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기술자보다는 대학이나 연구소같은 데서 학문과 연구의 길로 나가고 싶다. 이런 입지(立志)를 가진 사람에게 특히 권장할만한 학과는?
답 특별히 권할만한 학과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학과를 선택하든, 또 어떤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든 학부에서는 기초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원이나 그후의 연구생활이 쉽게 풀려 나간다. 응용분야의 학과에서라도 그 분야가 요구하는 기초를 확실히 해놓는 게 중요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학부에서는 기초공부에 주력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학부에서 기초공부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되고 있다. 특히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외국어에 집중 노력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문 현재 고교성적은 중위권이다. 그러나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일류대학에 가기도 힘들고 또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참고될 말을 듣고 싶다.
답 우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대학교수라고 해서 중·고교시절에 늘 우등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학생으로 대기만성형의 성공을 거둔 예는 많이 있다. 다만 실제적으로 잘 분별해야 하는데 소위 일류대학에 못갈 실력이라면 경쟁률이 좀 낮은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그 대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된다. 대학공부는 고교공부와는 좀 달라서 고교때 뒤지던 학생이 대학에서는 앞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하튼 대학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추천 등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대학에서도 중·하위권이라면 방향을 달리 잡는 게 현명할 것이다.
문 학자의 길로 나가려면 오랜 세월 돈버는 것보다 돈쓰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집안도 가난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여진다.
답 대부분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이 대학졸업후 곧 취직을 한다. 학생같은 경우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집안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 된다. 각 대학이 아주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또 과학기술대에 입학하면 돈걱정은 별로 안해도 된다. 포항공대도 장학금혜택을 많이 준다. 대학졸업후 과학기술원에 들어가면 수업료·숙식비 걱정을 안해도 된다. 또 박사학위를 얻으면 과학재단에서 유학까지 알선해준다. 현재 수백명의 포스트 닥(Post Doc)들이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유학하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잘 하라!" 이것이 가난한 학생의 자기구원의 메시지이다.
문 요즘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얻고서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부에서는 대량으로 과학자를 양성할 계획인데 이들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답 학생이 우려하는 현실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크게 봐서 길은 넓다고 본다. 지금도 학위를 가진 고급두뇌가 대부분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려니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 일시적 마찰실업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정부의 장기 과학·기술계획에는 2000년초까지 15만명의 고급 과학두뇌를 확보하는 것으로 돼있는데 현재 5만명 정도가 확보돼 있다. 인구당 과학자수, 경제규모의 확장과 질적인 향상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생각하는 15만명의 과학자수는 넘쳐 남아나는 수자가 아니라고 본다. 과학자에 대한 수요는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문 순수히 학문생활을 한다 해도 보다 유망한 분야가 있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 특히 한국사회가 보다 필요로 하는 학문이 있는지….
답 문명히 보다 유망한 분야라는 게 존재한다. 학문세계에서도 시류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학문 그 자체에 매료되어 주위를 살핌이 없이 자기 하고픈 분야에 투신하는 것도 의미있고 멋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역시 좀 특수한 사람들이 하는 일일 것이다.
이 문제에 답하는 사람(조경철)의 개인의견을 말한다면 앞으로 10~20년 사이에는 생명과학, 우주과학, 소립자물리학이 중요하고 인기있는 분야라고 본다. 또 정부의 계획을 보면 컴퓨터·통신, 정밀화학, 신소재 등이 한국사회에서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분야이니까 참고하기 바란다. 해양·항공·우주분야는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는 하나 한국의 역량으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는 벅찬 분야라고 정부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수요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문 대학재학중, 또는 졸업 즉시 유학을 하고 싶다. 더러는 고교 졸업 즉시 유학하는 학생도 있는데 유학하는 시기도 중요한 것인가.
답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빨리 유학을 가더라도 대학 3,4학년쯤에 가는 게 좋다고 생각된다. 한국사회는 어느 학교에 다녔느냐, 동창관계가 어떤가 등이 인생항로의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을 한다.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이러한 심리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외국에서 학부부터 다니는 것도 좋으나 그런 사람이라면 귀국보다는 현지에서 취업한다는 각오를 갖는 게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그리고 재정사정이 나쁘면 일찍 서둘러 유학가려하지 말고 국내에서 공부하면서 기회를 마련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요즘은 미국이나 유럽어디에서나 고학을 한다는게 과거보다 어려워졌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