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종개발에 선도역할을 하는 영국의 한국인회사 팬더는 한국차의 유럽시장개척에도 선도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포츠카(sports car)는 한마디로 자동차패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승용차와는 다른 새로운 디자인이나 신소재가 등장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나 GM 등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들의 신차종 개발모델에 스포츠카들이 원용되고 있는 게 좋은 예.
스피드감을 살리기 위해 범퍼에서 보닛에 이르는 선과 앞유리창에서 지붕에 이르는 각을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만든다거나, 이와는 반대로 20세기초의 자동차를 연상시키는 투박하고 길쭉한 보닛과 커다란 바퀴가 돋보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카야말로 자동차패션을 리드하는 실험차(實驗車)인 셈이다.
이같은 스포츠카의 원산지가 바로 영국이다. 세계적인 스포츠카 메이커 8개사 가운데 5개가 영국에 있다. 영국의 아스턴, 모간, 이탈리아의 페라리, 서독의 포르셰, 미국의 시보레 등이 주도하는 세계 스포츠카 업계에서 영국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것.
한편, 스포츠카의 본거지 영국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포츠카 회사가 각광을 받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쌍용 U.K(United Kingdom, 즉 영국)가 경영하는 팬더카회사(The Panther Car Company Limited)가 그것인데, 얼마전까지 진도그룹의 김영철씨가 운영해오던 회사로 알려졌었으나 최근 쌍용그룹이 인수했다.
런던에서 서남쪽으로 35km쯤 떨어진 바이플리트(Byfleet)라는 작은 도시의 브루크랜드(Brooklands, 1900년대초의 유명한 자동차경주장)공단에 자리잡은 팬더카회사는 8백여평의 공장과 1백10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간규모의 스포츠카 회사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영국의 팬더카회사를 통해 스포츠카의 이모저모와 기술의 동향을 살펴보자.
1930년대풍의 「칼리스타」와 현대감각의 「솔로」
현재 팬더카회사가 생산해내고 있는 스포츠카는 칼리스타(Kallista)와 솔로(Solo).
1982년 버밍햄모터쇼에 선을 보인 칼리스타는 1930년대의 복고풍 스타일이 특징. 2인승의 무개차(無蓋車)로 보닛 부분이 차의 대부분을 차지, 육중한 느낌을 준다. 차바퀴와 헤드라이트도 인상적이다. 칼리스타의 엔진은 1천6백cc짜리와 2천8백cc짜리가 있는데 미국 포드사의 것을 쓰고 있다(이외에 미국수출용의 2천3백cc짜리와 오일분사식 2천8백cc짜리도 있다).
칼리스타의 큰 특징중 하나는 보디(車體)부분에 알류미늄을 많이 사용해 차의 경량화와 연비(燃費)의 향상을 기했고 녹에 대한 저항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또 차의 문(door)과 창(window)을 길고 넓게 만들었다. 전면과 후면의 차축(axle)은 포드사의 것을 팬더카 자체의 설계서에 맞추어 적용시켰다.
길게 굽은 보닛과 안정감있게 넓은 러닝보드(바퀴와 바퀴사이의 거리) 그리고 우아하게 흘러내린 날개(바퀴의 윗부분)는 보기만 해도 굉장한 스피드를 낼 것만 같다.
실제로 칼리스타는 스포츠카의 생명이라 할 스피드가 뛰어나다. 칼리스타 2천8백cc 오일분사식의 경우, 7초만에 60마일(96km)의 속도를 내고 최고시속은 1백20마일(약 1백92km)에 달한다. 이같은 속도를 내는데는 포드사의 강력한 엔진과 유선형의 차체외에도 5단의 수동기어와 합금으로 된 차바퀴가 장착돼 있다.
칼리스타의 연비는 1갤론당 26.7마일로서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1ℓ당 약 9.4km가 된다. 이처럼 일반 승용차보다 연비가 떨어지는 것은 스포츠카의 보편적 현상이다. 가격은 1천6백cc짜리가 1만파운드(한화 1천3백만원), 2천8백cc오일분사식이 1만2천5백파운드(1천6백여만원) 정도. 이는 중류층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게 회사측의 얘기다.
'솔로'는 칼리스타가 히트를 친 후 'EM25'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팬더카가 개발해낸 야심작으로 지난 9월8일부터 열린 서독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처음 선보였다.
솔로의 가장 큰 특징은 차의 경량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알루미늄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합성물질을 이용한 보디를 개발했고, 샤시 일부에도 이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공기역학을 최대한 고려해 운행 효율과 경제성을 높였다. 또 다른 스포츠카와 경쟁할 수 있도록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세계시장의 수요를 겨냥해 각종 제한규정을 통과할 수 있게끔 했다.
1930년대풍의 칼리스타와는 달리 솔로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칼리스타가 남성적이라면 솔로는 여성적이라 할만큼 부드러운 곡선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부드러움 속에는 2천cc의 강력한 터보엔진이 장착돼있고 미끄럼방지효과가 큰 ABS(Aiti-lock Braking System)가 들어 있다는게 회사측의 자랑이다.
아뭏든 팬더카회사는 야심작으로 내놓은 솔로가 또다시 스포츠카업계의 화제를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팬더카가 자동차공업의 최전선으로 두각을 나타내도록 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인수하기까지의 과정
칼리스타와 솔로는 팬더카의 현역차종이면서 모두가 한국인이 인수한 이후에 나온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한국인이 인수하기 전에 나온 스포츠카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팬더카회사의 전신인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s)가 1972년 창립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차는 유명한 재규어 SS100을 본따 만든 J72였다. 3천8백cc의 재규어 엔진을 장착하고, 보디는 알류미늄을 손작업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성공작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1975년에는 두번째로 커다란 살롱을 내놓았는데 바로 드빌(DeVill). 고전형의 리무진으로 최고급의 자재를 사용해 만든 드빌은 한대 만드는데 2천시간(man-hours) 이상이 걸릴만큼 심혈을 기울였고, 아랍의 왕족들이 탔던 것으로 이름이 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포츠카를 보급하자는 취지에서 개발한 것이 1976년에 나온 리마(Lima)였다. 세계시장에 내놓은 2인승의 스포츠카 리마는 2년간 꾸준이 생산이 증가됐는데, 나중에 칼리스타로 바뀌게 된다. 팬더 웨스트윈즈사가 마지막으로 개발한 스포츠카가 팬더 P6. 거대한 V8쌍동이 터보엔진을 장착하고 4개의 앞바퀴가 전륜조향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런던모터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성공적으로 스포츠카를 만들어내던 팬더 웨스트윈즈사가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한국인 김영철씨에게 넘어간 것이 1980년 11월의 일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김영철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72년에 회사가 설립돼 79년 경영위기에 놓일 때까지 이 회사 제품들은 인기도 있었고 판매도 원활했읍니다만, 생산라인이 지나치게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것저것 여러가지 차종을 한꺼번에 손댄 것이 경영상 압박을 가져온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형차 리마의 생산라인만 남기기로 하고 그대신 운영자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특수자동차 개조라인을 신설해 장·단기 경영상 애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을 채택했읍니다."
팬더카를 인수, 칼리스타를 선보이면서 회사를 살려낸 김영철씨가 최근 쌍용그룹에 다시 넘긴 것은 결코 적자 때문이 아니라는 게 쌍용측의 설명이다.
현지에서 회사경영을 맡고 있는 쌍용 U.K.의 김보웅사장은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바 있는 쌍용그룹으로서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수준을 높일 필요성이 크므로 팬더카의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진도그룹의 양해를 얻어 팬더카의 주식을 대부분 인수한 것인데, 아직도 김영철씨는 개인소유의 주식을 갖고 있으며 회사 경영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쨌든 영국의 중견 스포츠카 회사가 8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인의 경영하에 꾸준한 발전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기자의 생각으로는 한국의 자동차산업 특히 쌍용이 소형차생산을 하게 될 경우, 유럽으로의 진출에 있어 팬더카회사가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공정을 손으로 작업
다시 팬더카회사의 스포츠카로 돌아와서 이들의 제조, 판매에 관한 특징들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포츠카의 제작은 대부분 수공업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다. 부품을 조립하고 샤시에 바퀴를 달고, 엔진을 부착하고, 보디를 씌우고 내부를 장식하는 과정이 거의가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각종의 부품들은 자체개발하거나 영국내에서 조달하는데, 보디와 샤시를 우리나라 것을 수입해서 쓰고 있다.
제작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가 디자인, 스피드, 안정성 등이다. 돋보이는 디자인을 개발해내기 위해 자체내에 디자이너가 있으며 스피드화를 위해 가볍고 강도가 뛰어난 신소재를 개발해내고 있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자들의 수작업으로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한편, 철저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일례로 정면충돌을 했을 경우, 운전석이 보호되도록 설계돼 있으며 엔진배기가스도 규정치 이내인가를 엄격히 테스트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되는 팬더카의 스포츠카는 연간 수백대 가량 된다. 금년에는 3백대를 생산할 계획인데 이는 모두 주문에 의한 것이다. 젊은층에서 중년층에 이르는 고객들의 입장에선 주문한지 3개월만에 차를 인도받게 돼있는데, 이는 다른 스포츠카를 주문할 때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라는 것.
스포츠카의 특징과 파급효과
스포츠카는 한마디로 스포티한 승용차인 셈이다. 즉, 승용차의 범위에 있으면서 승용자와 경주용차의 중간위치에 있는 게 스포츠카다. 수송수단인 자동차에 운전의 즐거움이 가미되는, 운전 자체가 스포츠로 되는 셈이다.
따라서 스포츠카는 거주성이 좋은 객실, 트렁크, 각종의 등화 등 일반승용차에 필요한 장비가 모두 요구됨은 물론, 경주용차와 같은 높은 주행성능 조종성 접지성(接地性) 제동력 등이 필요하다.
팬더카 회사의 각종 스포츠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경주용차에는 미치지 못하나 시속 2백㎞에 육박하는 스피드와 강력한 엔진, 낮고 안정돼있는 차체, ABS같은 첨단제동장치 등이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스포츠카는 경주용차가 승용차로부터 확실히 분리, 독립된 1910년 전후에 양자의 중간적 존재로 탄생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스포츠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멸해갔다. 현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포츠카로는 영국의 MG 트라이엄프 재규어 아스톤마틴, 이탈리아의 페라리 마세라디 랑보르기니, 서독의 포르셰, 프랑스의 아르핀르노 마트라, 미국의 시보레 콜벳 등이 있다.
아뭏든 스포츠카가 일반 승용차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록 국내는 아니지만 유럽지역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스포츠카 회사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승용차는 대형화·고속화되는 추세입니다. 특히 고속화의 측면에서 앞서가는 스포츠카의 기술이 일반 승용차에 반영되고 있읍니다. 우리로서는 스포츠카를 만들면서 습득된 디자인 스피드 안전성 등의 기술을 어떻게 국내의 자동차공업에 전수할 수 있을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겠읍니다."
팬더카를 운영하는 쌍용U.K. 김보웅 사장의 말처럼 한국 자동차공업의 발전을 위해 팬더카의 경험과 기술이 한몫 기여해주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