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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세계적 권위 케임브리지대 카벤디시 연구소

지금까지 25∼30명이 이 연구소와 직접·간접으로 관련을 맺어 노벨상을 받았다.

물리학의 슈퍼두뇌센터

세계최고수준을 자랑하는 60여명의 교수진과 3백20여명의 박사급 연구원, 1백40여명의 기술자를 포용하고 있으며 연간예산은 약 85억원. 1백여년의 역사를 통해 25∼30명의 노벨상수상자를 배출, 단일 연구소로 세계적 기록을 세움.

─ 방대한 규모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 연구소는 다름아닌 영국 케임 브리지대의 카벤디시연구소(Cavendish Laboratory)다.

'물리학의 슈퍼두뇌센터'로 불리는 카벤디시연구소는 반드시 거대규모나 노벨상수상경력이 이니더라도 세계적 권의의 물리학연구소로 손꼽히는데 손색이 없다. 순수물리학분야의 높은 연구수준, 잘 짜여진 연구조직, 모범적인 산학협동체제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카벤디시연구소를 취재하기 위해 대학도시로 유명한 케임브리지를 찾았을 때는 8월 중순의 화창한 여름날. 연구소는 24개의 칼리지로 이루어진 케임브리지대학가의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연결통로로 이어진 3동의 건물과 넓은 잔디밭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벤디시연구소는 연구소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카벤디시연구소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기 이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연구소의 성격이다. 국내대학의 연구소와는 그 조직이나 운영이 다를 뿐 아니라 대학 자체가 우리와는 상이하게 구성돼있기 때문에 얼핏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카벤디시연구소는'케임브리지대학교 물리학과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과의 교수·학생들이 연구, 실험하는 평범한(?) 학과실험실이 질과 양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케임브리지대의 화학과에도 물리학과에 못지 않은 규모의 실험실(연구소)이 있지만 '카벤디시' 같은 특별한 명칭이 없을 따름이다.

한편 케임브리지대는 영국의 독특한 대학체제에 걸맞게 24개의 칼리지(College)로 구성돼있다. 칼리지는 우리나라의 단과대학 성격이 아닌, 독립된 대학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각 칼리지마다 다양한 학과를 운영하면서 케임브리지라는 대학 연합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따라서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라고 하면 실제로는 각 칼리지의 물리학과를 총칭하는 표현일 따름이다. 결국 카벤디시연구소는 케임브리지대에 속해 있는 각 칼리지 물리학과의 교수 학생들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실험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옥스포드대와 함께 영국이 자랑하는 명문 케임브리지대는 특히 자연과학분야에서 두드러진 전통을 쌓아오고 있다. 자연과학의 기본이라 할 물리학의 교육이 케임브리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잠깐 알아보고 넘어가자.

케임브리지대에서 과학을 전공하기 위해 칼리지에 입학하는 학생은 매년 4백50명에 달한다. 이들은 1학년때 물리 화학 수학 생물 등을 공부하게 되는데, 1주일에 3시간 정도는 노벨상수상자 같은 저명한 교수의 강의를 듣는다.

2학년이 되면 이중 2백20명이 물리전공으로 남게 되고, 다시 3학년이 되면 최종적으로 1백40명이 물리를 전공하게 된다. 3학년을 마치면 시험을 거쳐 학사학위를 받는데, 3% 정도가 낙제를 한다는 것. 대학원과정부터는 배우는 곳이 라기 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갖고 스스로 연구해나가는 과정이라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학부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면은 교수와 학생이 1대1로 수업을 하는 개인지도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1주일에 1시간은 반드시 개인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교수와 학생은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이같은 개인지도방식을 슈퍼비전(supervision)이라고 한다(똑같은 방식을 옥스포드에서는 tutorial이라고 함).
 

표면물리학 실험실


응용물리보다 순수물리를 중시

카벤디시연구소는 물리학과교수60명이외에 포스트닥터(박사후과정) 대학원생 기술요원 등 5백여명의 연구진이 있는데, 이들은 10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연구활동에 몰입하고 있다. 교수를 정점으로 하는 연구그룹은 1백 여명 정도로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것이 있는가 하면 10여명 정도의 소규모그룹도 있다.

카벤디시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구활동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 5가지로 주요분야를 꼽아보면 고체물리학(Condensed Matter Physics) 전파천문학(Radio Astronomy) 고에너지물리학(High Energy Physics) 실험천체물리학(Laboratory Astrophysics) 그리고 에너지연구(Energy Research)를 들 수 있다.

전파천문학파트의 경우 17명의 교수와 8명의 박사후과정 21명의 연구생이 가담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인데, 영국에서는 맨체스터대와 함께 두군데서만 연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전파천문학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부근의 물라드전파천문관측소의 전파망원경, 케임브리지과학단지내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연구소 및 하와이의 마우나케아(4천2백14m)화산에 설치된 장비들이 이용되고 있다.

한편 주요연구분야는 다시 소그룹으로 나뉘어져 연구가 진행된다. 예를 들어 고체물리학분야는 저온물리 금속물리 반도체물리 등 6그룹으로 다시 세분된다. 또 전파천문학은 우주, 은하계 및 항성, 별의 생성과 소멸, 태양계 등으로 나뉘어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카벤디시연구소의 연구방향은 기초적인 혹은 기본적인 내용을 중시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꾸어 말하면 응용물리분야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작은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반도체'라는 연구테마가 있다면 이곳에서는 반도체의 장치라든가 규격문제 같은 데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반도체 재료(material)층에 전기가 어떻게 통하는가를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의 실험실에서는 연구소쪽의 연구결과를 이용해 실제 상품제조에 응용하는 실험을 하게 되는데, 대기업의 연구실이나 실험실에는 케임브리지 물리학과출신들이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에 상호연결상태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산학협동체제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산학협동은 정부에서 하라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기업과 대학 양측의 관심사가 같고,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는게 많을 때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연구소측의 얘기는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없지 않을 것 같다.
 

연구소 복도에 전시된 물리학의 주요 실험장치들


노벨상의 농장

카벤디시연구소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벨상이다. 지금까지 25∼30명이 이 연구소와 직·간접으로 관련을 맺어 수상해왔는데, 이 숫자는 프랑스 전체의 노벨상수상 과학자와 맞먹는 것. 현직교수중에도 수상자가 3명이나 있다.

카벤디시의 노벨상경력에서 특기할만한 것으로는 DNA(유전자의 본체)와 관련한 수상자배출. 1962년 '제임스 듀이왓슨'이 '프란시스 크릭'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중의 하나인 유전자의 구조를 밝혀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다. '왓슨'은 1951년 23세의 젋은 나이로 카벤디시에 연구생으로 들어왔었는데, 그곳에서 35세의 물리학박사 후보생'크릭'을 만나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해명하는 쾌거를 이룩했던 것이다.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받고 난 후 이 연구소출신으로 모두 6명이 DNA관련연구테마로 노벨상을 수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외에 기억될만한 노벨상 수상기록으로는 73년에 고체물리학 분야에서의 '조셉슨', 74년 전파천문학 분야의 '휴이시', 77년 아몰퍼스연구로 '모트'가 수상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카벤디시연구소가 '노벨상의 농장'으로 불려질만큼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저력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먼저, 연구자들에게 그들의 아이디어를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기 싫은 프로젝트를 억지로 떠맡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관심있는 분야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록 해준다는 것이다. 한 예로 A교수가 어떤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면 '과학및 공학연구위원회'(Science and Engineering Research Council)에 신청, 허가를 얻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A교수는 3년간 필요한 연구인력과 실험장비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자유스런 연구기회의 부여 못지 않게 노벨상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과학자 상호간의 대화가 강조된다는 사실이다.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발전이 없다'는 게 이 연구소의 오랜 전통에서 얻어진 결론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과학자들끼리 혹은 젊은 신진과학자와 업적을 쌓은 노장교수와의 토론이야말로 독창적인 진리탐구에 필요한 과정이라는 논리다.

과학자 상호간의 대화기회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연구소 내에는 사교실(common room)이 설치돼 있다. 식당에도 한쪽 구석에 칠판과 책상을 갖춰 놓고 있어 가벼운 대화가 본격적인 학술토론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소 건물의 설계에 있어서도 과학자들끼리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많게끔 고려했다는 얘기다.

스스로 연구 · 실험하는 풍토

카벤디시연구소가 창설된 때는 1873년으로 실험물리학자인 '카벤디시'(1731∼1810)의 이름을 따왔다. 초대소장이 'J.C. 맥스웰'이 취임하여 1874년에 문을 열었는데 'J. 렐리' 'J. 톰슨'의 뒤를 이어 1918년 'E. 라더포드'가 소장이 되면서 황금기를 맞았다. 이미 19세기말에 카벤디시에 모여든 연구자가 2백여명이나 돼 때마침 물리학의 융성기를 맞이하여 명실공히 세계적인 실험물리학의 메카로 발전하고 있었다.

본래 카벤디시연구소는 케임브리지의 중심부에 있었으나 새로운 연구분야가 확장됨에 따라 197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특별히 설계된 건물과 현대적인 장비들로 면모를 일신한 셈인데, 재미있는 것은 3동의 연구소건물이 각각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돼 있는 점이다.

즉, 왼쪽으로부터 '라더포드'빌딩 '브래그'빌딩 '모트'빌딩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이중 모트빌딩은 연구소장을 역임했던 '네빌 모트'경의 이름을 딴 것으로 생존인물의 이름이 건물에 붙여진 최초의 케이스다. 69세의 나이로 1977년 노벨상을 탄 '모트'는 자신의 논물을 반드시 "I believe…"로 시작하는 저명한 과학자. 현재는 고령으로 인해 항상 연구실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브래그빌딩의 복도에는 카벤디시를 세계적으로 연구소로 키운 역대소장들과 유명학자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고, 그들이 사용했던 실험장치들이 전시돼 있다. 최초의 X레이실험장치라든가 최초의 DNA모델 등이 그것인데, 아깝게도 '왓슨'과 '크릭'의 연구실은 연구소이전으로 인해 남아 있지가 않다.

기자가 둘러본 카벤디시연구소는 한마디로 전통이 구석구석마다 스며 있는, 그러면서도 최고수준의 연구소답게 시설과 장비가 훌륭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방학중임에도 실험에 열중하고 있던 한 대학원생은 "이곳의 실험실은 24시간 열려 있으므로 언제나 연구작업이 끊이지 않고 이루어진다.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아예 금지돼있기 때문에 오로지 연구에 정진해야 한다. 다만 실험실의 조교를 맡으면 약간의 보템은 되지만…"라고 연구소의 분위기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물리학을 전공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위해「존 디킨」연구소간사에게 유학안내를 부탁하자 "이곳에서는 스스로 연구·실험하는 능력이 요구되므로 한국에서 풍부한 물리학의 이론연구와 실험경력을 쌓아야 할 것"이라며 대학졸업후 석사과정에서 2년간 훈련을 거치고 오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의 박사과정에는 매년 55명 정도가 입학하는데, 이중 15∼20명이 케임브리지대출신이고 15명이 영국내의 타대학출신 그리고 20여명이 세게각국에서 유학오고 있다는 것이다. 1년간의 학비와 생할비는 약9천파운드(1천2백여만원). 명문 케임브리지대의 대학원에 적을 두고 카벤디시연구소에서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부담인 셈이다.

'조물주의 위대한 작품을 탐구하는데에 기쁨이 있다'고 연구소의 출입문위에 새겨진 글귀나 혹은 "항상 더 배울 게 있다" "항상 발전할 게 더 있다"는 연구소 사람들의 말에서 카벤디시연구소의 진리탐구에 임하는 자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초대규모집적회로(VLSI)의 관찰 등에 쓰이는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연구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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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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