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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만의 본격조사 휴전선의 생태계

"인적끊긴 30여년의 세월은 휴전선 일대를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계 연구지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휴전후 30여년이 넘도록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민통선(民統線) 북방지역은 한 마디로 자연생태계와 인간과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델케이스였다. 사라져가는 희귀동식물이 도처에서 발견됐는가 하면 공중에는 새들이, 물에서는 물고기들이 낙원을 만난듯 즐거워 하는것 같았다.
 

지난 6월10일부터 자연보호중앙협의회 주관으로 실시되고 있는 휴전선일대(민통선북방~휴전선남방한계선)의 자연환경조사는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조사결과만으로도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식물 조류 어류 곤충 미생물 지질 지리 토양 수질 고고 등 17개반 50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의 조사활동을 긴급취재,휴전선 생태계의 베일을 벗겨본다.

 

강원도 양구군의 고층습원지대에서 조사활동을 하는 조사반원들

 

식물-1천종 이상이 자라는 관속식물의 보고
 

휴전선일대는 특히 각종 식물들이 낙원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6.25의 전화와 군부대의 시계청소 등으로 나무들은 거의 없었으나 관속(管束) 식물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었다. 학자들은 한달도 못되는 조사기간 동안 7백여종의 식물을 채집할 수 있는 것으로 미루어 민통 선북방지역에 적어도 1천종 이상의 관속 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향로봉에서 원통으로 가는 길옆의 숲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원시형태, 즉 자연형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었고 대암산 해발 1천2백m지점 펀치볼 부근엔 골풀 끈끈이주걱 기생꽃 등 희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철원평야 용암지대엔 습지식물이 잘 보존돼 있어 관광자원으로서 큰몫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며 고진동계곡에선 두릅나무가 높이 13m 흉고직경 17㎝까지 자라고 있어 나무가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경우 얼마나 클 수 있는가를 실감케 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희귀식물인 한국미기(未記)식물 난초과의 감자난초 1종과 백합과의 참나리 1종이 발견돼 큰 수확으로 평가됐다.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천덕산(477m)과 야월산(487m)은 높이에선 평범한 산이었지만 다양한 식물을 보존하고 있었다.

 

끈끈이주걱 양구군대암산 고층습원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잎의 엷은 홍자색 가는 털에 점액을 분비, 벌레들을 잡아 먹는다.


조류-검독수리의 번식을 확인
 

휴전선지역에서 한달동안 관찰된 새는 총 43종.휘파람새 딱새 개개비 뻐꾸기 두견이 붉은 뺨멧새 등이 특히 많았다. 한국 고유의 텃새이면서도 점차 인가부근에선 사라지고 있는 텃새들이 휴전선일대에서 많이 살고 있었다. 또 전국의 인가나 경작지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여름철새들이 이 일대에서 많이 관찰됐다.
 

대표적은 것이 뜸부기. 60년대 이후 농약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거의 모습을 감춘 뜸부기가 휴전선 부근에선 흔한 새였다.
 

이번 조사에서 검독수리 번식지와 해오라기 번식지를 확인한 것을 조류학계에선 큰 경사로 꼽고 있다.천연기념물 243호인 검독수리의 번식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의 두타연 부근 계곡에서 확인됐다.
 

검독수리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이 70m의 암벽 중간에 우리를 치고 새끼들에게 매일 3,4차례 먹이를 날라다주고 있었다. 조류학자들은 어미 2마리가 쥐 토끼를 등 먹이를 날라다주는 양과 울음소리를 미루어 새끼는 2마리 이상일 것으로 분석했다.
 

또 해오라기집단 번식은 한강하류인 경기도 김포군 월곳면 유도(留島) 에서 확인됐다.해오라기 대규모 번식지가 발견된 것은 국내에선 유도가 처음. 몸길이 56~61㎝로 재두루미와 모습이 비숫한 해오라기는 지금까지 일본만이 번식지이며 한국엔 여름철새로만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북녘땅 개풍군이 빤히 보이는 무인도 유도엔 해오라기 외에도 중대백로 황로쇠백로 재갈매기떼 수천마리가 떼지어 살아 섬전체(1.7㎢)가 온통 새로 이루어진 듯했다.
 

휴전선일대에는 겨울이면 두루미 재두루미 흑고니 등 세계적인 희귀조들이 무리지어 찾아드는데(자연보존협회조사보고) 안타깝게도 따오기만은 지난 66년 2월10일 이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포유동물-청설모 고라니 등 22종을 목격
 

휴전선일대에서 조사반이 직접 목격하거나 배설물 등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포유동물은 다람쥐 청설모 멧토끼 노루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오소리 대륙 목도리담비 족제비 하늘다람쥐 살기 수달 고슴도치 두더쥐 땃쥐 곰쥐 산양 등 줄쥐 집쥐 관박쥐 집박쥐 등 22종. 휴전선 부근에 큰 숲이 있을 수 없고 곳곳에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미루어 많은 종류이며 어느 지역에 비해서도 숫자로도 많은 편.
 

특히 강원도 산악지역에 경기도 평야지대보다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됐는데 일부 군인들은 늑대와 곰 사향노루 등 희귀 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반에 의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반달곰과 사향노루는 설악산 지리산 등 일부지방에 극소수가 남아 있으나 늑대는 지난 50년대 이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조사학자들은 포유동물의 조사는 특히 단기간에 끝낼 수 없으므로 눈이 내렸을 때 등 2,3차례 더 실시하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물고기의 낙원 자유의 마을 대성동 부근 개울에는 맨손으로도 쉽게 잡아낼수있을만큼 민물고기와 민물조개가 흔했다.


담수어-농약피해 없어 대량으로 번식
 

휴전선 부근 강과 개울 늪에서 발견된 어류는 71종. 농약사용이 거의 없어 어딜 가나 피라미 갈겨니 돌고기 모래무지 새미 붕어 배가사리 참종개 새코미끄리 퉁가리 메기 등이 떼지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의 담수어류상은 큰 차이가 나 전체71종중 영동지방에만 있는 것이 14종이나 됐고 양쪽에 모두 있는 종류는 8종에 불과했다.
 

강원도 고성지역에서는 총 5개 하천 6개 지소에서 조사한 결과 10종의 담수어가 채집됐는데, 이 부근의 하천은 거의가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수계의 어류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성 남강수계의 지류중 하나인 고진동계곡은 전형적인 산지계류로 산천어가 다수 채집됐다. 특히 이 지역에 산천어가 오래전부터 서식했으며 그 밀도가 어느 곳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학계에서는 큰 수확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밖에도 금강모치 버들가지 등이 채집됐는데, 금강모치는 한강 임진강수계의 상류지역과 외금강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으나 이번 조사로 인해 영동지역에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산천수계에서는 버들개 1종만 채집 또는 확인할 수 있어 빈약한 어류상을 나타냈다. 이는 산사태로 인해 모래가 대량으로 유입, 서식환경이 악화댔으며 냉천리에 송가저수지를 구축한 이후 다른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올 수 없게 돼 자원보충이 안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에 지경천수계나 명호천수계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버들개 버들가지 한둑중개 은어 산천어 북방종개 꾹저구 검정망둑 등이 채집되었다.
 

휴전선일대에는 담수어의 종류가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희귀종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열목어 은어 버들가지 금강모치 구굴무치 등. 천연기념물 249호인 열목어는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의 수구천과 인제군 북면의 인북천, 펀치볼부근에서 특히 많이 발견됐다. 눈의 열이 높아 맑고 찬물에만 산다는 열목어와 산천어 등은 수질오염과 남획 등으로 남한의 휴전선 이외의 지역에서는 서식지가 2,3개소 밖에남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인적이 끊긴 휴전선일대의 하천에서 다양하고 수가 많은 담수어들이 살고 있는 것은 농약사용이나 인간의 남획이 거의 없는데다 물의 양이 풍부하고 주변에 숲이 무성한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자연은 동식물, 그리고 곤충 토양 지질 등이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유지했을 때 서로 왕성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학계가 주목하는 생태연구의 희귀사례
 

민통선 북방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자연조사는 이번째 두번째이다. 지난 72년 한국자연보존협회가 미국 스미소니언연구소와 공동으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이후 15년만의 조사작업인 셈.
 

휴전선일대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자연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떻게 복구되는가 하는 생태연구측면에서 세계 학계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향을 심하게 받던 지역이 인위적인 작용으로부터 배제된 후 방치되면 자연은 변하기 마련인데, 지구상엔 이같은 자연변화를 살펴볼만한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뭏든 8월19일까지 계속될 이번 자연 환경조사가 끝나면 △농경지 및 관광지로의 개발가능여부 △자연자원의 보호대책 △개발사업에 따른 영향평가 등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기대된다.

198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홍성혁 편집위원
  • 이규석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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