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X-1 수출은 냉장고나 칼라 TV등의 가전제품 수출과는 의미기 다릅니다. 수출대상국 국민들의 생활습관까지도 연구해야 하는 일종의 문화수출인 셈입니다"
'TDX'라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생소한 사업을 총책임지고 있는 서정욱박사를 만나는 심정은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감정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기술적인 용어이고 그 내용에 들어가면 더욱 난삽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교환기 기술은 첨단기술의 결정체
그러나 정보통신사업이 우리의 통신생활을 얼마나 편리하게 해주는지부터 알고나면 미세한 문제에 대한 흥미도 생기지 않을까하고 느껴졌다. 서박사의 설명.
"이미 어느 정도 실현되어 국민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당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에 불편을 겪었던 것은 쉽게 잊는 것이 사람의 생리니까요. 그것이 쉽사리 실현되기 어려운 첨단기술의 결정체라 할지라도요.
적절한 예가 전화가 될 수 있읍니다. 불과 2~3년전만 하더라도 백색 청색전화라는 말이 일상용어화 돼있었고 외국에 전화 한통화 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지 않았읍니까? 현재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라도 전화를 가설할 수 있는 1가구1전화 시대, 전국토 자동화시대가 열려 있읍니다. 이를 해결한 것이 전전자(全電子)교환기 기술이고 이를 국산화한 것이 TDX-1(Time Division Exchange)입니다. C&C(Computer & Communication)기술의 완성품이지요.
전화서비스의 확대가 도시와 농촌간의 문화격차를 줄인다는 일반적인 표현은 차치하고라도 한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하는 것으로 '페니트레이션 인덱스'(Penetretion Index, 국민 1백명 당 몇대의 전화를 갖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선진국을 보통 이 지수가 50정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제 20을 갓 넘어선 셈이지요."
―교환기기술이 첨단기술의 결정체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컴퓨터가 첨단과학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는데 전화교환기 기술이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죠. 쉬운 예를 하나 듭시다. 이전의 항공기는 직접 조종사가 운전을 했는데 이제는 조종사는 기계(컴퓨터)의 작동만을 감시하면 됩니다. 즉 컴퓨터기술의 응용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하나 선을 연결하던 동작을 1만회선단위로 컴퓨터가 자동연결시키는 기술은 첨단기술 중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이런 전전자교환기를 통해서 3자통화, 단축다이알, 부재중 안내, 착신통화전화 등의 특수서비스가 가능하며 접속기간이 기계식에 비해 $\frac{1}{10}$로 절약됩니다. 또한 요금계산 등에 정확을 기할 수 있게 되지요. 고용인원의절감으로 전화요금이 싸지는 것도 큰 효과입니다.
이런 전전자교환기를 우리가 스스로 개발했다는 것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세계적으로 전전자교환기를 자체 개발해 쓰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0개국에 불과합니다."
전전자교환기기술의 국산화작업은 82년부터 본격화되었다. 기반기술이 허약한 우리나라에서 개별기술의 복합체인 전전자교환기를 국산화하겠다는 발상은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기술개발이 어렵고 엄청난 투자(당시 예산으로 2백40억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술이 부족해 국가의 중추신경을 남의 손에 맡기고 그것도 모자라 막대한 외화를 낭비하면서 그들의 오만을 눈감아주고 과학기술자의 비애를 느껴야했던 우리나라 통신인들은 체신부 오명차관, 전기통신공사 이우재사장, 전기통신연구소(현 전자통신연구소)의 최순달(현 과학기술대 학장)소장 등을 주축으로 두텁게만 느껴지던 첨단의 벽을 부수기 위해 과감한 추진력을 가지고 밀어붙인 것이다.
과학기술자의 책임감
84년 1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TDX 사업단장으로 부임한 서정욱박사는 이 사업이 연구로만 그쳐서는 안되는 국가의 중대사업임을 감지,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시장성을 무시한채 그럴듯한 계획하에 리셉션 한두번하고 연구개발세미나 몇번하고 나서 흐지부지 돼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
우선 외국기종을 들여와 판매대리점 역할을 하던 대기업들을 설득해야 했고 전자통신연구소의 연구원들을 격려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불안과 회의가 엇갈리는 통신공사분위기를 '확신'쪽으로 몰고가는 1인 3역을 해야했다.
"그당시 저는 '과학기술자의 책임감'이라는 명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읍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과학기술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기술을 기회가 있는대로 발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요. 이런 어줍잖은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읍니다. 일정한 기한내에, 적정가격으로,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지상과제니까요."
―개발의지는 그렇다하고 그당시 기술개발인력으로 볼 때 전전자교환기를 개발할만한 맨파워(Man Power)는 충분했읍니까?
"그 문제에 관한 한 저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빈둥거리는 천재보다는 목적의식화된 둔재가 몇백배 능력을 발휘합니다. 박사가 몇명 석사가 몇명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3백명에 가까운 연구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연구원들을 매우 혹독하게 다루었읍니다. 아마 악명 꽤나 날렸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정부출연연구소는 분위기가 조금 느슨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분위기를 일신하자니 여러 측면에서 무리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밤샘과정을 잘 참아준 연구원들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낍니다."
―TDX국산화에 대해 이견이 있는줄로 알고 있는데요. 예를들어 하드웨어(기기)의 완전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첨단기술사회 특히 정보화사회에서 국산화의 개념은 바꿔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사회의 가치에 매몰돼있는 사람들은 기계가 완전 국산화돼야 우리제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TDX-1의 부품 몇개를 외국에서 사와서 만들었다고 국산화 안됐다고 할수는 없읍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즉 전전자교환기 운용기술이지요. 굳이 숫자화하여 표현한다면 소프트웨어가 60%, 하드웨어가 40% 정도겠지요.
86년 3월 전곡, 무주, 고령, 가평 등 4개 통화권 지역에 TDX-1을 2만4천회선 공급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운용하는 기술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있읍니다. 회선증설 등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자신있게 덤벼든다는 것이지요. 과거 외국기종을 사용하는 경우에 자존심 상해가면서 하나하나를 자문받아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기종
디지탈 전전자교환기인 TDX-1은 한종류의 마이크로프로세서로서 모듈화에 의한 분산제어방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설치 운용 관리 유지보수 교육훈련등이 용이하다. 또한 TDX-1은 범용소자를 최대로 활용함으로써 고도의 생산시설 및 고급인력이 없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서도 경제적으로 생산하여 운용할 수 있다.
TDX-1에서의 장애는 가입자회선과 중계선에서 부분적으로만 발생할뿐 전체 시스템이 다운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듈내의 중요기능은 이중화돼있어 자체감시 및 진단기능을 통해, 장애발생시 자동복구되므로 시스템은 항상 정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TDX-1의 소프트웨어구조는 분산된 다수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의해 축적프로그램 제어방식에 따라 수행된다.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은 서로 기능을 분담하고 있으며 또 프로세서간의 업무량에 따라 같은 기능을 서로 다른 프로세서에서 부하를 분담하기로 되어 있다.
결국 TDX-1은 단순화돼 있으면서도 안정성 신뢰성이 뛰어난 기종이다. 특히 우리 기술진에 의해 개발되었기 때문에 우리 문화, 즉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화사용하는 습관에 적합한 기종인 것이다.
―최근 TDX-1 4만회선을 필리핀에 수출하기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우통신측이 2천4백만달러어치의 TDX-1을 수출하기로 정식계약을 체결했읍니다. 액수를 떠나서 이 의미를 대단히 큽니다. 냉장고 칼라TV등의 가전제품 수출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국가의 신경조직 즉 공중통신망의 핵심인 교환기를 수출한다는 것은 기계만 덜렁 던져주고 오는 것과는 달리 모든 운용을 책임진다는 의미를 가지지요. 이를 잘 수행해나가려면 그나라 사람들의 생활습관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일종의 문화수출이랄까요. 무척 긴장되는 순간 입니다.
산업적으로는 '자동차수출'에 버금가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읍니다. 자동차라는 것이 단순한 기계덩어리가 아니라 그나라 사람들의 생활양식, 기호, 습속에 맞아야 계속 수출되는 것 아닙니까.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배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성취할 것으로 믿고 있읍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 전자교환기 기술이 세계 10위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전반적인 우리의 전기통신사업은 세계적으로 어느 위치에 와있읍니까?
"요새 흔히들 2부리그, 1부 리그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막 2부리그에서 빠져나와 1부리그로 진출하려는 과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합니다. 2부리그에서는 좀 실력있다고 우쭐하는 것을 시기하고 1부리그에서도 아직 자기네들 그룹에 끼워주기 않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2~3년전만 해도 국제회의에 나가서도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됐는데 이제는 '너희도 좀 가진것 있으면 내놔라'하는 식이 되고 있읍니다. 이런 위치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스스로 개발한 전전자교환기를 직접 쓰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한걸음 더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자기 능력을 초과하는 책임을 완수하느라 1백% 탈진한 상태에서 '이제 좀 쉬어가도 되지 않느냐'는 약한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경계하는 목소리이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임에 틀림없다. 그는 분명히 지금 지쳐있지만 새로운 일을 할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추어무선사의 어제와 오늘
―서박사님이 통신분야를 전공한데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읍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칭 아마추어 무선사였읍니다. 제가 설사 통신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저희 집에는 스스로 만든 무전기 몇개쯤은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피난시절 부산에 내려가서도 손에서 장난감(?) 무전기를 놓아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요.
대학에서 전기공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저희 조부님께는 법대에 다닌다고 6개월 동안 속였으니까 저의전공에 대한 애착을 이해하시겠죠."
1970년에 미국 텍사스 A&M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 바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가 첫 개발한 군용무전기가 아직 그의 사무실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특히 전기통신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분들 중 대부분 국방과학연구소를 거쳤는데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읍니까?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전기통신사업을 활발히 추진하는 기업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읍니다. 외국원조에 의존하던 무기를 스스로 개발하다는 자부심과 기술적포용력이 국방과학연구소가 많은 두뇌를 흡수할 수 있는 이유였겠지요.
제가 거기서 13년 동안 말단연구원에서부터 소장을 거치면서 배운 것은 전문지식의 활용방법과, TDX사업에 충분히 활용한 매니지먼트기술이었읍니다. 이른바 사업수단이랄까요. 제가 84년 TDX사업단에 올때는 이미 맡은 일만 묵묵히 수행하는 샌님같은 과학 기술자의 모습은 아니었으니까요."
―앞으로 TDX사업전망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우선 90년대 초의 상용서비스를 목표로 TDX-10을 개발하고 있읍니다. TDX-1보다 용량이 5~10배 이상인 전전자교환기이지요. 단순히 용량이 큰 것일뿐 아니라 사용하고 있는 언어도 자연어에 가까운 고급언어입니다. 이는 2천년대 실현 예정인 ISDN(종합정보통신망)의 표준화기종으로 예상하고 있읍니다."
선택은 없다.
우리가 선진국기술로의 대외종속성을 탈피하고 기술자립을 해나감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것이 서박사의 주장이다. 오직 한단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선택이지 이길을 갈것인가 저길을 갈 것인가 손톱만큼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국가경제의 대외종속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들 만큼 실감나게 기술자립의 중요성을 몸으로 깨닫고 있는 계층이 있겠읍니까?"라는 서박사의 반문에서 우리 과학기술계가 얼마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