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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전쟁·인간·인간성

영화 「플라툰 」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생각해 본다

현대의 과학·기술전은 엄청난 생태계 파괴를 초래하면서도, 파괴의 의식마저 마비시킨다.

‘플라툰’이란 영화가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시사주간지‘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아카데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베트남전을‘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을 다시금 생각하도록 한다. 특히 전쟁과 과학기술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리영희


|고엽제의 사필귀정

몇 해 전, 미국 육군 재향군인회가 국가(미국)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다.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 가운데 제대 후 10년이 지날 무렵부터 원인모를 각종 신체장애와 질환으로 폐인이 되는 사람이 늘어간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공군이 뿌린 고엽제(枯葉剤)의 후유증임이 대체로 입증되었다.

재향군인회와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는 “그럴리가 없다”고 맞섰다. 그 전쟁을 수행한 고위 군장성들은 물론, 그 전쟁에서 사용된 각종 무기의 고안·설계·제작·생산·판매의 각 단계에서 이익을 본(보는) 사람들도 “그럴 리가 없다”를 입증하려고 온갖 증거라는 것을 제시했다.
 

이들 ‘전쟁애호가’들의 주장은 과학적이기 보다는 주관주의적 자기변명에 가까왔다. 요약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인축(사람과 동물)에 해를 끼치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 ‘미국적 애국자’들은 “미국은 인도주의 국가이다. 아무리 전쟁중이라도 반인간(비인도)적인 무기는 사용치 않는다(않았다)”고 자기정당화의 여론조성에 광분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미국이 베트남의 자연적 국토를 황폐케 한 화학무기가 인축에 유해했거나 중대한 후유증을 남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들이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애국의 이름을 내세운 전쟁애호가들의 논리인즉, 다른 국가나 민족이 하는 전쟁은 모두 비인도적 전쟁이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와 미국군대가 하는 전쟁은 인도주의적 전쟁 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은 결국 그 제대군인들의 질병이 미국군대가 사용한 고엽제 화학무기의 후유증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하여 국가는 치료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동양적 표현으로는 ‘사필귀정’이라 할까.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전쟁사상 처음으로 이 신무기(고엽제)를 대량으로 살포할 때,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나라의 과학자들은 그 해독성을 지적하면서 맹렬히 반대했었다. 고엽제 화학무기는 식물만 말라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생체를 파괴할 것임을 예언했다.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지역은 전쟁이 끝난 수 십년 후까지도 자연의 생태계 파괴로 인간적 생존에 중대한 왜곡(distortion) 현상이 초래될 것임을 경고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이 재판소동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의 어느날 아침, 세상 사람들은 신문을 펼쳐들고 또는 TV앞에서, 등골이 오싹해진 채 잠시 악몽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었다. 베트남 정부가 일본의 의학계에 의학적 처치를 부탁하며 보내온 괴물같은 두 어린이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두 어린이는 척추가 하나로, 두 몸이 등으로 붙어 있고 머리, 팔, 다리가 각기 넷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날 무렵부터 이와 유사한 기형아가 무수히 태어나, 베트남의 의학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어 일본의학계의 도움을 얻고자 첫 케이스로 그 ‘괴물 인간’을 보내 온 것이었다. 일본 의학계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모아 의논했다. 그러나 척추 하나의 두 인간을 가르는 데까지는 일본의학도 세계의 의학도 아직 그 수준에 달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그 ‘괴물인간’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했다.
 

베트남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같은 ‘인간아닌 인간’이 태어날 것인가? 미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베트남 참전 군인과 그 가정에‘인간을 닮은 괴물’이 태어날 것인가?
 

|죄책감 못느끼는 현대의 병사
 

베트남 전쟁에서 핵무기는 끝내 사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온갖 신무기가 실험되었다. 수백만 헥타르의 우거진 정글을 앙상한 고목의 숲으로 바꾸어 버리고, 그 속에서 땅과 하늘과, 태양과 식물과,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서 번성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그 대지에서 인간생존의 자연환경이 회복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릴 것이다. 전쟁은 인간을 비인간화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한 미군 폭격기의 폭탄 투하병사와 전폭기 파일로트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 논문의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폭탄 투하병이 베트남 전쟁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B-52중폭격기에서 폭탄을 투하할 때의 심리에 관해서이다. 그들은 10톤의 각종 신형 폭탄을 투하하면서도 그것이 수많은 인간을 살상한다는 단순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살상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낮이라도 수 만 피트 상공, 밤이면 아무것도 내려다 보이지 않는 곳에 떠있는 ‘기계덩어리’속에 앉아 다만 기계의 작은 일부분일 뿐인 단추 하나를 누르는 손가락 움직임 하나로 일은 끝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동작의 인과적 연쇄의 끝에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재가 되어 흩날려 버려지는 상황과 상태의 인간적 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은 달랐다. 칼을 든 두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 칼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행위와 결과는 극히 인간적이다. 신무기로 등장한 소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총(또는 기관총도 마찬가지지만)이 신무기로 발명되고 사용된 수 백년간의 전쟁에서는, 상대방을 작은 가늠자와 가늠쇠 속에 확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쓰러져 피를 흘리는 상대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지극히 인간적 행위이며 인간적 결과이다. ‘인간성’적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까 죽은 상대에 대해서 인간적 감정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통쾌감과 승리감이건 반대로 죄책감이나 연민감이건 말이다.
 

전폭기 조종사도, 대포나 미사일 사격수도 마찬가지다. 개인적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국가’라는 거대한 기구가 개인의 인간적 이익이나 행복 또는 이념이나 염원과는 별 관계없이 명령하는 전쟁터에서, 자기와는 아무런 개인적 애증의 대상도 아닌 같은 인간에게 ‘단추’만 누르면 되는 것이다.
 

“나는 국가가 명령하는대로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나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나의 행위로 죽은 사람을 나의 눈으로 볼 수 없었으니까.”
 

죄책감을 못 느끼는 현대의 병사

 

베트남은 신무기 시험장
 

베트남 민중의 내란(내전)을 국제 전쟁으로 확대시킨 미국의 참전(다른 나라들도)으로 ‘전쟁’이 된 1966년 1년동안에 미국군대의 각종 신형무기에서 투하된 폭탄은 자그만치 63만8천t이다(맥나마라 국방장관 공식발표). 이것은 한국전쟁 37개월 동안 투하된 미국 폭탄의 전량과 맞먹는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미국군대가 태평양 전쟁 전역에서 투하한 65만6천t과도 맞먹는다 그러니 10년간 계속된 베트남 전쟁에서 그 작은 베트남의 땅에 얼마나 많은 신형폭탄이 투하되었겠는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 민중의 머리 위에 퍼부어진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각종 신형 폭탄만이 아니다. 온갖 신형 포탄(대포탄)이 또 있다. 66년 한해 동안에 발사된 미군의 포탄은 50만t이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체기간중 미군이 유럽과 태평양 전역에서 발사한 각종 포탄의 총량을 초과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강대국의 각종 신무기의 실험장이었다. 오늘날 미국이 자랑하는 온갖 종류의 신무기는 베트남인들과 그 땅과 땅위의 모든것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발전시킨 것들이다. 소련이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하고 있는 일도 몇 해 뒤에는 그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대포탄을 막기에는 너무도 허약하게 만들어져 있다. 고작 소총알에 견디기도하고 못견디기도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신무기는 계속 고안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신무기들은 자기나라의 인간과 재화와 자연을 실험대상으로 해서 사용되고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약소국의 인간과 자연이 그 대상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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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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