨은 공동 5위로 제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듬해 1983년에는 워싱턴시에서 열리고 있던 미국 인공지능 학회 참관인들 앞에서 기발한 대회가 개최되었다. 일종의 튜링 테스트**로서 사람이 자기 상대를 모를때 과연 컴퓨터를 능가할 수 있을건지, 그리고 맞두는 상대가 안보이는 경우 그 상대가 사람인지 기계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가를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는 벨과 뉴체스 두 프로그램과 평점 1천9백50~2천50 사이의 열두 체스 명인이 참가했다. 열명의 사람을 각각 다른 방에 배치하고 두 컴퓨터는 한방에 넣은 다음, 각 방에 워키토키를 손에 든 사람을 한명씩 배치하여 한수를 둘 때마다 다른 방에 알려 대응하게 했다. 이것은 사람한테는 상대가 사람인지 기계인지를 모르게 하고, 컴퓨터인 경우는 속도 조절을 위한 것이다. 사흘간 매일 저녁 네사람과 두 컴퓨터가 한게임씩 하도록 했는데 컴퓨터는 항상 사람과 맞붙게 했으므로 수학적으로 한 사람이 기계와 시합을 벌일 확률은 꼭 절반이다.

 

유연성이 관건
 

이번에는 체스 프로그램의 성적이 현저하게 좋았다. 벨은 3전승, 뉴체스는 1승 1무 1패. 사람이 상대가 기계인지를 모른다는 조건은 컴퓨터에게 확실히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참가한 열두 명인 중에서 열명은 컴퓨터와 대적했다고 생각했는데, 반수인 여섯명이 틀렸다. 반면 관전홀에서 관전판을 통해 게임 진행을 보고있던 사람들은 각 판이 15수(30수에서 60수 정도로 한게임이 끝난다)정도 진행되었을 때 대체적으로 맞추었다고 한다.

83년 컴퓨터 체스 챔피언이었던 크레이 블리츠는 평점 2천2백58점으로 두 상대보다 1백점 이상 높은 당대 최고봉이었으나 1무 1패로 맥빠지는 결과였다. 아직도 고르게 제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의 상대적 능력은 상대가 사람인 경우 그 프로그램이 하는 게임을 이전에 본적이 있느냐 하는데 달려있다. 사람은 이전 시합의 결과로 스타일을 분석하여 적절하게 자기의 페이스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컴퓨터 프로그램에게는 그런 유연성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현재로서도 체스 프로그램의 능력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속도이상의 것, 예컨대 프로그램 스스로가 세운 일정한 계획하에서 인간이 가진 체스의 지식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보다 인공지능적인 요소를 가미한 지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당혹스런 것은, 적어도 체스에 관한한 아직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 고속 탐생능력을 가진 체스 컴퓨터가 출현하기를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나을지를.

 

새로운 챔피언「하이테크」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 '하이테크'가 ACM 후원으로 매년 열리는 북미 컴퓨터 체스 토너멘트에서 1985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0월30일에서 15일간 '덴버'시에서 개최되었던 이 대회에서 하이테크는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완파 4전 전승을 거두었다. 이 새로운 강적은 갑작스레 출현한 것 같지만 그 토너멘트를 즈음하여 이미 세계 최정상의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그때까지 하이테크는 사람과 21번의 시합에서 경이적인 14승 5무 2패로 체스 프로그램이 받았던 미국 체스 연합의 최고 점수 2천2백33점을 받았다. 또한 ACM후원전 직전에 열렸던 '게이트웨이' 오픈에서는 4명의 명인들과 대전에서 2승 1무로 승리함으로써 신기록을 작성한 바 있었다.
 

ACM 토너멘트에서 하이테크는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물리쳤다. 첫 대국에서는 '로스알라모스'연구소 크레이 -1 컴퓨터에 돌아가는 '라체스'를, 두번째 대국에서는 '앨버타' 대학의 멀티플렉스된 여러대의 백스(VAX)컴퓨터에 가동되는 '피닉스'를 물리쳤다. 제3 대국에서는 준우승한 시스-10의 비트슬라이스 특수 컴퓨터 '베베'를 격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개의 프로세서를 가진 크레이 X-MP슈퍼 컴퓨터에 돌아가는 3연패의 챔피언인 크레이 블리츠에 이김으로써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ACM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챔피언「하이테크」의 평점은 2천3백점 대. 더군다나 체스 명인들에게 철저한 분석을 당했으나 결코 쉽사리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크레이 블리츠가 다른 체스 컴퓨터에게 진것은 4년만의 일인데 거기다가 2위 3위까지 뺏기고 4위로 쳐졌다.
 

카네기 멜론 대학 출신인 하이테크의 놀라운 능력은 주로 특별 설계된 64개의 VLSI칩으로 만든 체스 수 생성기를 가진 특수 하드웨어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각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위치를 초당 20만개 정도 계산처리할 수 있는데, 보다 효율적 위치 탐색을 위해서 특별히 고안된 하드웨어와 오러클이란 소프트웨어가 편집한 지식을 이용한다. 그리고 처리시간을 줄이기 위해 탐색을 시작하기 전에 시스팀의 부하를 최소로 내려준다.
 

제작진은 하이테크를 거의 삼년동안 준비해 왔는데, 그동안 대학원생 '칼 에벨링'이 하드웨어를 설계했고 '모시스'회사에서 특수 목적용 VLSI 주문형 칩을 생산했다. 1985년초부터는 한스 베를리너가 이끈 팀이 체스를 둘 수 있는 실제적 존재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시스팀 제작에 참여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 하드웨어를 설계 제작한 칼 에벨링, 시스팀 소프트웨어의 고돈 괴취, 초기 아이디어와 탐색 방법을 제안한 앤디 팔레이, 개발과 검사의 머레이 캠프 벨, 하드웨어구성의 래리 슬로머, 그리고 체스지식을 제공한 팀장 한스 베를리너였다.

 

쉽게 노출되지 않는 약점
 

하이테크의 1986년도 평점은 2천3백9점으로 다른 어떤 체스 프로그램보다도 월등하게 (1백점 가량) 높다. 85년 피츠버그에서 열린 '프레드킨'대회의 성적을 보면 ACM 토너멘트 성적이 결코 요행이 아님은 확실하다. 게다가 그 짧은 경력에서나마 약점을 찾으려는 명인들에 의해 철저 분석을 당하고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
 

그때까지 체스 컴퓨터가 평점 2천1백 이상의 명인과 붙어본 것은 1981년 챔피언 벨이 캐나다에서 초청한 칼 스토리(당시 2천2백2)와의 대결 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명인들과의 대결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피츠버스 근처 지방에 사는 평점 2천2백이상되는 사람을 모두 초청하였다. 이리하여 열렸던 85년 프레드킨 대회에는 프레드킨 재단에서 내놓은 1천달러의 상금이 걸려있었다. 체스 프로그램으로는 과거 게임을 철저 분석당하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서도 아래 표와 같이 상위권에 속하는 좋은 성적을 보였다.
 

이 대회의 우승자인 '비벡 라오'는 미국 16세이하 소년 중 최고 평점을 받은 15세 소년이었다. 라오는 85 전미 오픈에서 거장 '스파스키'와 비김으로써 주목을 받았던 소년이었다. 하이테크는 이전의 비공식 게임까지 합쳐서 라오와 두번 맞붙었는데 두번다 고배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하이테크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패배였다. 위 성적을 보면 하이테크의 점수는 2천4백점 정도로 볼 수 있고, 실제 게임 운영 성적까지 고려하면 2천4백43점까지도 볼 수 있는데, 86년초 현재의 평점 2천3백9는 너무 짜게 매겨져 있다고 제작진들은 주장하고 있다.
 

1985년 5월 25일 탄생 이래로 하이테크는 게임당 8점 정도의 비율로 미국체스 연합이 평가하는 점수를 차츰 밟아 올라갔다. 학습능력이 있는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제작진의 노력에 따라 계속 체스의 지식을 늘려갈 수 있고, 또한 프로그래머에 의해 단점이 계속 보완되어가고 있으므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ACM 토너멘트의 왕좌를 물려 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둑은 급수에 따라 그사람이 얼마나 잘 두는가를 알 수 있듯이 서양 장기인 체스에서는 평점이란 것이 있다. 평점이 5백점이면 갓 시작한 초보자이고 1천2백점 정도면 가끔 체스를 두는 사람치고는 좋은 점수에 해당한다. 게임을 하는 상대의 평점과 그 게임에서 승패 및 성적에 따라 평점이 올라가게 되는데 2천점을 넘어서면 세계 랭킹에도 낄 수 있다. 그리고 3천점 정도면 최고 절정 고수로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체계로 보면 최초의 체스 프로그램은 5백점 정도였고 번슈타인의 것은 이를 약간 상회하는 점수였다.

 

**튜링테스트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서두에 던져 놓고 영국의 수학자 앨런 M 튜링은 유명한 그의 50년도 논문 「계산기기와 지능」에서 「모방 게임」을 설명하였다.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에 앞서 「기계」와 「생각」이라는 말의 엄밀한 정의가 세워져 있어야만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은 원래 모호성이 많다. 그래서 끝없는 순환 논리를 피하기 위하여 위의 질문과 깊은 관련이 있으면서 명확한 말로 표현된 「모방 게임」으로 대치하자는 것이다.
 

(A)남자 또는 여자

(B)여자 또는 남자

(C)질문자
 

세사람으로 구성된 이 게임에서 A, B가 같은 한방에 있고 질문자 C는 다른 방에 있다. 이 게임의 목표는 C가 A, B중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를 가려내는 것. C가 질문을 하면 C가 지정한 사람 A 또는 B가 대답을 한다. A의 목표는 C가 오판을 하도록 대답하는 것이고 B의 목표는 C가 성공하도록 도우는 것, 즉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남자면

A: 나는 긴머리의 여자랍니다.

B: A의 말을 믿지 말고 여자인 나의 말을 믿어요.

와 같이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C는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모르므로 계속 더 질문해야만 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직접 대화를 하면 음색으로 판가름이 나므로 텔리타이프 라이터나 중개인을 통해 대화하도록 한다. 자 그러면, 대화 도중에 A를 기계로 대치하면 어떻게 될까? C는 A를 기계로 바꾸지 않았을 때만큼 맞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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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신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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