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상의 첫 시상식이 지난 12월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됐다. 이 상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된 것으로, 노벨상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포상을 통해 과학자의 연구의욕과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날 연구대상(대통령상, 상금 5천만원)은 액시온(axion) 소립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예언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있는 서울대 김진의(金鎭義·41·물리학과)교수가 차지했다.
●―「유가와」의 π중간자 이론에 비견
―수상의 영예를 가져온 연구업적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아주 가벼운 액시온이란 소립자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통해 이제까지 불완전했던 원자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의 상호작용을 매끄럽게 설명했다는 것지요. 마치 유가와가 원자핵을 지탱하는 핵력의 매개입자로 π중간자를 상정했던 것에 비교될 수 있읍니다."
잘 알려진대로 자연계에는 4가지 힘이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의 정설이다. 즉 입자로부터 은하계의 운동까지 모든 물질을 끌어당기는 중력, 플러스의 전하를 갖는 원자핵과 마이너스의 전하를 갖는 전자가 서로 당기는 힘으로 원자를 구성하는 힘인 전자기력, 그리고 원자핵을 지탱하는 두가지 힘으로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반발하지 않도록 묶어두는 강력과, 이보다 매우 약하지만 중성자가 전자를 내놓고 양성자로 되는 β붕괴의 원인이 되는 약력이 그것이다. 이 기본적인 4가지 힘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수학적 기술로서 설명하려는 대통일이론이 물리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추구되어 왔다.
"지난 79년 와인버그, 살람, 글래쇼는 이 가운데 약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묶는 통일이론을 발표해 노벨상을 탔지요. 이들의 이론은 83년 ${W}^{+}$ ${W}^{-}$ ${Z}^{˚}$ 등 3가지 입자가 '루비아'에 의해 실험적으로 확인됨으로써 입증되었읍니다.
그런데 강력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마땅한 이론이 없었읍니다. 70년대 초반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QCD(Quantum Chromodynamics, 양자색소역학)가 있었지만 이론적으로 완전하지는 않았지요. 이를테면 70년대 중반에 QCD이론에 CP 대칭성(입자와 반입자의 대칭성 및 패리티 대칭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읍니다. 중성자의 전기쌍극자 모멘트를 재보면 매우 작은데 QCD이론으로 그 값이 크거든요. 결국 제가 지난 79년 '페차이 퀸'의 대칭성이론을 바탕으로 아주 가벼운 액시온 입자를 도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읍니다."
―아주 가벼운 액시온 입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이 입자는 아직 검출되지는 않고 있읍니다. 단지 이론적으로 그 모습과 성질을 상정해 보고 있는 단계지요. 이 입자는 크기가 전자의 1천억분의 1내지 1천만분의 1정도로 작으며 대단히 약한 상호작용을 합니다. 상호작용이 약하다는 점에서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초신성 '1987A'의 뉴트리노(중성미자)와 비슷하지요. 뉴트리노는 초신성이 폭발할 때 중심부로부터 대부분의 에너지를 빼앗아 쉽사리 빠져나옵니다. 지구에서도 폭발 후 몇 초 후에 이것들을 검출했는데 이를 통해 초신성 내부의 사정을 알 수 있지요. 광자의 경우는 상호작용이 강해, 예컨대 태양 중심부에서 표면까지 광자가 나오려면 1백만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주 가벼운 액시온' 이론은 천문학이나 물리학에 어떤 기여를 할 것으로 보십니까?
"이 이론은 제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연구원으로 있던 79년에 미국 물리학계에 권위지 '피지칼리뷰레터즈'에 발표했던 것입니다.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2년 후부터인데, 대통일이론에 대한 학계의 높은 관심이 이 이론에 주목하게 만들었던 거지요.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 이론은 대통일이론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겁니다.
또한 보다 큰 분야로서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다루는 우주론에서 우주공간 내의 물질분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지요."
우주의 시작은 지금부터 약1백50억년 전의 빅뱅으로 알려져 있다. 1965년 '펜지아스'와 '윌슨'이 발견한 우주의 3K배경복사는 그 유력한 증거.
${10}^{32}$K에 달하는 뜨거운 불덩어리로 출발한 우주가 1초~1천초 후에는 온도가 3억K 정도로 떨어지고 수소와 헬륨의 원자핵 등 가벼운 원소가 만들어졌다.
10만년이 지나면 헬륨과 수소의 원자가 탄생하고 우주는 맑게 개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전자와 충돌해 산란되던 광자가 전자들이 원자속으로 갇힘에 따라 우주로 투과해 나오기 때문이다. 우주탄생 후 10만년이 지나면 퀘이사와 거대 블랙홀이 생기고 이어 은하와 항성도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1백억년 후에는 행성과 함께 생명체가 우주에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뜨거운 우주가 식어가면서 천체와 생명체를 출현시키는데 따라 나타난 질량분포의 불균등성은 이제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김교수는 하나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다.
"뉴트리노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별 1조개가 모인 우리 은하와 같은 규모는 설명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아주 가벼운 액시온을 도입한다면 이 정도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더 큰 규모의 은하의 경우는 아직 어렵지만 말입니다."
●―1㎤당 10조개꼴로 우주에 존재
현재 미국의 플로리다대, 로체스터대 그리고 버클리대(캘리포니아)에서는 이 입자의 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만일 이 소립자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확인될 경우 김교수의 연구성과는 노벨상 수상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실험이 가능한지요.
"실험장치는 그리 거대한 규모는 아니고 10만달러 정도면 마련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만 워낙 실험이 예민해 국내에서 제대로 장치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제 이론에 따르면 아주 가벼운 액시온은 우주에 1㎤당 10조개의 꼴로 많이 존재하지요. 그렇지만 상호작용이 매우 약해 검출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는 내부를 금이나 은으로 도금한 공동(空洞)을 만들어 장치로 쓰는데, 액시온이 자장과 상호작용에 만들어내는 파장이 긴(수㎝) 광자를 모으는 방식으로 검출을 시도하고 있지요. 제가 실험쪽 전공은 아니지만 5년 정도면 이 입자의 존재가 확인될 전망입니다."
김교수는 서울대 화공과를 1971년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 대학원을 거쳐 로체스터대학에서 입자 물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7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화학공학에서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꾼 특별한 이유라도 있읍니까.
"물리학 특히 소립자에 고등학교때 부터 관심이 많았지요. 화공과에 다닐 때도 물리학과 과목을 열심히 청강했읍니다. 유명한 입자물리학자인 이휘소박사도 화공과 선배이긴 하지만 아뭏든 과 지원은 적성에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의 연구풍토와 분위기에 대해서 김교수는 할 이야기가 무척 많은 듯했다. 특히 서울대에 대한 지원이 국공립연구소에 비해 많이 뒤진다는 지적이다.
―앞으로의 연구계획은 어떻습니까.
"우주상수의 문제, 힉스입자의 발견 가능성 등 새롭게 접근할 과제들이 떠오르고 있지만, 당분간은 아주 가벼온 액시온 이론에 매진해 이를 더욱 발전시킬 예정입니다."
한국과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현재 초빙교수로 있는 미국 미시간대학에 급히 귀국한 김교수는 16일 다시 출국했다. 그러나 금년 8월말이면 돌아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할 것이라 한다.
한국과학상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제까지의 다른 과학상과 구별된다. 우선 인물 중심이 아니라 단일 연구업적에 대해 포상함으로써 연구의 내용을 중시하고 있으며, 심사도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석학의 자문을 얻어, 연구내용의 엄정한 평가를 가능하게 했다. 앞으로 젊은 과학도의 의욕적인 연구를 북돋는데 이 상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일의 추진력이 생기거든요. 그러나 그 꿈이 허황되지 않으려면 실력이 밑받침되어야 합니다. 고등학생이라면 수학과 물리학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겠고, 대학이나 대학원생도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꿈꾸던 한 가지 일에 끈질기게 집착하면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