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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유전자가 모두 판독될 것인가

유전자연구는 일반이 알고 있는것과는 달리 아직 초보단계.

인류의 고질병인 암 유전자는 사람의 유전자 속에 몇 개나 있을까? 또 그것은 어떤 상태에서 활동을 개시하는 걸까? 어떤 특별한 바이러스는 어떤 상황에서 인간의 특정 유전자에 잠입하는가? 당뇨병과 고혈압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의문은 분자 생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시원스런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과학자들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해 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56억개의 문자로 된 암호문을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과학이 이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지 알아보자.

56억개의 유전암호문자

생물체의 모습을 형성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결정하는 기초소재인 아미노산을, 어떤 형태로 조합하느냐를 결정짓는 것이 유전자이다. 즉 생물체가 집이라면 자재의 선택과 조립을 결정하는 설계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유전자의 본체인 DNA인 것이다.

어떤 생물이든 DNA의 구조 자체는 동일하다. 눈에 안보이는 바이러스에서 몸무게가 1백t이 넘는 고래에 이르기까지 DNA가 당, 인산 및 4가지의 질소염기(A, T, G, C)로 구성돼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DNA분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1백50만 종의 생물에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간직할까. DNA분자를 책속에서의 문장으로 비유하면 A, T, G, C의 4가지 염기는 단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에 해당한다. 이 염기 3개가 모여 영어의 '암호'에서 유래한 말인'코돈'을 이루는데 말하자면 문장을 이루는 한 단어가 되어 아미노산의 종류와 순서를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수많은 '코돈'으로 이루어진 DNA를 읽어내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도 간단치는 않다. 이미 유전정보의 배열이 판독된 DNA바이러스의 일종인 ΦX174는 고리모양의 외가닥 DNA 사슬로 되어 있다. 이 DNA의 길이는 사람 DNA길이의 1백만분의 1에 불과한 1.7μ이지만 5천3백86개의 유전 암호문자(염기)로 가득차 있다.

이보다 큰 T₄세균 파아지의 경우는 4백60만개의 유전 암호문자가 이중나선구조를 이룬다. 한편 원핵세포의 대표격인 박테리아는 3천~5천개의 유전자가 4백60만개의 염기에 간직돼 있으며 1.4㎜에 달하는 큰 고리 모양의 DNA가 수없이 꼬여 초나선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60조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체의 세포 하나하나엔 10만개의 유전자가 56억개의 유전 암호문자에 간직되어 있으며 그 길이는 1.74m에 달한다. 염색체는 46개가 있는데 각각 2백개 염기쌍의 DNA와 8개 분자의 핵단백질로 구성된 1억분의 1m 길이의 뉴클레오좀이란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다시 원통형 코일 모양으로 축소되고 또 초나선구조로 응축되어 본래 DNA 길이의 5천만분의 1로 응축된 염색질을 만드는 것이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꼬여 이루어진 초나선구조.


20년 정도면 모두 해독
 

유전자 배열 결정의 한 예.


오늘날 유전자 연구가 꽃피게 된 데는 70년대 중반에 확립된 두 가지 기법에 힘입은 바가 컸다. 하나는 DNA를 절단하는 제한효소의 발견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DNA 염기배열 결정법의 개발이다. 염기 배열 결정법 덕분에 이제껏 하나씩 조사하던 SV40바이러스의 5천2백43개 염기의 배열을 1978년까지 완전히 결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염기배열을 신속히 결정함으로써 염색체 중에서 유전자의 발현이나 DNA 복제에 관여하는 영역을 해명하는 데 큰 진보가 이루어졌다.

DNA의 염기배열을 결정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1975년에 원리가 발표된 '생거'(Sanger)법은 DNA폴리메라제의 복구 반응을 이용한 효소법으로서 속도는 빠르지만 종종 중복된 염기배열을 건너띄어 읽는 단점이 있다. 77년에 발표된 '맥삼-길버트'(Maxam-Gilbert)법은 화학 분석법으로 인의 동위원소(${}^{32}$P)를 표식에 이용한다.

지난 82년 가을까지 염기배열이 결정된 사람 유전자의 수는 50개 정도. 현재까지 그 수는 1백개에 못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1개의 유전자엔 평균 1천~2천개의 유전 암호문자가 들어있으므로, 2천개 문자의 유전자 50개를 조사한 것은 10만개의 염기배열을 결정한셈이다. 따라서 사람 유전자가 모두 56억개의 유전 암호문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때 염기배열을 푸는 숙제는 5만분의 1밖에 못한 형편이다.

이런 염기배열을 대학원생들이 한다면 대략 1주일에 5백 염기쌍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문자로도 틀리면 전부 다시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두 팀이 같은 일을 해 확인하는 두 배의 노력이 든다. 이런 식이라면 1년에 1만 문자를 결정할 수 있다.

이때 쓰이는 것이 얼마전에 개발된 DNA 자동분석장치. 이 장치는 '길버트'법에 의한 분해반응을 하는 일종의 화학로봇으로서 원심기, 항온조, 용액을 주입하는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원리는 분해반응에 의해 DNA를 자른 뒤 전기영동(電氣泳動)을 하여 DNA분자의 배열을 읽는 것. 한번에 16개의 시료를 취급할 수 있고 '길버트'법의 반응30단계를 10시간 정도에 마치는 속도를 자랑한다. 앞으로 전기영동과 읽는 단계의 자동화가 달성된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한 사람이 DNA 분석장치로 매 주일 5백개씩 결정해 나간다면 인체의 염기배열을 모두 결정하는 데는 1천만명이 1주일 걸리게된다. 만일 전자기기의 발달에 따라 장치의 효율이 두 배로 는다면 1백명의 연구자가 1천 주일 즉 약20년이면 염기배열을 결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세기 안에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전히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유전자의 염기배열이 모두 밝혀지면 유전병을 사전에 알아낼 수 있다.


해답은 수십만 페이지 분량

물론 이것은 낙관적인 예측이다. 우리가 유전자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극히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어느 세포 속에서 어떤 유전자가 활동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작 알고 있는 것은 특별한 처리를 했을 때, 예를 들면 열을 가할 때 그것에 방어반응을 하는 유전자 군이나 바이러스에 감열될 때 발현하는 유전자 군 등이다. 간장 속의 특징적인 유전자는 무엇이며 뇌 속에서는 몇 개가 발현하는가 등 정상적인 상황의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모르는 형편이다.

인체의 유전자 염기배열이 모두 결정돼 일렬로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A, G, T, C 네 개의 염기가 이 책 크기의 수십만 페이지를 빽빽히 채울 정도의 길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인체의 유전자가 모두 해독된다면 현재 생물학에서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발생·분화의 메카니즘과 뇌의 기능에 관한 수수께끼가 모두 풀릴까? 유감스럽게도 배열의 결정만으로는 그렇게 안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배열 뿐만 아니라 발생의 각 시점과 여러가지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기능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정해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뭏든 인체 유전자의 염기배열이 모두 정해진다면 인류를 위한 수 많은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유전병의 퇴치이다. 현재 혈우병 당뇨병 등 3천여종이 알려져 있는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구조나 그 주변에 위치하는 유전자를 파악하게 되면 유전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나아가 이상이 있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교체하는 것이 원리적으로는 가능해진다. 물론 여기에는 생식세포를 다룸으로써 생기는 기술적, 윤리적 문제가 따른다.

또한 유전자의 해석을 통해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가 풀릴 지 모른다. 인류가 진화해 오는 과정에 생긴 수많은 변화가 현생 인류의 DNA에 어김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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