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사고는 우리와는 무관한 강건너 불일까.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설비와 사고의 가능성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등을 살펴본다.
'너무나 값이 싸 계량기를 달 필요도 없는 전기', '주먹만한 원자로를 단 자동차', '영원히 공중에 머물 수 있는 원자력 비행기'… 이것들은 1950년대에 원자력 에너지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취된 과학기술자들이 예측했던 미래의 모습이었다.
'평화를 위한 핵'의 딜레머
1953년 미국의 아이젠아워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행한 '평화를 위한 핵'이란 연설을 출발신호로 세계의 원자력산업계는 '무한한 에너지' 라는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 결과 작년 말까지 전세계에서 가동중인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으로 줄임)는 26개국의 3백51기를 헤아리게 되었고 총출력은 25만3천MW로서 전체 전력생산량의 약 15%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지난 78년 '고리'에서 첫 원전이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원자력 시대로 접어들었다. 현재 가동중인 고리 1, 2, 5, 6호기와 월성 3호기의 시설용량은 전체 발전시설용량의 21%를 차지하고 있으며, 건설중인 7, 8, 9, 10호기와 국제입찰 중인 11, 12호기가 가동을 시작하는 96년에는 그 비율이 36.8%로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면 '평화를 위한 원자' 연설 이후 성년의 나이를 먹은 원자력 산업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화석에너지 자원의 고갈의 우려를 통해 석유대체에너지로서 원자력 에너지의 주가가 높아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드리마일 아일랜드'(TMI) 사고와 '체르노빌' 사고를 통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었고, 나아가 거대 에너지 소비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원자력 에너지가 이상적인 에너지로 풍요로운 '에너토피아'를 건설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현대의 과학기술이 잘못 열어놓은 '판도라의 상자'일지 모른다는 비관론이 병존하는 것이다.
원자로 내부의 모습
원전의 원리를 단순화시켜 본다면, 증기를 발생시켜 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석유나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원전의 경우 화력발전의 석유나 석탄의 연소열 대신에 우라늄의 핵분열 에너지를, 그리고 보일러 대신 원자로를 쓴다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원전의 안정성 문제는 한마디로 돌발적인 사고로 또는 장기적으로 원자로에서 주변환경과 주민 또는 원전 종사자에게 방사능의 영향을 미치는가의 여부로 요약된다. 따라서 관심의 촛점은 격납용기 내의 원자로, 가압기, 증기발생기로 이루어진 1차계의 방사능 누출 가능성으로 모아진다. 마침 핵연료 교체를 위해 가동을 중단하고 있던 원자력5호기의 1차계 내부를들어가 보았다.
방사선 관리구역인 격납용기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노란색 우주복처럼 생긴 방호복을 입고 준비된 모자 신발 양말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만년필 모양의 '도시미터'로 현재의 방사능 수준을 측정한 뒤 2중문을 통해 격납용기 내부로 들어간다. 후끈한 열기와 마이크를 통해 서로 부르는 소음과 함께 펼쳐진 모습은 겉에서 보는 단조로운 콘크리트 '돔'에서 받는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파이프와 수많은 펌프, 밸브들. 여기저기서 작업에 한창인 종업원들 머리 위에는 두개의 거대한 크레인과 세개의 증기발생기가 설치돼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의 원자로 깊이 15m의 투명한 붕산수 '풀'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핵연료·집합체의 주위에는 하전입자가 매질속을 광속 이상으로 방사될 때 나오는 '체렌코프의 빛'이 푸르스름한 광채를 내고 있다. 원자로와 자그마한 붕산수 '운하'로 연결된 또 하나의 '풀'에는 쓰고 난 핵연료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체르노빌 사고의 교훈
지난 4월의 소련 체르노빌사고는 TMI사고 이후 어느 정도 잠잠해진 원전의 안전성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붙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고의 직접적 피해는 사망자 28명, 입원중인 환자 1백87명, 그리고 아직발견되지 않은 유체 1구와 함께 원자로가 콘크리트로 밀봉돼 앞으로 수백년간 폐쇄되기로 한 것 등이며, 간접적으로는 훨씬 많은 사람이 방사능 질환에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히로시마 피폭시 방사능 오염의 범위가 5km였던 데 비해 체르노빌의 경우는 8천km에 달했다는 것은 이 사고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이 사고 직후 정부는 전문가 25인으로 구성된 종합점검반을 편성해 안전점검을 한 결과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재확인한다"고 결론짓고, "최악의 경우라도 소련과 같은 사고는 발생할 수 없으며, 설사 노심용융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소련과는 달리 격납용기가 있어 외부로는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서방의 원전이 소련것과는 질적으로 달라 안전성은 걱정할 것 없다는 국내 원전산업계의 평가와는 달리 서구에서는 이 사고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타임즈' 지는 "이제문제는 소련의 원전이 우리 것만큼 안전한가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원전을 얼마나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수차례의 성명을 통해 원전건설의 전면중지를 요구해온 한국공해문제연구소의 최열연구실장은 "가장 염려되는 것은 예상치 않은 대형사고이다. 원자로에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게되면 불과 5~10초 사이에 내부의 물이 증발되고 30초~1분만에 폭발위험에 돌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분내에 온도가 4천℃까지 상승해 원자로와 주위를 녹인다. 콘크리트는 3천℃이상에서는 견딜 수 없다. 대폭발이 일어나면 격납용기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된다" 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원전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전혀없을까.
1백22회 가동정지의 의미
고리원자력 본부의 서석천본부장은 "사고가 안난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사고가 나더라도 구조물 내부에만 방사능의 영향이 미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사고'라는 말은 정확하게는 '불시정지'라 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사고뿐만 아니라 정기점검과 핵연료 교체를 위해서도 가동을 중지할 수 있으며 또 가동정지는 보다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조치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78~85년 사이 원전 1,2,3호기가 일으킨 가동정지사고는 모두 1백22건으로 원인별로 보면 기기고장이 93건(76.2%), 조작잘못이 20건(16.4%), 기타가 9건(7.4%)이었다. 가동정지는 가동률을 낮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기계적 실수나 인간적 실수 여하에 따라서는 중대사고를 야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간과돼서는 안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나 심각한 환경오염이 보고된 적은 없다. 그러나 안전성의 관점에서 중대한 사고는 여러번 일어났다. 월성 3호기의 중수누출사고는 잘 알려진 예이며, 시험가동 때부터 잦은 고장을 일으키던 고리1호의 증기발생기 튜브 플러깅 미스, 고리 2호기의 잇단 제어봉 낙하사고 그리고 증기발생기의 세관누설사고는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이러한 잦은 가동중지와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원전의 이용률은 70%를 상회해 국제적으로도 프랑스 일본과 더불어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월성3호기는 85년4월부터 86년3월까지의 이용률이 98.4%를 기록해 서방세계 원전 2백77기 중 수위를 차지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한편 가동중지가 잦아도 이용률이 높다는 사실은 가동정지 기간이 짧았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상사태의 발생 후 완벽한 원인규명과 사후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재가동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사치스러울 정도'의 안전설비라고
원전관계자들은 원전의 안전설비가 '사치스러울 정도'라고한다. 울진 원자력건설사업소의 허숙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시설을 위한 비용은 전체 시설비의 30~4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안전설비는 크게 이상사태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것, 사고의 확대를 막기 위한 것, 그리고 방사성 물질의 이상방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나뉜다.
우선 사고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장치와 기기의 신뢰도를 높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중요한 안전설비는 같은 기능의 것을 두 개 이상 독립적으로 설치하여 그 중 하나가 고장이 나더라도 이상이 없도록 다중으로 설치한다는 '페일 세이프'(fail-safe) 개념이 채택되고 있다.
사고의 확대를 방지하는 장치로는 이상사태가 발생할 때 자동적으로 제어봉이 삽입되어 원자로내의 핵분열반응을 정지시키는 긴급정지계통과, 냉각제 상실사고 등이 발생하였을 때 노심에 일시에 물을 주입해 냉각시키는 비상노심냉각장치(ECCS)가 있다. 방사성 물질의 외부누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자로 압력용기, 차폐 콘크리트벽, 격납용기 등 여러 겹으로 밀폐시키는 방호벽이 설치돼 있다.
그밖에 원전 주변의 환경 방사능 감시를 위하여 고리의 경우 44개소의 열형광선량계와 11개소의 모니터링 포스트가 설치돼 있고, 육상 해상 및 대기의 시료를 정기적으로 채취·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원자로를 중심으로 반경 7백m(월성 3호기의 경우는 9백m)를 비거주지역으로 정해 해산물 채취와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큰 요인
미의회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1백50여건의 중대한 사고가 원전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앞서 본 것처럼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해놓았는데도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 원자력운전 연구소(INPO)의 보고서는 83,84년의 주요사건 중 52%가 인간의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밝히고 있다. 원전은 1백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된 가히 현대과학기술의 백화점이라 할 만한 복잡한 구조물이다. 가장 규모가 작은 고리 1호기에도 2백50대가 넘는 크고 작은 펌프와 약 3만개 이상의 밸브가 설치돼 있을 정도다. 따라서 '가장 불확실한 요소'인 운전원과 보수원의 사소한 실수, 조작 잘못, 오판이 사고의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나라 원전의 공통된 어려움인 고급 기술인력과 현장관리감독자 부족, 그리고 기능인력 양성등의 해결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방사능 피폭의 위험이 가장 큰 보수원의 안전문제가 있다. 증기발생기를 수선할 때는 3분 정도면 피폭허용량을 쪼여 교대해야 할 정도인데, 고리1호기의 경우 하루에 약 5백여명의 보수원이 투입되고 있다. 과피폭에 의한 작업제한, 품질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재, 공사기한 및 절차의 엄수, 격납용기 내의 공기오염 방지를 위한 중무장 작업 등 보수요원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려움을 안고 있어 이들의 안전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상한이 매우 높다는데 있다. 예컨대 출력 1천MW급의 원자로가 1년간 가동하면 ${10}^{8}$Ci(큐리) 가까운 방사능이 모인다. 이것은 최대허용 신체부하량인 ${10}^{-6}$Ci의 1백조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만약 이 가운에 1천만분의 1(이 정도의 신뢰도는 현대기술의 최고 수준)만 누출되도 1천만명의 허용량이 환경에 방출되는 셈이다. 최근 소련이 IAEA(국제 원자력기구)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사고로 방출된 방사능은 8x${10}^{7}$Ci로서 히로시마 때 보다 30~40배의 방사능 낙진을 뿌렸다고 한다.
이처럼 잇단 사고가 났을 때 그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별똥에 맞아 죽는 것과 같은 확률'등의 확률론은 그 설득력이 반감된다고 하겠다. 원전에 많은 돈을 들여 다중의 안전시설을 해 놓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대형사고를 염두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이 원전의 '절대적 안전'을 보장할 만한 수준에 와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극도로 복잡한 원전의 시스템이 예상한 대로 1백% 작동하고 소규모의 상황을 컴퓨터로 모사하여 확장한 안전설비(실제 사고 상황을 실험할 수는 없으므로) 가 언제나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원전 9,10호기에 이르러 40%의 국산화율은 보이는 원전의 자립화도 안전성 확보의 관점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기자재의 품질관리와 운전시 생기는 문제해결 능력이 국내의 낮은 기술수준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임시저장중인 핵폐기물
우리나라 원자력산업계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핵폐기물의 처분이다. 사용한 핵원료, 원전 가동시 생기는 각종 폐기물, 그리고 수명(25~30년)이 다한 원전 자체가 핵폐기물인데 아직까지 이렇다할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핵폐기물 처분의 특징은 비용이 많이 들고 장기간의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소한 수백~수천년 동안 핵폐기물의 환경누출, 도난 등을 감독하는 일은 선진국도 골머리를 썪이고 있는 문제이다.
사용한 핵연료에는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 239가 포함돼 있어 강한 방사능과 분해열을 낸다. 매년 1백59t씩 나오는 사용한 핵연료는 현재 붕산수 '풀' 속에 임시저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를 재처리할 것인지 또는 영구처분할 것인지도 결정안된 상태이다. 사용한 핵연료는 핵무기의 원료를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 감시카메라와 정기적 IAEA 사찰 등 엄격한 감시에 놓여있다.
원전의 운전과정에서 나오는 잡기재 폐액 폐수지, 폐필터 등은 방사능 준위별로 나누어 55갤런들이 드럼에 밀봉한 뒤 임시저장한다. 현재 가동중인 5개의 원전에서 나오는 양은 매년 5천5백드럼인데 앞으로 15년이면 저장고는 꽉 차게 된다. 이에 정부는 내년중 무인도나 해저에 3개소의 영구 처분장을 착공, 95년 완공할 계획을 세우고 입지선정 등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가장 처치가 곤란한 폐기물이다. '콘크리트로 덮어씌워 기념비로 만들자' 는 제안도 있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처분방법은 없는 형편이다. 이것은 고도의 기술과 막대한 경비가 드는 원전으로서는 숙명적인 난제이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원전이 가동을 시작한지 8년에 접어들지만 아직까지 인명을 앗아가거나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정도의 중대한 사고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이용률로 볼 때 대부분의 외국의 원전에 비해 경제성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원전의 안전성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전 홍보책자에 나와있는 3억년 만에 한번 일어난다는 치명적 사고가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건설이 계획된 원전의 수는 11개이다. 좁은 국토와 조밀한 인구밀도에 견주어 볼 때 이것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더구나 한반도는 여러가지 분쟁의 가능성도 높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원전의 안전성 확보는 오히려 경제성에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원전이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핵폐기물 처리와 안전성 확보를 위한 독자적인 기술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원전에 관한 제반 정보를 공개하여 합리적 비판에 바탕을 둔 국민적 합의를 모색하는 것도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겠다.